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를 쓴다
배기환
하얀 눈을 걷으니 그 속에 숨겨진
장미의 알몸에선 붉은 향기가 흐르고
목련의 알몸에선 흰 숨결이 흐른다.
그래 장미야, 그리고 목련아
겨우내 칼날 같은 그 추위 견디며
얼마나 마음 시려했느냐?
살갗이 찢어지는 세찬 폭풍우에 아픔을 겪고서야 비로소 움트기 시작하는 저 꽃망울들, 그렇다 장미꽃 한 송이 한 송이는 아름다운 아픔 한 송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던 그에게 빨간 향기 그윽한 아픔 한 송이를 전하기로 하였다.
잠시 침묵을 뛰어넘고 꽃대 속에서
은은하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분명 티베트의 어느 사찰에선가
은은하게 들려왔던 싱잉볼 소리 같다.
나는 읽던 성경을 덮고 그 음악에 취해
또 그에게 시 한 편을 쓴다.
----배기환 시집, {시간은 기억의 수례를 끌고}(근간)에서
시가 먼저일까, 삶이 먼저일까? 시인의 입장에서는 시가 먼저이고, 삶이 그 다음일 수도 있다. 농부와 상인, 또는 그밖의 일상생활인들에게는 삶이 먼저이고, 시는 그 다음일 수도 있다. 시인들은 예술지상주의자가 되고, 일상생활인들은 현실주의자가 된다. 하지만, 그러나 시와 예술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그 어느 분야에서이든지간에, 자기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그는 곧바로 시인이 되는 것이다. 요컨대 시를 얼마나 잘 쓰는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이 세상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잘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는 행복한 삶의 한 양식이자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배기환 시인의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그의 현실주의의 소산이자 예술지상주의자의 소산이며, 궁극적으로는 그의 행복론, 즉,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하얀 눈을 걷으니 그 속에 숨겨진/ 장미의 알몸에선 붉은 향기가 흐르고/ 목련의 알몸에선 흰 숨결이 흐른다”는 것은 장미와 목련이 고통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그래 장미야, 그리고 목련아/ 겨우내 칼날 같은 그 추위 견디며/ 얼마나 마음 시려했느냐?”는 측은지심을 넘어선 더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말을 뜻한다. “살갗이 찢어지는 세찬 폭풍우” 앞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고, 시는 고통을 미화하고 성화시키는 것이다. “장미꽃 한 송이 한 송이도 아름다운 아픔 한 송이나 마찬가지”이고, “목련꽃 한 송이 한 송이도 아름다운 아픔 한 송이나 마찬가지”이다. 시는 사상의 꽃이고 사상은 시의 열매이다. 시는 사상의 꽃이고 경전이며, 이 경전 속에는 “잠시 침묵을 뛰어넘고 꽃대 속에서/ 은은하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분명 티베트의 어느 사찰에선가/ 은은하게 들려왔던 싱잉볼 소리 같다”라는 시구에서처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말씀들이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배기환 시인의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그가 그의 우주선인 ‘솔롱고스호’를 타고 가 창출해낸 새로운 우주라고 할 수가 있다. 즉, 그의 우주에는 ‘가시 돋친 말’의 반대편에서, 이 세상의 삶을 찬양하고 옹호하는 시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할 수가 있다. “천관 사지와 고운孤雲이 기거했다는 상서장 거쳐 헌강왕릉에 이르니 은은하게 처용가가 울려 퍼지고 개운포로 가는 길 일러준다/ 도솔천 먼 길 향해 끈을 졸라매던 내 등산화 잠시 마애불 앞에 무릎 꿇고 앉자 명상에 든다”의 [서라벌의 숨결]도 있고, “긴 강을 끌고 온 청둥오리와 도요새들의 유영/ 그렇다, 강물에 붉은 노을이 출렁이는/ 낙동강 하구의 가을 풍경은/ 샤갈이 그려놓은 한 폭의 풍경화다”라는 [을숙도 풍경 1]도 있다. “거센 파도의 허리춤을 꽉 붙들고 있는 방파제 위에 포세이돈 신전처럼 우두커니 서서 몰운대를 응시하고 있는 빨간 등대에 묻는다/ 지난밤 얼마나 많은 불씨를 파도 속에 은밀히 숨겨 두었느냐?”라는 [몰운대 등대]도 있고, “저 새벽 바다의 봉인을 제일 먼저 뜯는 것은 시베리아 빙산에서 달려온 된바람도 아니고 바다의 막장까지 긁는 트롤선 엔진 소리도 아니며”라는 제주해녀의 [숨비소리]도 있다.
내게 최초로 각인된 바다는
내 어릴 적 외가가 있던
남해안의 어느 한적한
어촌 마을 그 바다였다.
바람에 부화된 파도가
밀려갔다 밀려오는 그 바다는
따지고 보면 바로 내 어머니인 셈이다.
파도는 고립으로부터의
탈주인 동시에 무의식의 세계를
매우 역동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내 몸속에는 그 어머니가
밀물로, 때로는 썰물로
한없이 출렁거리고 있다
----[海, 어머니] 전문
우주는 자연이고, 자연은 모든 생명들의 삶의 터전이다. 배기환 시인이 그의 ‘아이디명’인 ‘솔롱고스호’를 타고 새로운 우주를 창출해낸 것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터전인 이 지구가 너무나도 엄청나게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애정이 담긴 말보다는 더 이상 참고 들을 수 없는 거친 말과 가시 돋친 말들이 난무하고, 눈앞의 이익을 두고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생결단식의 이전투구들이 벌어지고,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수많은 생명들이 다 죽어가도록 오염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애정이 담긴 말과 듣기 좋은 말의 세계는 자연의 세계이며, 너와 내가 손을 잡고 한 폭의 풍경화, 즉,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는 세계이다. 한 편의 시는 바다이고, 어머니이며, 한 편의 시는 배기환 시인의 새로운 우주이다.
배기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는 우주이고 경전이며,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얻게 되는 시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한 편의 시는 새로운 우주이고,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한 편의 시보다 더 고귀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
데카르트, 니체, 쇼펜하우어, 마르크스, 아인시타인 등은 2ㅡ3십대에 글을 통하여 전인류의 스승이 된 사람들이다. 독서중심 글쓰기 교육하면 2ㅡ3십대에 전인류의 스승이 되지만, 일제식 암기교육하면 천년, 만년을 해도 전인류의 백치가 된다. 2-3십 대에 세계시장을 석권한 스티브 잡스, 빌 케이츠, 저커버그 등도 전인류의 스승들이다. 2ㅡ3십대에 전인류의 스승이 되지 못하면 학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일제식 백치교육 철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