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기억하라, 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영국의 작가 조지 버나드쇼는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적절한 표현도 부족하다고 생각될 만큼 젊음은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그대 인생의 ‘아까운’ 젊음이 활짝 피어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인생의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인 것이다.
어른들은 그대를 볼 때마다 허공을 쳐다보며 부러움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목소리로 말한다.
“조오흘(좋을) 때다!” (주: 정희성의 시 ‘태백산행’에서 인용)
그토록 좋은 시기라는 것은, 가능성 때문이다. 그대는 연마하기에 따라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광채를
내뿜을 원석(原石)이다. 그대가 만약 대학에 있다면 더욱 큰 축복이다. 대학은 원석을 갈고 닦아 가장 찬
란한 광채를 내 뿜을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자기’를 발견하는 곳이므로 대학에서는 육중한 교문의 푸
른 녹슬음, 우람한 교정 느티나무의 푸르름조차 가르침을 준다. 그래서 대학이 좋고, 그 대학에 다니는
그대의 젊음이 좋다.
하지만 안다. 더할 나위 없이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른들은 “네가 무슨 걱정이 있겠냐?”라
거나 “나 때는 더 힘들었다.”고들 하지만, 젊은 그대들이 짊어진 고민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특히 20대 초반, 대학시절은 사회적으로는 어른 취급을 받지만 내면은 아직 어른이 될 준비를 마치지
못한 아슬아슬한 경계의 시기이자, 입시준비로 유예됐던 사춘기의 성장기적 문제가 한 번에 터져 나오
는 폭발의 시기다. 그뿐인가. 열정이 존재를 휘두르고 기대가 존재를 규정하는, 불일치의 시기이기도 하
다. 그런 의미에서 이때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다.
많은 청춘들이 힘겨워한다. 그래서 이시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언
가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휩쓸린 탓에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서는 것조차 불안해하며, 정작 자신
의 무한한 가능성은 깨닫지 못한다. 가장 어두운 시기이지만 화려한 시기이기도 함을 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듯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인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헤어날 수 없는 자기 연민에 빠진
다. 결국 형편없는 생활 속에서 나태를 낭만이자 로망으로 미화하며, 금쪽같은 청춘의 기회를 허망하게
소모해버린다. 나름 무척 똑똑하게 행동하는 것 같지만, 인생 전반을 놓고 바라볼 때는 너무나도 바보
같은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나는 대학에서 흔들리는 청춘들과 늘 부대끼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야 하는 아픈 그들을 따뜻한
위로의 말로 보듬어 주고 싶었다. 때로는 차가운 지성의 언어로 미처 그들이 하지 못한 생각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화려한 시기를 마음껏 즐겨야 하는 청춘들을 뜨거운 격려의 말로 응원해주고 싶기도 했다.
이 소망을 담아 글을 쓴다. 더 가열차게 이런저런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처세 글이나, 대책 없는 감상
으로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하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가득한 글이 아니라 그대들의 영혼을 울리는
마음의 글, 그대들의 머릿속에 내리치는 따끔한 죽비 같은 글을 전해주고 싶다. 취업의 포로가 되어 하
루하루를 조급하게 달려가는 그대에게 진정한 미래의 그림을 그려주고 싶다. 대학에 몸담은 선생으로
서, 공부든 추업이든 생각이든 연애든 그대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세밀하게 짚으면서 때로는 따뜻하게
위로하고, 때론 엄하게 꾸짖어주고 싶다.
어찌 보면 이 책의 내용들은 모두 ‘큰 지식을 얻고’, ‘큰 책임을 느끼고’, ‘큰 꿈을 꾸라’는 뻔한 이야기
의 반복이다. 하지만 나는 뻔한 내용이더라도 책상머리에 앉아 손끝으로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많은 청
춘들을 직접 만났고, 미니홈피의 트위터, 블로그를 통해 소통했으며, 1,000명에 이르는 전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좀 더 객관적으로 그대들의 문제를 보려 했다.
잘된 얘기는 잘난 척하는 것 같고 안된 얘기는 창피해서 못 견디겠더라도, 내가청춘이었던 시적을 떠
올리며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얘기를 하려 애썼다. 권의를 앞세우는 대학교수가 아니라‘진짜 선생’이
되고 싶은 교육자로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사랑하는 두 아이의 아비로서, 꼭 한 번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 했다.
