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분출의 역동적인 증거, 용암동굴
동굴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어두운 지하 세계를 떠올릴 것이다. 국제동굴연맹(International Speleological Union)에서는 동굴을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고 지표면 아래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동굴을 종류별로 나누는 데 있어 일차적인 기준은 공동 형성을 유발시킨 지질작용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동굴은 크게 용해동굴, 용암동굴(화산동굴),침식동굴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동굴이 무려 1,200개소 이상 존재한다. 특히 용암동굴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동굴로서 현재는 170개소 이상의 동굴이 보고되었다.
그렇다면 제주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용암동굴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용암동굴은 말 그대로 ‘용암’이 식어서 만들어진 ‘동굴’이다. 과거 화산활동에 의해 분출된 가장 묽은 성질의 현무암질 용암이 지표면에 흘렀을 때 차가운 공기와 접하는 바깥쪽은 단단히 굳는 데 반해, 안쪽은 뜨거운 용암이 계속 흐르고 빠져나가 내부에 공동1)이 형성된 것이다. 분출한 용암이 식어서 암석이 되면, 그 암석이 바로 동굴의 벽면이 되고, 천장이 되고, 바닥이 된다. 일반적으로용암동굴 안을 장식하는 동굴생성물도 동굴이 만들어지는 순간 함께 생성되고 이후에도 그 모양을 유지한다. 이와 같은 용암동굴 내부의 특징은 화산 분출과 함께한 제주도 형성의 역동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담긴 석회질 동굴생성물의 아름다움
제주도의 용암동굴은 한라산과 제주도 곳곳의 오름(기생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에 의해 형성되었다. 제주도 북동부에 위치한 해발고도 456m의 거문오름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포함된 중요 오름으로서, 여기서 발원한 용암류가 북동쪽 해안가 방향으로 흐르면서 여러 동굴을 형성시켰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특이성을 자랑하는 만장굴과 그 하류를 따라 연이어진 김녕굴, 용천동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중에서 용천동굴은 특별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2005년 제주도 구좌읍 월정리 일대에서 전신주 공사 중 발견된 용천동굴은 총 길이 3.4km에 달하는 용암동굴로서, 내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토기와 전복의 패각, 동물 뼈와 같은 고고학적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동굴호수와 용암종유, 용암석순, 용암곡석, 용암유석 같은 다채로운 용암동굴 생성물과 함께 새끼줄구조, 용암선반, 홈구조, 용암폭포 등의 다양한 용암동굴 지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용천동굴 발견 당시 전 세계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검은 빛깔을 띠는 용천동굴의 천장과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우윳빛의 석회질 동굴생성물이다.
용천동굴에 매우 우세하게 발달한 종유관은 용해동굴 중에서도 석회암동굴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동굴생성물로, 빨대 모양으로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용천동굴의 종유관은 용암동굴임에도 오히려 국내 석회암동굴의 종유관을 수적으로 그리고 경관적으로도 압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용해동굴에 한해 관찰할 수 있는 종유석, 석순, 유석, 동굴산호, 커튼과 같은 다양한 석회질 동굴생성물을 용천동굴 내부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같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속하는 당처물동굴이나 제주도 협재지역의 황금굴, 소천굴 등 일부 용암동굴에서도 비교적 소규모로 관찰되고 있다.
1) 공동: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굴
수많은 우연이 만들어 낸 자연의 산물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어떻게 석회질 동굴생성물을 품을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동굴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얕은 바다에 살고 있는 해양생물로부터 시작된다. 제주를 즐겨 찾는 관광객들은 제주도 북동부에 위치한 김녕해수욕장과 월정리해수욕장을 한 번쯤은 방문해 보았을 법하다. 이 해수욕장들은 아름다운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검은색의 돌로 이루어진 이곳에 새하얀 백사장이 형성될 수있었던 이유는 해양생물들이 만든 석회질(탄산칼슘) 성분의 껍데기가 잘게 부서져 형성된 모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양생물의 종류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조개류와 성게류, 우도의 홍조단괴를 만든 주범인 홍조류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이들은 보통 제주도 해안선 근처의 얕은 바다에서 일생을 보낸 후 탄산칼슘 껍데기만을 남기게 되는데, 파도와 해류에 의해 이리저리 뒹굴고 점차 잘게 부서져 모래 알갱이로 거듭나게 된다. 그중 일부가 파도에 의해 떠밀려 해수욕장에 도달한 후 겨울철의 강력한 북서풍을 만나게 되면, 마침내 바다를 떠나 내륙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탄산칼슘 부스러기들은 바람을 타고 내륙 쪽으로 운반되어 마치 사막 지형을 연상케 하는 모래더미 지형, 즉 ‘해안사구’를 형성한다. 현재 ‘김녕 해안사구’로 불리고 있는 모래더미는 바다에서부터 육지 쪽으로 수 킬로미터를 뻗어 나가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의 상부를 뒤덮고 있다.
이렇게 동굴 상부를 덮고 있는 석회질 모래들은 원재료였던 조개류 껍데기가 그렇듯이 빗물과 토양의 산에 의해 쉽게 녹을 수 있고, 동굴 안쪽에 도달한 물은 결국 해양생물의 껍데기를 품고 오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어두운 동굴천장과 벽면에 아름다운 우윳빛 동굴생성물을 새기기 위해 남은 것은 직전 과정을 반대로 진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굴 속으로 유입된 물로부터 토양에서 받아들였던 산 성분이 배출되어 제거되면 자연스레 조개류 껍데기 성분과 물은 분리된다.탄산칼슘 성분의 껍데기를 형성하는 해양생물들이 마침내 다양하고 아름다운 형태의 석회질 동굴생성물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지난 수천 년에 걸쳐 반복되어 온 이러한 과정이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 속 석회질 동굴생성물을 오늘날과 같이 아름답게 빚을 수 있게 한 전말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암석 자체가 석회질 성분인 석회암동굴의 경우, 석회질 동굴생성물 형성은 필연에 가깝다. 이에 반해 석회질 성분과는 미미한 관계조차 없어 보이는 제주도의 용암동굴 속에 석회질 동굴생성물이 화려하게 장식된 것은 제주도의 화산활동과 용암동굴의 형성, 해양생물의 생존과 죽음, 모래 알갱이를 운반해 주는 바람의 방향과 속도 등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수많은 우연이 포개어져 만들어진 자연 속 조화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글, 사진. 조경남(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3-08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