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행기는 지난 2004년 10월 24일 고향 오정산에 동남대 팻말을 세우고
19회 심마니(김창훈)이 신기산우회 카페에 5회에 걸쳐 연재한 산행기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뱃나들이 본 연재물을 한 마당으로 볼
수 있도록 재 구성을 해 보았습니다. 사진도 몇 컷 넣었고요. 물론 심마니의
허락은 받지 않았습니다.
산행
전날(9월 23일) 큰형님 댁에서 여섯 남매가 모여 조촐한 송별회를 가졌다.(회사
일로 29일 멀리 경남 양산으로 이사 가는 막내를 위한 자리였다). 나는
24일 산행을 위하여 일찍 집에 들어가 아홉 시전에 취침을 할 계획이었는데
일곱 시 반경에 둘째 누나가 모 식당으로 나오라고 해서 가봤더니 둘째
형님을 빼고 모두 모여 있었다.(집안 족보 다 나오는데 우리는 4남 3녀
중 내가 여섯째다. 밑은 남동생) 거기서도 산행을 위한 생각에 권하는
술도 사양했다. 자리가 끝나서 얼른 집에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큰 형수님이 차 한잔하게 집으로 가자고 하셔서 할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괜히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혼자 튈 필요가 있겠어?)
말이 그렇지 차를 마시겠냐 술을 마시게 되지. 술도
좋은 걸로 마시는데 옆에서 안 마시고 있으려니 아주 고문이 따로 없더구만.
쉬고 싶은 내 심정은 몰라주고 자리가 왜 그리 길어지냐? 동생을 위한
자린데 갈 수도 없고... 파장을 위하여 여러 차례 시도를(?) 했더니
그제야(그게 밤 열두 시다) 모두 일어서게 되었다. 집에 와서 자려니까
잘 때를 놓쳐서 그런지 잠도 금방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가 잠든 후
깨어보니 새벽 네 시였다. 아마 산에 가려고 들뜬(?)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그때부터 운동도 좀 하고 하면서
준비를 마치고 군포에서 5시 50분에 전철을 탔다. 저번 오정산 산행
때 늦게 가서 현영희(7회) 선배님께 뒈지게 욕먹은 기억이 악몽처럼
떠올라 일찌감치 출발을 한 것이지.(나도 재범이 죄가 더 크다는 것은
아니까) 6시 30분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가보니 역 광장이 없어져버렸다.
교통문제때문인지 택시 길이 나 있었다. 헤매고 있는데 진오가(아들
기훈이와 친구 정진영) 저 만치 오고 있었다. 같이 찾다가 보니까 도기홍(10회)
선배님을 만나서 차가 주차된 곳을 알 수 있었다. 다 모이고 보니까
7시 출발 예정시간 보다 10분이나 더 늦어 있었다. 군자역을
향해 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의숙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딘 데
아직 안 오냐고, 선배님들이 빨리 안 온다고 난리란다. 나는 1분 후면
도착한다고 사기를 치고 전화를 끊었다. 의숙이도 1%만 믿었겠지만.
도착하니 우리 동기인 의숙이와 수연이를 포함하여 14명이 나와 있었다.
군자역에서 모두 타니 전체 인원이 30명이었다. 박정혜(9회) 선배님은
산행에 동참 못 하신다고 회장님(4회-정천도)께 찬조금 5만원을 전달하시고
가셨다. 일부러 거기까지 나오셔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심은 진심으로
신기 산우회를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니겠냐? 차는 출발하여 싸 간 아침을
먹기 위해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2부로 넘어간다.
