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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집 속집 제3권-심경 질의〔心經質疑〕
〈서문(序文)〉
서산(西山) 진 문충공(眞文忠公) - 이름은 덕수(德秀)이고, 자는 경원(景元)으로, 뒤에 경(景) 자를 희(希) 자로 바꾸었다. 건주(建州) 포성(浦城) 사람이다. 경원(慶元) 5년(1199)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키가 크고 이마가 넓으며 용모가 옥과 같아 모두 재상감으로 기대하였다. 몇 년 동안 조정에 있으면서 수십만 마디의 소(疏)를 올렸는데, 모두 세상일에 절실하고 합당하였다. 정직하다는 명성이 조야(朝野)에 떨쳤다. 관직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고,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
척(摭) - 《운회》에 “지(之) 자와 석(石) 자의 반절음이며, 줍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심경(心經)》 - 심학(心學)을 논한 경전이다. -
편(編) - 《운회》에 “죽간을 차례로 배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자주자(子朱子) - 묻기를 “진씨(陳氏)는 ‘앞에 자(子) 자를 붙인 것은 후학이 스승을 높이는 칭호이다.’라고 하였는데, 공자(孔子)의 앞에는 ‘자(子)’ 자를 붙이지 않은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한 번은 붙이고 한 번은 붙이지 않은 것은 또한 우연일 뿐이다. 이와 같은 부분은 그 의미를 세세하게 찾을 필요 없다.” 하였다. -
주(走) - 사마천(司馬遷)의 편지에 “태사공(太史公)의 우마주(牛馬走)”라고 썼는데, ‘종[僕]’이라는 말과 같으니, 자신을 낮추어 천하게 칭한 것이다. -
참교(參校) - 서로 참고하여 교정하는 것이다. -
만화(萬化) - 만물과 만사가 변화하고 응대하는 것을 이른다. -
체(體)와 용(用) - 대본(大本)과 달도(達道)이다. -
현미(顯微) - 현(顯)은 용(用)이니 상(象)이 드러난 것이요, 미(微)는 체(體)이니 이(理)가 은미한 것이다. -
지(底) - 음은 ‘지(至)’이며, 도달하는 것이다. -
이유(有以) - 이(以)는 까닭이란 뜻이다. -
함(陷) -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
익(溺) - 물에 빠지는 것이다. -
첨(忝) - 더럽힘이고 욕됨이다. -
주역(紬繹) - 주(紬) 자는 음이 ‘주(儔)’이다. 주(紬)는 뽑아낸다는 뜻이니 고사(故事)를 뽑아 차례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역(繹) 자는 다스린다는 뜻이고, 찾는다는 뜻이다. -
냇물을 막는 기둥[障川之柱] - 지주(砥柱)는 산 이름이다. 황하의 물줄기가 갈라져서 이 산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 산이 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다. ○묻기를 “인욕이 일어날 때 경(敬)으로 막으면 인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마치 기둥이 물 가운데 우뚝 서 있어 물결이 흔들어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옳다.” 하였다. -
지남차[指南之車] - 월상(越裳)의 사자(使者)가 길을 잃자, 주공(周公)이 남쪽을 가리키는 수레[指南車]를 만들어 주었다. -
촉유지감(燭幽之鑑) - 묻기를 “사람이 물욕에 빠지면 완고하고 우매하여 신령스럽지 못하므로,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경(敬)의 상태를 유지하는 공부가 지극하면 인욕의 사사로움으로 어지럽게 되는 일이 없어서 상면(上面)에 천덕(天德)이 있게 될 것이니, 이는 경(敬)이 행(行)에 있어서는 남쪽을 가리켜 주는 수레와 같고, 지(知)에 있어서는 어둠을 밝히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옳다.” 하였다. -
도(圖) - 지(地) 자 다음에 해석해야 한다. -
지(寘) - 음은 지(至)이고, 둔다는 뜻이다. -
검방(檢防) - 몸과 마음을 단속하여 물욕을 미리 막는 것이다. -
정민정(程敏政) - 자는 가근(可勤)이고, 휴령(休寧) 사람이다. 일찍부터 신동(神童)이라는 칭송을 들었고, 성화(成化) 연간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이 예부 시랑(禮部侍郞)에 이르렀다. 홍치(弘治) 연간에 회시(會試)의 시험관이 되었을 때, 화창(華昶) 등이 시험 문제를 팔아먹었다고 그를 탄핵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다. 조정에서 변론할 때, 화창 등은 말문이 막혀서 죄에 연좌되었고 정민정은 그대로 벼슬하다가 치사(致仕)하였다.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호는 황돈(篁墩)이다. -
