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25이후 두 번의 데프콘3
훈련용어로 Round House인 데프콘 3이 이 때 발령되었어. 휴전 이후 지금까지 데프콘3이 발령된 건 딱 두 번이야.
북핵위기, 김일성 사망때도 데프콘 3까지는 가지 않았지.
참고로 데프콘3는 준전시상태. 적의 개입이 우려되는 상황에 발령되고 데프콘 3이 발령되면 한미연합사에 작전권이 이양되고,
전군의 출타가 금지돼. 또 영내의 모든 물자를 적재/방치/파기품으로 분류하며 당장이라도 막사 뺄 준비를 하고서 대기하게 되어 있어.
그 두 번 중 한 번이 이 미루나무 도끼만행사건때고 나머지 한 번은 전땅크성님이 노짱보다 먼저 갈 뻔한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때야.
2. 판문점 내 경비병 배치: 공동경비구역에서 분할 경비구역으로
도끼만행 사건 이전에는 위 짤들처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남북한 경비병(한국은 헌병,북한은 경무)들이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었어.
말 그대로 '공동경비 구역' 이었지. 남북 경비병들은 담배도 같이 피고 귤도 나눠먹고 심지어 형동생 하면서 지냈다 카더라...
도끼만행 사건을 계기로 게이들도 잘 아는 아래와 같은 배치로 변경되어 경비병들이 서로 휴전선을 넘지 못하는
사실상 분할 경비구역이 되었지. 짤은 가카 서울시장때 모습.
3-1. 악성 어그로꾼 박 철 중위: 데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년 전에도 JSA에는 사건이 있었어. 위에서 말했다시피 당시에는 공동경비구역 내에 남북한 경비병들이
같이 근무했고 물론 미군들도 공동 경비구역 안을 돌아나닐 수 있었지.
1975년 6월에 미군 경비병이던 핸더슨 소령이 JSA내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북한기자가 비키라고 시비를 걸었고 이 시비가 번져서
결국 핸더슨 소령은 북한경비병들에게 다구리를 맞고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게 돼.
이 때 북한경비병이던 박 철 중위가 핸더슨 소령을 쇠징이 박힌 구두로 밟았었고 이후부터
박철은 한미 경비병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히게 돼. 박 철은 병(하전사)로 근무하던 중 깡다구를 인정받아 군관이 된 넘이었던
만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는 유명한 넘이었다고 해.
사실 이 사건만 봐도 도끼만행 사건은 언젠가 터질 수 밖에 없는
불씨를 안고 갔던 사건이라고 봐야겠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핸더슨 소령 사건은 8.18의 전조가 된 나름 의미있는 사건이었어.
아래 짤이 다구리를 맞고 누워있는 핸더슨 소령
3-2. 악성 어그로꾼 박 철 중위: 리즈시절
핸더슨 소령 사건 불과 1년 후 박철은 개버릇 남못주고 결국 도끼만행사건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돼. 도끼만행사건 당일 미루나무 가지를 치던
우리 노무자를 협박한 것도 박철이었고 결국 박철은 자기 뜻대로 가지치기 작업을 막지 못하게 되자 손목시계를 풀어서 주머니에
넣더니 "죽여"라고 외침으로써 8.18만행의 신호탄을 날리게 돼.
요 새끼가 박철임. 좀 치게 생겼나?
이후 잘 아는 폴번연 작전에 의해 미루나무는 잘려지고...
현 고 미루나무.
3-3. 악성 어그로꾼 박 철 중위: 말로
광역어그로를 끌고 리즈시절을 보낸 박 철에게도 결국 종말이 오게 돼. 도끼만행 사건으로부터 8년이 지난 1984년 11월 23일에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관광 중이던 북한주재 소련대사관 외교관이었던 마쓰작이라는 러시아넘이 갑자기 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달리면서 "Help me"를 외치는 사건이 발생해. 일명 마쓰작 망명사건이라고 하는데 판문점의 스타 박철 중위는 이때까지도
판문점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었지.
