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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 신(新) 프로그램에 수록된 이케다 선생님의 지침
2024년 12월 1일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스피치를 수록한 신(新) 프로그램 「격려(激勵)의 ‘일파(一波)’가 승리의 ‘만파(萬波)’로」가 SOKA채널 VOD(비디오 온 디맨드)에 추가됐다. 내용은 1996년 12월에 실시된 본부간부회에서의 스피치다.
내년 ‘세계청년학회(世界靑年學會) 비상(飛翔)의 해(年)’를 향하여 창가가족(創價家族) 한사람 한사람이 그리고 전 지구(地區)가 크게 비상하기 위한 지침(指針)으로서 그 요지(要旨)를 게재(揭載)한다.
※ VOD 프로그램의 시간은 약 10분, 프로그램 코드=AC19. VOD를 이용할 수 있는 회관 등이나 ‘SOKA채널 모바일STB’로 시청 가능. 모바일STB로 시청 할 때는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가 필요합니다. ‘SOKAnet 회원 서포트’에서는 본 VOD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없습니다.
[1996년 12월, 본부간부회에서]
새로운 창가의 시대를 여기에서부터!
‘한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이어진다
‘일파’에서 다시 ‘만파’를 일으켜라
■ 사츠 씨의 신념 -
각자가 가진 맛(저마다의 특성)을 살리자!
후지(富士)라 하면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요시카와에이지(吉川英治) 저(著)〉가 떠오른다. 그 미야모토 무사시의 다음 일절(一節)이 나의 뇌리(腦裏)를 떠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말씀드린 너무나도 옳은 말이다.
“저렇게 되자, 이렇게 되자고 초조(焦燥)해하기보다 후지처럼 묵묵히 자신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라.”〈 『요시카와에이지 전집(吉川英治全集)』 19, 고단샤(講談社)〉
무슨 일이 있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초조해(조급해)하지 않는다. 헤매지(망설이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인생이다. 인간이라는 증거다.
도다(戶田) 선생님께서도 후지를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청년부 시절, 선생님과 나 두 사람뿐인 때였다. “다이사쿠(大作), 고요(古謠)해 보이는 것 같지만, 후지산(富士山)의 꼭대기는 열풍(烈風: 사납고 거세게 부는 바람)이 분다. 정점(頂点)에 선 인간은 열풍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 말씀을 나는 생애(生涯), 잊을 수 없다. 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절을,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새로운 세기(世紀)를 만드는 것은, 청년의 열(熱)과 힘(力)이다.”라고.
창가학회(創價學會)도 드디어 청년부(靑年部)가 광선유포(廣宣流布)의 일체(一切)를 이어받는(계승하는) 의식(儀式)의 시대(時代)에 들어섰다. 청년부의 존재가 결정적(決定的)으로 중요(重要)해졌다. 시대는 변한다.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기는 열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년부(壯年部), 부인부(婦人部) 여러분도 청년부를 최대로 지키고, 단련(鍛鍊)해(시켜), 후계(後繼)의 길을 훌륭하게 만들어 가도록 응원을 부탁드리고 싶다.
또 청년부도, 그 결의로 나아가주길 바란다. 그리고 ‘세계제일의 불의불칙(佛意佛勅)의 단체’ ‘존귀(尊貴)한 광선유포의 단체’인 창가학회를, 훌륭하게 계승해주길 바란다. 청년부의 힘으로 새로운 ‘창가(創價)의 시대’를 훌륭하게, 활짝 열어주길 바란다.
졌을 때야말로
며칠 전, 모스크바에서 한 권의 책이 배달됐다. 바로 러시아 ‘아동예술의 어머니’로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은 나탈리아 사츠(Natalya Sats, 1903~1993) 씨의 자서전(自敍傳, 러시아어판 『인생-줄무늬』 노보스티출판사)이다.
사츠 씨는 3년 전(1993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츠 씨의 유작(遺作)을 그녀가 창립한 모스크바 아동음악극장의 회장(會長, V·프로호로프 씨)이 선물한 것이다. 자서전에는 그녀와 나와의 추억어린 만남도 엮여져 있다.
그녀는 생전(生前), “이케다(池田)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불법(佛法)의 영원(永遠)한 생명관(生命觀)이 인생(人生)에 무한(無限)한 희망(希望)을 주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츠 씨는 젊은 날에 아무런 죄 없는 남편이, 독재자(獨裁者) 스탈린(Joseph Vissarionovich Stalin, 1878~1953)에 의해 총살당했다. 더욱이 자신도, 이유 없는 죄를 날조(捏造)해 시베리아 등에서 5년간이나 투옥(投獄)되었다.