〈심경찬(心經贊)〉
찬(贊) - 《운회(韻會)》에 “밝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형과 기[形氣] - 형(形)은 형질이고 기(氣)는 세속에서 ‘기운’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 형질은 음(陰)이고 기운은 양(陽)이다. 이는 드러나는 것을 먼저 말하고 은미한 것을 나중에 말한다. 그러므로 명(命)과 성(性)을 말할 때는 성을 먼저 말하고 명을 뒤에 말하며, 형(形)과 기(氣)를 말할 때는 형을 먼저 말하고 기를 뒤에 말한다. -
호요와 분치[好樂忿懥] - 묻기를 “《대학》에서는 분치(忿懥)를 먼저 놓았는데, 여기서는 호요(好樂)보다 뒤에 놓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운율에 맞추기 위해 선후에 구애하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나머지는 원집(原集)에 보인다. -
생근(生根), 성명(性命), 의인중정(義仁中正), 지급인수(智及仁守) - 모두 원집(原集)에 보인다. -
요(姚) - 순(舜) 임금의 성(姓)이다. -
사(姒) - 우(禹) 임금의 성(姓)이다. -
계구(戒懼)……시우(是憂) - 묻기를 “이러한 설은 후세에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항목이 아닙니까?” 하니, 답하기를 “그렇다. 그러나 인심과 도심을 하나하나 나누어서 설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계구(戒懼)는 천리를 보존하는 도리이니 도심에 속하고, 근독(謹獨)은 인욕을 막는 도리이니 인심에 속한다. 이하 여러 설 모두 그러하다.” 하였다. ○묻기를 “신계숙(申啓叔 신옥(申沃))과 김이정(金而精 김취려(金就礪))이 모두 ‘인심과 도심은 발현된 것을 가리켜 한 말이니 공부를 해야 할 것은 아니다. 근독(謹獨)도 오히려 인심이라 할 수 없는데, 하물며 계구(戒懼)는 미발한 시점이니 도심이라 할 수 있는가?’ 하였다.” 하니, 답하기를 “두 사람의 사색이 쉽게 여기에 이르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속(屬)’ 자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말하였다. 《중용》의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 부분의 장구(章句)에서 광대(廣大)ㆍ고명(高明)ㆍ온고(溫故)ㆍ돈후(敦厚)는 모두 존심(存心)에 소속시키고, 정미(精微)ㆍ중용(中庸)ㆍ지신(知新)ㆍ숭례(崇禮)는 모두 치지(致知)에 소속시켰으니, 이 〈심경찬〉에서 종류별로 나누어 해당시킨 것도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속(屬)이라는 말은 다만 ‘이쪽에 걸렸다, 저쪽에 걸렸다.’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니, 어떤 일을 딱 어떤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심학(心學)은 아무리 단서가 많더라도 총괄하여 말하자면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두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구(戒懼) 이하 여러 설에 대해서는 이발(已發)과 미발(未發), 공부하고 안 하고를 따지지 말고 인욕을 막는 일은 인심 쪽에 소속시켜야 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일은 도심 쪽에 소속시켜야 한다. 정임은(程林隱)의 〈심학도(心學圖)〉의 뜻도 바로 이와 같다. 그렇지 않다면, 서산(西山)이 어찌 굳이 극치(克治)와 존양(存養)에 번갈아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으로 총괄해서 종결했겠는가.” -
개극(皆克) - 개(皆) 자는 《성리대전(性理大全)》에 당(當) 자로 되어 있다. -
개광(皆廣) - 송(宋)나라 영종(寧宗)의 이름이 ‘확(擴)’이기 때문에, 피휘(避諱)하여 ‘광(廣)’으로 썼다. -
자량(子諒) - ‘자량(慈良)’으로 읽어야 하니, 《예기》에 나온다. -
일지(一指)……필변(必辨) - 원집에 보인다. -
