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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국제 집단학살 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Genocide Scholars의 회장이자, 호주 적십자 국제인도법 위원회에서도 활동하는 Melanie O'Brien이 Opinio Juris에 올린,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의 해결법으로서 국제법원의 활용에 대한 기고문을 번역 및 정리한 것입니다. 전번에 올렸던 글과 같이, 이미 양국은 ICJ에서 법정공방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협정과 전쟁의 뒤처리를 위하여, 전범재판을 비롯한 범죄혐의를 가릴 소송이 필요합니다. 이번 기고문에서는 법원별로 어떤 일을 하는지, 세 가지 죄목-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그리고 집단학살-중 어느 것을 다룰 수 있을지, 그리고 실현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짚어볼 것입니다. 그렇기에 원래 기고문의 제목과는 살짝 다르게, 어떠한 범죄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에 대한 내용은 일절 없을 겁니다.
첫 번째로 보게 될 법원은 ICC, 혹은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입니다.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및 집단학살 모두에 관한 관할권이 있으며, 현 시점에도 소추관Prosecutor을 동원하여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전쟁범죄의 증거를 찾고 있는 집단입니다. 이미 크름 위기-돈바스 전쟁을 거치며 ICC가 주시하던 지역이었는데, 전쟁이 터지고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이전 행위를 기반으로 한 예비조사를 거친 이후, 2022년 3월 2일부터 목적을 바꿔 소추관을 동원하며 이 전쟁에 관한 조사가 진행 중에 있죠. 또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법원의 한계 때문에 가장 가능성 있는 심판의 장이기도 합니다. 물론 양국 모두 ICC 설립의 기반이 된 로마규정의 당사자는 아닙니다만, 우크라이나는 자국에서 발생하는 로마 규정의 범죄 혐의에 대한 ICC의 관할권을 수락하는 선언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현지에서 수사관들이 활동 중이며, 소추관 역시도 우크라이나를 수차례 방문한 바 있죠.
ICC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과 관련하여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법원입니다. 반인도적 범죄를 관할하는 국제 조약도 없고, 관습 국제법도 아직은 불완전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법체계에도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규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ICC는 유일한 반인도적 범죄를 관할할 수 있는 법원입니다. 그러나 ICC는 모든 전쟁범죄 혹은 국제인도법 위반에 대한 관할권을 갖지 않으며, 그중 몇몇은 이 전쟁에서 특별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로마규정에는 원자력발전소나 댐 등의 위험한 대상에 대한 공격 착수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다른 옵션들을 검토해야 할 이유가 존재합니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국제인도법에 따른 해결법이 있을 겁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국제적 무력충돌international armed conflict이고, 양국 모두 4개의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 및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를 위한 제1추가의정서의 당사국입니다. 양국은 2003 전쟁 잔존 폭발물에 대한 의정서Protocol on Explosive Remnants of War의 당사국이기도 하죠. 거기에 더해서, 우크라이나는 대인지뢰와 관련한 오타와 조약1997 Ottawa Treaty과 1996 지뢰, 부비트랩 및 기타 장치의 사용 금지 또는 제한에 관한 의정서의 당사국이기도 합니다. 또한 무력충돌 속에서도 학생, 교사, 학교를 보호하기 위한 2019 안전한 학교 선언의 일원이기도 하죠. 하지만 양국 모두 2008 집속탄에 관한 협약과 2017 핵무기 금지 협약에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제네바 협약 및 제1추가의정서의 당사국은 '국제적 무력충돌 중 중대한 위반을 저지르거나 저지르도록 명령한 사람에 대해 효과적인 형사 제재를 부과'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가는 자국민이나 자국군에 의해, 혹은 자국 영토에서 자행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적절한 경우 용의자를 기소하여 소추하거나 송환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국가는 관할권이 있는 다른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적절한 경우 용의자를 기소해야 합니다.
세 번째 수단으로는 집단학살 협약Genocide Convention이 있습니다. 이미 3월에 우크라이나가 ICJ에 기소해서 현재 재판중인 부분이기도 하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거짓 주장에 근거하여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인들을 의도적으로 살상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3월 16일에 ICJ는 2월 24일 개시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즉시 중단하고, 더 이상의 교전을 촉진하는 행위를 취하지 말라는 잠정조치를 내렸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러시아는 이 잠정조치를 준수하지 않았고요.
