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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이세연목사님
김도현 예누 예수
2021년 6월 3일(목)
묵상 - [아침에 드리는 찬송]
● 성경본문 : 시편 3:1~8
시편 3편은 ‘다윗의 아침 찬송시’입니다.
개인의 찬송이 후대의 아침 예배 때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찬송시를 통해, 아침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10년 넘게 광야에서 사울 왕에게 쫓겨 살았습니다.
그러다 유다의 왕으로 7년 6개월을 다스렸고,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윗의 적들은 대부분 제거되었거나 다윗의 편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한순간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다윗에게 많은 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첫 기도는 “여호와여”입니다.
외마디로 시작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큰 고난을 겪고 있으면 장문의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적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조롱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하심, 보호하심으로 살았습니다.
다윗이 가장 의지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니, 그 말이 다윗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성도의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3절부터 다윗의 기도가 반전됩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라고 말합니다.
당시 사용하던 방패는 작은 방패와 큰 방패로 나뉘는데, 작은 방패는 무기를 든 자가 주로 썼고 큰 방패는 온몸을 방어하려는 자가 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패는 ‘큰 방패’로서 동서남북 사면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방패를 들고 있으면 심리적으로 큰 안정을 확보해서 적군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또 하나님이 자신의 머리를 들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잘못한 사람, 실패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고개를 들게 해 주심으로 다윗의 자존감을 세워 주셨습니다.
『기도자는 하나님이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폰 라드)
도망가는 상황,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다윗은 아침에 깨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붙드셨고 천만인이 에워싸도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머리를 들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런 고백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절히 구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이것은 하나님의 법궤가 진중으로 이동할 때 부르는 함성입니다.
법궤가 이동하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전쟁의 용사이신 하나님이 싸우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면 전쟁은 승리뿐입니다. 패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악인의 이를 꺾었다고 말합니다. 즉 대적들의 힘을 빼앗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을 보낼 때 낙심하거나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전쟁터와 같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성도는 전쟁의 용사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기도와 찬송은 우리를 반드시 승리로 이끕니다.
[2021년 6월 6일 주일기도문]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그 길은 반드시 망할 것’임을 알게 하셔서 형통한 믿음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적인 성공이 부러울 때가 많고, 욕심을 포기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하심이 모든 죄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을 믿으며 거룩하고 성결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넓은 길로 가면 잠시 동안은 편할지라도 결국에는 멸망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금년 남은 7개월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인도하심을 의지해서 「예배 중심」, 「은사 중심」, 「전도 중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교회로 모이기에 힘쓰게 하시고, 허락하신 달란트를 사용해서 많이 남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영혼 사랑의 마음을 주시고, 주의 말씀을 전하며, 본이 되는 삶으로 전도하게 하옵소서.
성령강림절기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불같은 성령의 임재가 우리 심령에 가득 채워지게 하시고, 죄와 피 흘려 싸워 승리하게 하옵소서.
나의 방패시오 영광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6월 7일(월)
묵상 - [억울한 일을 당할 때]
● 성경본문 : 시편 7:1~17
무고죄는 다른 사람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없는 죄를 고발하는 행위입니다.
무고죄는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폭력보다 피고소인에게 더 심각한 상처를 줍니다.
만일 성도가 이런 일을 당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무고한 고발로 억울하고 괴로울 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무죄함을 아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자신의 무죄를 천명하기 위해 엄숙한 맹세를 드립니다.
자신의 목숨과 명예를 걸고 자신의 무죄를 확신합니다.
우리는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감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호소합니다.
주님께 ‘일어나소서’, ‘오르소서’, ‘깨소서’, ‘판결하소서’라는 네 개의 명령형으로 호소합니다.
하나님이 진노로 일어나셔서 대적들의 분노보다 더 큰 분을 일으키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이 친히 싸워주실 것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공정하게 판단하며 악인들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원수들은 지독한 거짓말로 의인을 공격하지만 방패이신 하나님은 원수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십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매일 악인들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회개하기를 원하시는데,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칼을 갈고 활을 당겨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자비의 시간이 끝나면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악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악인은 죄악을 해산하고 폭력을 잉태하여 거짓을 낳습니다.
결국 악인은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악인에게 악이 돌아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악인들의 고발에 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뿌리 뽑으시고 의인들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악인의 악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찬송하십시오.
