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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신작시조집 [☆나도바람꽃☆]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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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바람꽃]
문효치 신작시조집 / 출판도서 活版工房(2017.07.25) / 값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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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바람꽃
문효치
바람 시작된 꽃
바다 끝
작은 섬
불결에나
실려 올까
그 얼굴 그 입술이
한 생애
불어오는 건
바람 아닌 그리움
풀을 만나다
문효치
성난 말 하지 말라
씀바귀 속삭이고
발길질 하지 말라
들깨풀 되뇌이고
개비를 노래하면서
어깨 머리 쓰다듬고
꼭두서니
문효치
햇빛이 내려와
스며든 땅속에서
굽고 끓이면서
푸지게 익히더니
일궈낸 저 색깔은
하느님의
몸빛인가
제비쑥
문효치
제비는
날아가고
쑥잎만 남았으니
비어있는 이름자리
휑하니
아픔이다
그 아픔
오롯이 솔아
청옥으로 굳었지
물방동사니
문효치
물들이
사는 동네
별들이 내려왔지
알몸으로 목욕할 때
더욱 더 반짝여
열없이 다가가서는
편지 한 장 건네기
바늘 엉겅퀴
문효치
하늘을
찌르는데
바늘마다 뿜어낸 독毒
그래도 식지 않은
원한은 부글거려
피멍이
붉게 여물어
터질 듯한
폭탄이다
개별꽃
문효치
우주는 참 넓구나
생각하다 잠든 밤
꿈에 본 풀꽃 하나
갸웃이 고개 들어
보세용 나같이 작은
우주도 있답니다
우주라 말했으니
해 달 별 다 있는가
그것은 물론이여
은하계도 수천수만
보세용 내 속의 넓이
나도 모른답니다
사금파리
문효치
아프다
모서리가
아직도 쨍그랑 소리……
깨어져
떨어져 나간
저쪽 편 몇 보각
안부가
더 궁금하다
서리 같은
그리움
어처구니
문효치
어머니
부를 때면
울음이 먼저 솟고
눈물을 감추려
하늘만 우러르니
날으는 까치 한 마리
저를 본 듯 반겨요
반달
문효치
반은 어디 두고
뽀도시 나왔는가
어둠에 붙잡혀서
털어놓고 나왔는가
잘라진
그 자리에는
아픔 엉겨 솔았다
삶앓이
문효치
사는 게 아니라
심히 앓는 거라는데
맞다가 아픈 일 때리다가 아픈 일
모른 척 가만히 있어도
아프기는 한가지
미술시간
문효치
구름을 가리키며
무어냐고 물었더니
돼지요
고구마요
지도요
담배연기요
너희들 그 말 다 옳다
네 뜻대로
그려라
낮
문효치
가사袈裟에 옮겨 앉은
가을 볕 한 보시기
스님 따라
법당에 와
엉겁결에 절하는데
마당가 보리수나무
허리잡고 웃더라
허상虛像
문효치
층계를 오르다가
마주친 번뇌의 벽
되돌아 내려오다
부딪친 후회의 덫
지우고 허물 수 없는 견고한 저 빌딩
전언傳言
문효치
누가 친 종소린가
흘러오는 맥놀이
흉중에
서린 번뇌
시나브로 흩어져
때마침 벙그러지는
각시붓꽃 한 송이
가늘다
― 억새
문효치
누군가 걸어놓은
비파의
가늘은 현
산바람
건너와
몸부림쳐 켜는데
속깊이
자아 올라온
저 음률에
베인 귀
부수다
― 자주꽃방망이
문효치
땅기운 그려놓은
바람 속 밝은 부적
돌멩이로 굳어버린
그리움
저 아픔을
도깨비
센 방망이로
주술 걸어 부숴내는
이슬 1
문효치
눈물도 말을 한다
영롱한 저 목소리
우듬지에 올라앉아
세상을 담아내며
풀잎에 맺힌 해님은
송글송글한 얼굴이고
와! 있었네
문효치
사과를 먹다가
까만 씨를 씹었는데
입안에서 소리치는
찬란한 광채를
올여름
날마다 뜨던
그 햇살이
와 있었네
낙엽
문효치
함부로 밟지 마라
신의 얼굴
만졌던 손
내려와
부벼대며
땅의 말도 들어보며
비로소
하늘의 소리
글로 적어 보이니
잎사귀
문효치
노을 붉게 지는
벤치에 걸터앉아
떨어져
신음하는
하늘 한 잎
받아요
내 품에
안겨 들어와
꿈틀대는 생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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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요즈음 나의 시들은 작은 것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작은 것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관심 밖에 있었기에 오히려 정갈한 순수성을 잘 지켜가지고 있다.
