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30차 26, 혀균의 무덤에 차를
허균을 사면 복귀나 하자구나
얼마나 영특한 조선의 영재인데
그러한 위대한 위인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이제 허균의 존재를 복권하려고 하네
조선의 정치력을 상실한 시대
조선의 정치력을 숨긴 자들의 숨 밖 꼭질
자주의 힘을 지닌 정치력을 상실함
허균은 가능에서 태어났는데 성장하면서
허균은 형 호봉 누여 낭설과의 친근 우애가 있었으나
허균은 17세에 초시에 금제하였다고 한다
혀, 균은 안동 김씨와 결혼하였다니 행복한 삶
혀, 균은 21세 때에 생원시에 합격했다.
허균은 이달 선생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이달은 당시 서자 출신이어서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시험을 치를 수 없는 신분이었던 관계로
허균은 이달로부터 인간의 평등성을 수학하고
이달의 사상을 허균의 정신으로 삼았다,
허균은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달은 허균을 서지로써 시를 가르친 것인데
허균에게 있어서 서자의 몸으로 벼슬을 할 수 없는
스승 이달이 서자라는 점을 깊이 성찰했다,
허균은 서해 유성룡의 문하에서 학습하고
사명 스님의 지도를 받았다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존재를 바르게 성찰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천주교에
대한 서적을 지니고 왔다는 점을 보면
학문이라는 것을 이용하기도 했다.
허균이 서열에 대한 평등성을 유지하려고 했는대
허균을 정치적인 위상으로 높이려는 것이지만
당시 조선에서는 혀균의 뜻을 수용하지 못했다.
혀균이 과거에 합격함으로 선조시대 권력 대열에 서있고
동지들과의 벼슬을 공유함으로 지위에 오르고 있었지만
동지들의 음모에 허균이 넘어갔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권력이라는 것을 의지하면 권력과 함께 망한다는 것을
혀균은 정치력에 의한 지위에 있어 망각하고 있었다,
이이첨이라는 자에 의하여 이용당하기도 했다.
허균이 정치적 판단력에 부족했다는 것
동지라고 말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용당했다.
혀균이 홍길동전을 창작했더라고 말하지만
혀균은 서자들에게 있어서 평등성을 주장하려고
혀균은 광해군의 옹립을 수행한 이들에 의하여
혀균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 수 있네
아무리 친구의 동지적 입장이라고 하여도 동지를 믿는 것은
혀균에게 불행이 밀려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권력을 의지하여 허균의 꿈을 이루려고 했는데
가꿈이 상실되고 있었었는데 권력을 유지하려는
음모에 속아넘어갔다는 것을 말함이다.
허균은 비정한 정치적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광해군 시대 이이첨에 의하여 극형을 당했다.
혀균의 비극적인 삶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혀균의 정치적인 욕망에 있었던 망상이네
망상에 의하여 제 죽음을 예언했던 것은
거짓 역모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니
차 한잔 올릴 방도 없으니 슬푸구나
2024년 8월 22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