간신히
산행기 2부를 적어서 올리다가 컴퓨터 오류로 다 날아가 버렸다. 다시
적을려고 하니까 정말 허무해서 하기가 싫어진다. 만남의 광장에 도착해서
각자 볼일을 보고 차안에서 단체로 준비해간 아침을 먹었다. 콩나물과
나물무침, 김치와 북어 조림이 반찬의 전부였지만 정말 맛있었다.(내가
손으로 반찬을 퍼줘서 내 손맛인가?)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어서
버릴 때는 접시와 젓가락만 버리면 되었다. 시간을 아끼느라 서둘러
아침을 마치고 광장을 출발하였다. 처음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해서 신용호(13회) 선배님이 자기 소개의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모두들 일상적인 자기 소개를 하고 김은희(25회) 후배의 차례가
되었다. 9월 달에 참석한 친구들은 알겠지만 은희는 이번이 두 번째라
회장님(정천도-4회)과 문영식(9회), 신일섭(13회)선배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만 구면이다. 앞에 나가 침착하게 자기를
잘 알리고 있다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게 아니겠냐? 제 딴에는 나를 안다고 얘기하려고 한 말 같았는데, 차안에서는
웃음이 터지고..."돈 거두시던 분은 알고..." 그런데 그 말이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억양이나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돈 받는 놈
나쁜 놈, 뭐 이런 식으로 들리더라 이거야. 아마 말속에 적개심도 조금
포함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표현을 은희가 했을 뿐이지
동창들이나 선배님들께 회비를 거둘 때도 눈초리가 심상찮았던 것 같았어.
아 맞아 그래서 눈길을 마주치기 싫어 얼른 돈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에고, 내가 뭔 죄가 많아서 후배한테 주차요원 취급이나 받고... 그
날 종일 나는 기수를 잃고 돈 받는 사람으로 불려야 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버스는 막힘 없이 고향산천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차창밖에는 저 멀리 타는 듯한 단풍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새벽잠을 설친 대가는
충분할것 같았다. 그러면서 세무사이신 김화식(13회) 선배님께 내가
처리하지 못 했던 세금 문제에 대해 30여 분에 걸쳐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상담료를 주어도 이렇게 친절하고 자세히 알 수는 없을 거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진남 휴게소에 도착하고
잠시 섰다가 바로 출발을 하였다. 잠시 후 버스는 호계 연못을 지나가고
있었다. 옛날 학교 다닐 때도 동네까지는 몇 번 와봤지만 동네를 지나쳐서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었다. 가면서 보니까 사과와 감나무 과수원이
엄청 많았다. 감은 마침 수확을 하고 있었는데 과장을 조금만 한다면
애기들 머리통만큼이나 큰 것들이었다. 산밑에
도착하니 고향이란 식당을 하시는 13회(한정상) 선배님이 동남대 팻말과
모레, 물 등을 준비해서 미리 와 계셨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십자가(?)
기둥은 내가 메고 부속은 김화식 선배님이 들으시고 진오는 배낭에 시멘트와
모레 섞은 것을 넣고 수현이는 스치로폼 박스로 만든 밥통과 의숙이
배낭을 메고 물은 모두가 나누어 넣고..... 만반의 준비가 갖춰지자
우리는 산으로의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아까는 하산 전까지 적었는데
혹시 모르니까 여기까지 2부로 하겠다. 3부에서 다시.....
산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아예 길이 없다시피 하였다. 답사를 다녀오신 현영희(7회),
신일섭(13회) 선배님이 리본을 매어 놓으셨는데도 길 찾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진오가 딴에는 고향 뒷산이라고 길을 찾아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줄줄이..... 들고 메고 이 건 완전히 밀림 탐험대의 원주민 짐꾼들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16회 선배님(김영숙-의숙이 언니, 이도형) 두 분은
뭐가 좋은지 차에서도 붙어 앉아 오시더니 여기서도 착 달라붙어서(?)
동기애를 과시하더군. 김영숙 선배님이 가끔 오시는 것 빼고는 16회는
참석을 하시지 않았는데 그 날은 김영숙 선배님이 한 분을 엮어서(?)
기분이 마냥 좋으셨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두들
그렇게 조금씩 올라가다가 힘들면 아무 데나 자빠져서(죄송 ㅎㅎ) 쉬고.....
