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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마12:1)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말하는바는 "어찌 하여 성경에 기록한 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느냐?" 였습니다.
성경의 근거를 가진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을 정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은 성경의 바른 용례를 말씀 하시면서 인용하신 부분은 이후 3~8절까지 나옵니다.
바로 이어서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12: 9~10)
대답하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심으로 진리를 말씀 하셨고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 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대로 주님을 죽이기를 원했습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출31:14)
바로 이 말씀대로 죽이기를 원했고 주께서 말씀 하신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안식일 논쟁과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여 하나님과 자신을 동격으로 말했다 하여 주님은 죽임을 당하시게 됩니다.
저들이 주님을 참살하게된 이유는 바로 성경대로 알고 이해하던 그 지식들로 인함입니다.
실상은 주님의 증거대로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면서도 성경대로를 말하면서 자신을 포장하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도
그들은 회개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도리어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경은 실로 귀중하기에 성경의 증거는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보증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기에 성경은 참된 증거가 됩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날수 있느냐" 라고 한 대목도
'나사렛 예수? 베들레헴 예수가 아니고? 분명히 선지자의 예언대로라면 베들레헴 예수여야 하건만 나사렛 예수라니...'
나다나엘의 의구심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가 사실은 베들레헴에서 태어 났느니라"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네가 무화과 나무아래 있을때에 너를 보았느니라" 라는 나다나엘과 주님과만 아는 그 사실을 말씀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이 심령에 깊이 작용한 이유는 우리는 추정만 할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분분한 해석도 있을수 있지만 나다나엘은 이를 통해 믿게 됩니다.(다른 해석도 존중합니다만 제 해석일 뿐입니다.)
요한 복음 9장 16 절에 바리새인들의 분분한 의견가운데는 "이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 온자가 아니라"
쉽게 말해서 성경의 가르침인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이 단지 율법과 복음의 충돌로 인식될수 있기에 읽기에 따라서는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이고 나는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다'
라고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바울은 희안한 사람들의 답답한 주장과 직면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 이것도 풀어서 말하면 성경(당시에는 구약만 성경이었음)대로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루살렘에 문의를 했을때 믿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방인 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율법준수라는 '성경대로'를 주장합니다.(행 15장)
이에 대해 사도들의 결론적인 선언을 요지 부분만 살펴보면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중요한것은 복음을 믿는것이지 성경이 말하는대로 행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 사도들의 주장 이었습니다.
바울은 성경대로를 주장하여 복음에서 율법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이들에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라"
할례 논쟁은 당시의 뜨거운 논쟁중의 하나였고 보나마나 그리스도를 전파함이 아닌 성경(율법)을 전하고자 하는 이들과의
싸움이 지속되어져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저들은 두가지를 다 겸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었지만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사도들이 성경을 보는 시각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용도로서의 활용이었습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행 28:23) 이것은 바로 주님의 모본을 좇음인데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24:44)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27)
성경은 어떻게 쓰여져야 가장 정확한 것인지를 보여준 모본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용도라는 것을 공통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증거 입니다.
증거는 실체가 아닌 실체를 보증하는 경로이며 수단입니다.
우리 믿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경은 이를 위하여 강력하게 증거하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종교적 경전의 목적으로 기록되어지지 않았기에 종교적 율례와 규례와 유전으로 용도를 변형하면 어긋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성경에 대한 가장 상세한 설명들 중에 저는 이부분이 참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히3:7)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히3:15)
동일한 출애굽기사를 시편에 기록한 부분인데 처음에는 "성령이 이르신바" 라고 하였는데 바로 뒤에 "성경에 일렀으되" 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성령이 이르신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합당한것이 성경의 기자는 40 여명이어도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 한분이시며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은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16:13)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 5:7)
자세히 탐독해 볼수록 성령의 하시는 말씀과 사역은 과연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며 이에 대하여 정확한 것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엡1:13) 로 알수 있듯이 복음이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단지 성경대로 말한다 하여 다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가르치시고 말씀 하시는 경로와 사역을 좇아 갈때만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게 되며 이것만이 온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을 드러내는 방법이 됩니다.
잘 이해하여야 할것은 제가 하는 말은 제가 아닙니다.
(부연을 위한 예를 들자면 제가 다른 목적과 대상을 향하여 한말은 저와 동일시 되는 저 자신의 핏소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하신 말씀도 주님 자신은 아닙니다.