극치존양(克治存養) - 묻기를 “극치(克治)는 인심에 소속되고, 존양(存養)은 도심에 소속됩니다. ‘극치(克治)’라는 글자를 보면,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은 인심을 인욕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인심이 비록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극치(克治)의 노력을 마땅히 여기에 쏟아야 한다.” 하였다. -
유차도심(維此道心) - 이 아래에 도심만 언급한 것은 도심이 주가 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
거두고 흩음[斂之散之] - 원집(原集)에 보인다. -
공벽(拱璧) - 두 손을 모은 것을 ‘공(拱)’이라 한다. 한 아름의 구슬은 구슬 중에 큰 것이다. -
선민(先民) - 선현(先賢)이라는 말과 같다. -
숙차(孰此) - 차(此)는 경(敬)을 가리킨다. -
작주(作州) - 주(州)는 천주(泉州)이다. 소정(紹定) 임신년(1232)에 서산(西山)이 두 번째로 천주를 맡아 다스렸다. -
비궤(棐几) - 비(棐)는 본래 ‘비(榧)’ 자로 쓰니, 무늬가 있는 나무이다. 《진서(晉書)》 〈왕희지전(王羲之傳)〉에 보인다. -
천군(天君) - 순경(荀卿)이 눈과 귀를 천관(天官)이라 하고, 마음을 천군(天君)이라 하였다. 천리는 마음의 주재자이므로 ‘천군’이라 한 것이다. -
현(衒) - 판다는 뜻이다. -
월산(粤山) - 포성현(蒲城縣)에 있으니, 바로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이 도를 강론했던 곳이다. 월(粤)은 월(越) 자와 통용한다. 포성(蒲城)은 복주(福州)에 속한다. 옛날 월(越)나라 지역이었기 때문에 ‘월산(粤山)’이라고 하였다. -
한(翰) - 붓이다. -
침(鋟) - 새기는 것이다. -
안약우(顔若愚) -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여기의 말을 살펴보건대,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다. -
〈심학도(心學圖)〉 - 정임은(程林隱 정복심(程復心))의 《사서장도(四書章圖)》 중권(中卷)에 보인다. ○방심(放心)을 되찾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예컨대 초학자가 이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몸에 되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진실로 방심을 되찾는 일이고, 안자(顔子)처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것 따위도 방심을 거두는 일이다. 그러니 차례로써 말했더라도 어찌 ‘심재(心在)’의 아래에 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머지는 〈조 상사에게 답한 편지[答趙上舍書]〉에 자세히 보인다. -
〈도설(圖說)〉
정씨 복심(程氏復心) - 자는 자견(子見)이고, 호는 임은(林隱)이다. 《일통지》에 “무원(婺源)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이학(理學)에 심취하였는데, 보광(輔廣)과 황간(黃榦)의 학설을 모아 절충하여 책을 만들어 《사서장도총요(四書章圖總要)》라 하였다. 원(元)나라에 벼슬하여 휘주 노학교수(徽州路學敎授)를 지냈으며, 뒤에 노모 때문에 병을 핑계대고 사직하고 돌아왔다.”라고 하였다. -
공부(工夫) - 모든 공역(工役)에는 반드시 인부(人夫)를 쓰기 때문에 속어에 ‘공부’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전용되어 학문의 공부라는 말이 되었다. -
철(掇) - 도(都)와 활(活)의 반절음이고, 수습하여 취한다는 뜻이다. -
안자(顔子)……어방(於放) - 유중엄(柳仲淹)이 묻기를 “안자(顔子)가 석 달 뒤에는 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가지고 방심을 구해야 되는 것이라 여긴 것은 너무 지나친 뜻이 있는 듯한데 어떻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맹자는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방심을 되찾는 것일 뿐이다.’ 하였고, 정자는 ‘성현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씀이 다 사람으로 하여금 이미 놓아버린 마음을 그 몸에 되돌아오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하였다. 방심을 구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학문할 때 첫 단계의 일인 듯하므로 이 도에서 학문이 이루어진 다음 순서에 ‘구방심’을 두었다고 대부분 사람들이 의심하였다. 지극하게 말하면, 안자는 잠깐 어긋나면 곧바로 알고 다시 싹트지 않게 하였으니 이것 또한 방심을 구하는 경우이고, 석 달이 지난 뒤에 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역시 이러한 경우이다. 임은이 소견이 없이 함부로 지었겠는가.” 하였다. -