그 작은 것들의 생각, 그들의 말은 혀끝에서 만들어내는 상당수 인간들의 말보다 훨씬 진지하고 진실하다. 그들의 말을 듣고 적은 것이 요즈음의 내 시다.
우리말에 잘 맞는 시조의 향식을 빌린다. 그 리듬이 조금 가다 산이 있고 또 가다 평지가 있는 지형 환경과도 흡사하고 기쁨과 아픔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구불구불 넘어가는 우리네 삶의 양태와도 유사하다.
새삼 시조의 가락을 만들어 낸 우리 조상들께 감사드린다.
2017년 초여름
문 효 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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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치 신작 時調集 [※나도바람꽃※]
[ 해설 ] -
생명의식으로 빚어 올린 정형 율격의 품격
권갑하. 문화콘텐츠학 박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1.
문효치 시인께서 시조집을 출간한다. 시력 50년에 12권의 시집 출간 이후 펴내는 첫 시조집이다. 시조도 현대시의 한 영역인 만큼 시인의 시조 창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까지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문인협회 현직 이사장으로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시인께서 우리의 민족시인 시조를 창작하고 시조집을 출간하는 일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신라 향가로까지 그 기원이 올라가는 시조는 18세기 창 형태로 연행되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서구문화에 매몰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조는 폐기해야 할 진부한 장르로 폄하되고 사대부문학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까지 덧씌워지면서 대중과 멀어졌다. 그러나 민족문학의 본령이라는 자각 속에서 현대시로 거듭났고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중흥을 맞고 있다. 자유시단의 중견․ 원로 시인들이 시조 창작 대열에 속속 합류하는 현상도 이러한 시대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자유시와 다른 시조의 특징으로 정형 율격의 음악성을 들 수 있다. 문효치 시인의 시조에서도 이러한 리듬성은 빛을 발한다. 그런데 시인은 자유시편에서도 우리말의 언어적 특성을 잘 살린 말 부림이 세련된 작품들을 다수 창작해왔다. 낭송 현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시인의 대표작 「사랑이여 어디든 기서」를 낭송해보면 문효치 시가 지닌 뛰어난 음악성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
온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빛깔이 없어서 보이지 않고
모형이 없어서 만져지지 않아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가곡으로도 만들어져 애창되고 있는 위 작품은 자유시적 리듬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디 한 곳 막힘이 없이 탁 뚫린 활달한 운율미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아름답게 율동한다. 깊은 곳에서 뽑아 올리는 잘 숙성된 시적 서정과 이러한 운율미감은 시인의 시조 작품에서도 세련되게 구사되고 있다.
우주는 참 넓구나
생각하다 잠든 밤
꿈에 본 풀꽃 하나
갸웃이 고개 들어
보세용 나같이 작은
우주도 있답니다
우주라 말했으니
해 달 별 다 있는가
그것은 물론이요
은하계도 수천수만
보세용 내 속의 넓이
나도 모른답니다
-「개별꽃」전문
자근자근 속삭이는 것 같은 낯익은 구어체가 정겨운 장면을 연출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주술같은 시조의 운율이 원초적 서정성을 길어 올리며 읽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내용과 조화되는 세련된 운율의 이러한 시편들은 문효치 시인이 우리말의 언어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어법 구사에 매우 능란한 재능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시인께서는 그동안 자유시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시세계를 시조를 통해 새롭게 선보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근배 시인은 “박재삼 시인의 자유시집 열 권과 시조『내 사랑은』을 바꾸지 않겠다”고 평한 적이 있다.「울음이 타는 가을 강」등 절창의 자유시가 있지만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않고/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갈래 만갈래”(「내 사랑은」둘째 수)라 노래한 시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유시로는 이르기 어려운 시적 경지를 시조라는 정형 양식이 펼치고 있다는 뜻이리라.
