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호변(雅號辯)
嵐丘 柳 宇 植
사람은 누구나 다 이름(名)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字)라는 것을 만들어 쓰기 도하고 또 학자나 문인 화가 등은 호(號)라는 것을 지어 그 이름과 함께 쓰고 있다.
이름은 본명(本名)을 말하는 것으로서 출생으로부터 갖게 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래의 이름이며 살아 계신 어른의 이름을 함자(銜字) 돌아가신 어른의 이름을 휘(諱)라고 하며 존엄시해서 함부로 부르는 것을 삼가 한다.
자(字)는 대개 결혼을 하고 성인이 된 뒤에 이름 대신에 부르는 것으로 이름에 비하면 그 존엄성을 낮추어서 조금은 수월스레 사용한 것 같다.
호(號)는 자보다도 더 평이하고 친근감을 갖고 사용하는 것으로서 아명(雅名), 아호(雅號)라고도 하며 고상하고 멋스러워서 스스럼없이 쓰이고 있다.
나의 경우 우리 집안의 족보에 이름은 창영(昌榮), 자는 우식(宇植)이라 되어있다. 고등학교 시절 국문학을 학습하면서 송강(松江) 정철(鄭澈)등 문인들이 호를 갖고 있고 또 백범(白凡) 김구(金九)등 현대의 명사들도 호를 쓰고 있음을 알고 난 뒤로는 나도 호를 갖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때(20세)에 나는 「고송(孤松)」이라는 첫 번째 호를 자작하여 사용했다.
외로운 소나무라, 왜 하필이면 외로운 소나무라 하였던가? 눈 그득히 덮인 순백의 넓은 들 한 복판에 외롭게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를 상상해 보자. 인간세상 온갖 오욕과 혼탁으로부터 초탈하여 의연하게 지조를 지키고 있는 그 소나무는 순수와 결백과 정의를 열망하던 약관의 청년인 나에게는 바로 선망의 표적이요 인격 도야의 표상이었다. 나에게 그 소나무는 얼마나 멋스러운 마음의 스승이었는지 모른다. 아! 참으로 고귀한 이 정념! 그러나 지금의 나의 사념과 몰골은 이다지도 헐고 불결한 누더기가 되어 버렸는지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스럽구나.
다음 두 번째 호는 「췌전(萃全)」이다.
이것은 내가 공군에서 전역을 하고 잠시 쉬고 있을 때(29세) 동아일보사에 재직하는 한 학우가 호를 췌전(萃全)」이라고 하라면서 "전북에서 발탁된 인재, 온 전체에서 뽑힌 사람"이라고 주석을 달아 주는 것이었다. 전자(全)가 갖는 의미는 직접적으로는 나의 출신지 전북(全北)을 나아가서는 온 세상 전체를 말하고, 췌자(萃)는 발췌(拔萃) 곧 여럿 속에서 뛰어남을 의미한 것이다. 내가 대학 졸업식에서 총장상을 수상했다 하여 붙여 준 것으로 짐작을 하거니와 졸업생에게 총장상이 아무리 최고의 영예라고는 하지만 췌전이 갖는 의미는 나로서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과 발음도 평이하지 못하여 한 번도 사용하지는 않고 있으나 분에 넘치게 격려해 준 이 벗에게 고맙다는 마음과 함께 췌전은커녕 제대로 된 보통 사람조차도 못된 기분이어서 그의 기대에 어긋났으니 미안한 마음 크다.
세 번째로 갖는 호는 「발(氵岩 )」이다.
이것은 내가 순전히 자작으로 내 희망 어떤 의미로는 내 인생관을 정리하여 "만든 글자(造字)"요, "만든 말(造語)"이다. 「발(氵岩 )」이 기록으로 보인 것은 1965년(29세)의 일기장에서이고 1968년 제석(除夕)에 한 해를 총 정리하면서 일기장 맨 끝 부분에 풀이를 하였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발(氵岩 ) : 물산돌 발
氵 : 水는 물이요 수지대종(水之大宗)은 해(海) 곧 〈바다〉 이다. 바다의 첫 글자 <바>의 첫소리(初聲)는 「ㅂ」이다.