제1편〔第一篇〕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
인심도심(人心道心) - 〈중용질의〉에 보인다. -
본주(本註)
허령과 지각[虛靈知覺], 형기의 사사로움[形氣之私], 소이(所以)……부동(不同), 인욕의 사사로움[人欲之私] - 모두 〈중용질의〉에 보인다. -
부주(附註)
경중(經中) - 경(經)은 《중용》이다. 자사(子思)가 전에 들었던 아버지와 스승의 말씀을 연역(演繹)하여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경(經)’이라 한 것이다. -
오직 정밀하지 않으면 안 된다[非惟精不可] - 묻기를 “오직 정밀하게 한다는 것은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일인데, 이 문세를 보면 먼저 오직 정밀하게 함을 말미암은 뒤라야 격물(格物)할 수 있을 듯하고, 치지(致知)가 나중이고 격물(格物)이 먼저인데 지금은 치지(致知)를 앞에 놓았으니, 또한 어떻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주자는 자세히 살펴서 섞이지 않게 하는 것으로 유정(惟精)을 해석하였다. 자세히 살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격물치지할 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오직 정밀하지 않으면 불가하다’ 하였으니, 이는 치지격물을 하고자 한다면 정(精)하게 살피지 않으면 될 수 없다는 말일 뿐이지, 정(精)을 말미암은 뒤에야 격물치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또 치지를 격물의 앞에 놓은 것은 종(終)으로부터 시(始)로 거슬러 올라가서 합하여 하나의 일로 삼아 말한 것일 뿐이다.” 하였다. -
다만 이 이치를 배운다[只是學此理] - 이 이치란 곧 유정유일(惟精惟一)을 가리킨다. -
인심(人心)……인욕(人欲) - 이천(伊川 정이(程頤))이 “‘인심과 도심은 천리와 인욕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자는 처음에는 이 말을 따랐다가 뒤에 의논을 정하여 ‘인심은 인욕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중용서설〉의 경우가 이것이다.” -
지(底) - 지(的) 자와 통한다. 모두 음이 지(地)이며 곳이라는 뜻이다. -
이회(理會) - 정리하여 이해한다는 말과 같다. -
오봉(五峯) - 성(姓)은 호씨(胡氏)이고, 이름은 굉(宏), 자는 인중(仁仲)으로, 문정공(文定公) 호안국(胡安國)의 막내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큰 도(道)에 뜻을 두었고, 일찍이 경사(京師)에서 양중립(楊中立)을 만났으며, 또 형문(荊門)에서 후사성(侯師聖)을 종유하였으며 마침내 문정공의 학문을 전수하였다. 만년에 소명(召命)을 받았지만 불행하게 병이 들어서 조정에 나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저서로 《황왕대기(皇王大紀)》, 《지언(知言)》 등이 있다. 《언행록(言行錄)》에 보인다. -
잠실 진씨(潛室陳氏) - 이름은 식(埴), 자는 기지(器之)이다. 주자 문하의 고제(高弟)이다. -
도심(道心)……지간(之間) -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드러나고 흐르기 쉬운 것이 인심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도심이 그 사이에 드러나기 때문에 섞여 나오기 때문에 운운한 것이다. -
육자정(陸子靜) - 이름은 구연(九淵), 호는 상산(象山)이다. 덕성을 존중하는[尊德性] 학문을 주장하였는데, 주자가 힘을 다해 변별하여 깨우쳤으나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
차언역자시(此言亦自是) - 묻기를 “자(自) 자에 함축된 의미가 있는 듯한데, 어떠합니까?” 하니, 답하기를 “자(自) 자뿐만이 아니라 역(亦) 자에도 함축된 의미가 있다. 자정(子靜)의 다른 학설은 대부분 옳지 않으나 이 설은 거의 옳기 때문에 한 말이다.” 하였다. -
