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귤껍데기와 바나나 껍질을 방 안 쓰레기통 속에 던져 넣고 한 이틀 지나자
푸른 곰팡이가 피었는데 초파리들이 날아들었다. 초파리는 보통 더울때 많이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한겨울에 무슨 초파리인가? 알고보니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방 안에서만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식탁 위 음식에도 떼를 지어 달겨들었다.
눈에 보일락말락한 작은 개체인데도 민첩해서 손벽을 쳐서 잡으려 해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파리처럼 잘 앉기라도 한다면 파리채로 때려 잡으면 되는데 음식물 외엔 잘 앉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음식 위로 파리채를 두들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놈은 초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냄새에 민감해서 음식물도 상한 것을 선호하므로 음식물 쓰레기통
이나 개수대 드레인박스 같은데서 알을 까서 번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초파리나 바퀴벌레, 파리, 미기 등의 해충을 없애기 위해 정기적으로
소독업체에 의뢰해서 각 가정마다 돌아다니면서 방역을 실시하지만 박멸은 불가능하다.
왜 그럴까? 수명이 짧은 대신 번식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초파리는 수명이 보통 10~14일인데
암컷 초파리는 일생동안 수백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이러한 초파리의 짧은 수명과 높은 번식률은
유전연구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초파리가 인간과 많은 유전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알려진바에 의하면 인간 질병 유전자의 75%는 초파리와 대응된다고 한다. 이러한 유전적 유사성을
통해 과학자들은 초파리를 모델로 하여 다양한 인간 질병의 유전적 기초를 조사 연구할 수 있어 잠재적인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초파리가 유전분야에서 연구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초파리의 짧은 수명과 왕성한 번식력 덕분이다. 빠른 세대교체를 통해 연구자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여러 세대를 관찰할 수 있고 높은 번식률은 유전자 실험을 위한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작은 실험공간에서도 많은 수의 초파리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어 비용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이러한 유전패턴에 대한 연구는 19세기 중반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의 완두콩연구가 시초다.
아무리 유전연구에 없어서는 안되는 초파리라 해도 컴퓨터 작업하는 데 모니터 앞을 날아다니고 식사하는 데
음식물을 같이 먹겠다고 설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당장 관리실에 연락해서 방역을 실시할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해충 퇴치 스프레이를 사 와서 뿌리든지 해야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막내 아들 놈이
'초파리 트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종이컵 안에 마시고 난 홍차팩을 넣고 그 위에 식초를 조금 부은 다음 랩으로
봉한 후 랩 위에 이쑤시개로 구멍을 두어개 뚫어 놓았다. 한참 후에 보니 초파리 몇마리가 들어가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컵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려면 가운데 있는 구멍으로는 날아서 접근해야 하는데 날개짓을 하는 동안에는
작은 구멍으로 통과할 수가 없어 에너지가 소진되거나 시간이 가면 수명이 다해 바닥으로 떨어질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