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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
칠장사는 칠현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신라 7세기 중엽에 자장율사에 의하여 개기하였다는
사찰로서, 문헌에 보면 사찰이 번창할 때는 건물이 대웅전을 비롯하여 총 56동 건물이 있
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칠장사에는 국보, 보물급 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
로 11세기경 혜소국사가 7악인을 제도한 고사에 따라 산이름을 7현산(七賢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칠현인이 오래 머물다 하여 칠장사로 명하였다.
특히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역사 소설의 일곱 도적과 병해스님 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47대 협안왕 서자인 궁예가 13세까지 칠정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활연
습을 한 활터가 남아있고,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칠악인이 칠현인으로 제도된 일곱현
인을 화신인 나한전는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리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전해지며, 당시의
과거 시제인 "몽중등과시" 의 현장이며 옛날에는 과거 시험에 장원을 꿈꾸던 선비들이 많
이 찾았고, 현재도 수험생 자녀를 둔 사람들의 공양이 많이 있는 곳이다.
사찰 주위로 숲이 우거져 경관이 화려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특히 칠장사 주변
에 있는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대나무 수공예품 만들어 왔는데 이 공예품들이 좋은 관광상
품이 되고 있다. 칠장산은 높이 492m의 낮은 산인데 아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
다. 기슭에는 칠장사가 있고 절 주변에는 울창한 숲이 둘러싸여 있어 경치를 즐기며 가벼
운 등산을 하기에 알맞은 산이며 특히 가을단풍이 절경이다.
칠장사 부도군
향토유적 제29호
육각형의 지대석 위에 다시 육각형 돌을 얹은 듯한 형태인데, 전부 하나의 돌로 만든 것입니다. 이 하대석(下臺石)에는 안상(眼象)과 연꽃이 새겨져 있으며, 기둥돌 괴임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는 또 육각형 기둥과 상대석(上臺石)을 얹었습니다.
칠장사 철당간
유형문화재 제39호
당간이란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는 장엄용 불교 용구인 당(일종의 깃발)을 달기위한 깃대를 말한다. 칠장사에서 약 200m앞쪽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주는 동서방향의 장축을 지닌 기단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은 모두 3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지주는 상면 바깥의 모를 죽여 둥글게 처리하고 그 위로 1조의 종선(縱線)을 표현한 것외에는 장식을 하지 않았다. 당간과의 연결홈은 상하로 두개를 마련하였는데, 위쪽의 간구(竿溝)는 지주의 상면에 장방형의 홈을 파서 당간의 넷째마디바로 밑에서 지주와 연결되도록 시설하였고 아래쪽의 간공(竿孔)은 지주의 안쪽면에 방형 구명을 뚫어 지주와 연결하도록 하였다. 당간은 원래 30개의 원동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4개의 원통이 남아있으며, 제일 아래칸은 길이 68cm, 지름 45cm의 원통으로 하단에 각 칸간 연결을 위한 폭 6cm의 반구형 마디를 마련하였다. 4번째 칸의 경우는 지주와의 연결을 위해 상하로 마디를 두어 마디 두개가 서로 연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각 마디위로는 1조의 양각선을 횡으로 둘렀다. 9번째 칸과 12번째칸에는 각각 「十正」, 「十一」의 명문이 세로로 양각되어 있다.
칠장사 일주문
칠장사 사천왕문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시도유형문화재 제115호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칠장사(七長寺) 사천왕문의 좌우에 2구씩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불가의 신으로 본래는 인도의 민간신이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도량과 불법을 수호하는 일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사천왕상은 진흙으로 만든 뒤 채색한 것으로, 악귀 위에 걸터 앉아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있고 얼굴에는 짙은 눈썹, 부릅뜬 눈, 오똑한 코, 수염이 있는 입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사천왕상이 그러하듯 험상굿거나 무섭기보다는 해학적이고 친근함을 준다.
각기 창·칼·비파 등을 들고 있는데,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 다리를 벌리고 앉은 모습 등은 당당하고 위엄에 찬 자세이다. 치밀한 무늬의 갑옷과 옷자락의 표현은 정교하며 원래의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천왕문이 세워진 영조 2년(1726)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각 부분의 조각수법에서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칠장사 범종각
칠장사 누각
칠장사 석탑
칠장사 홍제관
칠장사 요사채
칠장사 요사채
칠장사 종무소
칠장사 삼층석탑
이 석탑은 원래 죽산 옛 사지에 각 부재 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일죽면 죽림리 460번지 성원목장에 복원한 것을 2005.11.28. 칠장사로 이전 설치한 것이다.
유형문화재 179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재질은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전체 높이가 363cm이고, 지대석은 가로 171cm, 세로 140cm이다.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의 석탑으로, 중대석은 각 면을 1식으로 마감하고,
갑석은 1판석에 옥신괴임을 2단으로 둥글게 처리하였다. 1층 탑신은 2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면에 둥근 고리(문비)를 탑몸돌[옥신 : 屋身]에는 양쪽에 모서리기둥 [우주 : 隅柱]을 조각하였다. 2층 이상의 탑신은 1층에 비해 체감률이 급격히 줄어 심한 체감비례를 보이고 있다.
