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인찬 玉仁讚(1917 - 1994)】 "한국광복군 제3지대 활동 및 '순국선열 추도가 작곡'
1917년 3월 4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에서 태어났다.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대학(復旦大學) 출신으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3지대의 공작반원이었던 김병환(金秉煥)과 접선하였고 이후 1944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한편 한국광복군 제3지대는 초모 공작에 의한 한국인 청년들의 증가, 특히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되었던 한국인 출신 병사들의 탈출로 인한 입대로 인해 집단적인 교육 실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이었던 김학규(金學奎)는 집단 교육 실시에 대한 계획을 총사령부에 보고하여 협조를 요청하는 동시에 현지의 중국군 사령관과 교섭하여 중국군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 분교 내에 한광반(韓光班), 즉 한국광복군 간부 훈련반을 세웠다. 여기에서 지대본부 정훈처(政訓處) 지도원으로 영어회화를 가르쳤다.
일제의 항복으로 광복이 되자 일본군내의 한국인 병사를 인수하고 일본군 무장 해제의 협조, 그리고 한국 교포들의 생명, 재산 보호를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 정부간에 방침이 합의되었다. 이에 광복군 총사령부는 광복군 각 지대에서 일본군 점령 지역에 군사 특파단을 파견하도록 하는 동시에 일본군 내 한국인 병사를 접수하는 잠편지대(暫編支隊, 임시로 편성한 부대)를 주요 도시에 설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 지구(上海地區)에서 사무 처리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이에 총사령부는 김학규를 판사처장(判事處長)으로 임명하여 파견하였고, 이때 판사처원이 되어 상하이로 부임하였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수감되어 있는 광복군 동지들의 신병 인수, 일제 점령지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의 생명·재산 보호와 질서 유지, 일본군의 무장 해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귀국 후에는 바리톤 성악가로 활동하며 1948년 1월 16일 서울 시공관(市公館, 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춘희)’에서 제르몽 역을 맡아 활동하기도 하였다. 음악과 관련된 글을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으며, ‘순국선열 추도가’라는 가곡을 만들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