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프롤로그
문제만 논하는 책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직시한다면 갈갈이 찢긴 세상을 다시 온전히 만들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도 말해주는 책이길 바랐다. ‘좋은 경제학’이 오늘날 같은 (어려운)시기에 왜, 어떻게 유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었으면 싶었다. - 이주, 무역, 성장, 불평등, 환경을 둘러싼 공공 담론을 다루고 있다.
1장. MEGA: 경제학을 다시 위대하게
사람들이 경제학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합의된 견해와 보통 시민들의 견해가 종종 체계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IGM 부스 패널의 예.
이 책에서 우리는 경제 사안을 다루지만,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더 큰 개념이 언제나 우리 작업의 지침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공동체의 인정과 존중,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편안함, 압박 없는 가벼운 마음, 존엄과 자존감, 즐거움 등이 모두 중요하다. 소득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경제학자들을 잘못된 경로로 이끌고, 정책 결정자들을 잘못된 결정으로 이끌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그릇된 강박으로 이끄는 왜곡된 렌즈다.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으려면, 존엄과 유대를 향한 인간의 깊은 열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다시 중심에 놓는다면 우리는 경제의 우선순위와 사회가 구성원들을 돌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이 책이 다루는 구체적인 사안 중 어느 것에라도 우리와 다른 결론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지만 이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에는 아마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2장. 상어의 입– 이주
이민에 대해 흔히 야기되는 통념들은 뒷받침할 수 있는 실증 근거가 매우 허약하다. 저숙련 이주자가 부유한 나라에 유입될 때 현지인의 임금과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또 노동시장은 과일 시장처럼 작동하지 않고, 또 노동시장에는 표준적인 수요-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민 이슈가 여전히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위력을 갖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민자가 대규모로 들어오면 낯선 언어와 관습이 우리의 순수한 문화를 압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벽을 세워서 그들을 막아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근거가 없다. 떠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 상황이 아닌 한 사람들은 고향에 머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들어올 기회만을 노리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 살고 싶어한다. 심지어 자기 나라 안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것도 꺼린다. 믿어지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미국의 트럼프,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자들, 이탈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의 집권당 모두 반이민, 반외국인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벌어진 짐바브웨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공격, 방글라데시의 로힝야족 위기, 인도 아삼주의(무슬림 이민자는 시민권 신청 대상에서 제외하는) 새 시민권법 등
- 이민자가 밀물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 보이지만, 2017년 세계 인구 중 국제 이주자의 비중은 3퍼센트(1960년, 1990년과 비슷)에 불과하다. 유럽에 매년 비유럽인 이민자가 평균 150~250만 명씩 들어오는데, 250만명은 유럽인구의 0.5퍼센트도 안된다. 2015년, 2016년 유입 인구보다 2018년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은 줄었고 이 중 난민 지위가 부여된 사람은 38퍼센트로 EU 인구 2500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
- 이민자 이슈가 첨예한 유럽 6개 나라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이민자의 규모와 인식은 실제와 아주 달랐다. 응답자들은 실제에 비해 교육 수준이 더 낮고, 더 가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고, 더 많은 사람이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에 빌붙어 생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이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더 편협해지고 사실정보는 그 견해의 벽을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 국경을 넘거나 출입국 관리 직원과 문제가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는 고사하고 도시로도 가지 않고 고향에 머문다. 경제위기가 정점이던 2010~2015년 그리스를 떠난 이주민 수는 35만명이 채 안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심하게 굶주려야 할 정도의 빈곤에도, 경제적 보상이 상당한데도 이주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매우 적다.
- 1973년 1월 23일, 아이슬란드의 베스트만나에이야르 제도에서 화산 분출로 인한 이주,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핀란드 영토 상실로 인한 이주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가도록 추동하는 요인이 전쟁이나 재난 같은 상황이라는 것은, 경제적 인센티브 자체만으로는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동기부여하기에 충분치 안다는 것을 말해준다.