그런데 화물차에도 짐을 긴 것을 실으면 끝에다가 끈을 매달아 최소한의
안전 표시를 하던데 내가 지고 가는 기둥에는 그런 게 없어서 조금은
불안했다. 그래서 가끔씩, 뒤에 오시는 분은 조심하시라고 안내 방송을
했는데도 사고가 나고 말았다. 김화식 선배님이 기둥에 머리를 받히신
것이다. 괜찮다고는 하시는데 많이 아프셨을 거다. 사실
안전거리 미확보의 책임도 조금 있으시겠지만 어쨌든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기둥을 계속 메고 가려니 힘은 조금 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교대할
인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현이가 교대 좀 해줄까 묻는데 모처럼
온 놈 부려먹었다가는 산에 정나미 떨어졌다고 다신 안 올 테고 진오도
배낭 무게가 좀 있을 것 같고, 나머지는 모두 노인네와(?) 치마들(ㅋㅋ)
뿐인데 차마 입이 떨어지겠냐. 아, 딱 한 사람이
있기는 했었는데...! 이도형(16회) 선배님이 나이도 그런 대로 젊고
힘도 꽤 쓰실 것 같아 보였다. 떠넘기려고 보니까 그 선배님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듯해서 안 되겠더라고. 16회가 어디 야유회 나온
걸로 아시는지 김영숙 선배님과 산추도 따시면서 뭐가 그리 좋으신지
싱글벙글 도무지 입을 못 다물고 계시는데 눈치 없이 후배가 분위기
초를 칠 수야 없지 않겠어? 내 후배라면 점잖게 한 마디 해줬겠지. "어이,
침 좀 닦고 이거나 교대 좀 하지" 그래도 힘든지 모르게 올라 간
것은 이쁜 은희가 앞에서 자상하게(?) 신경을 많이 써 줘서 그랬던 것
같았다. 앞에 가다가 가시나무가 있으면 제쳐주고
따가우니까 조심하라고 그러고... 우리 동기들은 이산가족 된 지가 벌써
옛날인데 이쁜 후배 하나가 열 동기 안 부럽더라.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벌써 오후 1시가 훌쩍 넘어서 있었다. 마땅히 점심을 먹을만한 평지가
없어서 계속 가고 있는데 뒤에선 아줌씨들이 징징(?) 거리며 소리치고
난리다. 그런 상태로 한참을 더 올라가니 동남대가 올려다 보이는
곳에 평지가 나타났다. 우리는 태을이가 오지 않아 넓은 밥상이 없었던
관계로 보자기까지 동원하여 자리를 어렵사리 만들었다. 산에
가 본 친구들은 잘 알겠지만 산에서 먹는 밥맛은 정말 기가 막히지.
이 재미에 산에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후배간에 막걸리와
소주를 나눠 마시며 가지는 이 시간은 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 이수환(10회)
선배님은 약 밥을 두 그릇이나 싸 오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이 거의 끝나고 나와 몇 분만 앉아서 먹고 있다가
얼핏 보니 문영식(9회) 선배님이 동남대 기둥을 둘러메시는 게 눈에
띄었다. 내가 벌떡 일어서며 "어~~어!" 하고 있는데 "창훈아
수고했다 이제 내가 메고 갈 테니 천천히 먹고 와라" 하시는 게
아니냐.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것이 잠시 후에 현실로 나타날
줄이야. 4부 완결에서 하산과 귀경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저번 주 목요일(4일) 새벽 1시가 되어서 산행기를
모두 마치고 등록하기를 클릭했더니 등록하고 있습니다란 글이 나오는데
깜빡깜빡 거리는 게 조짐이 좋지 않더니만 예상대로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열을 받던지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버려서
아직까지 마무리를 하지 못했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지... 그렇게
팻말을 도둑(?)맞고 이제 급할 것도 없다 싶어서 천천히 뒷정리를 하고
내 배낭을 챙기려는데 은희가 벌써 내 돗자리를 잘 접어서 가지고 왔다.
음~~! 역시~~! 고마우니까 다음 산행 때는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지
말해 회비 한도 내에서 팍팍 쓸 테니까. 나 돈 거두는 사람이잖아 흐흐흐~
오늘따라 쓰레기도 무척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밥통으로 가져온 스치로폼
박스에 꼭꼭 눌렀는데도 한 가득이다. 뚜껑을 덮고 끈으로 꼭 졸라 맨
것까지는 좋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들고 갈만한 사람이 없어 보였다.
