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동쪽으로!'
프랑스 젊은이 사이에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생긴 아시아 영화 관련 웹사이트만 50여개에 이른다. 파리에서 아시아 영화를 보는 일은 이제 바게트(막대 모양의 빵)를 구하는 일만큼이나 손쉽다.
'가자, 동쪽으로!'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영화와의 만남' 축제 슬로건이다. 행사 팸플릿 표지도 젊은 남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동쪽으로 질주하는, 싱가포르 영화 '이팅 에어'(Eating Air)의 포스터 사진으로 장식했다. 주최 측인 아시아영화보급협회(ADCA) 관계자는 "아시아가 프랑스 동쪽에 있는 데 착안해 행사장도 파리 동쪽 끝에 있는 mk2 복합상영관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왜 아시아 영화인가=지난 4일 오후 파리 13구 프랑스가의 mk2 복합상영관 앞. 방금 영화관에서 나온 프랑스 젊은이 네명에게 "아시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일본 미이케 다카시(三池 崇史) 감독의 '고주(牛頭.소머리)'를 보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야쿠자(조직폭력단)를 다룬 영화에 대해 한결같이 낯설어 하는 표정. 프랑스 국립동양어학교 중국어과에 다닌다는 브루 멜렌은 "아주 복잡한 영화였다"고 말했다. 같은 과 학생인 바우르 코랄린은 "일상적이지 않은, 정말 이상한 영화였다"고 말했다. 소르본대에서 영화를 전공한다는 세르장 폴도 "극단적인 영화"라고 거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를 택했는가"라고 묻자 영화감독 지망생인 폴이 "감독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미이케 감독은 요즘 프랑스에서 뜨고 있다"며 "모든 금기를 깨뜨리는 그의 영화는 언제 봐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멜렌은 "미이케 감독이 만든 영화에는 폭력과 죽음.성(性)도착이 단골메뉴로 등장한다"며 "지구상 어디에서도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파리 5대학(르네 데카르트)에서 법학을 전공한다는 그레고리 자멩은 "아시아 영화는 대체로 시적이고 순수하다"고 평가했다. 폴은 "미국영화에 식상한 프랑스의 20~30대는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한다"며 "구로사와 기요시나 기타노 다케시 같은 감독은 이미 유명인사"라고 말했다.
폴은 "서너편 본 한국영화 중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리얼 픽션)'은 특별한 시도가 아주 인상적이었으나 흥행에 실패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감독의 '악어'는 세밀한 감수성 묘사가 돋보였다"고 했다.
◇"독립영화관은 정부가 지원"=멜렌은 영화관 회원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UGC라는 영화체인의 카드였다. "처음 가입할 때 30유로(약 4만2000원)를 내고, 그 다음 다달이 15유로만 내면 UGC에서 하는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폴은 mk2카드를 갖고 있었다. "큰 체인에 속하지 않은 독립영화관은 어떻게 수지를 맞추는가"라고 물으니 코랄린이 "예술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독립영화관들은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고 알려주었다.
이번 제1회 '아시아영화와의 만남' 행사에는 한국.일본.싱가포르.중국.홍콩.태국 영화들이 선보였다. 한국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박찬욱 감독 외 5인이 만든 옴니버스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등이 올랐다. 행사를 총지휘한 제레미 세게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행사장을 찾았다"며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이 이번 축제를 성공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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