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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여행2 - 콜로세움을 보고 포로 로마노에서 천년제국 로마의 영광을 생각하다!
밤기차 로 새벽 에 로마 티뷰르티나 Tiburtina 역에 도착해 코인 라커에 짐을 보관하고
스페인광장과 포폴로 광장 그리고 나보나 광장 을 거쳐 판테온과 트레비 분수 를 봅니다.
그러고는 선배님 부부등 4명의 일행은 지하철은 소매치기 걱정 때문에..... 택시를 잡아
타고는 다시 티뷰르티나 Tiburtina 기차역 에 되돌아 옵니다.
4명의 일행은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는 “128, Via Filippo Turati, Rome ” 라고 적힌 쪽지
를 보이며 테르미니역에서 한 블록 떨어진 거리라고 하니 운전수가 정확히 데려다 줍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종전의 동별 번지 주소 를 버리고는.... 거리별 번지 새주소 를 보급하고
있는데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립주택 같은 철대문에서 테르미니민박의 벨을 누르니 철문이 열리고 게단을 오르자니
4층에서 조선족 아주머니가 내려와 엘리베이터 가 되지 않으니 다른 집으로 가잡니다.
실제로 성질 급한 울마눌이 캐리어 가방을 혼자 무리하게 계단으로 끌어 올리다가 캐리어
손잡이가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여행은 아직도 십여일 이상 남았으니 큰일이네요?
근처 아파트로 가면서 보니 여기는 온통 중국인 천지로 차이나 타운이라고 할것 까지는
없다손 치더래도 중국인과 흑인 동네이지만 집이 독채라서 좋기는 한데...
콘센트 구멍이 세개라 맞지 않아 걱정을 하니 중국인이 나중에 구해다 줍니다. 여기 로마
거리는 찌는듯 더운데, 그래도 습기가 없는지 그늘에만 들어가면 살만 합니다.
또한 얼마나 건조한지....... 빨래를 해서 방에 널면 3시간만에 벌써 다 말라버립니다?
샤워를 하고는 다시 4명의 일행이 테르미니역 택시 정류장 으로 가는 데, 중국인 거리
를 지나자 이번에는 흑인들이 낮부터 빈둥거리는 거리 네요?
그래도 테르미니역 근처라 교통이 편리하고 집세가 싸니..... 한국인 민박 이 주위에
몰려 있는가 봅니다?
예전에 로마에 처음 왔을 때 혼자 다니다 보니 지하철에서 3차례나 소매치기 시도 를
당해 거의 싸움 직전 까지 간 기억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4명의 일행이 택시 를 타고 콜로세움 에 가는데 들은게 있는지라 기사에게는
“콜로세오” 라고 말하니 그때서야 알아 듣습니다!
콜로세움 Colosseo 은 1층은 도리아식 이고, 2층은 이오니아식 그리고 3층은 화려한
코린트식 기둥 으로 장식된 원형 경기장 으로 무려 2천년 전 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과거 네로 황제 시절에 기독교도가 사자에게 희생된 곳이라는 데.... 당대가 아닌 오랜
세월이 지난 후대의 기독교 교회측의 기록 이고 또 다른 문헌에는 언급이 없답니다?
택시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니 옛날 왔을 때 처럼 로마 병사 들이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우리 일행들은 이런 푼돈 쓰는 것을 무척이나 아까워 하므로, 멀리 배경으로 찍으려니
세상에나!!!!!!
암스테르담 왕궁광장 앞 황금박쥐 처럼 약은 녀석들이 눈치를 채고 등을 돌려 버립니다?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입장하려는 줄이 얼마나 긴지..... 이 삼복 더위 에
기다리다가는 지쳐 죽을 지경 이라 그만 포기합니다.
여름 성수기 에는 팔라티노언덕과 공통 입장권 이므로, 먼저 팔라티노를 보고 그
입장권을 들고 오면 표를 끊을 필요가 없으니......
오늘처럼 오래토록 줄을 서지 않고도 바로 입장할 수가 있다고 하네요!!