현대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짧으면서 긴 여운을 거느리는 활달한 리듬의 시를 선호할 것이고 정형율격의 짧은 시조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시조가 지닌 음악적 유전자는 소리와 영상이 결합하는 융복합 멀티미디어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문효치 시인의 앞으로 시조 창작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
2
문효치 시인의 첫 시조집『나도 바람꽃』에는 낮고 여린 것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따뜻한 눈길이 담겨 있다. “그 작은 것들의 생각, 그들의 말은 혀끝에서 만들어내는 상당수 인간들의 말보다 훨씬 진지하고 진실하다”는 시집 서문에서의 진술은 시인의 정신 지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조집은 최근 펴낸 시집『모데미풀』과 연결하여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시인은 정의와 감동을 되찾는 딜은 생명의 회복에 있다고 전제하고 풀꽃 하나에서도 소중한 생명을 만나고 우주를 발견하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풀의 독특한 이름이나 외양에서 촉발된 상상력이 그의 시에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그것은 단지 풀꽃 이름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인생사와 만난다. 풀꽃을 통해 사람살이를 보고 우주를 보는데 문효치 시 특유의 매력이 있다.”(이경수,「유비적 상상력과 생명의 추구」)
작고 하찮게 보이는 꽃과 식물들은 시인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객관적 상관물로 작용한다. 시인은 식물들의 다양한 모습에 조응하는 성찰과 생명에의 깊은 경외감에 젖는다. 자연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시적 자아는 작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풀꽃들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면서 각박한 현대문명에 상처받은 영혼을 위무한다. 이러한 생명 회복의 작품들은 제1부 ‘풀을 만나다’에서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성난 말 하지 말라
씀바귀 속삭이고
발길질 하지 말라
들깨풀 되뇌이고
개비름 노래하면서
어깨 머리 쓰다듬고
-「풀을 만나다」전문
들콩은 그 꽃 속에
즐거움 감춰 있고
어저귀는 뿌리 속에
기쁨이 숨어 있어
이슬은 이들을 보며
솔잎 끝에서 웃어요
-「작은 것」전문
제1부의 표제시인「풀을 만나다」는 사람을 만나듯 풀을 만나고 인간적 성정으로 교감한 작품이다. 작고 여린 것들에 눈길을 주는 감성이 식물적 상상력으로 부드럽게 피어올라 포근히 끌어안는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성난 말 하지 말라”는 씀바귀의 속삭임이 들려오고 “발길질 하지 말라” 되뇌는 들깨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노래하면서 어깨와 머리를 쓰다듬는 개비름의 자애로운 몸짓도 만날 수 있다. 사람에게서만 가르침을 얻고 머리를 쓰다듬는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작은 것」작품에서는 서로가 어긋나지 않고 조화롭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섭리를 깨우치게 된다. 들콩은 꽃 속에 즐거움을 감추고 어저귀는 뿌리 속에 기쁨을 숨기고 있다. 솔잎 끝 이슬이 이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는 우주적 진술을 사람살이와 오버랩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즐거움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쁨도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다는 비의적 진술은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조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우리 인간도 타의가 아닌 스스로 피어 올린 꽃과 뿌리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야 함을 웅변해준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 교감의 따뜻한 마음자리를 시인은 아주 작은 풀꽃을 통해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바람이 시작된 곳
바다 끝
작은 섬
물결에나
실려 올까
그 얼굴 그 입술이
한 생애
불어 오는 것
바람 아닌 그리움
-「나도 바람꽃」전문
꽃바람의 속명屬名은 ‘아네모네’(Anemone)다.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다. 그 옛날 꽃의 신 플로라에게는 아름다운 미몸를 지닌 시녀 아네모네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녀을 사랑하게 되어 플로라가 아네모네를 멀리 쫓아버렸다 그러자 제피로스가 따뜻한 바람이 되어 그녀를 뒤쫓어 가고 화가 안 플로라는 그녀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전설의 꽃이다. 그러고 보면 바람의 딸이라기보다 바람과 꽃은 애초 한 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와 ‘너’가 합쳐져 ‘우리’란 공동체가 되는 것처럼 풀이나 꽃 이름에 붙는 ‘너도’나 ‘나도’ 또한 한통속임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무척 정겹게 다가온다.