이러한 관점 말고 다른 방향에서 집단학살 협약은 사용될 수 있는데, 바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집단학살 혐의 해결이 그것입니다. 만약 이 경우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협약을 이용하여 국가책임과 관련하여 ICJ에 두 번째 사건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혹은 집단학살 협약 제6조에 따라, 당사국은 집단학살 혐의로 기소된 사람을 기소할 의무가 있으며, ICC가 그러한 범죄자를 기소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제7조에 따라, 집단학살은 범죄인 인도를 해야만 하는 범죄이며, 해당국은 그에 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승인해야 합니다. 집단학살 범죄에 대한 사면은 협약에 따른 국가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죠.
협약 외에도, 집단학살은 국제관습법에 따라 금지된 범죄입니다. ICJ를 통해 국가책임을 지울 수 있고, 제3국이 자국 영토에서 체포된 모든 범죄자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각국의 법적절차도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각국의 입법능력에 따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집단학살에 대해서도 국내 기소가 가능하며, 이 때 관련 범죄를 다루는 실체법이 있어야 하며, 관할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양국의 절차를 모두 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 우크라이나부터 보도록 하죠. 우크라이나 법원은 주 전장으로서 영토관할권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가해자의 국적과 관련없이 분쟁 중에 일어난 범죄행위를 기소할 수 있는 법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내법은 넓은 범위의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국제 조약에서 금지하는 전쟁 수행 방식의 사용 혹은 우크라이나 의회가 구속력 있는 것으로 인정한 조약에서 인정하는 모든 전쟁 규칙 위반을 금지하는 포괄 조항 정도는 포함하고 있습니다(우크라이나 형법 제438조).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제네바 협약 제1추가의정서를 비롯한 그들이 당사자인 조약을 위반한 개인을 기소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2021년 국제적 범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형법조항 도입을 통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및 집단학살을 다루고 지휘 책임을 규정하는 법안이 제출되었으나, 대통령이 서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발효되지는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형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개발, 생산. 구매, 저장, 배포, 운송 금지 조항(439, 440조), 환경오염(441조), 집단학살(442조),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개인 및 기관에 대한 형사범죄(444조), 적십자 및 적신월의 상징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445조), 용병과 관련한 범죄(447조). 그러나 반인도적 범죄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 자행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쟁범죄에 대하여 여러 공판을 벌이고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공정한 재판이 아닌, 군인들의 유죄 인정에 전적으로 근거한 판결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1심에서 고강도의 처벌을 받은 군인이,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유죄와 반성 인정이 1심에서 고려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폭 줄어들은 형량을 받은 케이스가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제네바 협약 IV의 주석은 피고인이 적대행위 중에는 변호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전쟁범죄에 대한 재판이 적대행위 중에는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합니다. 또한 제네바 협약 III에서는 국제인도법의 그 전문성을 요하는 특성 때문에, 국내법이 민사 법원에서 국제인도법에 관한 재판을 허용하지 않는 한 군사법원에서 재판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민간시설 폭격, 민간인 살해, 강간 및 약탈 등 범죄와 관련하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제네바 협약의 명제들을 준수해야만 하며, 이를 위반하여 공정하지 않게 수행된 재판은 국제 인도주의 및 인도법에 대한 존중 부족으로 간주,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필자는 지적합니다.
러시아는 어떨까요? 러시아는 자국 외에서 러시아인의 행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전쟁 중 일어난 모든 범죄를 기소할 수 있는 법원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 형법에서는 집단학살(제357조), 환경오염(제358조), 용병(359조)은 금지되어 있으나, 반인도적 범죄 금지 조항은 역시 없습니다. 전쟁범죄 조항도 대량살상 무기(제335조)와 금지된 전쟁수단 및 방법 사용(제356조) 정도만 다루며, 여기에 국제적 보호를 받는 개인이나 기관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조항(제360조) 정도만 다룹니다. 이런 상황이므로 자국민을 국제 범죄에 대해 기소할 수 있는 범위가 좁은 것은 사실이므로, 필자는 국제범죄를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인 조항을 포함하도록 형법을 개정할 것을 조언합니다.
러시아 역시도 우크라이나 전쟁포로에 대한 재판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재판이 비판받는 것에 더하여, 전쟁포로는 단순히 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기소될 수 없으며, 전쟁범죄와 같은 범죄를 저질러서만 기소될 수 있음을 상기할 때, UN과 인권단체들이 이러한 재판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공정하게 수행되지 않은 재판은 국제 인도주의 및 인권법에 대한 존중 부족을 보여주기 때문에 평화 협상에서 러시아의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지적합니다.