사츠 씨가 투옥됐던 방에는, 그녀 외에도 원죄(冤罪: 무고한 죄,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로 붙잡힌 몇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모두 공포에 질려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절망적(絶望的)인 상황(狀況)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로만 마음을 닫고 있지는 않았다.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같은 방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일어설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함(굽어살핌)으로써 그녀의 마음에 다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음 하나’로
그녀(사츠 씨)는 생각했다. “어떻게든 모두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돕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신도 끝까지 살아가자. 생각(사고방식)을 바꾸자. 그리고 믿자. ‘지금 이때가 결코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모습은 패배자 같아도 이것으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 이것이 그녀의 신념이었다.
도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졌을 때 이기는 원인(原因)을 만들 수 있다. 이겼을 때 지는 원인을 만들 수도 있다.”라고.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의 불법(佛法)은 ‘본인묘(本因妙)’의 불법이다. ‘현당이세(現當二世)’의 불법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항상 ‘현재’에서부터 ‘미래’로의(를 향한) 도전(挑戰)을 시작한다. 영원히 ‘여기에서부터!’ ‘지금부터!’다. 그러므로 막힘이 없다.
‘마음’을 바꾸면 ‘환경’도 바뀐다. 불법에서도 ‘의정불이(依正不二)’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고 설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옥중에도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 있었다. 언제까지나 한탄해도 소용없다. 사츠 씨는 생각했다. “각자가 가진 맛(저마다의 특성)을 살려, 서로 배우는 기회를 만들자. 학교를 만들자.” “저 사람은 화학(化學) 강의(講義)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에게는 의학(醫學) 강의를 해달라고 하자.”
그녀 자신은 훌륭한 노랫소리(歌聲)를 피로(披露)했다(선보였다). 어느 때는 잘 울리는 맑은 목소리로 푸시킨(Aleksandr Sergeyevich Pushkin, 1799~1837)의 시를 낭송(朗誦)했다. 모두 감동했다. 용기가 생겼다.
어둡게 닫힌 뇌옥(牢獄: 감옥, 수옥, 죄인을 가둬 두는 곳). 그렇기 때문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되었다. 예술을 마음껏 즐기는 극장으로도 되었다. 마음 하나로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 ‘자, 지금 있는 이 장소(場所)에서 즐겁고 의미(意味)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자.’라고. 정말 현명(賢明)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치(價値)를 창조(創造)한다.
격려는 인간미
사츠 씨의 뇌옥은 작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위대(偉大)한 역사(歷史)는 만들어졌다.
‘작은 모임’이 중요한 것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모임 - 좌담회(座談會)가, 또 가정지도(家庭指導)가 중요한 것이다. 개인지도(個人指導)가 중요한 것이다.
일대일로, 맛 좋은(운치 있는) 대화(對話)를 할 수 있고, 인간미(人間味) 있는 격려(激勵)로 사람을 발심(發心)시킬 수 있는 사람이 진짜다. 그 발심이야말로 오래 지속된다. 그 결의(決意)가 기폭제(起爆劑)가 된다.
그 ‘일파(一波)’에서부터 ‘만파(萬波)’가 넓혀진다(펼쳐진다, 퍼진다). 단념(丹念, 성심)으로(정성껏) 한 집 한 집을 돈다. 진심으로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한다. 이 고생(노고)으로 만든 일파야말로 만파로 넓혀져 가는 것이다. 창가학회(創價學會)의 지금까지의 발전(發展)의 비결(秘訣)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다시 한번 이것에 철저해 가면 또다시 ‘만파’를 일으킬 수 있다. 거기에 말법만년(末法萬年)의 광선유포(廣宣流布)가 발전하는 길이 열려 간다.
그녀는 모두와 함께 결정했다. “인간은 혼자서 슬퍼해서는 안 된다.”라고.
혼자서는 슬픔이 더욱 깊어진다. 구제(救濟: 도움, 비참한 기분에서 어느 정도 해방시켜 주는 것, 마음에 밝음과 편안함을 주는 것)가 없어진다.