죄악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인내한 후에 다시 힘차게 인생의 길을 나설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021년 6월 10일(목)
묵상 - [역사의 주관자]
● 성경본문 : 시편 9:11~20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악한 자들이 득세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거나 의인이 억울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낙심과 혼란스러움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혼돈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이 붙잡아야 할 진리와 그에 따른 올바른 태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악한 자들이 벌이는 혼란스러운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의 주관자시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악인이 득세하여 무죄한 자를 억압하고 의인들을 고통 속에 빠드린다 해도 하나님이 결국 악인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면 악한 자들은 자신들이 파 놓은 웅덩이에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함정에 걸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의 행위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죄를 저지른 그들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억울한 상황에서 건지시며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시며 끝까지 자비로 돌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백성 중에 선포하라고 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과 열방을 향해 하나님을 알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당신을 계시하신 것은 우리가 바로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하고 빛 된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거룩하고 성결한 빛을 마땅히 드러내야 할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지적이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임을 알고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일에 바로 선다면 악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부끄러워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비를 본받아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우리가 소유한 것들을 나눌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가 선포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세상에서 당신의 빛을 드러낼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의한 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여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따라 세상의 모든 일을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진리를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021년 6월 13일 주일기도문]
약할 때 강함 되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고와 질병으로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세상에서 생명을 지켜주시고, 믿음으로 이기는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과 우상에 몸과 마음을 뺏겨 왔습니다.
직장과 사업의 축복을 원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했고, 가정의 평화를 바라면서도 교회보다 집을 더 사랑했습니다.
자녀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면서도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습니다.
우상의 모양만 남아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그런 개인과 가정과 기업을 축복해 주실 리가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나의 기도하는 것보다 더욱 응답하시고, 나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생활 속에 하나님이 싫어하는 모든 우상들의 부스러기 하나 남김없이 제거하고 청산하게 하옵소서.
욕심을 버리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순수한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충성하며 살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삶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아름다운 성도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나의 도움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년 6월 14일(월)
묵상 - [성막을 통해 배우는 교훈]
● 성경본문 : 출애굽기 25장 23~40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들어가기 전에 성막 건축의 중요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5~31장은 성막 제작에 관한 세세한 지침들을 모세에게 알려주십니다.
성막과 그 안에 비치할 기구들, 번제단과 성막 뜰, 제사장이 갖춰야 할 의복과 직분 등. 제사장이 여호와를 섬기고 예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설계하신 모양과 형식대로 제작하라고 명하십니다.
25장 1~9절은, 성막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예물을 드리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10~22절은,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갖는 증거궤 제작을 위한 지침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지성소 다음으로 거룩한 곳인 성소에 비치될 도구들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됩니다.
첫 번째는, 진설병을 두는 상입니다.
이 상은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만들어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둘렀습니다.
상 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떡을 올려놓았습니다.
12개의 떡은 언약 공동체로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피땀 흘려 거둔 결실로 드리는 진설병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가 죄 용서를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고 헌신해야 합니다.
이 상은 네 개의 다리와 이동할 때 사용하는 네 개의 고리가 달려 있습니다.
이 상의 역할은 하나님께 바치는 진설병을 올려놓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행군하는 도중에도 채를 고리에 꿰어 어깨에 메고 이 상을 옮겨야 했습니다(민 4:8).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상 위에는 떡과 함께 네 가지 도구, 곧 순금으로 만든 대접, 숟가락, 병, 붓는 잔이 있었습니다.
대접은 구운 떡의 형태를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한 것이고, 숟가락은 유향을 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레 24:7).
병과 붓는 잔에는 물이나 포도주가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이 기구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된 것들입니다.
성소의 다양한 기구들이 각자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다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헌신함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겨야 합니다.
성소에 두어야 할 두 번째 기구는 순금으로 만든 등잔대입니다.
이 등잔대는 원 가지 주위로 각기 가지가 세 개씩 있어서 모두 7개의 가지가 있었는데, 이는 완전성을 상징합니다.
이 등잔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살구나무를 형상화 해 만들었습니다.
살구나무는 새롭게 돋아나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살구나무가 꽃을 피우듯,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아 꽃을 피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등잔대의 불은 성소를 비춥니다. 따라서 등잔대의 불은 꺼져서는 안 됩니다.
이 불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등잔은 한 덩어리의 순금으로 연결해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는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생명이 사실상 하나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빛을 받아 온 세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항상 이 빛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기적으로 진설상 위에 떡과 포도주를 드린 것과 같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봉사하고 섬겨야 합니다.
등잔대의 빛이 이스라엘의 생명을 밝히고 어두운 성소 안을 환하게 비추었듯이,
▶우리 역시 이 땅에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온전히 드러내야 합니다.
2021년 6월 15일(화)
묵상 - [보호하심]
● 성경본문 : 출애굽기 26장 1~14
성막은 오늘날 교회입니다.
따라서 성막의 구조는, 교회의 역할 또는 교회의 구성 요소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영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 가장 안쪽 휘장의 네 가지 색깔
(1) 흰색(가늘게 꼰 베실) :
(2) 청색 :
(3) 자색 :
(4) 홍색 :
2. 염소털로 만든 휘장 :
3.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 :
4. 가장 바깥쪽 덮개인 해달의 가죽 :
※위 문제들을 복사해서, 여러분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해석으로서 답을 적어 올려주시면, 하늘의 상이 있습니다!