다른 가능성으로는 제3국의 보편적 관할권이 있습니다. 몇몇 국가들은 피고인의 구금 여부와 관련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 보편관할권absolute universal jurisdiction, 혹은 해당국에 피고인이 구금되어 있는 경우 행사할 수 있는 조건적 보편관할권conditional universal jurisdiction의 형태로 전범들을 단죄할 수 있습니다. 이 중 조건적 보편관할권이 일반적인 형태이며, 절대적 보편관할권의 경우 스페인과 벨기에가 다른 강대국으로부터 폐지 압력을 받았던 것을 상기시켜 볼 때,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양국 모두 꺼려할 것이 예상됩니다. 조건적 보편관할권의 경우 제네바 협약과 고문방지 협약에서도 요구하는 형식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3국이 보편적 관할권을 행사한다고 하면 가장 가능성 있는 옵션은 독일 법원입니다. 지리상으로도 근접하고, 독일의 연방형사경찰(BKA)과 연방검찰총장(Generalbundesanwalt)에는 국제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전문 부서가 있지요. 그리고 독일 영토에 피고인 및 확인된 용의자가 없어도 수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독일은 조건적 보편관할권을 행사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독일에서 피의자 검거 이후 법정에 출석해야만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겠죠.
제네바 협약과 고문방지 협약에 명시되어있는 의무로는 국제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제3국의 영토에 있는 경우 소추 혹은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제3국이 범죄 혐의자를 기소하는 경우 사건의 증거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수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쟁 당사국들의 협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상호 법적 지원 협정을 채결하지 않은 양국 간에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형사 절차에 협조할 의무도 없죠. 그러나 독일이나 프랑스 등의 나라의 국내 관할권에서 국제범죄에 대한 기소가 성공하는 것은 피의자 국적국의 협조 없이도 기소와 유죄판결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필자는, 평화협정에서 하나의 옵션으로서 제3국에서의 재판, 그리고 이를 위한 제3국과의 적절한 범죄인 인도조약과 범죄인 인도 요청에 승낙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될 수는 있다고 예상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인권법에 따른 해결법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국제범죄를 다루지는 않지만, 국제범죄는 곧 인권침해이고, 그 행위에 대한 국가책임은 인권법을 통해 다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권법은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개인에 대한 책임과 구제를 국가가 보장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습니다.
전쟁당사자 양 국이 모두 당사국으로 있는 고문방지협약Convention Against Torture을 예로 들어볼까요? 고문방지협약 제5조 1항은 국가가 고문 범죄에 대해 영토 및 국적 관할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범죄에 대해 행해지는 사면Amnesty은 고문방지협약에 따른 국가의무에 반하는 것이죠.
사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썰을 풀어보자면, 명시적으로 사면이 허용되는 비국제적 무력충돌과는 다르게 국제인도법에서는 국제적 무력충돌에서의 사면을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 포로가 전투에 참전했다고 기소될 수 없는 전투원 면제 조항은 있지요. 그러나 시에라리온 내전을 다루던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SCSL와 크메르 루주를 다룬 캄보디아 특별재판부ECCC에서 전쟁범죄에 사면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제안을 지지했고, 2004년 UN 사무총장도 평화협정이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사면의 승인을 거부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는 점을 떠올려볼 때 잔혹한 전쟁범죄를 한 당사자에 대해서는 사면이 적용되면 안 된다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또한 유럽인권협약ECHR의 당사국이며,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소송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법원은 러시아에게 민간인 및 민간 물자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자제하도록 명령하는 잠정조치를 발표했죠. 다만 추가조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데, 이미 3월에 러시아가 유럽 평의회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와 관련한 재판은 러시아가 재판소에 구속되어있는 9월 16일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식으로 국제법원에서 멀어지는 것, 그리고 국제법원의 잠정조치를 준수하기 거부하는 것은 곧 국제법원에서 러시아 자신의 선의를 증명할 기회 자체가 박탈당했다는 이야기기 때문에, 평화협상에서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정리해봅시다. 우리는 ICC, 국제인도법, 집단학살 협약, 국내법원, 제3국의 법원 그리고 인도법 여섯 가지의 가능성을 검토해보았고, 거기에 전례를 생각해볼 때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와 같은 임시ad hoc국제재판소나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와 같은 국내법원-국제법원의 임시 혼성법원ad hoc hybrid tribuna의 가능성이 있겠죠. 이 중에서 러시아의 태도를 보았을 때, 또 다른 국제법원으로 사건을 끌고가는 것은 러시아가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필자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혼성법원 혹은 다중 관할권 옵션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았습니다,
유익한 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쉽게 쓰고 싶은데 내공과 분야가 그걸 허락하지 않네요. 질문 있으면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