‘사람(人)의 사이(間)’라고 쓰고, 인간(人間)이라고 읽는다. 인간과 인간의 절차탁마(切磋琢磨) 속에서만이 비로소 인간이 만들어져(완성되어) 간다. ‘자신’이 풍부(豊富)해져 간다. 동지(同志)와 함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거듭하면서, 활기(活氣)찬 ‘인간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만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주의(人間主義)란 조금도 고상(高尙)한 이론(理論)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인간을 믿는 것, 인간과 인간을 맺으려고 하는 것. 여기에 인간주의가 있다. 즉 ‘우정(友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정은 강하다. 학회(學會)도 근저(根底)는 우정이다. 동지애(同志愛)다. 이체동심(異體同心)의 신심(信心)의 단결(團結)이다. 그것이 있고 조직(組織)의 기구(機構)가 있다. 조직은 우정을, 동지애를 그리고 신심을 깊게 하기(심화시키기) 위한 수단(手段)이다.
어쨌든, 우정을 지역에, 사회에 넓혀가는 학회활동(學會活動)은, 매일매일, ‘인생의 보물’을 쌓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자(信仰者)다. ‘저 사람은 훌륭하다(굉장하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인생을 살아주길 바란다. 인생의 ‘인간혁명(人間革命)의 극(劇, 드라마)’을 자신답게, 엮어주길 바란다.
매일, 자신답게, 자신의 인간혁명의 극을 엮어 가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다. 그 성장하는 모습 그 자체가 위대한 절복(折伏)인 것이다.
반드시 부처가 된다
여기서 어서(御書)를 배독(拜讀)하고 싶다. 지금까지 거듭(반복해) 배독해 온 「개목초(開目抄)」의 일절(一節)이다.
“나와 나의 제자(弟子)는 여러 난(難)이 닥쳐와도 의심(疑心)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佛界)에 이르는 것이다. 제천(諸天)의 가호(加護)가 없다고 해서 법화경(法華經)의 대이익(大利益)을 의심하면 안 된다.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면 안 된다.
나의 제자들에게 밤낮으로 이 점을 가르쳤지만 대난(大難)이 일어나자, 의심을 일으켜 모두 신심(信心)을 버리고만 듯하다. 어리석은 자의 습성은 약속(約束)한 일(것)을, 정말(꼭) 그 약속을 지켜야 할 진정한 때에는 잊어버리는 것이다.”(어서전집234·신판117, 통해)
“자연히 불계에 이른다.” - 이 일생을 끝까지 싸워내면 반드시 부처가 된다고 하신 말씀이다.
“법화경의 대이익을 의심하면 안 된다.” - 길게 보면 대이익은 반드시 있다. 한때는 나빠 보여도 절대로 ‘변독위약(變毒爲藥: 독을 변하게 하여 약으로 만든다)’할 수 있다.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면 안 된다.” - 안온하면 생명을 단련할 수 없다.
불도수행(佛道修行)에 어려움(고생)은 많지만 안온하기만 한 인생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인간혁명(人間革命)’이라는 대환희(大歡喜)가 있다. 그러므로 대성인께서는 “진정한 때야말로 신심(信心)의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엄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쪼록 내년에도 함께, 당당한 ‘승리(勝利)의 한 해’를 맞이합시다!
[기사 원문]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34AB5A1C8E76C7DD9D20EF7ED80EBAEB
[용어해설(用語解說)]
본인묘(本因妙)
❶ 천태대사 지의(天台大師智顗)의 『법화현의(法華玄義)』에 설해진 법화경(法華經) 본문(本門)의 십묘(十妙)의 제1. 본인(本因, 부처가 되는 근본의 인=수행)은 사의(思議, 생각)할 수 없는 경애(境涯)이기 때문에 묘(妙)라고 한다. 본과묘(本果妙)에 대한 반대말.
동서(同書) 권(卷)7 상(上)에는 「법화경여래수량품(法華經如來壽量品) 제16」의 “나는 본래 보살(菩薩)의 도(道)를 행하여 이룬 바의 수명(壽命)은 지금도 아직 다하지 아니하였으며”(법화경 482쪽)의 글을 해석하여 본인묘를 밝히고 있다. 동서에는 “본인묘란 본초(本初)에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하여 보살의 도(道)를 행하고 닦는 바가 인(因)이다. 16왕자인 대통불(大通佛)의 때에 있어, 홍경결연(弘經結緣)하지만 젊은이는 모두 이 정도의 소행으로 하여, 본인(本因)이 아닌 곳이 없다…… ‘나는 본보살(本菩薩)의 도(道)를 행하는 때’는 중간에 있지 않다. 이를 지나기 이전에 행하는 바의 도(道)는 이를 일컬어 본(本)으로 삼는다. 즉 이것이 본인묘이다.”라고 씌어 있다.
