눈발이 날린다.
그러지 않아도 물을 많이 쓰는 생선 시장은 늘 질퍽거렸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질퍽한 땅에 눈이 내리니 젖은 것은 젖은 것끼리 더 축축해진다.
찬 바람이 불고 함박눈까지 내리는 장터에서 온종일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의 주름진 웃음조차
괜스레 마음을 젖게 한다.
잠시 들어가 몸을 녹일 곳도 없이 종일 한데에 서서 꽁꽁 언 생선을 팔다 보면 한기에 온뭄이 얼어붙을 지경이다.
그래도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이어선가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오늘 장사는 괜찮은지
아주머니의 얼굴이 넉넉해 보인다.
해가 더 기울기 전에 디왕이면 통 큰 손님을 만나 떨이로 몽땅 처분하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일 찬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생선을 들었다 놓았다 하지만
노점상 아주머니의 삶이 신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푸근한 저녁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사를 파하고 집에 돌아가면 팔다가 남은 처진 잡어 몇 마리로 자글자글 매운탕을 끓여 온 식구가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을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에 얼어붙은 하루가 봄눈 녹듯 녹고, 온몸에 생선 비린내가 베어 있을지라도
앞다투어 엄마 품에 파고들는 소중한 아이들을 바라보면 휑했던 가슴이 꽉 채워질 테니 말이다.
예쩐엔 보통 대여섯 명 아들딸을 품고 살았다.
여럿 중에는 속이 깊어 엄마를 살뜰하게 챙기는 아이, 야무지게 공부를 잘하여 엄마의 자랑이 되거나
생글생글 잘 웃고 애교가 넘쳐 시름을 잊게 하는 아이 등 저마다 엄마에게 다채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비록 오늘의 삶이 고달프더라도 미래가 있으니 좌절하거나 꺾일 수 없었다.
오히려 시장통에서 생선을 팔아도 국밥을 말아 팔아도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각오로 단단해졌다.
그 시절 체구는 작아도 강인했던 어머니들을 생각한다.
고운 옷 차려 입고 화려한 나들이 한 번 못한 우리 어머니 세대를 생각하면 못내 애틋하고 가슴 저리다. 김영만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