칠장사 당간지주
안성봉업사석불입상
보물 제983호
이 불상은 원래 죽산면 봉업사 터에 있었던 것을 죽산중학교에 옮겼다가 다시 칠장사로 옮긴것으로 입상과 광배가 동일석으로 조성된 것이다. 봉업사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 없지만 고려 태조의 초상화를 봉안하였으며 공민왕이 참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위에 큼직한 육계가 있고 눈, 코, 입은 마모가 심하여 전체적인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원만하다. 양쪽 귀는 길게 표현되어 어깨에 닿을 듯 하며 목의 삼도와 어울려 위엄을 자아낸다. 통견 법의의 옷주름은 여러 겹의 원호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치마옷이 양 다리 사이에서 지그재그 모양을 이루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부분까지 들어 손바닥을 가슴에 붙이고 있으며 왼손은 내려 자연스럽게 법의자락을 잡고 있다. 전체적인 신체 표현에 있어서는 손이 비교적 큰 편이기는 하나 머리, 어깨넓이, 등의 신체비례가 좋은 편이다. 광배(光背)는 두신광 (頭身光)의 거신광(擧身光)으로 주위에는 꽃무늬를 두르고 있고 이중 테두리의 주광과 신광에는 아무런 바탕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으며 단지 두광에 여러가지 모양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 화불 (化佛) 3구(軀)가 배치되어 있다. 광배의 뒷면은 아무런 조각이 되어 있지 않은 평평한 판석이다. 당당한 어깨, 발달된 신체표현, U자 형의 유려한 옷주름, 그 밖의 조각기법 등으로 미루어 이 불상은 고려시대 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방 불상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
칠장사 대웅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 없으나, 조선후기에 세워져 몇 차례 중수를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에 다포계(多包系)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건물입니다. 기단은 장대석을 5단으로 쌓은 것이고, 주춧돌 위에 약간의 배흘림을 준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내부의 구조는 고주(高柱)를 세우지 않고 대들보가 앞뒤의 기둥 위에 막바로 걸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정은 빗반자와 우물천정으로 하였고 불화와 연꽃무늬 등을 채색하였습니다. 칠장사 대웅전 칠장사 대웅전 현판 칠장사 대웅전 칠장사 대웅전 범종 대웅전 안에 모시고 있는 범종으로 전체 높이가 120cm, 밑둘레는 220cm, 밑지름은 76cm, 밑두께는 6.5cm의 크기입니다. 종신부(鐘身部)에는 정조6년(1782)의 제작연대와 시주자의 이름인 이언충(李彦忠)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上帶) 대신에 원좌(圓座) 안에다 범어 8자를 조각하고 그 밑에 유곽 4개와 원형 두광이 있는 보살입상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하였습니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내놓고 입에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의 용뉴가 올려져 있은데 이 옆에는 지름 2cm의 둥근 구멍이 있습니다. 칠장사 명부전 일곱 도적과 병해스님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역사 소설의 일곱 도적과 병해스님 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47대 협안왕 서자인 궁예가 13세까지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활연 습을 한 활터가 남아있다. 칠장사와 7악인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넓혀 세웠는데 ‘칠장사’와 ‘칠현산’이라는 이름도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선하게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명부전내의 지장보살상 칠장사 원통전 원통전내의 관세음보살상 칠장사 혜조국사비 보물 제488호 높이 비신 227cm, 너비 127cm. 현재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首)가 분리된 채 보관되어 있다. 귀부의 머리, 꼬리부분, 4개의 발은 모두 파상무늬[波狀紋]로 장식되었으며 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무늬가 새겨져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에는 복련(伏蓮)이 돌려져 있다. 비신은 중간부분이 절단되는 등 파손이 심하지만 글자는 선명한 편이며, 양 옆면에는 큼직한 보주(寶珠)를 사이에 두고 유희하는 쌍룡이 새겨져 있다. 상단에는 '증시혜소국사비명'(贈諡慧炤國師碑銘)이라는 제액(題額)이 새겨져 있고, 하단에는 혜소국사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비문의 내용은 김현(金顯)이 짓고 글씨는 민상제(閔賞濟)가 썼다. 이수에는 운룡(雲龍)이 양각되어 있는데 용의 비늘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비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며, 비문에 의해 1060년(문종 14)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년작이다. 혜조국사비 혜조국사비 칠장사 나한전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7악인이 7현인으로 제도된 일곱 현인의 화신인 나한전은 어 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라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전하며 당시의 과거시제인 '몽중등과시 (夢中登科時)'의 현장이다. 시험 합격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 칠장사 산신각 칠장사 찾아가는 길 안성으로 오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우선 경부고속도로 안성톨게이트가 있고 중부고속도로 일죽 톨게이트가 있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안성 시가지를 지나 25분 달리면 죽산면 소재지가 나오고 중부고속도로의 경우 안성방면 38국도를 타다가 진천 방면 17번 지방도로에서 우회전하면 4㎢ 정도 지나 칠장사 입구가 보인다.
칠장사 해우소
첫댓글 언제라도 가면 편안하게 나를 반겨줄 것 같은 칠장사............
인연이 닿아 이번이 세번째 순례길이었는데..10여년전보다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생각은 옛것에 메달려 아쉬움이 조금 남겨집니다.. 그래도 참 좋았습니다..()()
고즈녁하고 아담한 사찰 칠장사는 언제 들려도 좋은 절이더군요.
삼층석탑이 미완성 석탑으로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