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를 부인하라',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은 희생, 죽어지내는 것 등입니다. '자기부인'에 대한 오해는 그 원인이 간단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대상(목적)을 상대방에 대한 희생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고 했을 때, 보통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니가 참아라, 용서해라,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왔기 때문에 상대방의 죄와 육신을 용납하여 그 죄와 육신에 오히려 문을 여는 꼴이 되곤 합니다.
자기 부인의 대상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자기부인을 하지 않으면 ‘거짓 자기부인’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니까, 내가 참아야지...' 하면서 자기 육신의 힘으로 자기부인을 하려니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자기, 즉 self 를 부인한다는 것은 육신, 곧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모든 것을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부인한다는 것은 혐의를 부인하듯이, ‘그것은 안 된다’, ‘잘못됐다’고 거절하고 아예 내 생각이나 내 삶 속에 그런 것들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자기'라는 늪 속에 빠져 있을수록 불가능해 보이고 왜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반면 올바른 이유로 자기를 부인하다 보면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고 얼른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나를 가득 채우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오늘 내가 부인해야 하는 자기(self, 자아, 육신)는 무엇인지 성령님께 여쭤보고 알려주시는 것이 있으면 그 부분을 부인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진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아는 지식입니다. 자아(self)와 육신은 진짜 내가 아니기에 부인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참 자아를 알아 거짓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 각작의 십자가를 경험하는 순간이고 그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죄인이었던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에게 새로운 정체성, 의인의 정체성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 드립니다! 할렐루야!
* 제자가 지고 갈 십자가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의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