의리정미(義理精微) - 〈조사경에게 답하다(答趙士敬)〉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의리는 정미하여 보기 어렵다’는 한 조목은 《주자어류》를 살펴본 적이 있는데 잘못된 점이 없다. 대개 ‘도심유미(道心惟微)’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의리의 정미함을 말하여 이를 깨우치고자 하였는데, 의리는 형상이 없어서 말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조잡하고 천근하여 밝게 드러나는 이해(利害)를 가지고 말했으니, 이렇게 쉽게 보게 되면 듣는 사람이 이를 통해 저 알기 어려운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또 ‘새와 짐승들은 이미 못하는 것이 있다’고 한 것은 새와 짐승들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실 줄은 알지만 이해를 알지 못하고, 뭇사람은 이해는 알지만 의리를 알지 못하며, 오직 군자만이 새와 짐승들과 다른 점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의리의 정미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큰 뜻은 이와 같은 데 불과할 뿐이다.” 하였다. -
사자(些子) - 사(些) 자는 작다는 뜻이고, 자(子) 자는 어조사이다. -
초화응빙(焦火凝氷) - 불이 타오르는 듯하다[焦火]는 것은 노여워하는 것을 가리키고 얼음이 엉기는 듯하다[凝氷]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을 가리킨다. 두 구절은 《장자(莊子)》에서 온 말이다. -
구차히 면하는 것은 요행이다[苟免者幸也] - ‘정직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은 요행으로 면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과 같다. 사람이 욕심만 따르고 천리의 바름을 따르지 않으면 걸핏하면 바로 구덩이에 떨어져서 죽음의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혹시 죽음을 면하는 것은 요행이라는 말이다. -
동부동(動不動) - ‘걸핏하면[動輒]’이라는 뜻과 같은 말이다. -
도심이 주재한다[道心主宰] - “도심은 마음이 발현된 곳에 나아가 말한 것인데, 지금 ‘도심이 주재한다.’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주재는 또한 마음이 발현된 곳에 나아가 말한 것이니, 주장이 되어서 재제(宰制)한다는 말이다.” 하였다. -
면재(勉齋) 황씨(黃氏) - 이름은 간(榦), 자는 직경(直卿)이며,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다. 아버지 우(瑀)가 죽자 청강(淸江) 유정춘(劉靜春)을 뵈었는데 유정춘이 기특하게 여겨 “그대는 원대한 도량이 있으니 시학(時學)은 그대가 배울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주자에게서 수업하도록 명하였다. 간은 가법이 엄중하여 바로 어머니께 아뢰고 당일 길을 떠났는데 당시 큰 눈이 내렸다. 선생을 처음 뵐 때 밤에 침상을 준비하지 않고 띠도 풀지 않았다. 선생이 사람들에게 “직경은 뜻이 확고하고 생각이 절실하여 그와 함께 생활하니 매우 유익하였다.”라고 하고, 그 딸을 시집보냈다. 선생은 병이 깊어지자 심의(深衣)와 지은 책을 그에게 주고 영결하기를 “나의 도를 맡길 곳이 여기에 있으니 나는 유감이 없네.” 하고 세상을 떠났다. 간의 제자가 날로 많아졌으며 예서를 편집하고 책을 저술하였다. 차출되어 박주 명도관(亳州明道官)을 주관하다가 한 달여 만에 벼슬을 그만두었다. 특별히 승의랑(承議郞)에 임명되었고, 뒤에 조봉랑(朝奉郞)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일통지》에 나온다. -
노재(魯齋) 왕씨(王氏) - 이름은 백(柏), 자는 회지(檜之)이며, 금화(金華) 사람이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북산(北山) 하기(何基)의 제자이다. 도(道)로써 자임하여 뜻을 독실히 하고 힘써 실천하였다. 그러나 너무 고상하게 자처하고 자기 견해를 고집하였다. 그 견해가 매우 편벽되어 특이한 입론을 좋아하였다. 예컨대 《대학》의 경문(經文)에 지지(知止)와 물격(物格) 두 절은 격물장(格物章)의 말인데 주자가 잘 알지 못하고 경문(經文)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런 유가 매우 많아서 북산과 쟁론을 반복하였는데 북산은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주고받은 논설이 10여 권의 책을 이루었다. ○‘본래 있는 것과 본래 없는 것을 안다[知其本有本無]’는 것과 ‘정 자와 사 자는 모두 외면에 나타난다[正私皆見子外]’라는 등의 말은 모두 의심스럽다. 〈조사경에게 답한 편지[答趙士敬書]〉에 자세히 보인다. -
- 옛날 심(心) 자이다. -
〈상제임여장(上帝臨女章)〉
