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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정님
0305(일) 불법사드철회 김천시민촛불집회 🤗897회🤗
3월 2일, 성주에서 김천으로 넘어와서는 오랜만에 김천에서 경찰을 봤습니다. 김천경찰서장님이 어깨도 넓으시고 호연지기가 대단하시더라고요. 저는 거의 명랑해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딱 앉아서 진두지휘하면서 좌청룡 우백호 하여 학익진을 펼쳐라~ 하시는데, 우린 뭐 싸울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먼저 막 진을 치시더니 막상 우리가 진을 딱 치니까 가고 안 계시더군요^^
우리가 주민들의 압도적인 여론과 행동으로 국방부로 하여금 우리 눈앞에서 당신들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걸 보여줬잖아요. 근데 문제는 미군 시계하고 국방부 시계는 우리 주민들 시계하고 다르더군요. 결론적으로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로 끝났고 국방부는 주민들의 공청회 저지 핑계삼아 위에서 욕 안 먹고 그렇게 가는 걸로 끝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은 #사드반대 로부터 출발해서 7년을 쌓아오면서 사드가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려내고 있지만 지금 당장 다음 주부터 #프리덤쉴드(FS:FreedomShield)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있습니다.
......To Be Continued(by 찬수)
● 이끄미 : 장재호 사무국장
소성리 달마산 오르는 길에서의 4월 벚꽃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나라 재래종 벚꽃이라 다른 지역이 지더라도 늦게까지 피어있다고 합니다. 그 귀하디 귀한 곳에서의 철조망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눈을 시리게 했습니다. 가시 돋힌 철조망 너머로 어쩌자고 벚꽃이 우릴 그키 끌어당기는지...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분홍빛 곤지를 찍고는 부끄럽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빵끗~ 4월엔 소성리로 킵 고잉~ 입니다요^^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 김찬수 대구평통사 대표
어김없이 오늘 또 이렇게 촛불을 들기 위해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지난주에 오랜만에 소성리와 김천-성주에서 큰 일을 또 한번 치뤘습니다. 어쨌든 우린 나라에서 뭘 한다 하면 일단 좀 겁납니다. 잘못 들이댔다가 어찌 될까 싶어서~^^
3월 2일, 성주에서 김천으로 넘어와서는 오랜만에 김천에서 경찰을 봤습니다. 김천경찰서장님이 어깨도 넓으시고 호연지기가 대단하시더라고요. 저는 거의 명랑해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딱 앉아서 진두지휘하면서 좌청룡 우백호 하여 학익진을 펼쳐라~ 하시는데, 우린 뭐 싸울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먼저 막 진을 치시더니만은 막상 우리가 진을 딱 치니까 가고 안 계시더군요^^
우리가 주민들의 압도적인 여론과 행동으로 국방부로 하여금 우리 눈앞에서 당신들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걸 보여줬잖아요. 근데 문제는 미군 시계하고 국방부 시계는 우리 주민들 시계하고 다르더군요. 결론적으로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로 끝났고 국방부는 주민들의 공청회 저지 핑계삼아 욕 안 먹고 그렇게 가는 걸로 끝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은 #사드반대 부터 출발해서 7년을 쌓아오면서 사드가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려내고 있지만 지금 당장 다음 주부터 #프리덤쉴드(FS:Freedom Shield) 한미연합군사연습이 있습니다. 1년에 두 번 봄-여름 하는데 올해는 13~23일까지 11일간 진행됩니다. 이번 연습에선 한반도에 전개한 미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연합항모강습단훈련, 미한일 미사일경보훈련도 함께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연습 기간 중 미 핵 추진 항모 니미츠호를 비롯해 탄도미사일 탐지와 요격 기능이 있는 이지스 구축함,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한 핵 추진 잠수함 전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벌써 북한에서는 '선전 포고로 간주하겠다.''사탄의 무리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남한의 미국과 일본의 합동훈련을 중단하라고 엄포하고 있습니다. 춘래불사춘, 한반도에 봄 같지 않은 봄이 찾아오지 않을까 우려와 더불어 전쟁의 기운이 또 다시 넘쳐나고 있는 것은 지난한 7년을 보낸 우리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난 7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하는 일이 한 번도 틀리지 않았고 그 정당함을 함께하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다시 한번 더 꽃을 피워야 겠습니다.