(부연하자면 주님이 피(생명)로서 생명을 나눠주신 말씀이 나닌 오용의 경우에는 동일시 되지 않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끊임없이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의 그리스도 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성경을 인용할때는 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용도로서 인용합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과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음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전파함으로 파생되어진것인 신약성경 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진정 지키고 싶어 했던것은 복음의 진리 입니다.
어떤 교리나 어떤 주장이나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1:8)
바로 사도들 자신이라도 거스를수 없는 순전한 복음은 전하는 자들보다 귀중합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골 1:23)
바울은 자기 자신을 정의 하기를 '복음의 일꾼'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교회의 일꾼도 아니며 성경교리의 일꾼도 아닌 복음의 일꾼이 바울의 직업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 (롬1:9)
바울은 성경 안에서 라고 표현하지 않고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표현합니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딤전1:11)
바울이 말한바도 모두 복음을 좇다보니 드러난 것들입니다.
신약성경을 모두 복음을 좇다가 파생되어져 나온것입니다.
당시에 모인 무리들을 위함보다 더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 신약성경입니다.
그들의 수고가 가능하기까지 성령께서 끊임없이 그들 안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신 그역사가 이제도 우리안에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단지 불신자를 전도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만
실은 이미 믿는 우리가 이 복음을 더 많이 들어야 합니다.
영혼에 울리는 하나님의 사람 사랑하심의 결과물이 복음의 소리로 우리에게 그 음성이 되어 들려오는 것입니다.
성경의 문자가 꿈틀거리며 내 영혼에 빛의 화살로 쏘아져 들어와 창세전부터 숨겨온 복음의 비밀들이 내영혼에 알려져오는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중요하며 우리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포커스를 '성경적, 성경대로'등의 추상에서 벗어나 '복음의 진리'에 맞춰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며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바 된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되는 단 한가지는 피로 맺은 언약의 결혼 입니다.
성경을 바로 사용하는 용례는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고 나타내는 일에 있으며 다른 방향을 잡아서
이것도 옳고 저것도 하나님 뜻이라는 애매 모호함에 다다르면 매우 잘못가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성경인용의 사례를 몇가지만 예를 든다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며"(엡6:4) 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아버지에게 책망하지 말것을 말하는 아들의 경우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34)
이 말씀을 원용하여 "내입에서 성경 구절이 줄줄 나오는 것으로 알겠지만 저는 하나님이 특별히 보낸 사람입니다.
일테면 하나님의 사자라고 할수 있지요 성경이 하나님 말씀 아니겠는지요" 라는 식의 말을 하는 이들
성경의 특정 구절들을 규례로 만들어 이를 지키도록 행위를 말하는 방식
꿈을 해몽한 사례를 들어 몽사를 풀어주고 돈을 버는 이들
기사와 능력을 빙자하여 사람이 올라가다 결국은 사도의 표 운운하며 사도인척 하는 이들....
열거를 다하자면 밤을 세어도 모자랄 지경이니 이만 그치겠습니다.
성경이 복음의 진리가 되려면 바로 성령의 경로를 따라 그리스도가 나와 타인에게 증거 될때만이며
이때만 생명의 말씀으로서의 효용과 가치가 있으며 그 외의 여러 유익한 가치들은 생명이 가장 중함을 우리가 알듯이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가치로서 순위에서 밀린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이 생명이 되려면 성령으로 감동되어 하나님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해 내게 될때만이 가능 합니다.
이것은 말과 글로 알아지는 것이 아닌 내영혼에 임하시는 계시(베일을 벗음의 원뜻에 주의하여)로 인합니다.
계시,빛비춤,하나님의 감동,성령의 역사등이 내면적이고 영적인 역사가 나타날때
외부의 기준점과 바른 이정표로서의 성경의 가치가 비로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부와 외부에서 만나져야 한다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하 하략 하겠습니다.
할말은 많지만...
...................
성경기록` 목적이 복음을 위한 것이라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성경기록은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를 알리기위한, 말씀기록입니다.....그 성경기록안에 복음`이 핵심진리로 포함되 있는 것입니다.