❷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 어자신(御自身)의 생명에 각지(覺知)된 법(法)은 「법화경수량품」에 밝혀진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이 구원(久遠)의 옛날에 보살로서 실천하여 부처가 된 근본 원인(原因)의 묘법(妙法)이다. 이로써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佛法)은 ‘본인묘(本因妙)의 불법(佛法)’이라고 불린다. 대성인께서는 이 본인묘의 법을 범부(凡夫) 자신의 생명에 호지(護持)하시고 그것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나타내시어 사람들에게도 가르치시고 넓히셨으므로 ‘본인묘의 교주(敎主)’라고도 한다. 본인묘의 불법(佛法)은 범부가 그 몸 그대로 그 일생에 있어서 실현할 수 있는 범부성불(凡夫成佛), 즉신성불(卽身成佛), 일생성불(一生成佛)의 길이며 그 방법을 대성인께서는 어자신(御自身)의 행동을 통해 가르치셨다.
이에 비해 법화경 본문의 문상(文上)에 설해 나타내신 석존(釋尊)은 구원의 옛날에 성불(成佛)한 영원한 부처로서의 과보(果報)를 몸에 나타내고 있어 본과묘(本果妙)를 나타낸다. 그런고로 본문 문상의 석존은 ‘본과묘의 교주’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은 초인적(超人的)인 과보를 득하려면 역겁수행(歷劫修行)이 필요하다. 따라서 불법에 대한 뛰어난 이해·실천능력이 필요하며, 말하자면 이미 불도수행(佛道修行)을 쌓은 숙련자를 위한 것이다. 말법(末法)의 초신(初信)의 범부가 실제로 실천해 성불(成佛)하는 도(道)는 아니다.
▷ 본과묘(本果妙)
현당이세(現當二世)
현(現)은 현재세(現在世), 당(當)은 당래세(當來世, 곧 다가올 세, 미래세=未來世)를 말한다. 과거세(過去世)에 대한 반대말.
의정불이(依正不二)
의보(依報)와 정보(正報)가 언뜻 두 개의 다른 것 같지만 실은 분간하기 어렵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 묘락대사 담연(妙樂大師湛然)은 『법화현의석첨(法華玄義釋籤)』에서 천태대사 지의(天台大師智顗)가 『법화현의(法華玄義)』에 설한 십묘(十妙)를 해석할 때, 십불이문(十不二門)을 세웠는데, 의정불이(依正不二)는 그 제6에 해당한다.
정보(正報)란 삶을 영위하는 주체(主體)인 중생(衆生)을 말하며, 의보(依報)란 중생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의지하는 곳이 되는 환경·국토를 말한다.
의보·정보의 ‘보(報)’란 ‘응보(과보, 보답)’의 의미. 여러 가지 선악(善惡)의 행위〈업(業)〉라고 하는 인(因)에 의해서 고락(苦樂)을 낳는 영향력이 생명에 과(果)로서 새겨져 그것이 머지않아 계기를 얻어 현실에 응보가 되어 나타난다.
과거 행위의 과보(果報)를 현재 받고 있는 주체이므로 중생을 정보(正報)라고 한다.
각각의 주체가 삶을 영위하는 환경·국토는 각각의 중생이 그 응보를 받기 위한 근거이기 때문에 환경·국토를 의보(依報)라고 한다.
환경·국토에 의해 중생의 생명이 형성되고 또한 중생의 작용(움직임)에 의해서 환경·국토의 양상도 변화하므로 이 양자의 관계는 불가분하다.
그러므로 니치렌불법(日蓮佛法)에서는 불법(佛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지혜와 자비의 행동으로 의정의 변화의 연속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하여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일념삼천(一念三千)
천태대사 지의(天台大師智顗)가 『마하지관(摩訶止觀)』권5에서 만인성불(萬人成佛)을 설하는 법화경(法華經)의 가르침을 토대로 성불(成佛)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으로서 범부(凡夫)의 일념(一念=순간의 생명)에 부처의 경애를 비롯한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는 관심(觀心)의 수행(修行)을 밝힌 것이다. 이를 묘락대사 담연(妙樂大師湛然)은 천태대사(天台大師)의 궁극적인 가르침〈종궁구경(終窮究竟)의 극설(極設)〉이라고 칭했다.
