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석 선생님이 깜짝 놀랐어요?”
선영 씨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어제 저녁 나눔 시간에 열다섯 곳을 돌아다녔다고 했더니, 선생님들이 다들 놀랐다.
이 이야기를 선영 씨에게 전하자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구직활동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김수경 선생님께 이런 말을 했다고도 했다.
“‘일하고 싶어요’하고 말했어요. 내가 말했어요.”
어제의 일을 자랑스레 회고하는 선영 씨를 바라보며 내 마음에도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선영 씨는 열다섯 번 매장 방문을 거듭하면서 자신감을 쌓아갔다.
냉정하게 따지면 열다섯 번의 ‘완곡한 거절’을 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선영 씨가 쓴 이력서를 건네며, 선영 씨 목소리로 구직 의지를 표현했다는 사실은 선영 씨를 점점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출발하기 전에 이력서에 감사 쪽지를 붙여 보기로 했다.
내가 선영 씨에게 쪽지를 써서 붙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선영 씨가 그래도 좋겠다고 호응해주었다.
선영 씨가 포스트잇에 ‘감사합니다.’를 써주었다.
나는 그 밑에 ‘더운 날 힘내세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덧붙였다.
쪽지를 본 사장님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여시길 바랐다.
또 힘들고 지치는 시기에 우리의 방문이 기쁨이 되기를 바랐다.
쪽지를 쓰면서 바쁜 시간에 우리를 맞아주시는 마음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님을 되새길 수 있었다.
진실한 감사를 담아 이력서 한쪽 귀퉁이에 붙여놓았다.
오늘 돌아볼 길은 선영 씨에게 익숙한 창동교회 근처 거리다.
창동교회 앞에서 내린 선영 씨가 묻는다.
“어디 가요?”
“오늘도 카페, 식당, 미용실 중에 선영 씨가 방문하고 싶은 곳에 가봐요.”
“예.”
그렇게 약 한 시간 사이에 ○○미용실, ◇◇중국집, 네가 사랑하는 커피, △△와플, □□김밥, 까꼬뽀고, 규비헤어, ☆☆찜닭에 들렀다.
선영 씨는 어제처럼 ‘일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잘해주었다.
망설이는 것 같을 때는 선영 씨에게 먼저 부탁했다.
“선영 씨, 우리 준비했던 말 있잖아요. 그거 이야기해주실 수 있어요?”
그러면 ‘일하고 싶어요.’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어쩐지 친절한 반응을 만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여주시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다.
어느 가게에서는 말을 꺼내자마자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그럴 땐 왠지 오기가 생겨 끝까지 내 할 말을 다 하고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럴수록 더 친절하고 정중히, 채용은 못하더라도 한번 생각해보고 홍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말씀드렸다.
그게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 앞에서 고개 숙이고 미안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겸손할 때 겸손하고 당당할 때 당당할 것.
입주자의 구직을 돕는 사회사업가로서 이 덕목을 지키는 게 필요한 것 같았다.
바쁜 시간에 사장님을 불편하게 해드리는 건 언제나 죄송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차가운 대접을 받아도 괜찮을 만큼 무례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시큰둥한 표정과 마주하거나 냉정한 거절을 당할 때마다, 내 마음은 차츰 무기력해지는 듯했다.
적응되는 일이 아니다.
한 번 그런 반응과 만나면 다음 매장에 들어가는 건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구직 활동은 찬물로 샤워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매일 찬물로 몸을 씻어도 물을 틀 때마다 망설여지는 것처럼.
새로운 매장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새로운 부담을 수반한다.
하지만 선영 씨는 그저 무덤덤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거절을 당해도 끄떡없었다.
선영 씨의 단단한 마음에 놀랐다.
벽에 부딪혀도 저 너머로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처럼, 선영 씨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선영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장에 들어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선영 씨가 나를 이끌어주었고, 선영 씨 덕분에 오늘의 구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힘 빠지는 순간이 많았지만, 다시 힘을 내도록 일으켜준 분들도 있었다.
까꼬뽀꼬 미용실 사장님은 선영 씨가 건넨 이력서를 정독했다.
“거창나래학교를 나왔네.”
“예, 맞아요.”
“어떤 일 할 수 있어요?”
“선영 씨가 미용실에서 일해본 경력이 있거든요. 선영 씨, 미용실에서 어떤 일 해보셨었죠?”
“예….”
조금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청소하셨었다고 했죠? 파지 건네드리는 것도 하셨었다고 했잖아요.”
“예.”
선영 씨가 이야기할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낯선 환경에서는 나도 조금 조급해지는 것 같다.
다음에는 선영 씨가 무엇이라도 말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드려야 한다.
“지금은 혼자로 충분해요. 바쁜 미용실에 방문해보면 괜찮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혹시 손님들께 홍보를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래요. 가만있자, 이력서를 어디에 보관해야 하나….”
그러더니 투명 파일 하나를 꺼내 이력서를 집어넣으셨다.
“더운데 물이라도 한 잔 하고 가실래요?”
물을 건네시는 마음이 감사했다.
마지막에 들른 여우야여우야 사장님은 우리를 귀한 사람으로 대해주셨다.
이력서에 적힌 핸드폰 번호를 읽으며 이 번호로 전화하면 되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마지막 방문을 이곳 미용실에서 하게 된 게 복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사람으로 대접받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본래 구직의 핵심은 ‘좋은 직장’을 찾는 것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데 있다.
선영 씨 속도를 기다려주며 함께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역사회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이다
여우야여우야 사장님 같은 분을 한 명만 만나도, 오늘 할 일을 다 이룬 것 같다.
선영 씨는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샀다.
선영 씨가 마실 탄산음료를 고른 다음, 커피를 살피더니 한 번 크게 웃는다.
“수경 쌤 커피. 수경 쌤 커피도 사가야지.”
커피를 고르고 매대 앞에 가자 한 번 더 웃으며 말한다.
“주현이꺼도 사야겠다.”
선영 씨는 한 손 가득 음료수를 들고 언덕길을 올라갔다.
세상이 아무리 차가워도 선영 씨는 온기를 잃지 않는다.
누군가를 챙기는 선한 마음,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따뜻한 의지,
그런 빛나는 것들 덕분에 하루의 피로를 위로받는다.
2022년 7월 26일 화요일, 전채훈
첫댓글 1. 감사의 글 적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여서 실천했군요. 고맙습니다.
2. 그럴 땐 왠지 오기가 생겨 끝까지 내 할 말을 다 하고 나오기도 했다. -> 선한 오기. 전채훈 선생님, 멋있어요~!!
3. 손사래 친 분, 냉담하게 반응한 분들도 선영 씨가 가게 문을 나서고 나서 '내가 너무 심했나?' '다음에 오면 더 따뜻하게 대해줘야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냉담한 반응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전채훈 선생님이 하는 일이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기에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4. 고된 하루를 탄산 음료 한 잔에 씻어 내리는 선영 씨, 멋있어요. 남은 일정도 응원합니다.
선영 씨가 주저 없이, 끝까지 구직을 마칠 수 있었던건 전채훈 선생님께서 선영 씨를 믿고 기다려주고, 사업장 사장님들께 잘 말할 수 있게 도왔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지역을 다니다 보면 때론 냉담한 반응과 마주할 때도 있지만, '까꼬뽀꼬' '여우야여우야' 사장님처럼 좋은 분들을 만날때도 있죠. 여기서 또 다음 발걸음에 용기와 힘을 얻게되고요.
선영 씨와 전채훈 선생님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