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집에 커피가 떨어져 할 수 없이 아파트 상가에 내려가 텐센트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에 2천원씩 주고 사다 마셨다. 제법 길쭉한 종이컵에 뚜껑을 눌러서 담아 주었다.
한번은 빨대를 꽂아 훅 빨아들이다가 뜨거워서 입 천장을 덴 적도 있었다. 그 후론 뚜껑을 열고
한모금씩 병아리 물 마시듯 조금씩 마신다.
엊그제 집사람이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러 믹스커피인 프렌치 카폐 한 박스를 사 왔다. 봉지 속에 함께
든 커피 메이트가 곡물가루가 아닌 우유로 만든 것이라며 비싸게 주고 샀다 한다. 어쨌거나 추운 날씨에
상가 프랜차이즈점까지 내려가지 않고 집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반가웠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당장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박스를 뜯어 봉지 하나를 꺼내 끝을 눌러 잡고 커피 잔에 털어내었다. 당뇨
때문에 설탕을 빼기 때문이었다.
티스푼으로 살짝 저은 후 잔을 들어 코로 먼저 향을 음미해 본다. 은은한 커피향은 언제 맡아도 좋다.
입술에 닿는 자기잔의 촉감도 매끄럽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고 혀를 굴러 본다. 그런대로 맛이 괜찮다.
술도 잔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듯이 커피나 찻잔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배 탈 때 영국 런던공항에서
본 차이나 커피잔을 한세트 사 왔는데 몇번 이사를 하면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지금 마시고 있는 잔은
밀양도자기에서 만든 본차이나 복제품이다.
커피를 반쯤 마시곤 양손으로 커피잔을 감싸 안았다. 잔이 약간 식어 뜨겁지도 않은게 따땃한 온기가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마치 어릴 때 배가 아프면 어머니가 "내손이 약손이다" 하시면서 내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그때의 어머니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순간 숱한 보릿고개를 넘어시며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시고
6형제를 길러내신 어머니의 일생이 활동사진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간다.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