山 : 山은〈산〉이다. 〈산〉의 가운데소리(中聲)는 「ㅏ」이다.
石 : 石은〈돌〉이다. 바위다. 〈돌〉의 끝소리(終聲)는 「ㄹ」이다.
바다의 용맹과 포용성(包容性) 산의 인자(仁慈)와 온후성(溫厚性) 돌의 인고(忍苦)와 우직성(愚直性), 이 삼자(三者)의 화합물이 되고자 「氵岩 」이라 제호하였다.
우리말에서 「발」이라는 어의는 어떤 뜻이 있는가?
첫째) 발(足)이다. 첫발은 곧 시작이다. 행(行)함이다. 실천이다.
둘째) 길이의 단위(單位)이다. 단위는 가치 척도(尺度)요 사물의 평가기준이다.
셋째) 주렴(珠簾)이다. 발을 드리우고 남의 앞에 드러내지 않는 음덕(陰德)이다. 》
이처럼 「海(氵)+山+石」을 조합한 〈氵岩 〉이라는 글자와 바다, 산, 돌의 발음에서 초(初) 중(中) 종(終)성을 빌어 「ㅂ+ㅏ+ㄹ」을 조합한 〈발〉이라는 말은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와 가치에 가장 잘 들어맞는 여러 개념이 간결하고도 밀도 있게 용해되어 있는 정수(精髓)이다. 인위적이고 딱딱한 것이 흠이기는 해도 논리적인 짜임새가 있다고 한다면 자화자찬일까? 이 「발(氵岩 )」은 지금까지 수 십 년에 걸쳐 오랜 기간 의도적으로 서신이나 연하장 등에 사용하다 보니 친구나 동료 간에는 나를 스스럼없이 “유 발!” 혹은 “유 발 선생!”이라고 애칭하여 오고 있다.
네 번째로 얻은 호는 「남구(嵐丘)」이다.
1999년(63세) 9월9일, 이 해의 중양절(重陽節)은 아홉구자(九)가 가장 많이 밀집하여 대길일(大吉日)이라고 결혼식 등 큰 잔치가 성황이던 날 절친한 벗이 지어 준 것이다. 상당한 경지에 오른 서예 솜씨로 한지에다 「嵐丘」라고 일필휘지하여 서예인으로서 격식을 갖추어서 도서를 세 가지나 찍어 가면서 세로로 내려쓴 붓글씨인데 이렇게 적혀 있다.
《平素 尊敬하는 柳宇植 先生에게 雅號를 作號하였습니다. 高邁한 人品에 어울릴 것으로 確信하여 獻呈합니다. 「嵐丘」 산 기운 람, 언덕 구 " 淸淨한 기운이 감도는 언덕" 己卯年 重陽節에 지음》
그 서장에 "고매한 인품"이라는 과평에는 낯이 붉혀졌지만 남구(嵐丘)라는 뜻을 천천히 음미하고 그 정경을 머릿속에 그려보노라니 내가 정말 남기(嵐氣) 서려 청정한 언덕이나 되는 듯 나의 심상에 어머니 가슴 같은 포근함이 깔리어 왔다. 또한 남구(嵐丘)라고 쓴 붓글씨에서 풍기는 예술성이 품위를 한껏 높여 주고 있어서 어의가 갖는 아름다움과 청신(淸新)함 그리고 부드러움을 한결 더해 주었다. 그래서 이 호가 마음에 꼬옥 든다. 추곡(秋谷) 형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호를 만들어 쓰면서 마음 한 구석에 한 가지 저어함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과연 호를 사용할 자격이 있느냐는 점에서이다.