오른쪽 길로 티투스 개선문 을 지나는 데, 유대인들은 이 문으로 지나다니지 않는 것은
서기 70년 베스파시아누스와 그 아들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예루살렘 반란을 진압 하고 유대 성전 을 헐어버렸기 때문이라나요!!! 그러고는 옛 로마
의 심장인 "포로로마노" 로 들어서니 예전에 왔을때는 없던 원기둥이 새로 섰는데.....
콜롯세움의 야간 조명 을 위한 것인가 보네요..... 포로 로마노는 입장료가 공짜
라서 더욱 기쁩니다.
옛날 로마의 중심 대로인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유적 앞에 서니.... 로마를
여행했던 괴테 나 몽테뉴 가 말한대로 "로마는 영원한 도시" 임을 실감합니다.
포로 로마노에서 빨간색 유니폼 을 입은 학생들이 유난히도 활달 하기에 서툰 영어
로 물어 보니 역시나..... 멕시코 에서 왔답니다.
유럽에서는 스페인인 들이 그렇고 그리고 중남미에서는 애들이 유난히 쾌활 하다는
것은 두 곳을 모두 몇차례 여행해 봐서 익히 아는 터이지요?
그래서 우리 네사람이 2년전 에 너희 나라 멕시코시티며, 떼오티우아칸 을 방문했으며
소칼로 광장과 프리다 칼로에 디에고 리베라 기념관 방문 얘기를 해주니 신기하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해서 여학생들과 다정히 사진 을 찍는데...... 동양인이 자기 나라에
왔었으며 자기네 화가를 들먹이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 좋은 모양이네요?
언덕에는 샘물 이 있어 물통을 채우는 줄이 길기도 합니다 . 여름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물이 최고 입니다! 감로수가 따로 없지요?
*** 포로 로마노의 중심도로 Via Sacra ***
언덕을 오르니 아!! 천년제국의 영화가 폐허가 되어 세월의 무게를 증언하고 있는데
개선장군 이 4마리 백마 를 타고 꽃비 를 맞으며 행진했을 Via Sacra 거리라.....
양켠에는 어쩌다 남은 원주 기둥들 외에는 부서진 건축물의 잔해들만이 어지럽습니다.
저 멀리 잔해더미 어딘가가 Curia ( 원로원 ) 일테고, 시저(카이사르) 가 칼을 맞으면서
“브루투스 너마저... ” 했다는.... 그 장소이런가?
로물루스 와 레물로스 를 비롯하여 기존의 나라(부족) 에서 소외된 떠돌이 사내들 이
세웠던 볼품없던 로마 가 세계를 제패하고 천년제국의 영화 를 누릴줄 몰랐듯이....
"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는 말은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지요? 출발이
너무나도 초라했기 때문에 성장이 더디었던 것이니...
오죽이나 다급하면 사비니족을 마을 축제에 초청 해 놓고는, 축제 중에 초청한 남자들을
죽이고, 함께 온 사비니족 부인과 처녀를 빼앗아 강제 결혼 을 했을려고......
로마인은 기존의 나라 (소 도시국가) 에서 추방된 떠돌이 들이라..... 여자가 거의 없다
보니 고육지책 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후 사비니족을 극복 하고도 기존의 도시 국가들인 에트루리아인 을 꺽기 위해 얼마나
아둥바둥 안간힘을 썼던지!!!!
그후 세계제국 으로 성장하여 천년, 만년 갈 것 같던 큰 나라가 476년 서고트의 침입 에다
용병 오도아케르의 배신 으로 허망하게 몰락하여 이런 폐허를 남길 줄 누가 알았을까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정녕 없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문명 서진설" 을 빌릴 필요도 없이
20~21 세기 세계 유일의 초 강대국 미국의 힘 도 꺽일 날이 오려나...
"해가 지지 않는나라" 대영 제국 이 150년 만에 그 자리에서 내려왔듯이 말입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의 침략 에서 보듯, 로마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부자들이
가진 전재산 을 내놓아 함선을 건조 하고.....
고귀한 신분의 귀족들 이 앞장 서서 75%나 전사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를 실천한
것이 로마 성장의 비결 이라면!!!
식민지로 부터 도입 되는 싼 가격의 밀과 포도주 로 인해 로마의 자영농민이 몰락 하여
농토를 잃고 빈민 이 됨으로써.....