벌써 다 올라가고 아녀자들 몇 명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내가 계산한
것은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한 10분 정도만 더 팻말을 지고 가서 땅에다
생매장 시켜버리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었는데..... 내 계산이 물거품이
된 것은 모두 문영식(9회) 선배님 탓이다. 물론 나를 생각해서 그러셨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아주 웬수다 웬수. 그렇게 궁시렁 거리면서 박스를 들고
일어서려는데 박의 속살처럼 하얀 손이 눈앞에 나타났다. 뭔가 하고
바라보니 현진희(14회) 선배님이 끈을 맨손으로 들면 손이 아프다면서
끼시던 장갑을 한 짝 내밀고 계셨다. 얼굴 이쁜 사람이 마음도 예쁘다는
나의 삶의 철학이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껴졌다.(장갑 한 짝에 아부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지는 말기 바란다. 정말 내 진심이다)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터덜터덜 올라가니 벌써 팻말을 세우느라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다. 회장님을 비롯하여 선배님들 모두가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자기가 맡은 역할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가 좋았다.
팻말을 다 세운 후, 우리는 한 차례 기념 사진을
찍고 다시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을 거쳐 그 옆에 있는 헬기장으로
가서 준비해간 제상을 동남대를 향하여 차렸다. 동남대나 정상은 절벽이라
자리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신일섭(13회) 선배님이 준비해 가신
제문을 읽고 절을 세 번씩(삼세번이라서 그런 줄 알았더니 산 제를 지낼
때는 세 번씩 하는 거라더군) 하고 제를 모두 마쳤다. 음복주를 한 잔하는데
현진희 선배님이 손수 젓가락으로 먹여 주시는 오징어(문어?)는 도대체
왜 그렇게 맛이 좋은지(하긴 뭘 주신들 맛이 없겠냐. 요놈들 아마 무지
부러울 거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나고 하산 시간이 되자 조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헬기장에 도착하면서
잔머리를 조금 굴렸거든. 내려가는 입구 길목에 쓰레기통을 두면 혹시
누가 먼저 들고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구 잘 보이는 곳에다가 통을
두고 왔잖냐. 밍거적 거리다가 후미에 붙어서 입구로 가 보니 저 만치에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고 있었다. 혹시나가 역시나지 하면서 가까이 가
봤더니, 정말 무섭다 무서워. 누가 쓰레기를 덤으로 올려놓았는데 친절하게도
바람에 날릴까봐 끈에 꼭 끼워 놓은 게 아니겠냐. 들고 가지는 않을망정
도대체 누가 이렇게 했냐며 투덜거리고 있는데 뒤에서 "내가 그랬다
임마" 하길래 잽싸게 돌아보았더니 회장님이 별로 크지도 않은
눈으로 그래서 어쩔래 하는 식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어~~휴 내가 미치고
말지 사사건건 시비시니... 복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다 생각하며 털레
털레 내려가는데 저 만치에 두 사람이 패잔병 같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갔더니 고재호(9회) 선배님과 의숙이였다. 그런데
보니까 의숙이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어느 쉐이가 환자한테 배낭을
맡겼어 하고 소리치며(나 혼자 속으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진오
아들이 발목을 다쳐서 자기가 메었단다. 아무리 음식을 먹은 배낭이라도
의숙이 한테는 힘들거라 생각하며 옆을 힐끗 보니 고재호 선배님은 맨몸이었다.
그 다음은 자동으로... 알지? 그렇게 맨 마지막에서 사이 좋게(?) 내려
가다가 신일섭 선배님을 만나 넷이서 무사히 버스가 기다리는 문경대학까지
내려 올 수 있었다. 인원 점검을 마치고 신기에 있는 고향집이란 식당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출발했다. 너무 많이 쓰면 날아 갈지 모르니까 여기서
4부 마치고 5부에서 완결해야겠다.
