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감사하며 삽시다.(욥기 1:20-22)24.11.17.추수감사주일설교
중국 전설에 염라대왕 앞에 이승에서 세 청년이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염라대왕은 이승에서 온 사람을 심판하려고 명단을 보니 명단에도 없는 청년 세 명이 저승에 끌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염라대왕은 그 청년들에게,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잘못 왔구나! 그런데 여기까지 먼 길을 왔으니 내가 너희들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고, 소원 하나씩 들어주겠다! 뭐든지 말해 봐라!”
그리하여 염라대왕은 세 젊은이에게 차례대로 소원을 물었습니다.
첫 번째 청년에게, “자네는 내가 뭘 해주면 좋겠나? 소원이 뭔가?”
첫 번째 청년은 “예, 저는 돈이나 많이 주십시오. 제가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돈이 최고입니다. 전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돈을 가지고 내려가라!
두 번째 청년, 자네는 소원이 뭔가? 내가 뭘 해주면 좋겠는가?” “저는 돈 같은 거는 필요 없습니다. 권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살면서 보니까 권력 가지고 있으면 돈도, 사람도 저절로 내 것이 되더라구요.” “그래? 너는 권력을 가지고 가거라!
세 번째 청년, 너는 소원이 뭔가?” 세 번째 청년도 염라대왕에게 자기 소원을 말했습니다. “예, 저는 돈, 권력,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집 한 채 짓고, 최고의 미인을 아내로 삼아 좋은 음악 듣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걱정 없는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랬더니 염라대왕이 이 세 번째 청년의 말을 듣고는 그 청년을 한 참 쳐다보더니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야! 이 놈아! 그런 곳이 있으면 내가 가서 살겠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이야기일까요?
이 세상에서의 삶은 완벽한 조건과 완전한 환경,
걱정 하나 없는 삶이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문제가 생기고, 아픈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괴로운 일도 있고, 외로운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만나고, 뜻하지 않은 천재지변도 만나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만납니다.
억울한 일도 겪고, 답답한 일도 겪고, 수치스러운 일도 겪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온갖 역경과 어려운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삶은 그런 것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떻게 해결해 내느냐? 어떻게 극복하느냐? 에 따라 행복한 삶을 살기도 하고,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성공한 인생이 되기도 하고, 실패한 인생이 되기도 합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마음의 근육의 힘을 말합니다. 오뚜기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그런 힘을 말합니다. 그 책에는 역경과 어려움을 만난 사람들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가지 문제와 과제들을 만난 사람들이 마음의 힘으로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회복해 나가느냐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훈련, 즉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강화시키는 훈련이 곧 감사하기 훈련이라고 합니다. 감사 신앙은 심장을 안정시키고, 긍정적 정서가 향상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여 고난과 역경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킨다고 합니다.
서점 홈페이지에서 ‘감사’라고 검색해봤습니다.
감사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은 기독교 책 말고는 정말 없었습니다.
요즘 ‘감사’ 라는 가치가 사회에서 정말 인기 없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감사’는 분명 중요한 가치입니다.
오늘 본문 욥기의 주인공 욥은 불행의 대명사입니다.
욥 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고난이 생각납니다.
그는 엄청난 고난을 당한 ‘고난의 대가’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감사의 대가’입니다.
가장 큰 고난을 당했을 때 가장 큰 감사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 후에 욥은 가장 큰 축복을 경험합니다.
욥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어차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니, 일부가 없어지고 부족하다 해도 나는 감사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생명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라는 말입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꼭 밥먹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보통 젓가락을 끼우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그렇게 꼭 기도를 하는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설과 연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가장 오래된 것 중에 하나는 애니미즘(자연과 동물을 숭배하는 종교성)의 전통으로 ‘너를 먹고 내가 살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 고 식탁에 놓인 먹을거리들에게 감사하는 행위라고도 합니다. (불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이런 의미에서 영성과 뗄 수 없는 중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동물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요, 분명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의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른 생명이 희생되어 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욥기의 뒷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십니다.
욥도 계속되는 불행가운데 참다 참다 하나님께 따집니다.
‘도대체 내 삶에 불행이 닥쳐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삶이 이렇게 안 풀리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은 여기에 직접 답은 안하시고 생뚱맞은 답을 하십니다.
천지와 우주를 창조한 이야기,
온 땅의 생물의 다양함에 대한 이야기를 3장에 걸쳐 하십니다.
욥은 이 말씀을 듣고 ‘아 나는 이렇게 작은 존재구나!’,
‘이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상의 일부일 뿐이구나’
그래서 욥은 겸손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독일에 재무장관을 지낸 '마르티 바덴' 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말할 수 없이 궁핍했다고 합니다.
그가 젊었을 때, 한번은 지방 여행을 갔다가 싸구려 여관에 투숙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의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당황이 되고 화가 났습니다. "아니, 어떤 놈이 내 신발을 훔쳐 간거야? 아이고!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도둑질해 가도록 그런 놈을 그냥 두시다니…"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했답니다.
나중에 여관 주인이 창고에서 헌 구두를 꺼내주면서
"젊은이! 오늘은 주일인데 나와 같이 교회에 가지 않겠는가?"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여관 주인을 따라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옆자리에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차서 찬송을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더랍니다.
"아!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두 다리를 잃었구만.... 신발이 있다고 해도 신을 수가 없으니....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는 것을...."
여기서 젊은 청년 마르티 바덴의 삶에 큰 내적인 변화가 왔습니다. 그는 그 이후로 삶의 상황에 따라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서 감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독일의 재무장관이 되어서 국가와 국민에게 크게 봉사하였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1만 달란트 빚 진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도저히 엄청난 빚을 갚을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아 사랑의 빚, 은혜의 빚을 진 자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유한 포도원 주인이 자기가 고용한 일군 중 한 사람이 값비싼 포도주 통을 엎질러서 포도주를 다 쏟은 것을 알고 그를 법정에 고발합니다.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법은 당신 편에 있소. 당신의 일군은 마땅히 당신에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하오. 그러나 당신은 부자이고 일군은 가난하지 않소. 듣기에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이라고 들었소. 그래서 오늘 나는 당신에게 법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헤세드(은혜, 은총,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를 판결하는 바이오. 헤세드의 원리에 따라 고소를 취하하고 당신의 일군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주시면 좋겠소.
당신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손해를 보지만 영적으로는 더 부요해 지실 것이오. 그래서 당신이 일군을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도 당신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헤세드로 인해 세상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해주시면 좋겠소"
그는 재판관의 권고를 따랐다고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들은 사람들을 인자하게 대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까지 희생하신 사랑을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요 3:16-17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사랑,
이 한 가지만으로도 감사 할 필요충분조건이 됩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출애굽기 23:14-16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3가지 절기 중 2가지 절기는 농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맥추절과 수장절인데 맥추절은 보리농사를 짓고 처음 익을 열매를 거두어 들일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고 수장절은 열매를 추수하여 창고에 저장하는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첫 열매를 거두면서, 그리고 이제 추수를 마치고 창고에 거두어들이면서 어떻게 보면 사람의 노력과 수고가 이제 결실을 보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내가 대단했지...”라고 생각하기 쉬운 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때 절기예배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 위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장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추수감사절에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어로 감사(thank)의 어원은 생각(think)입니다.
감사하려면 생각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생각해보니 감사가 나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따지지 말고 그냥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욥의 고백을 다시 번 봅시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