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동문학인협회(회장 이창건)는 최근 ‘2019년 2분기(4~6월) 우수 작품상’ 2편을 선정해 발표했습니다. 동시 부문 수상작은 이화주 선생의‘발’, 동화 부문 수상작은 안선모 선생의 ‘따세와 함께한 10일’입니다. 이 본보기 글을 읽으며 문학 작품 감상 요령도 익히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동시>
발
이화주
의자 너
발이 네 개씩이나 있으면서
왜 꼼짝도 안 하니?
공도 차고
달리기도 해.
응
내 발은
공차고
달리기한
누군가의 발을 쉬게 해주는 발이란다.
<동화>
따세와 함께한 10일
안선모
“이번에 들어온 아이 중에…….” 식탁에 앉자마자 엄마는 또 난민 이야기다. 엄마가 하는 일이 난민 가정 도와주는 봉사활동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따세라는 남자아이가 있는데.”
따세라면 나도 아는 아이다. 얼마 전에 우리 반으로 전학 온 미얀마 난민 아이다.
“걔네 엄마가 눈 수술을 하게 됐어. 그래서…….”
엄마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나는 잽싸게 비집고 들어갔다.
“엄마, 이번 생일 때 닌자고 디젤넛트 사주면 안 돼요?”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엄마가 내 말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 아이가 열흘 동안 공중에 붕 떴어요. 아이 아빠가 엄마를 돌봐주러 가야 해서.”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혼자 지낼 수 있을까?”
아빠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하자 엄마가 응원군을 얻은 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다시 치고 들어갔다.
“엄마, 이번 생일선물은 무조건 닌자고 디젤넛트예요!” 그러자 엄마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넌 어쩜 그렇게 비싼 걸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할 수 있니?”
“아, 알았어요. 오늘부터 열심히 집안일 도울 테니 사주세요.”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해서 용돈을 받았다.
‘에구, 생일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어떻게 10만원을 모으지?’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아빠가 싱긋 웃더니 말했다.
“따세라는 아이를 우리 집에서 열흘 동안 묵게 하는 건 어때? 우리 열이에게 따세를 도와주는 중대한 임무를 주는 거지. 그러면 따세는 따뜻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우리 열이는 그 대가로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가질 수 있고.” 아빠의 말에 엄마가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렇게 해서 따세는 우리 집에 열흘 동안 머물게 되었다. 따세가 10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아이가 우리 집에 묵게 된 첫날, 바로 일요일 저녁이었다.
따세는 우리 식구를 보자, ‘내 이름은 ‘따세’입니다.’ 하면서 손가락 열 개를 펴 보였다.
“내 이름은 나 열, ‘열’도 10이라는 뜻이야.” 그러면서 나는 따세에게 오른손을 번쩍 들어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처음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만 보던 따세가 얼른 오른손을 올려 내 오른손과 맞부딪쳤다.
“앞으로 실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따세엣.”
따세는 우리 가족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더니 또 손가락 열 개를 활짝 펴 보였다.
“그러니까 따세 말은 10일 동안 신세를 지겠다는 얘기야. 엣은 미얀마어로 일, 데이(day)라는 뜻이거든.”
나는 눈 딱 감고 열흘만 참기로 했다.
둘째 날, 따세와 함께 등교를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얘들아, 나 이번 생일 때 닌자고 디젤넛트 생길 것 같아.”
“정말? 그거 엄청 비싼데.” 내 말에 수찬이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열아, 부럽다 부러워. 지금 갖고 있는 피규어도 대단한데 디젤넛트까지!”
두 번째 반응한 것은 반장 태건이었다. 반장이 반응을 보이니까 다른 아이들이 덩달아 반응을 하였다.
“악, 벌레다!”
그때였다. 교실 뒤편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쓰레기통 옆에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가 나타나자 반 아이들이 혼비백산하여 이리 저리 도망쳤다.
“야, 겁쟁이 남자 아이들 그렇게 도망만 치면 어떡해?” 부반장 하린이의 말에 남자아이들이 합세하여 외쳤다.
“겁쟁이이긴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그러면 너희들이 잡아보든지!”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따세가 조용히 다가가더니 아무렇지 않게 벌레를 손으로 잡았다.
“죽여, 죽여!”
“밟아, 밟아!”
따세는 밖으로 나가 화단 속에 벌레를 놓아주었다.
“역시 따세, 철학적인 아이라니까. 미얀마 사람들은 불교를 믿으니까 살생을 하지 않는 거야.” “벌레 잡는 남자도 멋있지만 벌레 놓아주는 남자는 더 멋있다.”따세는 갑자기 우리 반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가 되었다. 언제는 못 먹어서 삐쩍 마르고 얼굴도 새까매서 매력 꽝이라고 수군대던 아이들이었다. 3일째 되는 날, 따세는 달리기로 아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키도 제일 작고 멸치처럼 삐쩍 마른 아이가 마치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달리기를 잘 해?”
여자아이들이 몰려와 묻자, 따세가 머리만 긁적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것 같아 내가 나섰다.
“그건 난민이기 때문이야. 난민은 늘 쫓기고 도망쳐야 하니까.” 내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4일째 되는 날, 신나는 4교시가 되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연을 날리고 연싸움을 하고 신나게 놀았다.
“앗, 연이 나뭇가지에 걸렸어.”
부반장 하린이가 발을 동동거렸다. 하린이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였고, 하린이가 만든 연은 정말 아름다웠다. 내가 꼭 꺼내줄 거야. 나는 있는 폼 없는 폼 잡고 나무를 발로 세게 찼다. 하지만 나무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긴 막대기를 이용해 연을 꺼내보려 했다. 하지만 막대기가 너무 짧았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따세가 다가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결심한 듯 신발을 벗고 맨발로 나무 위로 성큼성큼 기어올랐다.