그래서 마침 소성리에서 전국에 계신 평화연대자들 한번 초대해서 잔치를 열어준답니다. 물론 공짜로 먹는 건 아니겠지만 4월 1일, 벚꽃 장터를 엽니다. 소성리로 오는 길에 농소 자두꽃향기를 맡으며 오시기 바랍니다. 함께 하시면서 올 한 해 농사 잘 짓고 또 우리 평화 농사도 잘 짓고 또 민주주의 농사도 잘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구자숙 기록팀장
얼마 전 #난쏘린공~ 을 저술하신 ‘조세희’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소설가의 작품을 제가 대학교 3학년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봤는데요. 그때 이 소설이 주는 충격이 되게 컸거든요. 왜냐하면 누구도 ‘이게 잘못됐다’라는 소리 못할 때 ‘아니!’라고 말하는 그러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나 저의 생각이지만 그 작품 ‘잘 썼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거든요. 그 이후, 정말 잘 쓴 소설을 봤어요. ‘최인호’의 #광장~ 이라는 소설입니다.내용이 아마 수능 시험에도 나오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명준이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한테 실연을 당하고 월북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인민군이 되어서 내려와요. 내려와가지고는 다시 그 여자를 만났지만 역시 옛 사랑은 찾지 못하고 포로가 됩니다. 포로 심사를 하는데 남쪽을 선택하는 포로는 남쪽에 남고 북쪽을 선택하는 포로는 북쪽에 남거든요. 그래서 이제 심사를 하는데 당신은 어디를 선택하려나 하니까 이 사람이 말하기를 제3국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몇 번을 물어도 자기는 제3국으로 가겠대요 왜냐하면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자기를 마음을 잡아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제3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그러나 그곳에도 역시 자기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바닷물에 몸을 던져서 죽습니다.
그런데 놀랍지 않습니까? 월북했다가 인민군으로 내려오는 내용이니까요. 그래서 이 소설? 하면서 책 앞장을 딱 보니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이 소설이 나올 수 있게 해준 4.19혁명에 감사드린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4.19 혁명이 없었더라면 그런 내용의 소설이 쓰여질 수가 없었습니다. 정치적인 자유의 확대가 문학 작품의 확대도 가져온다는 걸 실감나게 했던 그러한 거거든요. 제가 젊은 시절에 읽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저는 명준이라는 사람이 월북한 이유가 실연 때문이라는 거는 그냥 작가가 좀 덜 두드려 맞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닌가 이렇게 싶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 세대가 6.25 전쟁이 끝나고 자본주의 교육과 더불어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았던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시험 문제가 Q: 북한 사람들은 왜 남한으로 월남했을까?였어요. 이만큼 쉬운 문제가 어디 있어요. 우리는 다 같이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A: 헐벗고 굶주려서~ 체크를 했어요.
근데 선생님이 틀렸다는 거예요. 반 아이들의 99%가 틀린 거예요. 정답은 ‘사상과 이념이 달라서’였어요. 그 교육이 그때부터 우리 머리에 박혔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노동 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사람도 마찬가지. 심지어는 나경원이나 안철수 조차도 다 #빨갱이~ 로 몰아붙이죠.
⌜내가 내 경험에서 이거 좀 바뀌어야 되겠다.⌟라기 보다 ⌜저 사람은 무조건 사상과 이념이 그래서 그런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한 교육이 우리 세대부터 몸에 익혀져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을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라고 번역을 하는데 그게 원래 ‘괴물’이라는 뜻이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그 괴물을 인간이 왜 만들어내느냐면 인간은 원래 아주 이기적인데 인간이 가장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게 ‘자기의 생명과 재산’이지요. 만약에 가만히 있으면 전쟁으로 인해서 자기 생명이 위험해지니까 리바이어던 즉, 국가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자기의 권리를 위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의 이해관계에서 나왔는 그 경험이 점점 쌓여서 나름의 이론도 만들어지고 좀 더 보편적인 법칙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가 말했죠. 모든 이론은 다 회색이고 오직 저 푸른 소나무만이 싱싱하게 푸르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나의 이해와 나의 존재이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떤 이념이나 사상 이런 것은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론화시켰을 따름일 뿐이라 생각해요.