일정액 이상의 재산 이 있어야만 가는 군대에 갈 자원 이 없어져서 야만인 게르만인들을
로마군에 충원 하기 시작한 것이 쇠망의 원인 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빈부격차가 나라 쇠망의 이유" 일런지!!! 중국도 그러했지만 조선이 서고
가장 먼저 한 일이 고려인들의 토지 문서를 빼앗아 불태운 일 입니다.
그리하여 농토를 농민에게 새로 분배 하니... 재산을 가진 백성들 이 나라에 세금 도 내고
특산물도 바치며 부역 을 나가고 거기다가 군대 에 까지 가서 무료로 복무하는 것이지요?
나라가 선지 100년쯤 되면 관리와 결탁한 부자들이 농토를 늘리면서 농민들은 논을 잃고
머슴이나 종(노비)으로 전락 하거나 고향을 등지고 절에 들어가기도 하고 산적 이 되니!
결국 세금 내고 군에 갈 자원이 없어지니 나라는 망하는 것이라.... 중국은 어떤 나라도
250년 안에 망해 버렸고 조선은 500년만에 망했던 것이지요!
동양에서는 왕은 하늘이 낸 것 으로 신성 불가침의 존재 이지만 유럽에서는 왕과 신하가
권리를 다투는 것은 고대에 민주주의 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는 로물레스가 초대 왕 이지만 암살 되고, 2대 부터 7대 마지막 왕까지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습제 가 아닌, 선거로 왕을 뽑았다는 사실입니다.!!!!
5대 왕은 그리스에서 망명한 자의 자식으로 부자 였기에 마차에 전재산을 싣고 로마에
들어온 뜨내기 였지만.... 재물을 풀어 선거운동 을 한 덕분에 왕 이 되었던 것이지요?
7번째 왕을 추방해 버린 BC 509년 부터 시저(카이사르) 시대에 이르는 500년 동안
로마는 민주 공화국 이었습니다.
물론 귀족인 원로원의 세력 이 컸고, 빈민과 노예는 선거권 이 없는 상당히 제한된
민주주의 일지라도....
이런 나라에서는 시저 ( 라틴어로는 카이사르 ) 가 왕이 되려 한다는 소문만으로도 능히
암살 될만한 사유가 충분하다 할 것이니.......
아우구스투스 도 감히 왕이나 황제를 칭하지 못하고 ...."제1인자" 로 만족 하면서 교묘히
로마시민을 다스려야 했던 것입니다.
유럽의 절대 왕정 은 프랑스의 루이14세 와 영국의 찰스 시대가 되어야 나타난 것 이었
으니, 그 전의 봉건주의 시대의 왕권은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포로 로마노에서 언덕을 넘으면 나오는 카피톨리노 언덕은 주피터 신전 이 세워진 곳
으로 지금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대로 계단과 광장과 박물관이 재건되었습니다.
우리 일행 4명은 광장 옆에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데 이 동상이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래 를 생각해 봅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 로 된 이래 천년을 이어 내려온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폐지 하고
중세에 이르기 까지 여러차례 우상파괴 운동 이 일어나는 데.....
그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들의 조상인 로마인 들이 만든 신전과 조각품 이며 역대
황제들의 인물상들도 모조리 부수는 것이었으니....
판테온과 산 조반니인 라테라노 는 교회로 사용됨으로써 파괴를 면했고 저 마르쿠스의
동상 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로 오해 한데서 살아 남았던 것이라!!!!
그러니까 로마제국이 붕괴했을 때 황제들의 청동 기마상이 22개 나 있었다는데 기독교도
들이 우상파괴의 광풍 속에 부수거나 녹여 버리고 저것 하나만 오해로 살아 남았던 것이라!
그리스나 로마인들은 제우스(주피터) 등 많은 신들을 믿었는 데, 기독교 입장에서는 모두
이교도 라 설사 자기네 조상의 유물 이라 하더래도 부수고 없애야할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동상은 5세기의 광풍에서 살아남아 13세기까지 라테라노
성당 앞 광장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라는 명패를 달고 서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13세기에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시대는 이미 르네상스시대 라 무사할수 있었으니!
15세기에는 도나텔로, 베로키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청동 기마상을 만들려고 하는...