‘삼천(三千)’이란, 백계〈百界=십계호구(十界互具)〉·십여시(十如是)·삼세간(三世間)의 모든 것이 일념(一念)에 갖추어져 있는 것을, 이것들을 곱한 수로 나타낸 것이다. 이 중 십계(十界)란 10종의 경애(境涯)로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수라(修羅)·인(人)·천(天)·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불(佛)을 말한다. 십여시(十如是)란 사물의 상태·본질을 나타내는 10가지 관점에서의 상(相)·성(性)·체(體)·역(力)·작(作)·인(因)·연(緣)·과(果)·보(報)·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을 말한다. 삼세간(三世間)이란 십계(十界)의 차이가 나타나는 세 가지 차원에서의 오음(五陰=중생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 중생(衆生=각각의 생명체), 국토(國土=중생이 태어나 살아가는 환경)를 말한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이 성불(成佛)의 근본법의 이명(異名)이라고 하시며 ‘불종(佛種)’의 위치를 부여하셨다. 「개목초(開目抄)」에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은 십계호구(十界互具)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어서 189쪽) 하고 말씀하셨듯이, 일념삼천의 핵심은 법화경에서 모든 중생(衆生)에게 불지견(佛知見=부처의 지혜)이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밝힌 십계호구이며, 「관심본존초(觀心本尊抄)」의 전반에 나타나 있듯이 특히 우리 인계(人界)인 범부(凡夫)의 일념(一念)에 불계(佛界)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 범부성불(凡夫成佛)의 길을 밝히신 것에 있다. 또한 두 편의 어서(御書)에서는 법화경을 비롯한 제불(諸佛)·제경(諸經)의 일체(一切)의 공덕(功德)이 제목(題目)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다섯 글자에 담겨 있다는 점, 또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連華經)가 말법(末法)의 범부의 성불을 실현하는 불종 그 자체임을 밝히셨다. 대성인께서는 어자신(御自身) 범부의 몸에 성불의 법(法)인 이 남묘호렌게쿄를 몸소 체현(體現)하시어 모습과 행동으로 나타내셨다. 그 생명을 곧 만다라(曼陀羅)로 나타내신 어본존(御本尊)은 일념삼천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신 것이므로 ‘사(事)의 일념삼천’이라고 배견할 수 있다.
「개목초(開目抄)」(어서 215쪽 이하) 등에서 대성인께서는 법화경에 설해진 일념삼천의 법리(法理)를 제종(諸宗)의 승려가 훔쳐 자종(自宗)의 것으로 했다고 규탄하셨다. 즉, 중국에서는 천태대사(天台大師)의 사망 후, 화엄종(華嚴宗)이나 밀교(密敎)가 황제들에게 중히 여겨져 융성(隆盛)했지만, 화엄종의 징관(澄觀)은 화엄경(華嚴經)의 ‘심여공화사〈心如工画師, 마음은 교묘한 화사(畵師)와 같이〉’의 문(文)에 일념삼천이 나타나 있다고 하였으며, 진언(眞言)의 선무외(善無畏)는 대일경(大日經)을 한역(漢譯)할 때에 천태종(天台宗)의 학승(學僧)·일행(一行)을 사용하여 일행은 대일경에 일념삼천의 법리가 설해져 있다는 주석(註釋)을 만들었다. 그리고 천태종의 승려들은 그 잘못을 비난하지 않고 용인하고 있다고 대성인께서는 비판하셨다.
▷ 삼세간(三世間) / 십계(十界) / 십계호구(十界互具) / 십여시(十如是) / 불종(佛種) /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連華經) / 「마하지관(摩訶止觀)」 / 사(事)의 일념삼천(一念三千)
이체동심(異體同心)
겉모습은 달라도 내면은 같은 마음이라는 것. 이체(異體)란 넓게 말하면 연령·성별·직업·사회적 지위 등이 다른 것도 포함된다. 동심(同心)이란 같은 목적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중국 고대의 고사에서 기인한 말.