이(貳) - 묻기를 “《시경》 주석에 ‘이(貳)는 의(疑)이다.’ 하였는데, 이것과 맞지 않은 듯하고, 〈도인사(都人士)〉의 ‘의복이 변치 않다[衣服不貳]’의 주석에 ‘변하여 일정함이 없는 것을 이(貳)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이러한 뜻으로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라 하니, 답하기를 “두 가지 뜻을 아울러 보아야 한다.” 하였다. -
우(虞) - 근심한다는 뜻이다. -
본주(本註)
모씨(毛氏) - 이름은 장(萇)이고, 한(漢)나라 사람이다. 《시경》에 주석을 붙였다. -
우위(愚謂) - 주석을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이 단 것이라면, 우(愚) 자는 마땅히 서산의 자칭이 된다. 다만 다른 곳에서는 모두 본주(本註)를 인용하였으니 여기서만 자신의 주를 단 것은 응당 아닐 듯하니 의심스럽다. -
부주(附註)
대월상제(對越上帝) - 원집(原集)에 보인다. -
구산(龜山) 양씨(楊氏) - 이름은 시(時), 자는 중립(中立)이고, 남검(南劍) 장락현(將樂縣) 사람이다. 정자(程子) 문하의 고제(高弟)이다. 용도직학사주사(龍圖直學士主祠)로 벼슬을 그만 두었다. 소흥(紹興) 5년(1135)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83세이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에 나온다. -
재천(在天) - 〈청묘(淸廟)〉시 에서 나온 말로, 문왕(文王)의 혼령을 가리키는데, 구산(龜山 양시(楊時))이 빌어서 비유하였다. -
물이물우(勿貳勿虞) - 묻기를 “대문(大文)에는 무(無)라 하였고, 양씨는 물(勿)이라 하였습니다. 아마도 물(勿) 자가 잘못된 듯한데, 어떻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지금 《시경》에는 무(無) 자로 되어 있다.” 하였다. -
〈시이우군자장(視爾友君子章)〉
시이(視爾) - 이(爾)는 맹인인 악사(樂師)의 입장에서 무공(武公)을 가리켜 한 말이다. -
군자(君子) - 조정의 사대부를 가리킨다. -
본주(本註)
정씨(鄭氏) - 이름은 현(玄), 자는 강성(康成)이고, 동한(東漢) 때 북해(北海) 고밀(高密) 사람이다. 관내(關內)로 들어와 마융(馬融)에게 수학하였고,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니 따르는 학도가 수천 명이었다. 승상 공융(孔融)이 그를 매우 공경하였다. 정현이 길에서 황건적(黃巾賊)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수만 명이 정현을 보고 모두 절을 하였고 정현의 고을에 들어가지 말자고 서로 약속하였다. 원소(袁紹)가 기주(冀州)를 다스리며 크게 빈객을 모았는데 앞 다투어 이단의 학설로 유세하니 온갖 학설이 서로 일어났다. 정현이 다방면으로 질문을 받더라도 변론하고 응대하는 것이 모두 질문 밖의 뜻까지 답변을 하니 탄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일통지》에 나온다. -
체(體) - 골자(骨子)라는 뜻이다. -
부도불문(不睹不聞) - 본래 ‘자기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말하였으므로 기(其) 자 하나를 썼으니, 자신을 말한다. 그러나 옥루(屋漏)는 곧 남이 보지 못하는 곳이니, 또한 남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뜻으로 겸하여 볼 수 있다. 대개 근독(謹獨)과 상대해서 말하면 남과 나를 구분하고, 한쪽만 말하면 겸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 -
부주(附註)
필경(畢竟) - 그 끝을 요약하여 말한다는 말과 같다. -
부동(不同) - 특별하다는 말과 같다. 황중거(黃仲擧 황준량(黃俊良))가 묻기를 “주(周)나라의 경사(卿士)는 성인(聖人)과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기상이 후세 사람들과 다른 것이 아닙니까?” 하니, 답하기를 “맞는 말이다. 대아(大雅)와 소아(小雅)의 여러 시는 대부분 주나라 경사가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억(抑)〉 시를 논할 때 아울러 여러 작자를 가리켜 칭송한 것일 뿐이다.” 하였다. -
첩산(疊山) 사씨(謝氏) - 이름은 방득(枋得)이고, 익양(弋陽) 사람이며, 호는 첩산(疊山)이다. 사람됨이 충의(忠義)가 절로 넘쳤다. 보우(寶佑) 연간에 경과(經科)에 합격하였다. 덕우(德祐) 초에 강서 초유사(江西招諭使)가 되어 신주(信州)를 다스렸다. 원(元)나라 군대가 신주를 공격하자 방득은 바로 성명을 바꾸고 건녕(建寧)의 산중으로 들어갔다. (채판(蔡坂)으로 옮겨) 객사에 우거하면서 날마다 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고 동쪽을 향해 통곡할 뿐이었다. 건양(建陽) 저자거리에서 점을 쳐주며 살았는데 점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오직 쌀과 신발만 받고 돈을 주면 모두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천하가 안정되자 민중(閩中)에 거주하였다. 지원(至元) 연간에 추천을 받아 억지로 관직에 나갔지만 번번이 사직하였다. 핍박을 받아 북쪽으로 가서 서울에 이르렀는데 음식을 먹지 않아 굶어 죽었다. 《일통지》에 나온다. -
