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시작된 흑인 해방 전쟁… ‘바그너 요새 전투’에 참전한 흑인 부대
차별·편견 이겨내며 오합지졸 모습에서 강한 병사로 거듭나는 과정 그려
영화는 전투에 참가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려는 흑인들의 갈망과 이들에게 참전의 기회를 주려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백인 지휘관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흑인 해방 전쟁이라 불리는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은 농업 중심의 남부와 공업 중심의 북부가 싸운 전쟁이다. 1861년 4월 12일 남부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는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으며 1863년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벌어진 전투를 포함, 크고 작은 전투들이 있었다.
흑인 참전 불가능했던 전쟁
하지만 흑인 해방 전쟁임에도 정작 흑인들은 참전할 수 없었다. 흑인이 참전할 경우 전쟁 후 흑인의 지위에 대한 변화 등 미국 내외의 복잡한 정치 사회적 요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2년에 흑인 참전이 허용됐으며 흑인들로만 구성된 매사추세츠 54보병연대가 처음으로 결성됐다. 1863년 7월 18일 이들 54연대는 난공불락이라 일컬어지는 남부군의 바그너 요새(Ft. Wagner)를 공격할 때 선봉에 섰다. 연대장은 25세의 젊은 백인 대령 로버트 굴드 쇼(Robert Gould Shaw). 그의 지휘 아래 600여 명의 흑인 병사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비록 요새를 탈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군인으로서 강한 전투력을 보여줘 흑인 부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데 크게 기여했다.
편견에 맞서 성장하는 54보병연대
흑인으로 구성된 54보병연대의 바그너 요새 전투를 그린 영화가 ‘영광의 깃발(Glory)’이다. 영화는 매사추세츠 54보병연대의 창설 과정과 쇼 대령이 신참 초급장교에서 지휘관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노예 근성의 흑인들이 군인으로서 성장하는 모습, 전쟁에 헌신하려는 흑인들의 용기를 그리고 있다. 군인으로서 전투에 참가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려는 흑인들의 갈망과 이들에게 참전의 기회를 주려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백인 지휘관의 모습이 잘 표현돼 있다.
주인공 쇼(매슈 브로데릭)는 보스턴에 사는 부유한 노예폐지론자의 아들로, 23세에 남북전쟁에 참전해 전상을 입는다. 이후 그는 대위에서 일약 대령으로 진급하면서 최초로 흑인 군인들로 창설되는 54연대의 연대장으로 발탁된다.
쇼 대령은 군 지휘부가 군화와 군복의 지급을 꺼리는 등 흑인들의 전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는 흑인에 대한 상부의 편견과 싸우는 한편, 흑인들의 냉소와 불만을 잠재우며 부대를 이끌어간다. 흑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과 차별에 눈뜨면서 그들의 용기와 열정을 이해하고 공감해 가는 것이다. 사실 상부에서 54연대에 기대하는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싸우는 백인 군인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쇼 대령과 54연대의 흑인 병사들은 바그너 요새 전투의 선봉에 선다. 이 전투에서 54연대는 쇼의 지휘 아래 적진을 향해 돌진하며 600여 명의 부대원 중 절반가량이 전사하거나 다친다.
전쟁영화면서 흑인 인권영화이기도
영화의 메시지는 원제 ‘영광(Glory)’이 말해 주듯 군인으로서 명예와 영광이다. 흑인 자신들의 운명을 백인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자긍심과 이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려는 흑인의 진정성과 간절함이 영화 전편에 녹아 있다.
그래서 영화는 전쟁영화이면서 흑인 인권 영화이기도 하다. 흑인이기에 겪는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없애자고 하는 흑인 해방 전쟁에서도 흑인부대이기 때문에 겪는 이중의 편견과 차별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한 흑인들이 군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지급 받은 총으로 병정놀이를 하는 오합지졸의 모습에서 강한 전투력을 갖춘 병사로 거듭나는 훈련 과정과 인종을 뛰어넘은 3명의 우정, 열등감과 백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흑인 병사 간의 대립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격전을 앞두고 병사들이 흑인 특유의 노래에 맞춰 주기도문을 돌아가며 외우는 장면과 선봉에 서서 진격하는 마지막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다.
모건 프리먼 등 스타들 30년 전 연기 볼만
감독은 ‘가을의 전설’ ‘커리지 언더 파이어’로 알려진 에드워드 즈윅이다. 덴절 워싱턴, 모건 프리먼 등 현재 할리우드의 정상급 흑인 배우들이 나와 30여 년 전의 젊은 연기를 보여주며, 매슈 브로데릭도 젊은 백인 사령관 쇼 대령 역을 연기했다.
흑인 부대 결성 정식으로 인가하는 계기 돼
영화는 역사적인 사건과 전투들을 재현하고 있는데, 실제 매사추세츠 54연대는 바그너 요새 전투에서 연대장 로버트 굴드 쇼(1837~1863)를 비롯해 대대 병력 절반 가까이가 희생됐다. 그 뒤 북부 부대가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요새를 함락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의 용맹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미 의회는 흑인 부대의 결성을 정식으로 인가했고, 이후 흑인 18만 명 이상이 지원했다. 링컨은 이들 흑인들이 전세를 바꿔놨다고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