2021년 6월 17일(목)
묵상 - [하나님의 디자인]
● 성경본문 : 출애굽기 27장 1~21절
25~26장은 성막이라고 불리는 공간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할 지성소와 성소, 즉 회막과 그 안에 둘 기구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침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어서 27장은 지성소와 성소 바깥 공간에 놓을 제단을 제작하는 방식과 그 뜰의 기능을 소개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제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설명하십니다(1~8절).
이동을 염두에 두고 실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가벼운 조각목으로 만들고, 채를 꿰어 매고 이동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을 태워드리는 제사 방식 때문에 대부분의 물품이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제단은 어찌 보면 가장 위엄이 있어야 하는 장치였지만, 하나님은 자신과 백성이 만나는 제사 자체를 중요시하셨지, 장치의 위엄과 아름다움으로 백성에게 감흥을 주려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성막의 뜰은 세마포 휘장으로 가려졌습니다.
높이가 다섯 규빗(2.5m)으로 누구도 박에서 안을 볼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18절).
안으로 들어가야 번제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거룩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시 밖에서 보면 그 안의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성막 뜰 안으로, 즉 교회 안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주 하나님과 구주되신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또한 기억할 것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교회 안의 내용을 아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야 합니다.
제단과 뜰의 중요한 재료는 놋입니다.
지성소-성소-뜰로 이어지는 구조에 따라 재료도 금-은-놋으로 재료가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많이 사용되는 기구들을 놋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화려하고 아름답다면 그 자체로 보기는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에는 우리도 마음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막 안에 꺼지지 않는 등불을 두라고 명령하십니다(20절).
그 등불은 순전하고 깨끗한 기름으로 밝혀야 했습니다.
올리브기름으로 계속 밝혀 두는 등불은 이스라엘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불이 항시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안에 계속 임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정성이 하나님께 계속 드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것처럼, 우리 역시 늘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등불 관리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책임져야 했습니다(21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삶은 그리 편하지 못합니다.
까다롭고, 피곤하고,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서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먼저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온전함과 거룩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021년 6월 18일(금)
묵상 - [거룩한 옷을 입은 성도]
● 성경본문 : 출애굽기 28장 1~14절
하나님은 성막을 운영할 제사장으로서 아론과 그의 네 아들을 호명하셨습니다(1절).
특히 아론은 거룩한 옷을 입어 영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적으로 보여야 했기 때문입니다(2절).
아론의 옷을 짓는 일은 성막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이 일은 ‘하나님의 지혜로운 영으로 충만한 자’에게 맡겨집니다.
하나님은 아론이 입을 옷을 설계하셨는데, 이 옷은 성막에 사용되는 천과 도구들을 연상시킵니다.
성막의 덮개가 네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아론은 흉패, 에봇, 겉옷, 반포 속옷으로 네 겹의 옷을 입습니다.
성막 안에 금으로 만든 기물이 있는 것처럼 아론은 금패가 달린 관을 쓰며, 성막의 각 널판들을 띠로 이었듯 아론도 띠를 맵니다(4절).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에 금실이 첨가된 천이 사용됩니다(5절).
이처럼 아론의 옷은 성소와 지성소를 연상시킵니다.
제사장은 이 옷을 입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에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대제사장의 옷에 대한 설명은 ‘에봇’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에봇은 가슴과 등을 덮는 긴 조끼 모양의 상의입니다.
에봇의 양 어깨에는 금테에 물린 호마노가 하나씩 붙어 있는데, 거기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이 나이순으로 각각 여섯 개씩 새겨져 있습니다.
아론이 하나님이 앞에 설 때마다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이 하나님께 보입니다.
반복적으로 불순종한 이들의 이름이 거룩한 옷에 부착된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 역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예수님의 두 어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강력한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은 거룩한 옷을 입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임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었다고 자동으로 그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입고도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려 죽임 당하기도 했습니다(민 26:61).
제사장은 자신이 입은 거룩한 옷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제사장이 입은 거룩한 옷을 보고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인식했습니다.
성도라는 이름 자체가 ‘거룩한 자’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이 의복에 어울리도록 거룩하게 행해야 했듯이, 모든 성도는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옷이 필요 없는 진정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 자체가 거룩하시며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서 완전한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속죄 사역 이후로는 거룩한 옷을 입은 특별한 제사장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입니다.
이제 제사장의 직분은 옷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령의 내주하심」과 「지혜의 충만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음을 항상 자각하여, 거룩한 옷을 입은 성도로서 죄의 영향에서 벗어난 영적 자유의 삶을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