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왜 상처 입는 능력이 떨어지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또 그것이 내 자신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 편하느냐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상처입지 않는 편이 편하다.
지금은 누가 아무리 혹독한 소리를 하여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해도,
믿고 빌려준 돈이 돌아오지 않아도 그렇게 상처입지 않는다.
물론 매저키스트가 아니니 기분은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일로 낙담을 하거나 며칠이고 궁상맞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할 수 없지 뭐, 세상이란 그런 거야' 라 여기고, 그대로 잊고 만다.
젊었을 때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잊으려 애를써도 쉬이 잊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할 수 없지 뭐, 세상이란 그런 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요컨대 몇 번이고 비슷한 일을 경험하면서 그 결과 무슨 일이 생기면
'뭐야, 또 지난번과 비슷하잖아' 하고 생각하게 되고,
결과 매사 일일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현상은 좋게 말하면 터프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내 안에 있는 나이브한 감수성이 마모되었다는 뜻이 된다.
즉, 뻔뻔스러워진 것이다.
변명을 할 생각은 없지만, 개인적인 사소한 체험으로 말씀드리자면
어떤 류의 나이브한 감수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내가 속해있는 직업적 세계에 살아남으려 한다면,
그 시도는 소방수가 레이온 셔츠를 입고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나이를 먹었다고 마음의 상처를 전혀 입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혹은 마음에 깊이 새기거나 하는 것은
나이를 먹은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상처를 입어도 화가 치밀어도, 그것을 꿀꺽 삼키고
오이처럼 시원시원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지만,
훈련을 쌓아 가는 동안 점점 정말이지 상처입지 않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 中에서...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젠 세상 사는 일에 그렇게 가끔씩은 좀 무디(?)어졌으면 싶다.
참으로 바쁘고, 피곤하고, 정신없고, 짜증스럽기까지 한 일주일이었다.
물론 내게 있어 일주일이란.. 휴무일이 지난 수요일부터 오늘 일요일까지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예전 그러니까 젊은 시절부터..
'지역'에 또는 '지역의 사람들'에 관해선 그래도 별로 의식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의 입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지역주의'라는 말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그 넘의 '지역주의'라는 것이 알고 보면 어떤 이념과 정서적인 차이에서 오는 민중들의 갈등이 아니라..
예로부터 정치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밥그릇' 그러니까 하다못해 자신의 연고(또는 출신)가 있는
지역구라도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고 챙겨 가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그래야만 해 먹고 또 해먹고 할 수 있으니까)
'권모술수'나 '감언이설' 내지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거의 '선동'에 가까운 지극히 편협적이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진정한 애국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권력와 부(富)만 생각하는
아주 치사하고, 더럽고, 구역질나는 짓거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곳 대전으로 와서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왜 사람들은 자꾸만 그런 별 것 아닌 것에 연연하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본디 우리는 마트에서 협력회사로 일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트와 직거래의 관계에 있지는 못 한 실정이다.
그러니까 생산 공장으로 말하면 처음 원청업체에서 일괄적으로 도급을 따내는 '1차 밴드'가 있고
그 업체에서 다시금 조각으로 나누어 두번 째로 일거리를 얻는 '2차 밴드'가 있는데..
그 중 우리는 '2차 밴드'에 속하는 위치라고 보면 된다.
가령 예를 든다면 'H'라는 자동차 대기업에서 특정적인 부품을 몽땅 하청을 받는 '1차 밴드'가 있고
그 '1차 밴드에서 다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을 조금씩 나누어 재(再)하청을 받는 곳이 '2차 밴드'인데
대기업에서 필요로하는 물량이 줄거나 재고량이 많이 쌓인 경우 '2차 밴드'로 내려가는 물량은 끊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품삯(결재) 역시 원청업체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1차 밴드'에서 받기 때문에..
여러모로 어렵거나 불리한 점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록 중간에서 떼어먹는 과정이 많아지니
결국엔 쥐꼬리(?)만큼 받고 일은 많이 해야만 하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소 불만이 있어도 잘못 입을 뻥긋했다가는 그나마라도 목줄이 잘릴까봐..
겉으로는 찍소리도 못하고 '벙어리냉가슴' 앓는 꼴이 되고 있었다.