표제시인「나도 바람꽃」은 그리움의 표상이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면 꽃의 생은 얼마나 쓸쓸하고 적막하겠는가. 꽃은 바람으로 춤을 추고 자신의 향기를 멀리 전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움에 몸서리치는 것이 삶 아니던가. 여기서 눈길이 가는 것은 “바람이 시작된 곳”이다. 그곳은 어떤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그 얼굴 그 입술’로 상징되는 바다 끝의 ‘작은 섬’이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이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이 곧 바람이며 그러기에 그리움에 흔들리는 것은 시적 화자인 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바람꽃일 수밖에. ‘너도’ ‘나도’ 모두 바람에 울고 불며 대책 없이 흔들리는 하나의 작고 여린 꽃인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데
바늘마다 뿜어낸 독
그래도 식지 않은
원한은 부글거려
피멍이
붉게 여물어
터질 듯한
폭탄이다
-「바늘엉겅퀴」전문
엉겅퀴의 이미지가 선연하고 강렬하다. “찌르는”, “바늘”, “독”, “식지 않는 원한”, “피멍”, “터질 듯한”, “폭탄” 등의 어휘들이 시각적 이미지와 부딪히며 가시 많고 억센 바늘엉겅퀴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꽃과 식물에서 ‘바늘’이나 ‘도깨비’는 가시를 가리킨다. 위 시는 실제 엉겅퀴가 지닌 날카로운 가시와 자주색 꽃에서 착안한 작품인데, 가시마다 “뿜어낸 독”이 맺혀 “하늘을 찌르”고, “그래도 식지 않는 원한”이 “부글거”린다는 상상은 사물에 인성을 부여한 시적 표현이다. 자주빛깔의 꽃을 보면서 맺힌 붉은 피멍이 여물어 터질 듯한 폭탄과 같다고 상상한다. “식지 않은 원한”은 꽃이나 식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위 작품은 전형적인 서정시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비는
날아가고
쑥잎만
남았으니
비어있는 이름자리
휑하니
아픔이다
그 아픔
오롯이 솟아
청옥으로 굳었지
-「제비쑥」전문
제비쑥은 수컷(扗蒿)의 쑥이란 의미를 갖는다. 종자가 아주 작아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수컷이 자식을 낳지 않는 것에 빗댄 명칭이다. 제비쑥에 대비되는 여성스런 쑥은 뺑쑥(artemisia feddei)이다. 제비쑥이 사는 곳에는 종종 뺑쑥도 함께 자생한다. 뺑쑥은 땅 속에 줄기가 달리지만 제비쑥은 땅 속 줄기는 없어 수컷의 속성처럼 한 포기 한 포기에 난다고 하니 쑥도 인간의 성정을 닮은 듯하다. ‘제비’의 어원은 본래 초호(草蒿)라는 한약명으로 ‘져븨쑥→접의쑥→제비쑥’에서 유래하는데, 고어로 ‘져븨’는 제비를 말한다. 일부에서는 쑥의 잎 모양이 제비 또는 연미복을 닮은 것에서 연유하는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어원과는 별개로 시인은 “제비는 날아가고 쑥잎만 남”은 존재를 상상한다. 그러니 “비어 있는 이름자리가 휑하다. 이 작품도 마지막 연의 ‘신음소리’라는 정서적 세계에 닿아야만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시적 대상을 통해 삶의 근원을 성찰하거나 동화되는 정의 세계로 나아가야만 시적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시지만 시조와 유사한 의미구조의 작품들을 시인의 작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시법이 시조의 창작 원리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법이 실제 시조 작품에서는 어떻게 구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바람 속
파도소리
못 말리는
몸살이다
누구를 사모하여
바다 끝에 기대섰나
뒷산이 우루루 몰려와
물속으로 뛰어든다
-「우루루-수송나물」전문
해안 모래땅에서 자라는 수송나물의 속성과 명칭에서 시적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수송나물은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로 잎이 솔잎처럼 생겨 가시솔나물로도 불린다. 아직은 들풀에 불과하지만 재배가 쉬운 데다 어린 순과 잎은 데쳐서 나물로 무쳐먹거나 샐러드로도 요리하면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어 기존 채소의 대체작물로도 가치가 큰 식물이다.
