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음과 공식共食은 한국인의 식생활을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이다. 우리 선조들은 음식을 섞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가히 섞음의 미학을 즐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혼합해서 먹었다. 예를 들어 국에다 밥을 말아먹는 탕반은 한국의 국민음식이다. 국수에 고기 다진 것과 묵, 미나리, 숙주나물 따위를 넣고 양념하여 비벼먹는 골동면이나 신선로에 여러 가지 어육과 채소, 석이버섯, 호두, 은행, 황밤, 실백 따위를 넣고 장국을 부어 끓여 먹는 열구자탕 또한 섞는 음식의 좋은 예이다. 채 썬 청포묵에 녹두싹, 미나리, 물쑥 등 갖은 야채와 달걀지단, 김 등을 버무려 먹는 탕평채도 섞어먹는 음식의 다른 예이다. 우리 조상들은 대보름이면 밥도 쌀, 보리, 콩, 조, 기장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서 오곡밥을 지어 먹을 정도였다. 외국에도 섞어먹는 음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가지가지로 흔히 해먹지는 않는다.
섞음과 공식共食의 문화
음식을 덜어서 먹지 않고 한 그릇에 담아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공식의 관습도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독특한 습성이다. 서양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찌개 같은 음식을 각자의 수저를 담가가며 같이 먹는 것을 보면 기겁을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정情을 나누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나’보다 ‘우리’를 강조하는 한국인의 정서이자 문화다. 언론인 이규태는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가족을 식구 혹은 식솔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한솥밥이 갖는 정신적 유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으며 공식의 문화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정’의 정서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정신문화이다. 공식의 절정은 제사음식을 나눠먹는 음복이라 할 수 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술과 음식 같은 제수를 나누어 먹는 것은 귀신과 사람이 나눠먹는 신인공식神人共食의 경지로 살아있지 않은 조령祖靈과의 연을 확인하고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절차이다. 이러한 ‘섞음과 공식의 식문화’ 정점에 비빔밥이 있다. 밥에다 오방색의 갖가지 나물과 지단, 은행, 잣, 밤 등을 얹어서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 비빔밥은 섞어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대표 격이다. 같이 먹으면서 타인과의 경계를 쉽게 허물 수 있는 비빔밥 역시 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유대감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한다. 비빔밥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말에 발간된 요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로 처음으로 한글로 ‘부 밥’, 한자로는 ‘골동반(汨董飯 또는 骨董飯)’이라 표기하고 있다. 여기서 골동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의미하므로 골동반은 비빔밥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골동반, 중국의 골동반 <시의전서>는 골동반의 조리법을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 만큼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도 골동반이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비빔밥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한다. 옛 중국 문헌인 <자학집요字學集要>에는 골동반 짓는 법을 “어육 등 여러 가지 것을 미리 쌀 속에 넣어서 찐다”고 했고, 중국 명나라 때의 <골동십삼설骨董十三說>이란 책에도 비슷한 설명이 나온다고 한다.
우리의<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강남(양자강)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 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이것은 곧 밥의 골동이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와 중국의 골동반 사이에는 ‘재료를 섞어서 짓는 밥’과 ‘지은 밥을 여러 재료와 비벼 먹는 음식’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 둘은 이름만 같지 결코 같은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장이 분분한 비빔밥의 유래
비빔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주장이 분분하다. 바쁜 농번기에 농사일을 하면서 간편하게 점심을 먹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는 농번기음식설, 제사 음식을 큰 그릇에 넣고 비벼 나눠 먹은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음복설, 어느 임금이 전쟁 때문에 몸을 피해 몽진했을 때 수라상에 올릴 음식이 없어 밥에 나물 몇 가지를 넣고 비벼 올린 것이 기원이라는 몽진음식설, 궁에서 임금이 간식으로 먹던 음식이라 해서 궁중음식설, 섣달 그믐날에 묵은해의 남은 음식을 없애기 위해 비벼먹은 것이 내력이라는 묵은음식처리설, 동학혁명군이 전장에서 그릇이 충분치 않아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넣고 비벼먹은 것이 시작이라는 동학혁명설 등이 그것이다.