예술가들은 모두 견학하며 스케치 를 하다가, 미켈란젤로 가 사람과 말을 분리한후 10명
의 남자들이 끄는 수레에 실어 여기 카피톨리노 언덕 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5현제 의 마지막 왕으로 로마의 전성기가 지나는
시점에 지명을 받아 황제가 되었던 사람인데 "명상록" 을 쓴 철학자 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5현제가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을 보면 중국에 요 - 순 - 우 임금 으로 선양
되었던 일과 흡사합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외삼촌 카이사르의 양자 로 황제 에 올라 아우구스투스 가 된 이래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로 내려오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은....
네로 황제 가 실정 끝에 자진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로마는 내전으로 들어가는데,
이를 수습하고 황제에 오른이가 유대 원정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입니다.
이 가문이 티투스를 거쳐 도미티아누스 에 이르렀을 때인 서기 89년 고지 게르마니아
사령관 사투르니우스가 반란 을 일으킵니다.
이 때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출정하는데, 스페인 주둔 7군단장 트라야누스 가 출동명령
을 받아 함께 전선으로 가면서 황제의 신임 을 받게 됩니다.
서기 66년 유대 반란을 집압한 총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휘하 10군단장 이 트라야누스
와 이름이 같은 아버지 인데, 그는 젊은이로 예루살렘이 망하는 장면을 지켜 보았습니다!
반란은 쉽게 진압되었으나 로마로 돌아온 황제가 노예에게 암살되고 원로원 은 다음날
바로 좋은 가문이기는 하나 70줄의 영감인 네르바를 황제로 선출 합니다.
네르바 가 1년이 지났는데도 범인을 색출하지 못하자 ( 아마도 그를 황제로 올려준 원로원
이 배후일 것입니다! ) 근위대와 군대가 들고 일어나니.....
서기 97년 10월 27일 이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던 유피테르 신전 에서 제사 를 모시고 난
네르바 황제 가 고지 게르마니아 사령관 트라야누스를 후계자 로 지명했던 것입니다.
그후 황제는 트라야누스를 거쳐 하드리아누스, 안토나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
우스로 이어졌던 것이니 역사에서는 이 선양을 5현제 시대 라고 부릅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에서는 마르쿠스도 못난 자식 콤모두스 대신에 전례에 따라 황제 자리
를 장군 막시무스 에게 양위하고자 하니 이를 눈치챈 콤모두스가 아버지를 살해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미있게 만드는 영화 일 뿐이고... 실체적 진실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르쿠스도 선양할 생각 이 있었다손 치더래도 그전의 네 황제는 아들이 없었으니 자연
스러웠지만 그는 콤모두스가 있었으니 자칫 또 다른 내란의 빌미 가 될까 꺼렸던 것일까요?
이후 로마는 콤모두스의 실정 으로 인해 인심을 잃고 암살되니 혼란은 극에 달해 불과
5년 사이에 5명의 황제가 비명횡사 하는 것이지요?
원래 여기 카피톨리노 는 포로 로마노에서 오르므로 입구는 남쪽 이었으나 미켈란젤로 는
허물어진 절벽인 북쪽 에 계단을 쌓고 입구를 바꾼 후에.....
새 궁전 을 지어 교황 식스투스 4세가 모은 미술품을 보관했다는 데... 지금의 카피톨리노
미술관 이라고 하네요?
오랜 상념에서 깨어나 역사의 현장인 카피톨리노 언덕 을 내려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을 거쳐 걸어서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교회 에서 진실의 입 을
보고는.... 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Via Filippo 거리에 내려서 민박집으로 돌아 옵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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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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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시길 바랍니다
포로 로마노를 걸으면서......
천년 제국 로마의 영화를 생각합니다!
회자정리요 생자필멸이라 했으니.....
그 천년제국도 결국에는 스러지고 말았으니!
3년전 로마갔을때가 생각납니다 유럽여행 세번째여행때 로마가 마지막장소인만큼 재미있게 갔었죠 그때 못본곳이 많아서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천년 제국 로마........
오늘날 유럽을 만든 나라라....
파리며 런던, 쾰른등 유럽의 모든 도시는
로마 군단기지에서 출발합니다!
또 양복과 양장에 구두등 서구문명의 출발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