이것이 내가 어렵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매일 젊은 청춘들을 만나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고민과 오류를 함께 느끼지 못했더라면, 펜을 들 마음을 먹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20대를 향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 중에서도 대학생에 특하된 부분도 있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그런
대목을 만나거든, 만약 그대가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위치에서 나의 당부를 되새기는 적극적인
독서를 해주기 바란다.
모쪼록 나는 그대들이 더 어리석었으면 좋겠다. 너무 영리하게 코앞에 있는 단 1%의 이익을 좇는 트
레이더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가능성을 묻어놓고 우직하게 기다릴 줄 아는 투자가였으면 좋겠다. 눈
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향해 전력질주한 후 지쳐 헐떡이며 퍼져버리는 100m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저
멀리 열망하는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우둔헌 답사자였으면 좋겠다.
그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청춘이다. 어리석은 답사를 지금부터 시작하라. 이 책에 적힌 어느
한 줄이 그 답사의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한다.
2010년 겨울
김난도
인생시계 :
그대의 인생은 몇 시인가?
내 책상 위에는 가지 않는 탁상시계가 있다. 고장 난 것은 아니다. 내가 일부러 건전지를 빼 두었다.
그렇다고 이 시계가 늘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년 내 생일이 되면, 18분씩 앞으로 시계바늘을 옮긴다.
1
방금 K군이 나녀갔다. 내일모레면 나이가 ‘계란 한 판’인데 제대로이뤄놓은 것 하나 없고, 앞으로 어
떻게 할지 딱 부러지게 구체적인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단다. 답답해 미칠 것 같다며 오랜 시간 하소연을
하다가 돌아갔다.
서른, 금방 온다.
다들 하는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에 필요한 학점을 채우려면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요즘엔 어학연수, 인턴, 아르바이트 등 취업에 필요한 경험과 ‘스펙'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자
니 한 두 학기 휴학은 기본이다. 남학생들은 군대도 다녀와야 한다. 혹시 재수를 했거나 편입, 전과(轉
科)를 한 경력이 있다면 다시 1-2년 추가다. 졸업 후에 고시나 유학 준비를 한다고 여기저기 학원을 좀
다니다 정신 차려 보면 금방 서른이다.
비단 서른을 코앞에 둔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청춘들이 시간의 속도 앞에서 전율한다. 대학 2학
년들은 신입생 시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3학년만 되어도 졸업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엄살이 대단하다. 덜컥 졸업은 했는데 일할 곳이 없는 청춘이라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조급
함과 낙담의 시간으로 남는다. 사회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었다고 불안이 사라질까? 그런 기대는 섣
부르다. 빨리 자리 잡고 싶고, 빠리 뭔가 이루고 싶고…….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도 적잖이 걱정하고 있
을지 모른다.
“이 나이 되도록 제되로 해놓은 것 하나 없구나…….”
2
그대 인생을 얼마나 산 것 같은가?
이 질문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물어보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그대는 지금 몇 시쯤을 살고 있는 것 같은가? 태양이 한창 뜨거운 정오? 혹시 대학을 방금
졸업했다면, 점심 먹고 한창 일을 시작할 오후 1~2시쯤 됐을는지?
막연하게 상상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계산기를 들고 셈해 보자. 그대가 대학을 스물넷에 졸업한다
하고, 하루 중 몇 시에 해당하는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쯤 된다 치면, 80세 중 24세는 24시간 중
몇 시?
아침 7시 12분. 생
아침 7시 12분. 생각보다 무척 이르지 않은 가?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시각이다. 아
침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대학을 졸업하는 스물넷이 고작 아
침 7시 12분이다.
선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성장기를 지켜본 나로서는, 이 7시 12분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가 무척
이나 크다고 생각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사회활동을 할 준비를 마치고 이제 막 집을 나서려는
시각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은퇴를 하고 노년을 준비하는 60세는? 저녁 6시다. 직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집으
로 돌아가거나, 저녁시간을 즐기려는 때다. 참 절묘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인생 80을 24시간에 비유
하기를 좋아한다.