여자 아이들은 그런 따세를 보고 손뼉을 치고 팔짝팔짝 뛰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린이는 따세가 건네준 연을 받아들더니 활짝 웃었다. 따세는 그밖에도 잘 하는 게 많았다. 물구나무서기도 잘 했고, 축구도 잘 했다. 또 잘 웃었다. 웃을 때는 커다란 눈도 따라 웃었다.
“생긴 것도 별로고 키도 작고, 멸치처럼 삐쩍 말라가지고 얼굴은 연탄처럼 새까맣고. 공부는 더더더더 별로인 따세는 왜 인기가 많은 걸까?” 수찬이가 내 옆에 와서 따세가 부럽다는 듯 물었다.
“그건 따세가 난민이기 때문이지. 어려운 사람에게는 당연히 관심을 줘야 하는 거니까.”
“그나저나 너, 따세 매니저 노릇하느라 힘들겠다.”
“뭐라고? 내가 따세 매니저라고?”
“그래, 너 따세가 가는 곳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잖아.”
“그건…….”
아이고, 답답해라. 엄마와 한 약속을 아이들에게 일일이 말할 수도 없고. 5일째 되는 날, 목요일이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온다고 하여 설??? 피규어 자랑할 생각에 어서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얘들아, 내 방으로 가자. 내가 그동안 모은 피규어 보여줄게.” 아이들은 따세 방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이들은 좁은 방에 끼어 앉아 따세가 그린 그림들을 들춰보며 열광했다. 나는 입이 뿌루퉁 나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6일째 되는 날, 나는 따세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따세는 내 눈치를 조금 보았지만 여전히 활짝 웃었고 여전히 인기맨이었다. 7일째 되는 날, 토요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외식하는 날이었다.
“따세는 고기 잘 못 먹으니까 한정식집 가자.”
싫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찡긋 윙크를 하며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 열, 오늘 하루만 양보할 수 있지?”
엄마아빠는 나오는 음식마다 따세에게 설명하고 먹어보라고 권했다.
“따세, 이건 잡채라는 거야.”
“예, 미얀마 음식 ‘카우 싸이접’하고 비슷해요. 근데 한국 음식 잡채가 훨 맛있어요.”
따세의 ‘훨 맛있어요.’라는 말에 엄마아빠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따세, 이제 한국사람 다 됐네.”
“아직 멀었어요. 더 노력해야죠.”
엄마, 아빠는 따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웃었다. 우리 집의 주연은 늘 나였다. 나 때문에 웃었던 엄마 아빠가 따세가 하는 말 때문에 웃었다. 나는 소외감에 말없이 음식을 집어넣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드렸다.
“열이야, 색연필 좀 빌려줄 수 있어?” 따세가 내 방으로 왔을 때 나는 화가 나서 낮게 중얼거렸다.
“가, 가버려!” 내 말에 따세가 눈을 끔벅거렸다. 따세의 눈이 슬프게 보였다.
“나, 못가! 나 공부하고 싶어.” 따세의 슬픈 눈을 외면하고 나는 또 중얼거렸다.
“쳇, 난민 주제에…….”
8일째 되는 날, 일요일 낮이었다. 엄마는 봉사활동 하러, 아빠는 친구들과 등산하러 갔다. 따세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따세가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두 손을 비비기도 하였다. 또 몸을 덜덜 떨면서 ‘헬프 미, 헬프 미’하고 말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는데 마침 봉사활동을 마친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따세를 꼭 껴안아주었다.
“따세, 아이들에게 네 이야기를 해주렴.” 따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9일째 되는 날, 월요일이었다. 따세가 웃으며 칠판 앞으로 나갔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예요. 첫 번째 그림은 엄마, 아빠의 고향 모습이에요.”
아이들은 따세가 그린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따세를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따세를 닮은 어린아이들은 호수에서 헤엄을 쳤고 남자어른들은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두 번째 그림부터 따세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만 보고서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그림은 총을 든 군인들이 몰려오자, 따세를 닮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그림이었다. 세 번째 그림은 난민 캠프 안에서 따세가 태어나는 장면이었다.
네 번째 그림은 따세가 비행기를 타고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었다. 다섯 번째 그림이 나오자 반 아이들이 와! 소리를 질렀다. 따세가 커다란 새를 타고 고향으로 날아가는 그림이었다.
“나의 이야기 끝입니다. 나는 공부 많이 하고 언젠가 고향으로 갈 겁니다.”
“따세, 넌 할 수 있어!” 반 아이들의 말에 따세의 얼굴이 빨개졌다.
10일째 되는 날, 아침 식탁에서 엄마가 말했다.
“따세는 이제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 갈 거야.” 갑자기 가슴이 쿵덕 내려앉았다.
“왜?”
“열아, 따세는 이제 난민 아니야. 정착민이 되었어. 우리 정부에서 작지만 편안히 쉴 곳을 마련해 주었어. 그래서 그 근처 학교에 다니게 된 거야.”
“이렇게 갑자기?”
나는 와앙~ 하늘이 무너질 듯 울음을 터뜨렸다. 따세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따세와 함께 있었던 10일 동안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따세를 좋아했다는 거다.
첫댓글 소년한국일보에 싣기 위해 원래 원고에서 30~40% 줄였어요. 이렇게해서라도 실어야 하는 건지 약간 회의가 일었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