나경원이가 빨갱이 소리 듣고 안철수가 빨갱이 소리 듣는 거 보고 되게 위안을 얻었습니다. ‘저런 사람도 저렇게 쉽게 빨갱이로 낙인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은 겁낼 필요가 없구나~’ ‘우리한테도 쉽게 그렇게 낙인 찍고 자기 마음이 얼마나 편하겠나?’ ‘그래 니 마음 편해라~’ ‘나는 그냥 빨갛지도 노랗지도 파랗지도 않고 그냥 너희랑 다르다‘는 것이 가장 상식적이라고 생각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민 여러분도 힘을 얻으시고 주눅들지 말고 자존심을 가지고 열심히 투쟁하길 바랍니다.
● 소야 몸짓패
♬ 주한미군철군가
♬ 바리게이트
● 박석민 자문위원장
오늘은 김천 평화촛불 세 번째 평화이야기로 91년 12월 13일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이야기 주제입니다. 먼저 오늘 있었던 역사부터 잠깐 돌아볼까요?
3월5일 오늘은 경칩, 겨울잠 자던 개구리 깨어나 웅덩이에 알을 깜, 경칩 날 처녀총각들이 서로의 사랑 확인하는 표시로 은행알 선물로 주고받기도 하고, 경칩에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멀쩡한 벽에 일부러 흙을 바르기도 했다고 하네요.
1920년 오늘,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벌써 망해서 문 닫았어야 하는 조선일보가 창간된 날입니다.
1946년 오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에서 토지개혁법령 공포, 부재지주 토지와 5정보이상 사유 토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시작했고, 이런 소식으로 남쪽에서는 미군정에 대한 농민들을 포함한 민중들의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이런 사회적 요구는 1946년 대구민중항쟁으로 이어지게 되었고요.
2013년 오늘,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선언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오늘, 리퍼트 주한미대사 피습, 김기종 우리마당대표 살인미수혐의로 징역12년 형을 받고 아직도 복역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18년 오늘, 대북특사단(수석특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방북, 김정은 위원장 면담
2019년 오늘, 한국은행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넘었다고 발표, 2006년 2만$ 돌파 12년만에, 세계 7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했지만 현재 한국사회 양극화와 빈부 격차는 줄어들 기미가 없이 더 심화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1984년 오늘, 영국 광부노조 대처 정부의 노동탄압에 맞서 파업 시작, 1년(1985.3.3.까지) 동안 진행된 파업을 대처 정부가 강경진압하면서 영국노동운동 위축되었습니다.
#19911213 #남북기본합의서
91년 남북기본합의서 얘기 전에 당시 국내(남한) 이야기 먼저 조금 할까요?
1991년 남북은 화해의 문을 열어갔지만 노태우정권의 국내 정치는 가히 최악의 상태를 맞고 있었습니다. 43년전 광주는 해마다 되새기고 기억하는데, 1991년 봄, 5월은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91년 5월, 스무살 언저리에서 많은 이들이 노태우 정권 타도,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당하고 죽어갔습니다.
90년 1월22일, 소수집권여당이었던 노태우의 민정당은 김영삼, 김종필과 손잡고 보수대연합을 구축하고, 87년 민주화투쟁, 789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거세게 진출하는 노동, 민중운동 탄압에 나섭니다. 그 결집점이 91년 5월투쟁입니다.