인생시계 계산법은 쉽다. 24시간은 1,440분에 해당하는데, 이것을 80년으로 나누면 18분이다. 1년에
18분씩, 10년에 3시간씩 가는 것을 계산하면 금방 자기 나이가 몇 시인지 나온다. 20세는 오전 6시. 30
세는 오전 9시이다. 이 시계는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 80세를 기준으로 했으니, 앞으로 평균 수명이 늘
어나는 만큼 그대의 인생시각은 더 여유로워질 확률이 높다.
언제가 우리 학과의 홈커밍 행사에 오신 60세가 넘은 원로 졸업생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교사를 하셨는데 어느 장관이 갑자기 정년을 단축시켜버려서 아무 준비 없이 황망하게 정년이 닥쳤더
라고. 처음엔 그 장관이 너무너무 미우셨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정말정말 감사한다고. 은퇴하고 나
니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새로운 세상이 있더라며, 그 세상을 2년 이FWlr 알게 해줘 고맙다고……. 나
는 어르신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6시 이후에도 엄청나게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시계를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생각보다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쉰을 맞이한 선배
에게 “이제 겨우 오후 3시예요.”하고 알려줬더니 연방 손가락을 꼽아보며 “정말이네?” 한다. 졸업을 맞
는 스물넷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가 “나름대로 인생 꽤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오전 7
시 12분밖에 안 됐어요?” 한다.
그렇다 아직 많이 남았다. 아침 7시에 일이 조금 늦어졌다고 하루 전체가 끝장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너무 늦었어!“라고 단정 지으려는 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기만’의 문제다. 혹시라도
포기나 좌절의 빌미를 스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대, 아직 이르다. 적어도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만큼은.
3
책상 위의 내 인생시계는 오후 2시 24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이 마흔여덟에 아직 오후 2시 30분도 되
지 않았다니……. 쉰을 앞두고도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아직 하루
가 오롯이 남아 있는 내 인생의 탁상시계를 바라본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
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그대의 열망을 따라가라
- 월급이 적은 쪽으로 택하라.
-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앞 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 가지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경남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명’이다.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거창고등학교 십계명’이 아
예 등록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등줄기에 찌릿찌릿 전기가 올 만큼 전율 한다. ‘나는 이 글의 10분의 1
만큼이라도 유용하고 담대한 조언을 내 학생들에게 주었던가?’ 하는 반성과 함께.
❋
1년 전 학위를 받은 후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A박사가 면담을 신청해왔
다. 보수가 넉넉한 데다 기업문화가 좋기로 유명한 어느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입사를 제안해왔다는 것
이다. 본인은 기다려서 교수가 되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입사를 강하게 권해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자살하는 시간강사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올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열악한 직업중 하나가 시간
강사다. 나도 2년 가까이 해봐서 잘안다. 한 학기에 세 과목을 가의한다고 했을때 한달 수입이 120만원
정도다. 그나마 방학에는 나오지 않는다. 4대보험 혜택 같은 것은 물론 없다. 특정 학과나 교수의 온갖
잡무를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일도 흔하다. 요즘은 포스트닥터, 강의교수 제도 등이 생겨서 젊은 박사
들에 대한 처우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엄청난 학비와 시가을 투자해 박사 학위을 취득한 인재들
에게는 턱도 없는 대우다.
하지만 시간강사들이 열악한 처우나 노동착취보다 훨씬 더 힘들어 하는 것은, 그들의 목표인 교수가
될 기회가 너무 적다는 사실이다. 대학병원의 레지던트나 사법연수원생의 근무여건과 처우도 물론 열
악하지만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곧 의사나 법조인이 될 예정이므로 그 정도는
감수해도 괜찮으리라는 심정적 양해 같은 게 있다.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한, 비참한 현실은 얼마
든지 참아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강사의 경우는 다르다 교수되기가 매우 어렵다. 교수정원(T/O)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기
전공에 맞는 자리가 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고 막상 공고가 나더라도 그 경쟁은 살인적으로 치열
하다. 나중에 교수가 될 거니까, 열악한 처우지만 참고 기다려라: 하고 요구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이 가
혹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A박사에게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의 제안을
물리치라는 얘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겨우겨우 힘을 내어 간신히 답했다.
