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울립니다
억울했던 일, 슬펐던 일, 섭섭했던 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해지는 기분 나빴던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향한 출발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지나간 영광과 고통의 시간에 너무 오래 취해 있으면 미래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찬송가 297장에 나오는 테니슨의 시로 칼럼을 열고자 합니다. 종소리 크게 울려 보내라/ 멀고 먼 저 하늘로/ 날아가는 구름한테로/ 추운 겨울날한테로/ 이 해도 이 밤에 하직하고/ 어둠 가운데 사라지니/ 묵은 해를 멀리 울려 보내라// 옛 것을 울려 보내고/ 새 것을 울려 들이라/ 복된 종을 울려 보내라/ 흰 눈 벌판 저 너머로/ 이제 묵은 해는 가려 하노니/ 갈려면 잘 가거라/ 거짓은 울려 보내고/ 참된 것을 울려 들이라/
영어로 묵은 해를 보낸다는 표현을 'ring out', 새해를 맞는다는 표현을 'ring in'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영국에선 12월 31일 밤 12시면 모든 교회 종탑과 공공건물 시계탑에서 일제히 종을 울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국 런던에선 12월 31일 밤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의 빅벤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면 트래펄가 광장과 세인트폴 성당 앞에 모인 군중은 서로 악수를 나누고 ‘올드랭사인'을 합창하고, 같은 날 미국 뉴욕의 타임스 광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광경이 벌어집니다. 묵은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을 때마다 '올드랭사인' 노래와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종소리 입니다.
존 던(John Donne)과 헤밍웨이는 결국 우리를 위해 울리는 종소리를 굳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고 했는지 모르지만, 제야의 종소리는 왠지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게 합니다. 못다 이룬 일에 대한 아쉬움과 얼룩진 나날에 대한 후회를 금할 수 없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성탄 종소리에 발을 맞추며 몸을 흔들어 대어가며 목청을 높이어서 시끌벅적하게 웃으며 보낼 수 있었는데 왜 똑같은 종소리에 우리는 더욱 엄숙하고 경건해져야 하는 것인지, 인생인지라 종말이, 마지막이 더 무섭고 착잡한 심정인 것은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가 죽을 때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당신은 용감했는가 둘째, 당신은 충성했는가. 셋째, 당신은 성실했는가. 넷째, 당신은 헌신했는가.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 할 수 있습니까.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 일기장에 무엇이라 적겠습니까?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국가에서도 한해를 마감하는 결산 보고와 문서를 남깁니다. 또 어떤 이는 인생을 마치면서 회고록을 기록하여 남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의 일기를 쓰지 않더라도, 한해의 결산의 글이 없어도, 한 생애의 회고록을 남기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기록에는 하나 빠짐 없이 모두 기록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불란서의 작가 모파상은 ‘진주 목걸이’라는 소설을 써서 인생의 허무한 삶을 그렸습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하급 관리와 결혼하여 언제나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마띨드라는 여인은 어느 날 남편이 가져 온 무도회의 초청장을 들고 기뻐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한 순간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입고 나갈 옷과 장식용 액세서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남편은 저축한 돈을 전부 찾아 아내의 옷을 샀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부자 친구를 찾아가 진주 목걸이를 빌려 왔습니다. 드디어 무도회 날이 왔습니다. 마띨드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습니다. 뭇 사람의 칭찬과 인기를 한 몸에 모았습니다. 그녀와 남편은 훌륭한 파티를 끝내고 자정 무렵 집에 돌아와 파티 복을 벗는 순간 아내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빌려 온 목걸이가 없어진 것입니다. 어디서 분실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들 부부는 재산을 정리하고 집을 저당하여 많은 빚을 지고 그와 똑같은 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후 이들 부부는 그 빚을 갚기 위해 1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그 빚을 갚았습니다. 10년 후 그 빚을 거의 다 갚게 되었을 때, 마띨드는 산책길에서 자기에게 목걸이를 빌려준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자 친구는 너무도 변해 버린 마띨드를 보고 깜짝 놀래는 것입니다. 마띨드는 그제야 그 사연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 친구는 아- 가엾은 마띨드, 왜 진즉 그 이야기를 내게 해 주지 않았어. 빌려준 목걸이는 가짜였는데, 몇 프랑도 안 되는 싸구려 장신구였단 말이야. 친구의 말을 들은 그녀는 그 자리에 엎드려 와락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한 해를 살아 온 우리들의 답변도 이에서 더 낳을 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때보다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일들, 마음 아팠던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잊어버릴 것을 묵은해와 함께 잊어버리고 털어 버릴 것을 훌훌 털어 버려야 합니다. 억울했던 일, 슬펐던 일, 섭섭했던 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해지는 기분 나빴던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향한 출발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지나간 영광과 고통의 시간에 너무 오래 취해 있으면 미래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지나간 과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교훈뿐입니다. 우리 비전 가족 여러분!! 묵은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신앙적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첫째, 잊어버리는 은혜를 찾기 원합니다. 속담에 "원수는 바위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바위에 새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 3:13]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위로와 소망의 신앙으로 괴로움을 승화시켜야 합니다. 러시아의 푸시킨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힘겨운 날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가 슬프다 해도/ 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지나가게 되고,/ 지나간 것은 훗날 그리워지리니.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라고 했습니다.
셋째. 이해와 용서를 통해 쓰라림을 극복해야 합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볼 수 있듯이 복수를 한다고 배신의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용서만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합니다.
넷째, 모든 과거의 실패와 성공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잠 16: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인생을 잘 살고 못 사는 것 같지만 배후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서 움직이고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마당에 지난날들의 괴로웠던 일에 너무 집착하고 매달리지 맙시다. 사단은 과거라는 벌판에다 집착이라는 못을 박아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