90년 4월26일, 강경대. 명지대에서 정치 이슈도 아닌 등록금 인하 투쟁을 벌이던 중 1학년인 강경대는 경찰 망을 보다가 경찰의 공격을 선봉대에게 알리러 뛰어가다가 이른바 백골단에게 붙들려 115Cm 길이의 파이프와 130Cm 각목으로 전신을 맞아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강경대 이후 죽음이 휘몰아쳤습니다. 4월29일 전남대 박승희. 5월1일 안동대 김영균. 5월3일 천세용. 5월8일 김기설. 진보운동 진영의 도덕성을 짓밟고 시위 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야단체 간부였던 김기설 사건 분신과 투신 사건을 강기훈이 그의 유서를 대필한 것으로 조작해 1151일 감옥 생활을 하고 지금은 큰 병에 걸린 상태입니다. 5월10일 윤용하. 5월18일 이정순. 5월18일 김철수. 5월22일 정상순. 5월25일 김귀정은 4차 노태우 타도범국민대회에서 충무로 대한극장 옆골목에서 경찰의 토끼몰이, 몽둥이를 휘두른 진압 폭력에 깔려죽었습니다. 강경대의 죽음 이후 한 달 동안 희생된 이들 11명을 포함해, 기억해야 할 1991년의 이름은 스물아홉에 이릅니다.
그 가운데 5월6일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안양병원에서 의문을 시체로 발견되어 죽음에 이르는데, 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노동조합들이 지역차원에서 자본과 권력에 맞서기 위해 연대하고 단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동운동 발전 과정이었습니다. 대기업노조 연대회의를 만들고 활동하다가 구속된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은 전노협 탈퇴 협박 등 고문을 받고 5월4일 안양병원에 입원중이었는데, 안기부 직원들의 병원 방문 등이 이어진 후 5월6일 안양병원 7층 옥상 18m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당시 모든 병원 계단 옥상 출입문 등은 사람이 물리적으로 열수 없게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발표는 거짓입니다. 노태우정권은 경찰과 백골단을 앞세워 영안실 벽을 깨고 쳐들어와 박창수 열사 시신을 탈취해가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역대 열사 희생자 가장 많았고 노동운동 경우 구속자가 가장 많았던 정권은 노태우 정권으로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건설된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구속되고 숨져간 이들이 가장 많았던 시대, 80년대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 군사정권 얼음기둥과 자유와 민주 노동자 민중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불기둥이 맞붙었던 시대였습니다.
지난번 평화이야기로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이야기했는데, #남북유엔가입~ 과 #남북기본합의서~ 는 한쌍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유엔 가입은 ‘유엔헌장 준수 의무를 지닌 두 주권국가’라는 남북관계의 국제적 보편성을, 기본합의서는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민족적 특수성을 확인한 것이지만 ‘두 주권국가의 병존’과 남북은 국가관계가 아니라는 합의를 함으로써 모순적이지만 한반도의 특수한 현실이 반영된 합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남과 북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한 구절로 이는 외세가 강요한 한반도 분단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난 양자관계 규정으로 분단 이후 남·북 당국이 남북관계의 성격을 문서 합의 방식으로 공식 규정한 유일무이한 결정입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남과 북은 유엔 동시·분리 가입(1991년 9월17일)으로 국제법적으로 두 개의 주권국가임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지만, 1991년 12월13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합의서를 합의함으로써 남북의 상호관계는 ‘민족 내부 관계’라고 달리 규정한 것입니다.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규정은 남북교류와 관련해서 그 규정력이 강한데, 혹시 금강산 관광을 다녀오신 분이 있는가요? 1998년 11월18일부터 2008년 7월11일까지 금강산에 관광을 다녀온 193만4662명은 분명히 기억할텐데 금강산 관광 위해 북으로 넘어갈 때 필요했던 건 여권이 아닌 통일부 장관이 발행한 <북한방문증명서>였습니다. 외국에 나가려면 외교부 장관이 발행한 여권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외국이 아닌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천공항·부산항 등을 통해 외국을 오가는 걸 “출국·입국”이라 하는데, 경의선 도라산역과 동해선 고성역을 거쳐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드는 행위는 “출경·입경”이라 하는 이유는 국경이 아닌 남북의 ‘경계선’을 넘나든다는 뜻입니다.
