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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과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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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이야기(국내) 스크랩 경기 수리사(8.19)
설악산 추천 0 조회 58 07.08.30 19: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수리사(8.19)


수리산은 지난 번에 가 보았는데 수리산의 대표적인 절인 수리사는 가보지 못해 이번에 가보기로 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전철로 출발을 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야미역에서 내려서 걸어간다는 등, 수리사 차가 있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우선 대야미역에 있는 직원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방향만 가르쳐 주어서 그 쪽으로 가면서 어떤 아주머니께 물으니 저기 있는 마을 버스를 타고 가라는 것이다.

마을버스 번호는 1-2번인데 운전기사는 없었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저 버스는 2시간마다 가는데 가는 시간은 여기 벽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출발 10분전이다.

오후에 출발하는 시간은 1시 50분, 3시 50분, 5시 10분, 7시 10분, 9시 이고 오전은 7시, 8시 15분, 10시 10분, 11시 50분이다.

운전기사에게 돌아오는 시간을 물으니 뭐 대답이 시원치 않다.

한참 물으니 이 차가 한대만 운행을 하는데 이 차가 가서 실고 오고 가고 한다는 것이다.

차에 산본역 간다고 되어 있어 산본역 가냐고 물으니 안간다는 것이다.

나중에 보니 누가 타면서 물으니 산본역 간다는 것이다.

하여간 휑설수설한 운전기사인데 버스에 탄 승객이 내리는 것을 가르쳐 준다.

아주 좁은 오솔길로 버스가 가다가 큰길을 만나서 다시 오른쪽으로 가고 저수지도 지나서 수리산 두꺼비라고 큰 간판이 있는 슈퍼에서 내리라고 하는 것이다.

살기좋은 납덕골인지 남덕골인지 하는 글이 큰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거기 내리니 개울이 있는데 거기에 파라솔에 의자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백숙, 닭도리탕같은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다.

거기서 수리사까지는 걸어서 1킬로미터쯤 된다는 것이다.

부지런히 올라가면서 보니 개울마다 사람들이 가득차 있고 승용차는 길에 주차해 있는 것이다.

꿀벌 키우는 곳도 있었고 누리장나무, 박하같이 생긴 꽃도 있고 파리풀, 무릇, 이삭여귀, 털별꽃아재비, 층층이꽃도 눈에 보이는 것이다.

수리사는 예전에는 엄첨나게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때 불탔다는 것이다.

대웅전을 최근에 지었는지 아직 단청이 되어 있지는 않았다.

수리사에서 내려다 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은 듯하게 보였는데 수리사에 서보니 나름대로 명당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리사는 첩첩산중에 들어와 있고 우리가 살고있는 아파트단지는 저 멀리 보이는 것이다.

수리사 대웅전의 탱화는 마치 판화같은 스타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청계사도 이런 유형의 탱화가 있었던 것같은데 이런 탱화가 요즘 유행인가 보다.

대웅전 부처님 닫집도 멋있게 만들었는데 아직 단청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대웅전 오른쪽에 멀리 있는 나한전은 예전에 만들었는지 단청이 되어 있었고 그속에는 500나한이 삼면벽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대웅전 뒤에는 삼성각이 있었는데 탱화는 산신과 호랑이 산신 옆에는 시중을 드는 선녀인지 2명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삼성각 옆에는 머리가 깨어져 없어진 불상이 모셔져 있어 예전의 화려했던 수리사를 생각나게 하였다.

그 깨어진 불상 좌우로 새로 석등 2개를 조성해 놓고 있었고 석등 앞에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삼성각에서 내려오면서 대웅전 옆에는 편강약수가 있고 누각까지 만들어 놓았으며 그 편강약수 오른쪽에 용주사, 석남사에서 본 것과 똑같은 부모은중경탑이 조성되어 있었다.

수리사는 과거의 영광을 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같았다.

아마도 머지 않은 장래에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며 수리사를 떠나 수리산 두꺼비 수퍼에 와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4시면 오게 되어 있었으나 4시 10분쯤 왔었고 가는 길은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량으로 인하여 상당시간이 지체되었다.

대야미역까지 와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래 내용은 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신라 진흥황 때 창건된 사찰로 수리산 남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그 뒤 어느 왕손이 이 절에서 기도하던 중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하여 산 이름을 불견산이라고 했으나, 1940 년대에 절 이름을 따서 수리산으로 바꾸었다. 대웅전 외에 36동의 건물과 산 내에 132개 의 암자가 있는 대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곽재우 장군이 말년에 입산하여 중창하고 수도한 곳이다. 그 후 6.25전쟁으로 다시 전소되었으며, 현재 산내에는 주춧돌, 불족석판, 석수각, 기와편 등이 대량 발견되고 있으며 1955년 다시 재건되었다. 수리사 입구 외길은 산림이 무성하고 계곡을 끼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고 사찰을 두르고 있는 수 리산은 병풍을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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