식품사학자 故 이성우교수는 이중에서 음복설에 무게를 두었는데 그 이유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산신제나 동제洞祭 등은 집에서 먼 곳에서 지내 식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릇 하나에 제사음식을 고루 섞어 비벼먹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비빔밥이 비상시나 전쟁 때의 음식, 단체급식용 음식, 나아가서 대중식당용 일품요리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문헌에 최초로 나타난 것이 19세기 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비빔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더 오래된 일이라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19세기 말의 요리서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그 즈음에야 비로소 격식을 갖추게 되어 양반도 먹는 의젓한 요리의 반열에 든 것이라는 짐작도 해볼 수 있다. 서민들이 남은 음식을 비벼먹던 것을 요리라 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역별로 다양한 비빔밥의 내용기원에 대해서도 주장이 분분하지만 우리의 비빔밥은 지역별로 내용도 다양하다. 우리나라 음식 중 비빔밥만큼 여러 지명을 이름에 붙인 음식도 없을 것이다. 일반에 알려진 이름만 해도 흔히 3대 비빔밥으로 꼽는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해주비빔밥이 있고 그 외에 안동비빔밥(헛제사밥), 통영비빔밥, 함양육회비빔밥, 개성차례비빔밥, 평양비빔밥, 평안도닭비빔밥, 함평육회비빔밥, 거제멍게젓갈비빔밥, 마산비빔밥 등도 유명하다. 한국의 3대 비빔밥만이라도 간략하게 살펴보자.
전주비빔밥 : 호암 문일평은 전주비빔밥을 평양냉면, 개성탕반과 함께 조선의 3대 음식으로 치켜세운 바 있다. 전주비빔밥은 지역의 특산물인 콩나물을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옛날식은 소머리를 푹 곤 국물에 밥을 짓고 뜸을 들일 때 콩나물을 넣어 같이 익힌 뒤 쇠고기, 시금치, 쑥갓, 고사리, 도라지, 미나리, 표고버섯 등 갖은 재료를 넣고 3년 이상 묵힌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 것이다. 콩나물국을 곁들이는 것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진주비빔밥 : 진주비빔밥은 질박하고 담백하다.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쓰며 시금치 속잎, 고사리나물과 도라지에다 쇠고기를 채로 썰어 깨소금,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육회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비빔밥은 놋그릇에 흰밥과 갖가지 고명을 담은 후 고추장을 얹는데, 그 조화로운 모습이 아름답다고 해서 화반花飯이라 불린다. 곁들여 먹는 국물은 선지국을 주로 쓴다.
해주비빔밥 : 해주비빔밥은 해주교반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김장김치를 잘게 썰어 솥에 돼지기름을 두르고 펴놓은 위에, 쌀을 안치고 밥을 지어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다. 여기에 가늘게 찢은 닭고기와 연하고 살찐 콩나물을 얹어 함께 비비며 장국물이나 무국을 곁들인다. 짠지밥이라고도 하는데 짠지는 김치를 뜻한다. 해주 수양산에서 나는 고사리와 황해도특산인 김을 구워서 부스러뜨려 섞는 것이 특징이다. 남북분단으로 제대로 된 해주비빔밥을 맛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난 비빔밥 우리는 이렇듯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맛이 다른 훌륭한 비빔밥 문화를 갖고 있다. 비빔밥은 겉모습도 아름답지만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난 음식이다. 곡물과 고기류의 산성과 나물류의 알칼리성 영양소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비빔밥은 섬유소와 비타민이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이 적은 건강식이다. 최근 방한했던 미국 뉴트리라이트 건강연구소(NHI)의 소장인 샘 렌보그박사는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한 탄수화물과 유기농 야채에서 얻을 수 있는 무기질, 단백질 등의 섭취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세계의 수많은 영양학자들이 비빔밥을 완전한 한 끼의 영양식으로 꼽는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런 전통적인 비빔밥의 문화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양하게 비벼서, 함께 나눠 먹는 비빔밥의 문화를 복원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 아닐까.
글•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음식문화평론가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전주시청, 두피디아 포토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