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을 하고 답을 기다리는데 정동섭씨 신혼초에 한집에 살았다는 구원파 교인 한분을 만났어요. 그 자매님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나는 또 한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죠. 너무 기가막혀서 정동섭씨에게 이런 질의서를 다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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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 교수님!
엊그제, 정교수님 신혼 초에 한집에 살았던 유승지 씨의 아내를 만났어요. 정교수님이 그 부부를 이혼시키는 것까지 고려했다는데 잘 아시겠지요. 그 부인은 당시 정교수님이 ‘이혼이라도 시켜야겠다’고 한 말을 교수님 부인, 이영애 씨로부터 들었다고 합니다.
그 부인은 내가 올린 질문들과 정교수님의 책을 보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울화가 치밀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날 이혼시키려고 한 그 사람(정동섭 교수)이 남한테 ‘구원파가 이혼시킨다’는 식으로 말을 해요! 나뿐만이 아니에요. 자기 절친한 친구 부부 사이도 그렇게 이간시키고 친구에 대해서도 남들에게 폄론하고 했던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는데 그것도 누구 사주받아 했답니까!”
그 부인이 결혼하기 전, 정교수님 내외는 그녀의 남편, 유승지 씨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과 어울릴 때 식대 등 교제비는 거의 그녀의 남편이 지불했었다지요. 그러다 결혼을 하니 이전 같진 않았을 거라고 하대요. 그러니 정교수님한테 그녀는 ‘눈엣가시’였을 거라면서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사람(정교수)은 퇴근할 때 나한테는 상냥하게 인사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요. 그러고는 내가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자려고 불 끄면 방문을 노크하고는 남편을 불러내요. 남편은 방으로 돌아와서는 막 화내고 그랬어요. 그가 뭐라 하더냐고 물으면 ‘김자매가 이상하니까 잘 생각해보라 그랬다’ 그말만 해요. 그(정교수)는 내 구원이 의심스럽다 하면서 남편에게 내 험담을 많이도 했어요. 우릴 이간시키려고. 내가 담은 김치가 맛이 없다는 둥, 첫아이 생겨서 입덧이 심하여 탈진상태에 빠져 있는 나를 놓고 여자가 밥도 안하고 청소도 안하고 하루종일 꼼작도 안하고 누워만 있다는 둥 별별 소리로 나를 흉보고 하더니만 어느날 그(정교수)는 내 남편한테 부인을 친정에 보내서 집에 가 쉬게 하라고 하더래요. 또 어느날은 그(정교수) 부인이 날보고 그래요. 자기 남편(정교수)이 ‘우리부부를 이혼이라도 시켜야할지도 모르겠다, 다 모아놓고 청문회를 하겠다’고 했다면서 자기는 너무 소름끼치고 겁나고 내가 불쌍해서 말해주는 거라고 하는 거에요. 나한테 그거 전해주고 자기 남편에게 입싸다고 야단맞고 그랬어요.”
정교수님이 바로 그 인민재판의 주범이었습니까? 이때가 바로 <어느 상담심리학자의 고백> 19 페이지에 구원파 교인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교제비 지출이 많았다고 한 때입니까?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6개월간 같이 사는 동안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았고 누가 방문해도 저녁 장보는 거며 교제비 지출은 거의 그녀와 그녀의 남편 몫이었다고 하는데, 유승지 씨의 돈이 모두 정교수님의 것이었습니까?
그렀다면 무리하게 헌금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
정교수님은 <어느 상담심리학자의 고백>에서 구원파가 누구를 구원받았다 못받았다고 말한 것처럼 쓰셨던데 그렇게 말한 당사자가 바로 정교수님 아닙니까? 유승지씨 부인을 가지고도 ‘구원이 의심스럽다,’ 정교수님 친구 부인을 가지고도 ‘구원 아닌 것 같다’ 했으니 말입니다.
나는요, 30년이 넘게 구원파에 있었어도 교회에서 ‘누가 구원 아니다’ 하는 걸 들어보질 못했어요. 구원파에서 누가 정교수님에게 구원받았냐 안받았냐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지난번 유병언이라는 분도 그럽디다. “왜 남의 구원을 간섭해요. 그건 하나님 편에 있는 문제지, 안그래요? 본인이 구원받았다 하면 그건 놔둬야 되지 않습니까. 나는 누구에게 질문하게 되면 ‘주님이 당신 구원해놓은 사실을, 그 은혜를 아느냐’ 그런식으로 했어요. 그것이 내 질문 방법입니다.”
그리고 지난주 12일자 질문에는 빠졌었는데요, 이제 생각났어요.
<어느 상담심리학자의 고백> 17 페이지에, “유씨는 나의 영어 실력을 인정해 외국인과 대화할 때마다 나를 통역자로 썼는데” 라는 것에 대해서 유병언이라는 분은 한번도 정교수님을 불러서 통역시킨 적이 없다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 자신이 영어 실력이 변변치 않은데 어떻게 그가 영어 잘한다고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 스스로 외국인을 데려오곤 했으니까 저절로 통역이 된거지요. 이쪽에서는 불러서 통역시킨 적도 없고 따라서 통역비를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시 통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어요. 그들은 겸손해서 나서지를 않는데다 그(정교수)가 막 나서니까 사람들이 학을 띠고 달아나곤 했어요.”
정교수님! 여기에 대해서 반박을 해보시죠. 유병언이라는 분이 정교수님을 통역자로 썼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통역하라고 시켰는지 직접 밝히세요.
그리고 본책 같은 페이지에 “그(유씨)는 나를 여러 차례 비인격적으로 다루었다. 또한 질책만 받았다”고 했는데 그분이 정교수님을 어떤 일로 비인격적으로 다루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질책내용도 알려주세요. 유병언이라는 분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18 페이지에, “귀국하고서 그의 장인 권신찬 목사 집에서 보고회를 가질 때에도 그는 나를 공개적으로 내리깎았다”고 했는데, 유병언이라는 분은 유럽 여행 후에 그런 보고회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고 합니다. 정교수님이 말하는 것은 무슨 보고회였으며 그 날이 언제였습니까?
정교수님은 본책에서 유병언이라는 분을 ‘교주 유씨’라고 했는데 교주가 어떻게 교주 아닌 사람한테 보고를 합니까? 말에 어폐가 있지 않습니까?
유승지씨 부인은 정교수님이 종종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뜸금없이 ‘유형제는 대구 성광고등학교 야간 2년 중퇴했는데 뭐’ 그랬다고 해요. 그럴 때마다 ‘지금 저런 말이 나와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사람이 무슨 열등의식이나 질투심 같은 것이 있나?’ 하며 섬뜩했었다고 합니다.
유병언이라는 분은 그 학교 졸업식에 참석해서 졸업장을 분명히 받았고 졸업앨범에는 그분이 특별활동했던 사진도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뿐아니라 당시 교장선생님이 일류대학 몇군데를 추천하며 특기장학생으로 확실히 들어갈 수 있다고 진학하라는 것도 다른 뜻이 있어서 사양했다고 합니다.
정교수님! 유병언이라는 분이 성광고등학교 2년 중퇴했습니까? 정교수님은 구원파에서 8년 동안 충성했다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했습니까? 충성했다는 말은 자가당착에 빠져 거짓된 말에 혼취되어 있던 거 아닙니까?
아울러 정교수님의 그런 거짓에 혼취된 강연을 들은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들 역시 억울하게 속은 것 아닙니까?
지난주 11, 12일 질문과 오늘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직접, 정확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cts tv도 정교수님이 직접 정확한 답변을 하도록 촉구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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