앞에서 살핀 시조 3장의 의미구조에 이 작품을 견줘보면, 초-중장에서 화자는 수송나물을 바닷가에서 누군가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누구를 사모하여/바다 끝에 기대 섰나”란 진술이 이를 말해준다. 바람에 실려 오는 파도소리를 통해 파도의 뒤척임마저도 그리움의 몸짓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움의 감정에 차원 변화를 일으킨 부분이 바로 종장이다. “뒷산이 우루루 몰려와 물속으로 뛰어든다”는 동적인 진술은 그리움이 감정을 한껏 고조시킨다. 얼마나 사모가 깊고 그리움이 절절했으면 우루루 바닷가로 몰려와 물속으로 뛰어들겠는가. 바다로 뻗어 내린 산의 형상적 이미지가 바다를 향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의 감정으로 이어지면서 강렬한 울림을 일으킨다. 마치 삼천궁녀의 전설이 서린 낙화암의 이미지까지 떠올라 마음을 흔든다. 종장에서 이처럼 시상의 대전환이 이루어지면 작품은 강한 정서적 충격과 긴 여운을 거느리게 된다. 제목도 절묘하다. ‘우루루’는 ‘우르르’의 잘못이지만 “사람이나 동물 따위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동적 이미지의 부사로 그리움의 대상을 향한 감정을 역동적으로 표출한다. 시의 내용에 부합하는 제목이다.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단시조의 창작 원리에 전법이 될 만한 수작이다. 시조의 창작 원리는 이처럼 자수율과 음보율에다 시조 3장의 유기적 결합 관계를 조율하는 의미율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종장에서 표출되는 함축과 반전의 의미구조는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예술 감각으로 창조해낸 고급스런 시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시조의 멋과 여유, 격조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조 종장의 이러한 세련된 구조는 자유시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으로 시조를 시조답게 하는 속성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격조를 지닌 단시조 몇 편을 더 감상해보자.
아프다
모서리가
아직도 쨍그랑 소리…
깨어져
떨어져 나간
저쪽 편 몇 조각
안부가
더 궁금하다
서리 같은
그리움
-「사금파리」전문
누가 친 종소린가
흘러 오는 맥놀이
흉중에 서린 번뇌
시나브로 흩어져
때마침
벙그러지는
각시붓꽃 한 송이
-「전언傳言」전문
위 작품도 시조의 의미구조를 잘 살린 단시조들이다.「사금파리」는 초장과 중장에서 사기그릇이 깨어지는 아픔과 깨져 떨어져 나간 저쪽 편 몇 개의 사금파리를 상상한다. 종장은 깨어져 떨어져 나간 조각에 대한 안부와 그리움을 담고 있다. 경과 정의 세계가 뚜렷이 구분되고 특히 화자가 깨어진 사금파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종장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전언傳言」도 초장의 종소리가 중장에서 마음속 번뇌를 흩는 이미지로 연결되어 시상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그러다 종장에서 반전이 일어나는데, 마음 속 번뇌가 흩어지는 그 순간 자신의 마음과는 관계가 없는 각시붓꽃 한 송이가 때마침 벙근다는 상상은 바로 이러한 차원 변화로 인해 강한 정서적 폭발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시조에서 종장은 시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름이 부딪히면
번개가 반짝이고
별빛은
어둠끼리
부딪혀서
나온 섬광
사랑아
멀리 가지 마라
부딪쳐야
빛난다
-「멀리 가지 마라」전문
그런 점에서 이번 시조집은 문효치 시인의 그 어떤 시집보다 시적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물로 그 위상을 가지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런 의미와 위상을 지닌 첫 시조집 출간에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거듭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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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효치 시인∥
∙ 1943. 전북 군산 출생
∙ 동국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 1966. 서울신문,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 <무령왕의 나무새> <바다의 문> <별박이자나방> 등 13권
∙ 산문집 : <시가 있는 길> 등 3권
∙ 동국대, 추계예대, 대전대, 동덕여대, 주성대 등 출강
∙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현), 한국예총부회장(현)
∙ 대한민국문화훈장(옥관)
∙ PEN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외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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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첫 시조집 '나도바람꽃' 출간