- 1980년 쿠바에서 12만5천명의 쿠바인이 마이애미에 도착한 예 : 수요-공급 모델이 이주에는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연구였다. 이민자가 유입된 도시에서 현지인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 비숙련 이주자는 현지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 : 이주 노동자들이 현지인이 하지 않으려는 일 혹은 현지인이 가지 않으려 하는 지역에 몰린다. 그런 직종이나 지역에서는 이주자가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 고숙련 이주자는 현지인과 경쟁한다 : 외국 출신 간호사가 한 명 고용될 때마다 그 도시에서 미국 출신 간호사 1~2명의 고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고숙련 이주자의 유입을 지지하지만, 고숙련 이주자의 유입이 국내 인구에게 미치는 영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 사람들은 연줄이 없으면 이주를 꺼린다. 고향을 떠나면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유대의 연결망을 잃게 되기 때문에, 극도로 절박하거나 상당히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주에 수반되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을 것이다.
- 이주는 위험보다는 불확실성에 가깝다. 카트만두의 여권 사무소의 예. 이주 희망자들은 자신이 벌게 될 소득을 25퍼센트 정도 과대평가하고 있었고, 해외에서 일하다가 사망할 가능성이 실제보다 굉장히 높게 생각하고 있었다. 각각의 정보를 주고 비교한 결과, 네팔 당국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의 잘못된 인식은 이주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저해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 이주를 하려면 꿈을 꾸는 능력이 있거나 엄청난 과잉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 상태를 유지하는 성향을 극복할 수 있다.
- 오늘날 부를 축적하는 데 세습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다. 최근에 해외에서 들어오는 이주민에 대한 미국인의 관용이 줄어든 것과 동시에, 미국인 본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줄고 있다.
- 미국에서 자신의 지역에서는 기회가 줄고 있고 다른 곳에는 기회가 많은 데도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로 집세 문제, 육아 문제가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부유한 주에서 나머지 주보다 더 빠르게 인구가 늘었는데, 1990년 이후 어느 시점부터 이 상관관계가 사라졌다.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지구의 예.
- 불황이 닥친 지역에서 사람들이 떠나기 어렵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왜 그 지역으로 일자리가 가지는 않는 것일까?
컴백 시티 투어 : J.D. 밴스는 ‘나머지 세상의 부상을 위하여’라는 펀드를 만들었다.-애크런, 사우스 벤드, 디트로이트 등에 투자 촉구를 위한 펀드로 제프 베조스, 에릭 슈미트 등 억만장자들이 투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1억 5000만 달러의 규모는 그들에게는 푼돈이었고, 뉴욕 맨해튼 옆에 있는 할렘에는 활력과 흥분, 젊은 고소득자들이 좋아하는 근린 시설이 있지만, 여기에는 없다. 거의 모든 산업은 클러스터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닭과 달걀의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컴백 시티 투어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것을 열광적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디트로이트에 부동산을 사지도 않을 것이다.
- 이주의 진짜 문제 : 너무 많은 이주민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국내적, 국제적으로 이주가 너무 적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즉, 이주를 하면 경제적 기회를 잡을 수 있는데도 사람들이 이주할 수 없거나 이주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쇠락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번성하는 지역으로 즉각 이동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고전하면서도 살던 곳에 계속 사는 쪽을 택한다. 이주를 촉진하는 것이 실제로 정책의 우선순위가 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 이주 촉진 방법 : 우선 이주 과정 전체를 간소화, 효율화, 송금의 간소화, 이주 관련 보험 등. 주거비 보조, 이주 전 일자리 알선, 아이돌봄 서비스 제공은 이주를 주저하던 사람들이 더 용기 내서 나설 수 있고, 빠르게 공동체의 정상적인 일부로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 20세기 초에 유럽 이민자가 많이 들어왔던 미국도시들은 이민자 유입으로 경제적 이득이 많았는데도 정치적으로 매우 적대적인 반응이 촉발되었다. 1924년의 이민 제한법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선출되었다.
우리는 어떤 인센티브가 제공되든 간에 아주 많은 사람이 이주하지 않기로 결정하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비이동성은 경제정책들이 가져올 결과에도 막대하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정책이 비이동성을 염두에 두고 수립될 수 있도록 정책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9장의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