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3: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예수를 부르니 - 마가는 다시 21절과 연결하여 예수의 가족에 대하여 말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가는 서기관들과의 바알세불 논쟁에 관한 기사를 삽입시킴으로써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더불어 예수의 가족들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암시하고 있다.
가족들이 예수께서 있는 곳에 도착하였으나 그들은 그가 계신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대신에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시켜 그를 불렀다. 특히 형제들과 그 모친이 언급되어 있으나(본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이 구절 한 군데밖에 없다) 요셉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점이 이채롭다. 아마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었던 것 같다.
[막 3: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무리가...어짜오되...밖에서 찾나이다 - 예수께서 들어가 계신 집은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무리들은 제자들과 더불어 예수를 중심으로 빽빽이 둘러 앉아 있었다. 한편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본문의 '무리' 대신 어떤 한 사람이 예수께 이야기했다고 기술한다.
이를 종합해 보면 아마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장면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바깥 사정을 전해 듣고 무리를 헤집고 들어와서 예수께 이르러 이야기를 전한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두 복음서 간의 차이 이외에도 마가는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마태는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라고 전하고,
누가는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눅 8:20)라고 각각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각 기자의 관심사가 달랐을 뿐 아니라 각 기자들이 지닌 독특한 기록 방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각 기자들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함께 보완적으로 조화롭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본 구절에서는 가족들이 현장에 나타나 예수를 계속 찾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예수께서 명확히 알고 계신가의 여부가 표면상 드러나 있지 않다. 측측하건대 예수께서는 그의 동생들의 불신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 같은 사실은 다음 절에서 보듯이 예수의 영적 가족에 관한 가르침에서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순종하기 위해 때로는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해야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실로 이것은 예수께서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친히 집이나 가족까지 버리는 복음에 대한 절대 순종을 주저없이 말씀하시게 된다
어쨌든 본문에서 예수가 가족들의 면회 요청에 즉각 응하지 못하셨던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누이들'이란 용어는 여러 권위 있는 사본들(시내, 바티칸, 에브라임등에는 빠져 있다. 아마도 31절과, 본문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마태복음, 누가복음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생략된 듯하다. 그러나 이 용어가 생략된다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막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근본 의도는 인간 관계를 전면 부정해서가 아니다. 예수는 바로 이 기회를 통해 영적 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치시고자 하셨을 뿐이다.
실로 예수께서 평가하셨듯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와의 긴밀한 관계성이 지상에 계시는 어머니와의 관계성보다 더욱 중요한. 따라서 예수는 비록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시한 가족들이 당신을 혈연으로서의 끈으로 연결코자 노력하였으나, 당신은 하늘의 영적 관계성으로 대답하셨던 것이다. 이는 반인륜적처사이기 보다 초인륜적처사였다.
[막 3:34]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둘러보시며...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 여기서도 세밀하고도 생동적인 문장기법을 사용하는 마가의 특징이 돋보인다. 예수께서는 가장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이들을 찬찬히 바라보시며 내밀한 감격의 음성으로 '내모친과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다. 추측컨대 이들은 예수의 12제자일 것이다.
특히 이들을 지칭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예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예수와 함께 있는자의 각별한 위치를 뜻할 것이다. 진정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기준과 제약에도 구애됨 없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로 인정된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고 따르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예수와의 그깊은 영적 가족 관계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보내 주신 당신의 행위에 대한 저들의 공개적 결단을 기뻐하시고 육친적 관계 이상으로 저들을 예수와 결속시켜 주신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적 가족들에서 혈연적 가족들을 제외시켰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예수와 성 가족이 되는 것이다.
[막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 예수의 참된 가족은 비단 열 두 제자만 아니라 '누구든지될 수 있었다. 이는 구원의 개방성과 영적 가족의 보편성을 일깨워 준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은 한 가지 필연적인 조건을 충족시킬 때에만 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즉 예수와 친속관계를 맺게 해주는 핵심 요소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이 예수께서 하신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고려되어야 할 한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 라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듣고 받아들이며, 또한 그분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의 인격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요구에 대한 전폭적순종이라 할수 있다. 실로 예수와 더불어 도래한 하나님 나라가 인간에게 돌연 나타나고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순종에 대한 요구에 그 긴박성이 더해진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부터 존재하게 된 새가족에게는 마땅히 예수께서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보이신 하나님을 향한 절대 순종과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이 주의 부르심에서 보여준 그러한 철저한 순종이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