ㅎㅎㅎ 아무리 생각해도 소망3님은 끈질기시고 동일한 주장을 하시는데...성경책이 낡으면 어떻게 처리하시는지요...? 태우십니까...아니면 장농에 잘 모셔둡니까....매미가 땅속에 6~7년 있다가 기어나와 껍질은 벗어버리고 알맹이만 쏙 빠져나오지요...왜 자꾸 껍데기를 진리 라고 하시는지요...? 껍질은 알맹이를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성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성경의 기록목적이 복음을 위한것이 아니라니요.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 그렇게 싼가요? 성경 일부 내용이라면 너무 값싸게 몰아 붙이시는 건데요? 복음이 성경의 일부 주장쯤 된다면 아들의 죽으심도 그저 하나의 사건쯤 된다고도 봐야겠습니다. 만일 본인의 주장에 신빙성을 주시려면 근거 구절을 대주시기 바랍니다.
진달래님, 복음이나 십자가의 중요성이, 오늘날 교인들에게 실제적으로 가장 핵심이고 시급한 진리이므로, 그점을 강조하시는 것은 이해합니다....그런데 성경전체를 살펴보십시요~~성경에는 예수님초림과 죽음 부활승천(대충 복음의 중심)만, 쓰여있는 것이 아니라.....복음의 진리`에 버금가는---예수님의 재림`도 나타나고, 백보좌심판,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등에 관한 진리로 나타나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초림과 죽음 부활승천(복음의 핵심)은, 성경에 나타난 진리의 부분이고,,,,,부분적인 사건입니다.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심판 새하늘과 새땅에 관한 진리들도 성경에 있는 부분적인 진리이고 부분적인 사건입니다.....이와같이 여러 진리들과 사건들이 모두 모여서 완전한 진리---성경말씀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지요...
요20:31 구절은, 좁게보면, 앞구절 30절의 연장선에서... 요한사도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표적`들이 많은데, 다 쓰지 못하고 일부만 썻다...이러한 표적에 관한 것들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이런 뜻이랍니다.....넓게보아도 <요한복음>전체를 기록한 이유입니다....성경전체``를 요한사도가 쓸 수도 없고, 그 구절은 성경전체의 기록목적을 나타내는 구절이 아닙니다!!
성경기록 전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딤후3:15-17 절에 잘 나와있습니다...``거룩한 성경기록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함이라.``
인용하신 디모데서에도 복음이 나오는군요 예수님안에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기록목적은 복음이라고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은듯 합니다. 기타 인용하신 다른 부분들도 복음안에서 이해를 할수 있습니다. 쬐끔 논의의 핀트가 빗나가고 있는듯 하기도 하군요.성경에 대한 주님의 증거는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상관이 되는 것이 복음 이라고 저는 봅니다. 제가 좀 이제 시간이 없군요....일때문에..
네....디모데후서 구절을 좁게보아 복음`이라고 해도 됩니다,,,,,,그냥 성경의 진리구절``이라고 해도 되구요....그러니까 복음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은 하지 말기 바람니다,,,,,거의 같은 것입니다,,,,성경안에 있는 진리중...복음에 관한 진리가 핵심입니다. 어쨎거나 복음이란, 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진리의 한 부분입니다. 카페에 피차 없을 때, 우리는 댓글들을 써왔습니다,,,,,맘 편하게 일 하세요~~~
소망님. 성경의 진리 라는 표현은 성경에 없는데요. 도리어 성경은 성경 진리는 진리 라고 나오던데....작은 표현의 차이도 유의하여 기록한 기자들의 열정을 이해하여 주셨으면 싶습니다.
진달래님~~~님께서는, 어떤 진리에 대하여 표현을 할때, 성경에 나오는 문장과 단어로만 표현하십니까? 님은 그렇게 하지않으면서 나보고만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겁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기록인 성경은, 진리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이런 표현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진달래님이야말고 진정하시고,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지....돌아보기를 바람니다.
소망님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이 있으시다면 왜 성경(비블리아)이 비블로스(기록된 문서)라는 어원에서 출발하였고 주님도 이것을 다르게 구분하여 말씀 하셨으며 사도들도 로고스와 비블리아를 구분 하여 사용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단어를 사용할때는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는지요. 같은 것은 단어를 혼용하거나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로고스와 레마의 용례를 보시면서 생각을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비블리아가 로고스 라고 성경에 나오나요? 아니지요. 로고스에 대한 기록이라는 의미이지요. 정확히 구분하여 기자들이 기록했으면 정확히 보아야하는 것은 우리 일입니다.
이 얘기하는데..저 얘기로 넘어가고....ㅜㅜ 대화의 초점이 맞지않아서, 피차 시간낭비 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진리라는 성경구절이 성경에 있냐고 여쭸는데요?
