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정묘년 치명일기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화 요한 신부
1. 서지사항: 1939년에 작성된 것으로 얇은 한지에 1장을 반으로 접은 2장의 한지로 4면의 공책을 만들었다. 굵은 명주실로 묶여있으며 펜으로 쓴 듯한데 총4면 중 앞의 3면에만 내용이 담겨 있다.
2. 작성자: 박의래(베드로, 1939년 현재 81세) 회장이 증언한 것을 누군가 대필한 듯하다. 박의래는 순교한 박 안드레아 회장의 아들인데, 유 마태오와 자신의 어머니 박 루시아에게 들은 내용을 증언하였다.
3. 확인사항: 당시 합덕 본당 주임인 페랭(Perrin) 신부가 확인하고 서명하였다.
4. 참조사항: ≪치명일기≫ 604, 605항에 같은 인물들의 간단한 순교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5. 발견 및 전달과정: 대략 3년 전 대전신학교 서봉세 신부가 옛날 교회 서적들을 정리하던 중 책장 사이에 끼워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서 신부는 교회사연구소를 맡고 있는 김기만 신부에게 전달했고, 김 신부는 솔뫼에 대전교구사연구소가 생기면서 윤인규 신부에게 인계하였다. 윤 신부는 2007년 12월 22일 김정환 신부에게 넘겼다.
▲봉투 앞면: 변인졍묘년 치명일긔(연필로 쓴 글씨인데 ‘변인’이라 잘못 썼다. 뒷면에 적힌 필체와 다르다) | ▲봉투 뒷면: 朴안드레아(회장) 치명사긔(뒷면의 이 필체는 안의 내용을 쓴 필체와 같다) |
내용(원문)
[제1면]
[제2면]
[제3면]
▶내용(현대문)
정묘년(丁卯年. 주: 1867년) 봄에 박해가 사방에 직면하여 교우들이 도처에서 잡힐 때, 충남 예산 간양골에 살던 당시 50세인 박안드레아 회장은 홍주 원머리(충남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 양도민고 회장이 배교하고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집을 떠나 홍주 원머리 양 회장을 찾아가 여러 가지로 타이른 후, 양 회장과 유 서방(세례명 미상)과 김동(세례명 미상)을 대동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홍주 포졸들을 만나 예산 공서티 나루까지 같이 건넜으나 그들이 알아보지 못하였으므로 무사히 집에 도착하여 양 회장 일행과 함께 영혼을 구하는 일에 대한 강론과 더불어 이 위험한 시기를 맞이하여 순교할 용기를 기르고 예비하던 중 뜻밖에 그 전날 길에서 동행했던 홍주 포졸들이 어디선가 알아보고 와서 박 회장과 위의 3인을 만나 포박하였는데 그 때 포박한 모습은 동아줄을 만들어 4인을 모조리 엮고 머리에는 각각 쇠갈을 씌워가지고 갔는데 그날이 정묘년 2월 13일이었다.
박안드레아는 자기 아내 박루시아에게 그 장래를 굳게 부탁하고 용맹히 작별한 후 홍주 영장에게 모든 문초와 국문을 당할 때마다 항상 교회 교리를 강론하였으며, 옥중에서는 다른 교우들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님을 위하여 순교할 것을 열심히 권면하시다가 가진 악형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결국 같은 해 10월에 유 서방, 김동, 양도민고와 함께 얼굴에 백지(白紙)를 붙이고 물을 품어 죽이는 사형벌로 순교하셨다. 그분이 순교하신 후 그 아내 박루시아는 신자가 아닌 자기 사촌과 함께 시체를 찾으러 홍주읍을 가보니 3-4인, 혹은 5-6인씩 모아모아 한 구덩이에 시체를 버렸는데 천신만고를 다하여 구덩이의 시체를 하나씩 둘씩 제쳐 놓아가며 찾는 중에 뜻밖에 한 줄기 피가 자기 몸을 스침을 깨달아 자세히 보니 자기 장부의 시체임을 발견하여 종이를 떼니 과연 자기 장부 시체였다 한다. 그리하여 간신히 운구하여 안장하니 구덕산(‘구덕산’인지 ‘舊덕산’인지 분명하지 않다) 가재울 뒷산이라. 그러나 그 산소는 그 후 잃어버렸다.
이상의 사실을 증명하여 인증한 자는 간양골 유마태오(사망)와 순교한 박안드레아의 미망인 박루시아(사망), 즉 본인 박베드로의 모친에게서 직접 들은 것을 증명합니다.
주소: 서산군 운산면 수평리 원골 공소
베드로 회장 박의래(박의래는 박씨 문중에서 고향의 이름을 따서 ‘원골 할아버지’로 불렸다 - 2008년 4월 16일 박영화의 증언)
Je soussigné certifie que ce témoignage est bien celui de Pierre Pak Eui-rai, â̂gé de 81 ans. Mai sanri 15 mars 1939
P. Perrin M. ap. (서명)
(아래의 서명으로 이 증언이 1939년 3월 15일 매산리(충남 당진군 신평면 매산리. 위에 언급한 홍주 원머리(한정리)와 맞닿아 있는 동네이다) 박의래 베드로(81세)의 것임을 증명합니다. 교황 파견 선교사 필립 페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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