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부산수필문학상 심사평
부산수필문학상/최순덕
수선의 미학으로 구축한 작은 왕국의 존재론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대 객좌교수
최순덕 세실리아는 수필집을 여섯 권이나 내고,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면서 부산수필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부산수필문학상은 그런 기여를 바탕으로 주는 상이 아니라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평가의 결과라는 점을 먼저 알린다. 수상작 「그들의 왕국」은 대로변의 낡은 구두 수선집을 발견한 한 번의 시선에서 출발하여, 그곳에서 살아가는 노부부의 삶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가치와 인간다운 노동의 의미까지 확장해 나간 작품이다. 이 작품의 우수성은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을 문학적 사건으로 전환하고, ‘수선’이라는 행위를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존재론적 은유로 승화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이 수필은 관찰의 발견성이 뛰어나다. 작가는 “30여 년 눈에 익어 헐거워진 길”을 다시 바라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멋진 빌딩만 고개를 젖히며 보았을 뿐” 작은 수선집은 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작품의 문학적 시선이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수선집 자체가 아니라 늘 보아왔으나 보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보는 순간이다. 익숙한 일상이 낯설게 전환되는 이 지점에서 체험은 단순한 견문이 아니라 문학적 사건이 된다. 작가는 대상의 발견을 곧 자기 시선에 대한 성찰로 돌려놓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반쪽 세상을 사는 외눈박이인가”라는 자기 질문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인식론적 긴장을 형성한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쾌미는 작은 공간을 하나의 세계로 확장하는 공간의 문학화에 있다. 수선집은 처음에는 빌딩 숲에 갇힌 “작은 성”이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왕국”으로 변한다. 작가는 ‘동굴’, ‘고성’, ‘왕과 왕비’, ‘궁궐’, ‘왕국’이라는 공간적·상징적 어휘를 반복적으로 호출하면서 좁고 낡은 수선집을 세상의 주변부가 아니라 그들만의 중심으로 전환한다. 특히 인접한 건물이 “ㄱ자 모양으로 꺾어” 지어졌다는 구체적 사실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자본과 개발의 거대한 힘 앞에서도 자리를 내주지 않은 노부부의 삶을 상징한다. 작은 공간이 오히려 거대한 세계가 되는 역전의 미학이 이 작품의 중요한 문학적 성취다.
작품의 중심 이미지인 ‘수선’ 역시 탁월하게 기능한다. 처음의 수선은 가방과 구두를 고치는 물리적 노동이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에 이르면 수선의 의미가 물건에서 인간의 마음과 삶으로 이동한다.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의 수선이 시급하다”는 문장은 작품의 사유를 압축하는 핵심 명제다. 낡은 물건을 버리고 새것을 소비하는 시대에 수선집은 단순한 생업의 공간이 아니라 버려지는 것의 가치를 되살리는 윤리적 공간이 된다. 나아가 마지막의 “삐뚤어진 시간과 너덜너덜해진 마음도 조용히 다듬는다”에 이르면 수선은 마침내 인간 존재 자체를 향한다. 이처럼 하나의 구체적 소재가 물질적 의미에서 윤리적·정서적·존재론적 의미로 단계적으로 확장되는 구조는 이 수필의 가장 주목할 만한 미학적 성취 가운데 하나다.
이 수필의 압권은 풀꽃의 이미지와 수선집의 이미지가 병치되면서 만들어내는 생명성의 구조다. “아스팔트 틈새에 핀 아주 작은 풀꽃”은 거대한 도시의 틈에서 살아남는 존재다. 수선집 역시 빌딩과 상가 사이의 틈에 남아 있다. 따라서 풀꽃과 노부부는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동일한 존재론적 구조를 갖는다. 둘 다 주변부에 놓여 있고, 둘 다 낮은 자세로 살아가며, 둘 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리를 지켜낸다. 이때 풀꽃은 단순한 자연물의 비유가 아니라 노부부의 삶을 비추는 존재론적 거울이 된다. “자리 탓하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잡초 같은 소박한 삶”이라는 표현에서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생명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둘이 만나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개인적 체험을 동시대적 문제로 확장하는 힘을 지닌다. 작가는 수선집을 바라보며 소비사회, 쓰레기 문제, 사라져가는 수공업, AI 시대의 노동, 노인 일자리, 황혼 이혼과 같은 여러 사회적 현상을 끌어온다. 자칫하면 주제가 산만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작품의 중심축인 ‘수선’이 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버려진 물건을 수선하는 일은 버려진 가치와 관계와 인간성까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행위가 된다. 특히 AI 시대에 “코드화할 수 없고 통계와 측정이 어려운” 손의 노동을 주목한 것은 이 작품을 현재적 수필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손과 숙련, 반복과 경험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는 점에서 작품은 단순한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결말은 제목 「그들의 왕국」을 완성한다. 처음의 왕국이 좁은 수선집이라는 공간적 의미였다면 마지막에 이르러 그것은 시간과 기억과 인간적 온기가 보존되는 내면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수선을 맡긴 것이 아니라, 잠시 돌아갈 수 있었던 고향과, 한 번쯤 다시 안기고 싶었던 어머니의 품을 되돌려받은 것 같다”는 마지막 문장은 작품 전체의 의미를 정서적으로 수렴한다. 구두와 가방을 수선하러 들어간 공간에서 화자가 되찾은 것은 물건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과 정서적 고향이다. 이때 수선집은 현실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기억의 장소, 치유의 장소, 인간적 온기의 장소가 된다.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는 ‘수선’이라는 일상의 행위를 삶의 해석학으로 확장한 데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시선, 작은 공간을 하나의 왕국으로 만드는 상상력, 풀꽃과 인간을 연결하는 생명성의 발견, 소비와 폐기의 시대에 맞서는 수선의 윤리, AI 시대에 인간 노동의 가치를 되묻는 사유, 그리고 마지막에 그것을 고향과 어머니의 품이라는 정서적 원형으로 회귀시키는 구조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수필은 거창한 사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범한 삶 속에서 남들이 지나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해낼 때 비로소 문학이 된다. 「그들의 왕국」은 바로 그 수필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이다. 작은 수선집 하나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놓치고 살아온 세계를 발견하고, 한 노부부의 손을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노동과 관계와 존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왕국은 노부부만의 왕국이 아니다. 그것은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살리고, 낡은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며, 느린 삶 속에서 인간의 온기를 보존하려는 모든 이들의 왕국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의 왕국」은 ‘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수선하는 것’을 거쳐 ‘되돌려받는 것’에 이르는 한 편의 삶의 서사이며, 일상의 작은 발견을 시대적 윤리적 존재론적 의미로 확장한 수필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부산수필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충분한 문학적 설득력과 성취를 갖는다고 하겠다. 단순히 이 작품의 성취가 문학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그의 모든 수필이 일정한 고급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부산수필문학상 수상자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