고향식당에
도착하니 (영선, 홍근)부부와 동영이가 와 있었다.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아 미리 준비 해놓은 저녁을 먹으며 많은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데 문경시청에서 약(상황 버섯
술)을 2박스 보냈다고 한다. 우리의 이번 동남대 프로젝트는 대외비라
버스도 레이다에 걸리지 않게 특수 제작한 것으로 준비를 했는데 어떻게
기밀이 누설되었나 모르겠다. 아마 문경시청 서울사무소 정보국(?)의
김영숙 씨가 보고를 하지 않았나 하고 예상할 뿐이다. 동남대
건은 제지를 못 했으니까 작전에 투입된 재경 산우회 대원들(?) 만이라도
전멸(?) 시키려고 약을 보냈을 거다. 그러나 문경시는 우리가 약에 무지
강하다는 것을 간과한 탓에 그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차가 출발하고
내가 신청 곡을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운전석 뒤에 첫 자리에 내가 앉고 그 옆 첫 자리에는 회장님이 앉으시고,
내 뒤에는 남춘순(7회) 선배님이 회장님 뒤에는 현영희(7회) 선배님이
각각 자리를 잡으셨다. 그런데 7회 선배님 두 분이 뭔가 심통이(?) 잔뜩
나셔 갖고 뒤로 벌러덩(죄송) 누우시더니 서로 상대방 의자 팔걸이에
두 다리를 걸쳐 놓으시고 지나 갈려면 통행세를 내고 다니란다.
이거야 원 더러버서.....! 원로(?)들께서 꼬장을
부리시니 뒤에 쫄다구들은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 있는 형편이고 바로
앞좌석의 회장님도 안 끼어 드는게 상책이다라는 식으로 도를 닦으시려는지
갑자기 눈을 감으시고... 어찌어찌 하다가 두 원로께서 바리케이트를(?)
치우시자 분위기는 급반전 되고..... 원래 태을이와 동기가 전문으로
했던 것을 그 날은 진오가 병권을 잡고 수현이가 안주를 들고 따라다니며
서빙을 시작했다. 내가 노래 신청 곡을 받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시간 단축을 위해 앵콜 신청을
받을 자신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두 곡을 신청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이 건 개나 소나(너무 심한 표현이라고? 새겨 들어) 전부 두 곡씩을
신청하니 난리가 났다는 거 아니냐.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그러면서 홀깃 보니 진오와 수현이는 약병과 안주를 들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더라.
수현이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능청스럽게 진오와 보조를 잘
맞추고 다녔다. 신청곡이 거의 끝나갈 무렵,
문경시청에서 우리를 제압하기 위해 보낸 약이 약효를 보이기 시작했다.
쥐가 약을 먹으면 이리저리 미친 듯 돌아다니듯이 우리 일행들도 먹은
약 때문에 괴로운지 하나 같이 일어서서 몸부림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약이 모두 바닥나자 그제서야 발작(?) 증세가 서서히 멈추는지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역시 두 박스로 우리를 보내기에는 무리였고
한 박스만 더 보내 줬더라면 몰살(?)도 가능했을 텐데... 문경시청에서
이번 실패의 원인 분석이 끝나면 앞으로는 최하 세 박스는 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노라니
버스는 벌써 서울로 진입하고 있었다. 각자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서울역에서
회장님과(4회-정천도) 신일섭(13회), 신용호(13회) 선배님 그리고 나
넷이서 모범택시를 타고 중동 재점이네 집 옆에 있는 순천향병원으로
3회 권순열 선배님 모친상에 조문을 갔다. 권순열 선배님은 아는 친구들이
꽤 있지? 초창기에 남동 공단에 있는 선배님 공장 견학하고 부천에선가
메기 매운탕을 얻어먹었잖아. 빈소에 갔더니 권순열 선배님은 안 계시고
권순용(8회) 선배님이 우리를 맞으셨다. 권순용 선배님도 초창기엔 산에
가끔 잘 나오셨고 사무실도 안양에 있어서 술도 개인적으로 몇 번 얻어
마셔서(색깔 있는 걸로) 꽤 친하게 지냈었다. 우리는
북어국으로 속을 달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오래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세 분은 한 차를 타고 서울로 가시고 나 혼자 군포로 돌아오니
밤 1시가 넘어 있었다. 새벽부터 강행군이었지만 크게 피곤함은 느끼지
못했다.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들이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11월은 하남시의 검단산이니까 많이 참석해서 뜻 있는 하루 보내보자.
덧붙여 25일 용산에서 있는 송년회에도 얼굴 한번 씩 내밀어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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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야!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훨씬 보기가 좋군요.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선배님이 직접 하시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