『사기(史記)』 등에 따르면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악정(惡政)에 시달리던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군대는 오합지졸의 군대로 겉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마음을 하나로 이체동심(異體同心)이었기 때문에 매우 적은 인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구(武具, 무기)를 갖춘 대국의 군이었지만 마음이 제각각으로 동체이심(同體異心)인 은나라의 군대를 물리쳐 이겼다고 한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이체동심사(異體同心事)」(어서 1463쪽) 등에서 니치렌(日蓮) 문하(門下)는 기성세력(旣成勢力)과 비교하면 소수(小數)이긴 하지만 ‘하나의 마음’ 즉 대성인과 같은 마음이며,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으로 단결해 있으므로 대사(大事)를 성취할 수 있고, 묘법(妙法)을 광선유포(廣宣流布)해 나갈 수 있다고 문하(門下)를 격려하셨다.
불계(佛界)
부처(佛)의 세계. 부처가 체현(體現)한, 자비(慈悲)와 지혜(智慧)가 넘치는 존극(尊極)한 경애(境涯). 부처란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주와 생명을 관통하는 근원(根源)인 묘법(妙法)에 눈을 뜬 사람이다.
구체적으로는 인도에서 태어난 석존<釋尊=석가불(釋迦佛)>을 들 수 있다. 제경(諸經)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등 여러 부처를 소개하는데, 이는 부처의 경애의 우수성을 일면(一面)에서 비유적으로 보여 주는 가공(架空)의 부처다. 제경(諸經)에서 설하는 부처의 세계도 상응(相應)하여 차이가 있다. 즉, 제경의 부처와 그 세계는 각각의 경(經)에서 지향해야 할 이상(理想)이라고 할 수 있다. 법화경(法華經) 본문(本門)에서는 석존의 본지(本地)가 구원(久遠)의 부처라는 구원실성(久遠實成)이 밝혀졌고, 그 영원한 국토가 사바세계(娑婆世界)와 일체(一體)라는 사바즉적광(娑婆卽寂光)이 밝혀졌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관심본존초(觀心本尊抄)」에서 이 부처와 부처의 세계가 범부(凡夫)의 기심(己心)에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수지(受持)함으로써 그것을 열어 나타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불계(佛界)와 신심(信心)과의 깊은 관계에 대해 이 초(抄)에서는 “말대(末代)의 범부(凡夫)가 출생(出生)하여 법화경(法華經)을 믿음은 인계(人界)에 불계(佛界)를 구족(具足)하기 때문이니라.”(어서 241쪽) 하고 말씀하시고 있다.
법화경은 만인(萬人)이 성불(成佛)할 수 있음을 설하는 가르침이지만, 법화경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생명 속에 본래 불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초에서는 인계(人界)에 불계가 갖추어져 있는 현실의 증거로써 석존이 범부에서 부처가 된 사실, 불경보살(不輕菩薩)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불계를 보고 예배한 일, 요(堯)나 순(舜)이라는 고대 전설적인 제왕이 만인에게 편파(偏頗) 없이 자애를 쏟았던 점을 드시고 있다.(어서 242쪽)
▷ 석존(釋尊) / 자비(慈悲) / 십계(十界) / 사바즉적광(娑婆卽寂光)
변독위약(變毒爲藥)
“독을 바꾸어 약으로 한다”고 읽는다. 묘법(妙法)의 힘에 의해 고뇌(苦惱)에 지배된 생명을 부처의 생명으로 전환하는 것.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묘법을 신수(信受)함으로써 번뇌(煩惱)·업(業)·고(苦)의 삼도(三道)에서 유전(流轉)하는 범부(凡夫)의 생명(=독,毒)을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의 삼덕(三德)이 갖춰진 부처의 생명(=약,藥)으로 바꿀 수 있다(어서 984쪽)고 가르치셨다.
변독위약은 『대지도론(大智度論) 권(卷)100에 “대약사(大藥師)가 능히 독을 약으로 하는 것과 같다”고 되어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를 근거로 천태대사 지의(天台大師智顗)는 『법화현의(法華玄義)』 권6 하(下)에서 “이승(二乗)이 제경(諸經)에서는 영원히 성불(成佛)할 수 없다고 한 것이 독(毒)이며, 법화경(法華經)의 공력(功力)으로 성불의 기별(記別)을 받은 것이 변독위약(變毒爲藥)”이라고 주석(注釋)하고 있다.
▷ 번뇌(煩惱)·업(業)·고(苦)의 삼도(三道) /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의 삼덕(三德) / 이승작불(二乘作佛)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깊이 항상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
너무 감사드립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