"그건 자네가 얼마나 교수가 되고 싶은가 하는 열망의 문제네. 가네 전공에 맞는 채용공고가 언제 날
지 전혀 장담할 수도 없고, 그때까지는 이렇게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니 말일세. 그걸 모두 견딜
수 있을 만큼 교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면, 그 열망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있다면, 이번 제안
은 거절하고 더 기다려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던 그는 며칠만 더 생각해보겠다며 돌아갔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날 나를 찾아왔
다.
“그 회사에는 가지 않겠다고 연락했습니다. 조금 더 준비해서 좋은 결과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참 바보 같은 결정이다.
그에게 스카우트를 제의한 회사는 대한민국 어느 젊은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선망받는 대기업이었다,
그런 확실하고 안정된 직장은 일단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실적을 쌓고 교수가 될 기회
를 살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일단회사에 발을 들여놓으면 논문을 쓰고 강의 경력을 쌓을 시간을 내
기 어렵다, 그래서 조금 아주 조금씩 교수의 길과는 멀어지게 된다. 기업으로 갔던 그의 수많은 선배들
이 교수의 꿈을 그렇게 천천히 접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린다고 어떤 보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우리 전공은
학계가 좁은 편이어서 채용공고가 자주나지 않는다. 1년만 기다리면 된다는 식의 기대는커녕, 통상적인
예측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교수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 대단한 직업도 아니다, 물론 아직도 여러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직업으로서 교수의 매력은 예전 같지 않다. 사실 대기업에 입사해서 실력을 보이고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더 '성공한' 인생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그 제안은 일단 받아들였어야 맞다. .A박사는 참 바보 같은 결정을
했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딱 하나다. 대학에서 후학(後學)을 가르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박사
를 받기까지 오랫동안 조교생활을 해봤기에, 교수가 실상 그다지 매력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나누어 줄 때의 희열을 누구보다도 잘 알
기에 그는 그토록 바보 같은 결정을 했던 것이다.
❋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하
기 때문이다. 그렇게 좁고 험난한 길을 사서 가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누
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우뚝 서있다. 매 순간 가장 합리적으로 최적화된 의사 결정이 모인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열망의 힘 때문이다.
대학에 있다 보니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의 전공과 진로 선택에도 유행이 있다는 걸 느낀다. 파일
럿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히트를 하면 이듬해 항공관련 학과의 경쟁률이 난데없이 올라가고, 빵을
만드는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뜨자 관련 학과의 인기가 갑자기 높아진 적도 있다, 물론 오해는 없
기를, 이들 모두 좋은 전공이다, 하지만 자기 필생의 업을 정하는데, TV에 등장했다는 이유로 마치 벌떼
처럼 몰려다니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1990년대 말에는 미국 로스쿨로 유학하는 것이 붐이었다. 그 열기가
미국회계사(AICPA)로 옮겨가는 듯하더니, 이내 유학을 떠나는 것보다는 국내에 머무는 것을 선호하게
됐다. 이과에서는 치의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에 주로 진학하고, 문과에서는 단연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이 화두다.
의사나 변호사가 형펀 없는 직업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열정이 아니라 남들이
다들 좋다니까 선택하는 직업이란, 그냥 안정적이고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 같아서 선택하는 직업이란
공허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미래가 이끄는 삶, 꿈이 이끄는 삶, 열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열망을 뜻하는 영단어 passion
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다.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이란 눈
앞에 당장 보이는 달콤함을 미래의 꿈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온다.
연봉으로 1달러를 받고 일하며 천문학적인스톡옵션을 직원들에게 양보한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일했더니 돈이 생겨 있더라.“ (애
플의 대주주인 그는 물론 세계적인 부자다.) 그의 말이 맞다. 그런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돈과 열마의
인과관계를 착각하고 있다.
A박사가 거창고 십계명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미 온몸으로 그 계명을 실천하고 있다.
아마 그의 각오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꿈을 이루리라 믿는다.
그는 참 바보 같은 결정을 했다.
하지만 그 바보 같음이 그를 더 빨리 꿈에 데려다 주리라.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사시사철 변모하는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졸업한 친구들이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오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는 몰랐는데 교정이 정말 아름다워요!” 대리석과 유리로 외피를 두른 멋진 건물도 주지 못하는 매력이
자연에 있다.
내가 몸담은 학교는 예전에 골프장이었던 산기슭에 있어서 조경이 무척 잘되어 있다. 특히 철마다 꽃
들이 차례로 피어나 자태를 뽐낸다.