또한 남북교역은 민족 내부 거래로 여겨 관세를 매기지 않는 과세 정책도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에 뿌리를 두고 있어 지금은 남북 교역이 거의 중단된 상태지만 예전에 남북교역을 수출입 통계에 넣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개성공단에서 만든 중고생 교복은 관세가 붙지 않는다. 군사분계선 북녘에 있는 개성공단은 남쪽 기업 125곳과 북녘 노동자 5만4988명(2015년 12월 기준)이 어우러져, 정식 가동이 시작된 2005년 1월부터 2016년 2월10일 ‘폐쇄’될 때까지 32억 3304만달러어치의 상품을 남북협력으로 만들어냈는데, 정부는 유럽연합(EU) 등 다른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물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유독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만 ‘개성공단산=한국산’ 예외 인정이 미국의 반대로 현실화하지 못했습니다. 남북은 국제법적으로 엄연히 다른 두개의 주권국가인데 이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통일 지향 특수관계” 규정이 설득의 논거가 된 것입니다. 아울러 남북이 합의만 하면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대회 때 ‘한반도기를 든 단일팀’ 출전이 가능한 건, 기본합의서 서문 규정에 대한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지지한 것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개성공단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좋겠지만 개성공단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남북이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규정은 1990년 9월4~7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제1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을 때만 해도 남북은 양자관계 규정을 논의하지 않았는데, 지난번 말씀 드린대로 분단 이후 최초의 양자 관계 규정은, 역설적이게도 유엔 동시·분리 가입을 둘러싼 논란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유엔 가입 문제와 관련한 실무대표접촉’(1990년 9월18일, 10월15일, 11월9일)에서 당시 남쪽의 임동원 대표는, ‘하나의 조선론’에 따라 ‘단일 의석 유엔 가입’을 주장한 북쪽에 “남과 북이 유엔에 가입하자는 것은 통일이 될 때까지의 잠정적 조치를 말하며, 어디까지나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통일 지향적 특수관계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맞받았고, 이때 “통일 지향”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남북은 유엔 가입 직후 열린 4차 고위급회담(1991년 10월22~2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첫날 주고받은 합의문 초안에 각자 염두에 둔 남북관계 규정을 처음으로 담아 지금까지 그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합의서 초안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최종적으로 남북으로 그 표현이 바뀌었는데, 남측은 “쌍방이 각기 국제연합 회원국으로 국제연합 헌장에 규정된 모든 의무를 수락한 사실에 유의하며”라는 구절을 추가했지만 북은 “남북관계 문제인데 국제관계 문제는 언급하지 말자”며 국가명을 명기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남은 유엔 동시가입을 강조하면서 남과 북이 국제적으로는 국가 관계임을 강조하려고 했으나 결국 서문의 남북관계 규정 문구를 남쪽의 “통일 지향 특수관계”와 북쪽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을 결합·절충하는 방식으로 최종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90년 9월 남북 유엔 가입은 이같이 내용적으로 한쌍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앞서 얘기한 것처럼 유엔 가입은 ‘유엔헌장 준수 의무를 지닌 두 주권국가’라는 남북관계의 국제적 보편성을, 기본합의서는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민족적 특수성을 확인한 것입니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30년이 넘었지만 가장 적대하는 관계로, 주적으로 북을 규정해서는 “통일을 지향”할 수 없습니다. 합의서의 제목처럼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적대를 단절해야할 과제가 지금 우리 앞에 있음을 확인했으면 합니다. 1991년 9월 27일 저녁 8시 미국 부시는 "세계 각국애 배치한 미국의 지상 해상 전술핵을 모두 철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북은 바로 다음날 미국이 남조선의 모든 핵을 철수한다면 우리의 핵담보협정 체결의 길도 열릴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핵 관련 조치 91년 12월말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다음번 얘기 주제로 핵문제는 한번에 하기 어려워 두세번에 나눠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오늘 세번째 평화 이야기 들으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 정진석. 노래하는 소성리 파수꾼
● 공지 ●
○ 4월 1일 소성리 벚꽃장터
○ 4월 8일 아시히 주점
○ 4월 22일 그네사드 7년 규탄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