우리의 '1차 밴드'는 4개의 협력회사 중 '기술운영팀'을 맡고 있는 某 회사였다.
그 회사는 규모도 적지 않아서 신세계 이마트 부분 전국의 모든 점포(마트만 218개)를
몽땅 독식하고 있는 'S'라는 회사인데 그 회사의 팀장이 우리를 관리 감독하고..
가끔 'S'사의 본사에서 담당자들이 일종의 감사(점검)을 나오곤 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마트에서 일하는 기술팀장은 아직 나이가 많이 젊은 전주 지역 출신이었고..
그가 이 곳으로 오기 전에 담당자로 있다가 본사로 들어간 팀장 역시 그 쪽 사람이었다.
(이 곳에는 유난히도 그 쪽 출신들이 많았다)
내가 올해 초 이 곳으로 올 때 내 전임 소장은 이미 도망치다시피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간 상태여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인수인계를 못 받아 그냥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하나, 둘 찾아서
예전부터 해오던 양식대로 거의 60여 가지에 달하는 각가지 서류와 업무 일지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S'사 본사에서 점검 나온 친구가 나 없는 지난 화요일 왔다가 가면서..
몇 몇 잘못(?) 되었다고 지적 당한 것을 지금의 기술팀장에게서 전달을 받았는데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무슨 노동부에서 요구하는 '노무서류'도 아니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가 우리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매월 4가지 11번의 교육을 실시한다) 자료 양식이
다른 곳도 아닌 '전주점'과 똑 같지 않으니 올 1월분부터 전체를 새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미친 넘들이 다 있나..?? 쩝!'
그러면서' 뻑'하면 하는 말이 자신이 근무하던 전주점의 양식이 다 옳다고 한다.
내가 알기론 'S'사엔 4개의 총괄팀이 있고 그 각 각의 팀들이 지역적으로 적당히 나누어서
전국의 점포들을 관리 감독하고 우리는 그 중에 '4총괄팀'에 속했다.
각종 업무 일지며 서류라는 게 마치 '배추장사'를 방불케 하는 조잡한 것들을..
내가 가는 곳마다 몇 몇 가지는 새로 만들어 사용했었고 잘 만들어진 것들은 다른 곳으로 옮길 때 마다
응용해서 쓰거나 지역 특성에 맞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는데
'통영'이나 '파주'에서 무슨 소리를 듣기는 커녕 오히려 잘 만들어 잘 정리했노라고..
칭찬을 들은 것들을 두고 오로지 자신들이 근무하던 '전주점'과 똑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괜한 생트집을 잡는 것 같아서 무척 기분이 언짢았다.
자치자종을 전해 듣고는 우리 본사의 관리 이사 역시 분통을 터뜨렸지만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
우리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약(弱)자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서류상 도급관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위에 있어서 '수평'의 관계일 뿐..
주종(主從)같은 '수직'의 관계는 결코 아닐 것인데 이 넘들은 대놓고 '2차 밴드'인 우리 회사와
나를 괜한 트집을 잡고 씹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이지 어떤 때는 막말로 목구멍에서 똥물이 다 올라올 지경이다.
젊은 사람들 비위 맞춰 가면서 먹고 살려니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겠지만..
때로는 참고 견디기가 힘이 들 때도 많았다.
옛날 영호남을 오가며(특히 대전 시내서 유흥업소를 할 때) 숱한 호남 선배와 친구와
후배들을 겪으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뒤틀리는 듯한 감정을 요 몇 일 사이 심하게 느껴야만 했다.
'제기랄~ 대가리 털도 덜 벗겨진 넘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속상해 하다니... 쩝!'
그러면서도 몇 일째 밤 늦도록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 많은 '교육일지'들을..
원하는 것처럼 새로운 양식으로 모두 다시 만들어야만 했다.
될 수 있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상처 입지 않고' 세상을 살 일이다.
첫댓글 상처는 영혼을 메마르게 하죠.희망을 버리고 나니 매마르지만....그래도 조금은 평화가 오더이다.삶의 여정이 길수록 기쁨보다는 절망과 괴로움이 크더이다.그래도 모진것이 목숨인지...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읍니다.남들이 보기엔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지만..아닌척하며 사는 고통을 아실런지요.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