아직 바람이 차가운 입학식 즈음에는 매화가 군데군데 피다가, 개강을 하고 꽃보다 아름다운 신입생
들이 건물의 위치를 묻고 다닐 때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이 캠퍼스를 온통 화사하게 물들인다.
중간고사 즈음엔 단연 벚꽃이다.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가 꽃비를 뿌리며 단번에 스러지는 도서관
뒷길의 벚꽃은 한창 시험 준비로 바쁜 학생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이어 찾아오는 계절의 여왕, 5월
은 장미의 계절이다. 성년의 날이라도 되면 꽃바구니가 지천이다. 마치 강의실 바닥에 장미꽃이 피어 있
는 듯하다. 5월엔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으니 카네이션도 참 좋다.
방학이 시작되면 군데군데 나팔꽃이며 해바라기며 여름 꽃들이 보인다. 이윽고 후문 진입로에 피어
나는 코스모스를 보며 다시 가을학기 개강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2학기 개강을 하고 간혹 봄학기인지
가을학기인지 순간 헷갈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책상 위에 꽃힌 국화를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 국
화마저 지고 나면 학교 마당에는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지만, 저 남쪽에서 동백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린
다.
매화, 벚꽃, 해바라기, 국화, 동백…….
갑자기 꽃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그대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어서다.
“자, 위에 등장한 꽃 중에서 그대는 어떤 꽃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가장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가’다.
“참 어리석은 질문이네. 계절 따라 피는 꽃은 저마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무엇이 가장 훌륭하다
고? 이건 말이 안 되는 질문이야!”
이렇게 생각했다면,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가장 훌륭한 꽃은 없다. 저마다 훌륭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제가 피어날 철에 만개하는 것이다.
문제는, 꽃에 대해서는 그렇게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으면서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춘들은 대부분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늦가을 아름다운 고운 빛
을 선사하는 국화는 되려 하지 않고, 다른 꽃들은 움도 틔우지 못한 초봄에 향기를 뽐내는 매화가 되려
고만 한다. 하지만 ‘일찍’ 꽃을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매화가 세상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가? 가장 훌륭한
가?
그렇지 않다. 매화 꽃잎이 다 지고 5월에 만개하는 장미는 어느 꽃보다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하지
만 장미가 마음이 급해 3월에 피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춘삼월 찬이슬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a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은 동백대로, 자기가 피어야 하는 계절이
따로 있다. 꽃들도 저렇게 만개의 시기를 잘 알고 있는데, 왜 그대들은 하나같이 초봄에 피어나지 못해
안달인가?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
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
소년등과(少年登科)라는 말이 있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
다. 일찍 출세했으니 다들 부러워했을 것이고, 예로부터 최고의 경지로 높이 받들었을 것이다.
a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옛 사람들은 인간의 세 가지 불행 중 첫 번째로 소년등과를 꼽았
다. ‘소년등과 일불행(一不幸)’ 이라 하여 불행이 크다거나. ‘소년등과 부득호사(不得好死)’라 하여 ‘소년
등과 한 사람치고 좋게 죽은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다. (주; 나머지 두 가지는 아버지 덕으로 좋은 벼슬
에 이르는 것과, 재주가 좋은데 글까지 잘 쓰는 것. ‘정민의 세설신어’)
이상하지 않은가? 일찍 출세하는 것이 인간의 3대 불행 중 하나라니 말이다. ‘좋게 죽지 못할 것이
다’라는 단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왜 일찍 출세하면 불행해지는 것일까?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
이 많아진다. 그러니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고, 종국에는 이른 출세가 불행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아마
도 선인(先人)들은 수많은 사례를 경험한 끝에 이런 격언을 만들게 됐을 것이다.
-( 後略 )-
* 글 속의 시(입력자 임의로 입력)
태백산행 /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이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첫댓글 <아프니까 청춘이다>,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여기서 새칠로 읽어보니께 느낌이 다릅니다.
오늘 낮에 콩국시를 먹는디
여느 때 같지 않고 맛이 쪼까 다르기에
"맛이 이상하다?" 햇도마는
"다위탓인기라".....하더라고요.
목현 선생님
감사합니다.
따로 국밥 따뜻하게 드십시오.
이열치열 이라카네요.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거창고 십계를 몸소 실천?하고 살았습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