도망가는 마쓰작을 미군이 보호해서 피하고 북한경비병들은 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어(최종17명). 공동경비구역 내 연못을 중심으로
20여분간 쌍방이 총격전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군 3명이 사망,1명이 중상을 입고 우리쪽에서는 장명기 상병이 전사하고 미군1명이
중상을 입는 피해를 입어. 결국 북한측에서 직통전화로 그만 싸우고 우리 애들 시체 좀 거둬가겠다고 사실상 GG를 치게 되지.
(사실 직통전화로 GG치기 전 이미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경비병들은 좆된걸 알고 총기 내려놓고 손들고 있었다 카더라...)
이 때 우리측 총에 맞아죽은 3명의 북한군 중 하나가 바로 박철이야.
박철이 자기 성질을 못이기고 깊숙히 들어왔다가 죽었는지 아니면 JSA의 한미 경비병들이 '만약에 사건 터지면 저새끼부터 먼저 조져라'
라는 암묵적 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판문점의 어그로꾼 박 철은 죽을때도 그다운 죽음을 맞았다고 볼 수 있지.
아래 짤은 마쓰작 망명사건 당시 사진
앞서 쓴 것처럼 오늘은 슨삭절이자 8.18도끼만행사건 38주년이야. 이 날 슨상이 노짱 따라간 건
나름 역사의 희극 중 하나라고 할 거야.
이렇게 한미연합군이 피로 지킨 판문점을 통해 북한은 슨삭절 5주년 기념 화환을 보내겠다고 하고
G1이는 좋다고 받으러 간다고 하는 걸 보면 참 ㅅㅂ좆같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밤이야.
간만에 정보글 싸본다.
첫댓글 탄아님께서 올려주신 도끼만행사건 중에 박철과 가담했던 인민군들의 뒷얘기가 궁금해서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글쓴이의 표현중 다소 속된 표현은 걸러서 읽고 좀 더 자세히 상기하고 싶어서 댓글 대신 올려 보았습니다.
몇년전에 ㅡ판문점에를 갔는데 ㅡ제일 큰 주의사항이 === 손을 들고서 하는 일체의 motion이 북측을 비하하는 '손가락질로 비쳐지고 /이것에 유별나게 시비를 걸어대는 북측이라서 === 손 놀림에 신경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ㅡ ㅡ ㅡ또한 JSA 를 - '보니파스 AREA' 라고 하고 있습디다------
역사가 꽤 깊었던 ' 돌아오지 않는 다리 '에서 시야를 방해하는 미루나무 가지 절단 작업도중 유엔군 보니파스 대위를 포함한 美軍 장교 두 명이 도끼로 살해 되고
보니파스 대위 10주기때 JSA 내 유엔군 기지를 켐프 보니파스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요즘에도 간혹 북한군이 남측 병사들에게 "쵸코파이 나눠 먹자 " " 이쪽으로 넘어와라 "등등의 말을 걸기도 하지만
남한측 병사들은 무시한다고 합니다.
이 자료가 어디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보존되어있었나요~~~?
올려주신 탄아님의 글을 읽고 몇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여기저기 막 뒤졌습니다..^^
덕분에 자세히 알게 되었구요..ㅎ ~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사건도 많지만 이것도 어두운 사건으로 필히 후손들에게 알려야할 사료군요
이번 봄에 서울 친정 언니네와 함께 통일전망대를 다녀왔었는데요
학생들, 직장인들, 가족들, 그리고 외국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견학을 하며 현장 체험하는 모습들이 보여졌어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는 잊혀져가고... 우리의 2세들은 아예 사건 조차 모르고..
지기님의 말씀대로 알려야 할 필요성이 절대적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잊고 있었다가 탄아님의 글을 보고....^^
영화"명량"을 보고 -4백수십년 전에 발발한 朝日전쟁을 알겠지만 ㅡ불과 60년전의 6`25 전쟁은 자세히 모르고 있는 Junior들이 많을 것임에---ㅡ
라스포사는 전쟁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초등학교때 부터 반공교육을 받아오고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때
김신조 일행이 넘어와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끔찍한 만행을 알기에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된다는것을 압니다만 ...
그러나 요즘 Junior 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재밌고 신날거라고 하는 애들도 있습니다.
전쟁 영화에서는 무조건 통쾌하게 아군이 이기게 되어있으니까요..
교육에 문제점이란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