송고시간 | 2017/08/09 14:16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오늘은 왕숙천의/ 갈대가 벗이었다// 둔덕에 뽀도시 핀/ 메꽃도 불러보며// 소나기 빗물에 쓸려/ 구르는 돌이 되어"(시조 '진접' 전문)
50여년간 시를 써온 문효치(74) 시인이 첫 시조집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1966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단에 나온 문 시인은 그동안 12권의 시집을 펴냈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요즘 '작은 것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는 시인은 시조에서도 사금파리, 잎사귀, 낙엽, 소풍날 사진 같은 '작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아프다/ 모서리가/ 아직도 쨍그랑 소리…// 깨어져/ 떨어져 나간/ 저쪽 편 몇 조각// 안부가/ 더 궁금하다/ 서리 같은/ 그리움"('사금파리' 전문)
노(老)시인은 시조에 대해 "그 리듬이 조금 가다 산이 있고 또 가다 산이 있고 또 가다 평지가 있는 우리 지형 환경과도 흡사하고 기쁨과 아픔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구불구불 넘어가는 우리네 삶의 양태와도 유사하다"면서 "새삼 시조의 가락을 만들어낸 우리 조상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책은 활판인쇄공방인 시월에서 만들었다. 비단 표지에 전주 한지를 쓰고 활판으로 인쇄한 시조집에는 42편의 시조가 실렸다. 82쪽. 2만원.
2017/08/09 14:1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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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짧은 글 긴 감동… "시조, 젊은 세대에 매력 만점"
입력 2017-08-10 19:42 / 수정 2017-08-11 04:30 // 지면정보 2017-08-11A32면
첫 시조집 '나도바람꽃' 낸 문효치 문인협회 이사장
짧은 걸 좋아하는 요즘 세대
단시조야말로 관심 끌 수 있어
작은 생명이 들려주는 순수한 말들을 시어로 포착
◀첫 시조집 《나도바람꽃》을 출간한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은 “작은 생명들이 전하는 진실한 말을 한글과 가장 잘 맞는 시조의 형식에 담았다”고 말했다. 한국문인협회 제공
“시조는 국어가 갖고 있는 운율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어요. 짧은 글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인 문효치 시인이 시조집 《나도바람꽃》(시월)을 냈다. 1966년 등단 이후 50여 년간 자유시만 써온 문단계 원로인 문 시인이 쓴 첫 시조집이다.
10일 서울 목동 한국문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문 시인은 “요즘 젊은이들이 짧은 글을 선호하는 만큼 단(短)시조야말로 젊은 세대가 좋아할 잠재력을 지닌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문학의 시작과 함께 시조는 주류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시조 특유의 운율과 짧은 길이 등의 특징은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 잠재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조집에 실린 42편의 작품은 3·4조의 운율, 3장 6구의 길이 등 평시조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반세기 동안 자유시를 쓰던 시인이 시조라는 형식에 갇혀 시를 쓰는 게 답답하지 않았을까. 문 시인은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고 했다.
“한국어의 단어에 조사까지 붙이면 대개 세 음절 내지 네 음절이 됩니다. 3·4조인 시조와 어울리는 리듬을 지닌 거죠. 시조야말로 우리 정서를 담아내기에 이상적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문 시인이 이번 시조집에서 주된 소재로 삼은 것은 자연이다. 시조집 중 제1장에 수록된 시조는 모두 생소한 풀 이름을 제목으로 달았다. 대표적인 게 ‘꼭두서니’다. 붉은 색 염료를 만드는 원료인 꼭두서니의 뿌리가 햇빛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은 시다. ‘햇빛이 내려와/스며든 땅속에서//굽고 끓이면서/푸지게 익히더니//일궈낸 저 색깔은/하느님의/몸빛인가’ (‘꼭두서니’ 전문)
문 시인은 “요즘은 시에 작은 것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생명에도 아름다움이나 신비함, 존엄성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인간처럼 숨기는 데 익숙하지 않고 진실하게 말합니다. 가장 순수한 말을 시로 포착하려 했습니다.”
