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강원도 홍천 은행나무숲과 미천골 계곡으로 천하장군 이백열아홉번째 정기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주말에 쏟아진 비와 강풍으로 홍천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미천골의 단풍상태도 그리 좋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답사는 홍천 비밀의 은행나무숲에 대한 기대가 커서 2회에 걸쳐 진행될 만큼 호응이 높았던 터라 아쉬움과 실망도 더 크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은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에도 즐거움을 찾아내며 강원도에서의 가을답사를 맘껏 누리셨습니다. 역시나 여행의 내공이 크신 분들이십니다.
천하장군 단골회원들과 함께 떠난 10월 19일 수요일, 홍천 은행나무숲에 도착해보니 은행나무 가지에 한 잎도 남아있지 않은 것입니다. 어쩜 그렇게 싹 다 떨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맨 앞에 가던 저는 황당한 마음이 앞서 뒤따라오는 회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속이 타기도 했지요. 숲에서 만난 주인장은 지난주 몰아닥친 추위로 은행잎이 다 언 상태에서 비와 강풍이 불어 은행잎이 다 떨어진 거라고 설명해주시더군요.
대신 바닥을 뒹구는 노란은행잎이 도열한 은행나무 사이로 황금카펫을 펼쳐놓았습니다.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가을운치가 물씬 느껴지는, 다른데서는 만나보기 힘든 풍광입니다. 또 황금빛 은행나무 카펫이 어찌나 폭신하던지 회원들은 이런 길을 언제 걸어보냐며 좋아하셨습니다. 아쉬움을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으로 바꿔버린 우리 회원들은 동행끼리 황금빛 은행카펫을 산책하고, 사진을 촬영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10월 20일, 숙명48회 동창들과 호스피스 자원활동가팀과 은행숲에 왔을 때는 미리 버스에서 은행잎이 다 졌다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 상태라 크게 놀라지 않고 황량하지만 또한 운치있는 황금빛 은행숲길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홍천 은행나무숲은 원래 개인소유의 은행숲입니다. 오래전 아내의 소화불량을 치료하기 위해 근처 삼봉약수를 자주 찾다 이곳과 인연을 맺은 주인장은 은행나무 2천주를 심고 가꾸게 됩니다. 그렇게 25년의 세월이 흘러, 작년 가을 주인은 이제는 제법 자란 은행나무숲의 단풍을 혼자보기 아깝다고 여겨 단풍기간에 한해 숲을 개방한 것입니다. 이렇게 홍천 비밀의 은행나무숲이 열린 것이지요. 아름다운 숲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주인의 고운 마음이 더해져 은행나무숲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점심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두부전골로 먹었습니다. 직접 만든 두부로 만들어서인지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차로 홍천에서 구룡령 고개를 넘어 인근 미천골 계곡으로 이동합니다. 미천골의 단풍은 오랜 가을가뭄으로 말라있거나 갑작스런 추위로 얼어서 빛이 어두운 편으로 그리 곱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올해 일교차가 커서 단풍상태가 고울 거라는 단풍예보와는 어긋난 것이지요. 올해 강원도 일대의 단풍은 전체적으로 그리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깊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신선한 가을 공기는 참 상쾌합니다. 56번 국도에서 벗어나 미천골로 향하는 길은 계곡 옆으로 난 아름다운 길입니다. 경사도 거의 없어 오래도록 걷고픈 그런 곳이었습니다.
길을 걷다보면 미천골자연휴양림 매표소를 통과하고 조금 더 걸으면 선림원지가 나옵니다. 선림원지는 신라시대 절이 있었던 곳으로 그 풍광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절터입니다. 9세기 홍각선사에 의해 부흥할 때 만해도 절에서 공양미를 씻은 물이 온 계곡을 뿌옇게 물들였다고 해서 미천골이란 이름이 붙을 만큼 규모가 컸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 후 산사태로 절이 완전히 매몰되었다가 1980년대 발굴되어 현재에 삼층탑과 부도, 탑비, 석등 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절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선림원지를 지나 불바라기 카페까지 걸었습니다. 카페에서 직접 달인 약초차를 맛보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냅니다. 여주인이 피아노를 치는 분이라 우릴 위해 멋진 피아노 연주도 들려주셨습니다. 경치 좋고 공기 맑은 계곡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따뜻한 차 한 잔, 좋은 사람들과 만남. 여행의 기쁨이란 게 이런 게 아니고 무엇일까요. 모두들 오붓하면서도 편안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첫날 여행팀은 운좋게 미천골자연휴양림 매표소까지 버스로 들어왔으나 둘째날은 버스진입을 강력히 통제하여 56번 도로부터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불바라기 카페에서 트럭을 태워줘서 일부구간은 트럭을 타고 즐겁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은행잎이 다 졌다고 실망했던 것도 잠시였을 뿐, 은행잎이 만들어낸 멋진 황금빛 은행카펫에 즐거워하고, 맛있는 두부전골 식사에 기분이 좋아지고, 아름다운 계곡 옆 카페에서 동행들과 차 한잔하는 여유로 가을여행을 만끽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틀간 홍천여행에 운전을 해준 기사님도 첫날 강원도 굽이굽이 재를 넘느라 멀미를 한 회원들을 보고, 둘째 날은 재를 피해 멀지만 고속도로로 돌아와 주시는 배려를 해 준 덕에 멀미 없이 편안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모두의 배려와 여행을 즐기는 여유 덕에 이번 홍천 여행도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여행에서 받은 에너지가 일상의 활력이 되길 바라며 여행의 피로가 남지 않도록 잘 쉬시길 바랍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순천만 갈대밭 해넘이와 낙안읍성, 벌교답사에서 반가운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천하장군 정지인
첫댓글 약간은 아쉬움이 있지만 그 나름대로 멋진 여운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배려와 낭만을 즐기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맛난 점심식사도 좋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