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매일 미사 집전순서
11일(화) 프란치스칸 가족 정평창보 12일(수) 수원교구
13일(목) 인천교구 14일(금) 예수회
15일(토) 서울교구 16일(일) 함께
19일(수), 7/1(월) 안동교구 |
2013_06_10_월 |
+++ 함께 해 주신 사제
주례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성소국장)
강론 : 김승연 신부(의정부교구 화정동성당)
의정부교구 : 박문기, 맹제영, 김영철, 상지종, 김승연, 오근, 노주현,
이상진, 이승룡, 이상민, 김승범, 김정일, 박재석, 김경진,
이정우, 최인혁, 노경득 신부
서울교구 : 함세웅, 박동호, 이강서, 이영우, 나승구, 임용환, 조해붕 신부
인천교구 : 서강휘, 장동훈 신부 안동교구 : 김영식 신부
춘천교구 : 김학배 신부 대전교구 : 임상교 신부
마산교구 : 하춘수 신부 제주교구 : 현성훈 신부
광주교구 : 이호진 신부 그리스도회 : 김종국 신부
작은형제회 : 유이규, 김정훈 신부 성바오로회 : 황인수 신부
예수회 : 김정대, 김정욱, 최영민, 김연수, 박종인 신부 |
+++ 함께 해 주신 수도회
성가소비녀회 성 바오로딸 수녀회
예수수도회 툿징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성심수녀회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노트르담 수녀회 사랑의 씨튼 수녀회
선한 목자 수녀회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
마리아니스트 수도회 |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강제 철거 ... 16명 연행
서울 중구청은 6월 10일 오전 9시20분쯤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강제 철거했습니다. 이날 중구청 직원 50여명이 동원된 강제 철거는 30분도 안돼 끝났습니다. 철거를 저지하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등이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은 이날 4개 중대 240여명을 배치, 중구청의 철거작업이 끝난 직후 화단을 둘러싸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이날 기습 철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려 했으나 경찰이 “기자회견을 빙자한 집회”라고 막아서 또다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기자회견은 열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또 연행되었습니다.
10일 연행된 사람은 모두 16명에 달합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중구청이 계고장 없이 분향소를 기습 철거했다”고 반발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문 비닐천막을 빼앗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노숙 모습
교회가 사회 문제에 무감각해서는 안 되는 까닭
강론
김승연 신부(의정부교구 화정동성당)
+찬미 예수님!
저는 의정부교구 화정동 본당의 김승연 프란치스코 신부입니다. 지난 1월 30일 서품 받은 새신부입니다. 신학교에서 사회교리를 전공했기 때문에 사제가 되어 대한문 미사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의정부교구 차례 때마다 계속해서 일이 있었던 바람에 오늘이 첫 참석입니다.
사실은 오늘도 의정부교구 동기 사제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상지종 신부님께서 ‘아예 동기 모임을 대한문에서 하라’고 권유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비록 다섯 명 밖에는 되지 않지만, 의정부교구의 모든 새신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개인적으로는 그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짐을 던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신학생 시절 어째서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서 무감각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신자들에게 세상 안에서 당신을 증거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당 문을 닫아걸고 신자들끼리만 그 안에서 행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나가 세상의 아픔과 함께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세상의 아픔과 함께하기 위하여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세상 논리’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기준점을 자신이나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 두고, 어떻게 하면 최대의 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를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이익이 최고의 기준이 되면 사람은 뒷전으로 밀려 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이익에 온 정신이 빠져있으면, 아무리 내 옆에서 사람들이 고통 받아도 그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윤리와 인권마저도 이익이란 이름 앞에서 무시당하는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렇기에 세상 논리를 이겨내야 합니다. 신앙인들의 첫째가는 기준은 이익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우리는 항상 복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세상의 아픔과 함께해야 하고, 약자들을 양산해내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해야 합니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대한 악이 만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힘은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쌍용차 사태 희생자들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이 투쟁 역시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지, 우리의 작은 몸부림이 사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사실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미약하게만 보이는 힘이지만 서로 연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증언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4)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아픔에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힘으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삶으로써 살아냅시다.
불의와 아픔이 만연한 이 세상을 정의와 사랑으로 채워나갑시다.
어두운 현실을 저주하기 전에 먼저 촛불을 킬 수 있는 신앙인이 됩시다.
아파하는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합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명이셨고 우리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아멘.
6월 10일 쌍용자동차 대한문 분향소 강제 철거와 무더기 연행에 부쳐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히브리 10:39)
1. 무심한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뀌었지만 아무 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5월 14일 이곳 대한문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정리해고로 인해 삶을 달리한 24명의 넋을 기리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야만에 저항하지 않는 것도 야만’이라 외쳤던 그 날, 그 자리의 외침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4일, 쓰레기마냥 사라져간 24명의 넋을 모시던 자리에서 이름 없는 통곡들을 모아 미사를 봉헌한지 오늘로 63일째입니다.
2. 밤이슬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는 노동자들의 서러운 매일이 벌써 66일째입니다. 죽음을 애도하던 자리를 흙더미로 덮었지만 아무 것도 묻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의로운 시민들이 들풀처럼 솟아났고 이름 없는 통곡들이 간절한 기도로 피어났습니다. 거짓의 꽃밭 위에 진실의 사람들이 의연히 피어났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3. 26년 전 오늘을 기억합니다.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분수령이 되었던 6.10 항쟁의 함성을 기억합니다. 거짓과 폭력으로 백성을 유린했던 철옹성 같은 권력은 들꽃처럼 무수히 피어난 사람들의 함성 앞에 우수수 무너졌습니다. 오늘 아침 벌어졌던 강제철거와 폭력적 무더기 연행은 오히려 6.10 항쟁의 고귀한 정신을 다시금 일깨워줬습니다. 그날의 들꽃들이 이 곳 대한문에서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우리 안에 선명히 피었습니다.
4. 인간에 대한 예의, 국민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린 공권력은 이미 공권력이 아닙니다. 한 몸을 뉘이기 위한 홑겹 비닐과 낱장 돗자리에 이리도 소스라치는 정부는 이미 국민의 정부가 아닙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우악스럽게 철창에 가두기는 했지만 우리들의 선명한 염원과 질긴 희망은 가두지 못했습니다.
5. 약속은 목숨입니다. 아니 실제로 목숨이 달려있습니다. 대선 전 이미 국민 앞에 공히 약속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원직복직에 대한 답이 이리도 참담할 수는 없습니다. 허망한 약속 앞에 우리는 진실의 말로 약속합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자리, 그곳이 하느님의 자리, 믿음의 자리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위태로운 목숨들의 아우성이 하느님의 통곡임을 고백합니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0:39)
2013. 6. 10
6.10 항쟁 26번째 날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미사 후 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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