공통된 소재는 자연이지만 각 시조는 다양한 정서를 표출한다. ‘바람이 시작된 곳/바다 끝/작은 섬//물결에나/실려 올까/그 얼굴 그 입술이//한 생애/불어오는 건/바람 아닌 그리움’이라고 노래하는 표제작 ‘나도바람꽃’에서는 바람을 소재로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했다.
“월북자의 아들이다 보니 어렸을 적 늘 ‘왕따’를 당했어요. 혼자 터덜터덜 학교를 오가는 길이 심심해서 산길에 우두커니 앉아 책보를 내려놓고 개미나 풀, 송사리 같은 것들이랑 놀면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벌레나 풀들이 모두 내 친구였던 거예요. 그들의 말을 듣고 적은 것이 요즈음의 제 시이니 자연은 제 평생 친구라 할 수 있습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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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北日報]
[군산 출신 문효치 첫 시조집 '나도바람꽃']
"시조 형식은 기쁨·아픔 겪는 우리 삶 닮아"
제비쑥·맨드라미 등 주제로 42편 실어
문민주 기자|moonming@jjan.kr/등록일:2017.08.10/최종수정:2017.08.10 22:35:40
오늘은 왕숙천의/ 갈대가 벗이었다// 둔덕에 뽀도시 핀/ 메꽃도 불러보며// 소나기 빗물에 쓸려/ 구르는 돌이 되어 ( ‘진접’ 전문)
50여 년간 시를 써온 문효치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 우리 민족의 정형시인 시조로 눈을 돌려 첫 시조집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시력(詩歷) 반세기, 시집 13권을 출간한 이후 펴내는 생애 첫 시조집이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짧은 시로 음수율과 음보율의 가락을 갖는 시조는 우리 민족문화의 본령이자 시의 원형이다. 그러나 서구 문화에 매몰된 근대화를 거치면서 시조는 진부한 장르로 폄하되고, 사대부 문학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시조가 가락에 담긴 정련된 이미지와 압축된 시상으로, 자유시 혼란을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 평생 자유시를 써온 시인이 우리 민족 정형시인 시조를 창작하고, 첫 시조집을 출간한 일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문 시인은 시조집 머리말을 통해 “우리말에 잘 맞는 시조 형식을 빌렸다. 그 리듬이 조금 가다 산이 있고 또 가다 평지가 있는 우리 지형 환경과도 흡사하고, 기쁨과 아픔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구불구불 넘어가는 우리네 삶의 양태와도 유사하다. 새삼 시조 가락을 만들어 낸 우리 조상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조집은 풀을 만나다, 사금파리, 전언(傳言) 등 총 3부로 나눠 시조 42편을 실었다. 시인은 요즈음 ‘작은 것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작은 것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관심 밖에 있었기에 오히려 정갈한 순수성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제비쑥, 맨드라미, 사금파리, 볕뉘, 이슬, 낙엽, 잎사귀 등 낮고 여린 것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문 시인은 “작은 것들의 생각, 그들의 말은 혀끝에서 만들어내는 상당수 인간의 말보다 훨씬 진지하고 진실하다”며 “그들의 말을 듣고 적은 것이 요즈음의 내 시”라고 말했다. 특히 시조의 의미 구조를 잘 살린 단시조들이 눈에 띈다.
아프다/ 모서리가/ 아직도 쨍그랑 소리…// 깨어져/ 떨어져 나간/ 저쪽 편 몇 조각// 안부가/ 더 궁금하다/ 서리 같은/ 그리움 (시조 ‘사금파리’ 전문)
초장과 중장은 사기그릇이 깨어지는 아픔과 떨어져 나간 저쪽 편 몇 개의 사금파리를 상상한다. 종장은 떨어져 나간 조각에 대한 안부와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래 한 몸이었다가 지금은 헤어진 것들, 우주에 미만한 그리움을 그대로 떠올린다.
시조집은 표지를 비단으로 감싸고, 전주 한지에 활판으로 인쇄해 실로 제책하는 등 전 공정을 수작업으로 만들어냈다.
군산 출신인 문효치(74) 시인은 1966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그동안 <무령왕의 나무새>, <바다의 문>, <별박이자나방> 등 시집 13권과 <시가 있는 길> 등 산문집 3권을 펴냈다. PEN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한국예총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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