윗 저의 댓글에 이미 설명드렸습니다.....<성경진리>나, <성경의 진리>라는 용어을, 성도들이 많이 사용합니다....모두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지고지순```하시다~~이런용어도 성경에 지고지순```이 안 나와있으면, 사용하지 말아야 됩니까?
댓글로 대화 하도록 글 올렸습니다. 시작하시지요
소망님과 진달래님이 대화를 통해 나눔을 갖고 계신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 전혀 소통이 안되고 있습니다. 진달래님은 글속에서 자신이 말을 했던 것도 나중에는 이것이 아니고 저것이다하며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글을 스스로가 비틀고 있으면서 그 글을 통해 이해를 했던 회원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어요.
진달래님, 본인이 쓴 글과 본인의 성경관에 대해서 스스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무슨 영감설, 주의 ..이런 것을 떠나서..사람에게 인정받거나 설명하려는 의도없이..... 본인이 쓴 글과 성경에 담겨진 진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속에서 잘못된 어떤 것들이 나타나면 당연하고 원론적인 다른 얘기로 그것을 비껴가거나 모면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지금 대화가 진전이 없이 지치고 결과물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쓴약이라 생각하고 담으시면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네 파도2님의 권면에 감사합니다. 지치지는 않습니다. 저는 좋은 소리보다 쓴소리가 결국은 약이 된다는 것을 많이 배워 온지라 파도 2 님의 권면을 옳게 여기고 지적하신 부분들에 대하여 지속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임마느엘님~~제가 성경`이란 표현을 할 때, 책이라는 사물을 지칭하는 의미인가요? 정말이지,,,,남이, 사용한 용어의미`에 대해서 생각좀 하시고, 의사표현을 하십시요~~서글퍼 지는군요....ㅜㅜㅜ
소망3님께서 속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그러나 님께서 주장하시는 성경안에 복음진리와 예수재림 심판등 모두를 포함하는 진리가 성경이라고하시는 말씀은 틀린 말씀입니다...모두가 복음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우리가 흔히 복음이라고 할때는, 구원의 기쁜소식---예수님의 초림과, 죽음과 부활승천`을 지칭하는 것입니다....성경은, 모든진리를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기록이구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읽기가 참 민망하네요. 재규어님이 진달래님에게 권면하는 것은 좋은데 소망3님과 시크릿가든님에 대해서 꼭 이런 식으로 폄하해서 말해야 하는 것인지요? 과정에서 취할 바 취하고 유익한 나눔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엉? 님은 다른게시물에서 댓글을 쓰며 님의 좋은쪽으로 기울어져 댓글을 달아놓고, 재규어님께 협조 도리를 다 해달라고 운운하는건 적반하장 어불성설이죠?
예수님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록을 동일시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기록으로 보존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 알수있습니다. 다만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지 않았고 오히려 이용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고 남을 정죄하기위한 도구로 사용하며 죄를 범해도 양을 잡으면 된다는..생각을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모두 알고 계셨고 겉은 그럴듯하고 회칠한무덤같고 경건해보이나 속은 썩었다라고 강하게 꾸짖은것 아닙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구약의 성경들은 하나님을 믿게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려고 기록하게 해주신 목적과 함께 그모든것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신약에서 사도들에의해 계시되며 알게 해주십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과 행적..그리고 서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것인 '성경' 인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이라 함은 요한에의해 기록의 완성을 계시해주신 계시록까지의 책들임은 또한 당연한것이지요..성도들은 사도들의 서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에 당연히 성경이라 믿었습니다.(살전2:13)
십자가의 이루심을 알지 못하고는..결코 다른부분들을 알수없고 진리를 알수 없겠지만..성도들은 성경말씀 전체가 진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이루신것과 앞으로 이루어 주실일들 또한 복음의 진리와 그리스도의 소망에 모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원수가 되게만드는 거짓가르침에 대한 경고와 미혹에대한 주의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령께서 말씀하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으며 유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또한 복음을 믿는자들..즉 교회에게 하는 가르침과 책망과 권면이 있기고..그것이 십자가를 통과한자의 믿음과 관련이 있기에 말씀하고 있고 미혹을 분별하는 기준이기에 중요합니다.
매우 댓글의 내용이 통찰력이 있으시고 내용상에 온전함을 느낍니다. 중요한 부분들을 잘 말씀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초대교회 당시에도 구약성경과 사도들의 서신은 동등한 권위를 이미 갖고 있었다는 기록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들의 후예들인 만큼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야 할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사도들의 글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채우는 현시대가 안타까울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