호를 애용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대개 문인 학자 예술가 정치인 등 역사적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극히 보통 사람일 뿐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호를 갖는다는 것은 혹 주제 넘는 것이나 아닌가!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다 같이 평등한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그런 부당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니 굳이 이러한 평등 논리를 빌리지 아니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누구나 호를 지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그 하나는 호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친교의 평이성(平易性)이다.
웃어른의 함자나 휘는 함부로 부르지 못하지만 호는 터놓고 이무럽게 쓰며 또 친구의 아들이나 손자 앞에서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本名)을 거명하기 보다는 그분의 호를 부른다면 얼마나 부드러울 것이며 또 평교간(平交間)에도 서로 호를 부른다면 이 얼마나 다정하고 감칠맛이 나겠는가?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멋스러운 삶의 추구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멋을 좋아해서 멋을 좇아 멋스럽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멋이란 무엇인가? 외모를 다듬고 가꾸는 그런 멋도 멋은 멋이다. 그러나 마음에 여유를 갖고 유유자적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참 멋이다. 정신세계에서는 자유자재로 내 마음에 드는 아담한 집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멋스럽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내 마음속 정원의 소담스런 한 송이의 꽃, 윤기 짙은 풀 한 포기, 생그럽게 향기 서린 나뭇잎 하나 이런 것 하나하나에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맺혀 있고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의 표증인 아호라고 한다면 설마 누군가가 아니라고 탓할 사람은 없을 거라!
그렇다. 자신의 마음속의 멋을 담아 자기의 아호를 갖고 산다면 말끔하게 씨서리 해놓은 간솔한 초가의 지붕 위에 깔끔하게 맺힌 한 덩이 박 같은 청초한 삶이요, 삼복더위를 씻어 내는 투명한 유리그릇 속의 빨간 수박화채 같은 신선한 삶이라고 비유됨직 하지 않겠는가? 보통 사람의 보통 행복이 이 아니랴! 이것이 내가 내 아호를 갖는 나의 변(辯)이다.
나는 나름대로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내 아호, 「孤松 · 萃全 · 氵岩 ․ · 嵐丘」들을 가슴에 품고 그 뜻을 좇으면서 그 희망을 향하여 남은여생을 한뜸한뜸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나의 변을 들어주든 말든 그것은 그 사람의 아량일 게고 나는 나대로 내 멋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내 몫이다.
첫댓글 남구(嵐丘)선생의 지고한 사상과 철학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깊은 사색이 아호 하나하나에 새겨저 있어 많은 인생공부를 하고 갑니다. 간솔한 초가의 지붕위에 깔끔하게 맺힌 한덩이 박같은 청초한 삶! 제가 추구하는 정신세계이기도해서 훔뻑 빠져봄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에 진정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집니다. 후배를 아껴주시는 마음 감사히 받아 안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문운 창성하시기 빕니다.
심오한 의미가 담긴 글을 찬찬히 다시 읽어봅니다. 남구(嵐丘) 류우식님의 진취적이고 문학적인 면모를 알게하는 이 글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네요.
과찬의 말씀 절로 고개숙여집니다.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글에 담아주신 남구(嵐丘)님 아호에 얽힌 사연과 깊은 뜻,
많은 것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격려의 말씀 잊지않으시고 아껴주신 혜량에 감사드립니다.
의미깊은 아호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석포 = 石圃, 한자 표기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혹 선배님의 아호가 아닐까 평소 제 나름으로 그리 여겨 오고 있습니다. 만일 맞다면 매우 큰 호감을 느끼며, 겸손과 깊은 삶의 철학을 품고있다고 속마음에 존경을 드립니다.
남구선생님의 호관련 깊은듯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吹雲선생 격려말씀 감사합니다.
남구(嵐丘)선생님의 깊고 해박하신 아호 설명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아호에 담긴 삶을 이루어가시는 선배님의 모습을 그려보며 소생도 본받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늘. 매사에 적극적이고 봉사하는 삶, 깊은 신앙 부러워하며 따르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