〈한사존성장(閑邪存誠章)〉
언행한존(言行閑存) - 원집(原集)에 보인다. -
부주(附註)
삼(甚) - 음은 ‘삼’이다. ‘무슨’이라는 뜻이다. -
동용모(動容貌) - 《논어》의 “몸을 움직일 때에는 사납고 거만한 태도를 멀리 해야 한다.[動容貌斯遠暴慢]”라는 한 단락에 대해, 주자는 아래 네 글자를 공부로 보았기 때문에 위 세 글자를 등한시하였으며, 정자(程子)는 위의 세 글자를 공부로 보았고 아래 네 글자는 효과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는 마땅히 정자가 설명한 뜻으로 보아야 한다. -
존차(存此) - 차(此) 자는 ‘한 가지를 주장한다[主一]’를 가리킨다. -
단용(但用)……타입래(他入來) - 타(他)는 사특한 것[邪]을 가리킨다. 묻기를 “이 부분은 아마도 초학자의 공부가 아닌 듯한데, 어떠합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는 《주역》 〈건괘(乾卦)〉 구이효(九二爻)의 말인데 진실로 성인(聖人)의 학문이다. 그러나 또한 배우는 이가 공부하는 데에 절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무역역보(無射亦保) - 역(射)은 염역(厭斁)의 뜻이니, 두려워하고 조심한다는 말과 같다. 보통 사람의 정(情)은 만약 다른 사람이 나의 행동을 점검한다면, 마음속으로 반드시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바가 있어서 자신이 지키던 것을 보존하려고 한다. 예컨대 《시경》의 “네가 군자들과 사귀는 것을 보면, 너의 얼굴빛을 온화하고 유순하게 하여 혹시라도 잘못이 있지 않을까 한다.[視爾友君子, 輯柔爾顔, 不瑕有愆.]”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성인(聖人)은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바가 없으면서도 스스로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
임천(臨川) 오씨(吳氏) - 이름은 징(澄), 자는 유청(幼淸)이다. 도(道)를 전수하는 것을 자임하였으나, 실제로는 육구연(陸九淵)의 학문을 배웠다. 임천(臨川)은 곧 무주(撫州)로 강서(江西)에 속한다. 육구연과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선학(禪學)에 물든 사람이다. -
무사와 한사[無邪閑邪] - 사특함이 없는 것[無邪]은 《시경》의 학문을 범범하게 말한 것이고, 사특함을 막는 것[閑邪]은 성인(聖人)의 학문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차등을 나누는 것도 괜찮다. 이것을 통해 또 “사특함이 없는 것은 성의(誠意)의 일이고, 사특함을 막는 것은 정심(正心)의 일이다.”라고 했으니 그 말에 모두 병통이 있다. 또 “사물이 밖에서 접할 때 그것을 막아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했으니 어찌 선가(禪家)의 학설이 아니겠는가. -
- ○묻기를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어찌하여 두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성의는 거의 발한 상태에서 말한 것이고, 정심은 마음의 전체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두 항목인 듯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두 사(邪) 자의 뜻을 밝힐 수는 없는데, 오씨가 ‘성의와 정심은 그 단계를 건너 뛸 수 없다.’ 하였으니 옳지 않다.” 하였다. -
치치준준(蚩蚩蠢蠢) - 치치(蚩蚩)는 무지한 모양으로 《시경》 주석에 보이고, 준준(蠢蠢)은 벌레가 꿈틀거리며 무지한 모양으로 《서경》 주석에 보인다. -
완(頑) - 혈기가 막혀 통하지 않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마음이 돌처럼 무뎌져서 감응하지 못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
육이(六二) - 다음에 마땅히 자(子) 자가 있어야 할 듯하다. -
이(利) - 이치에 순하여 막힘이 없다는 말이다. 공자가 명(命)과 이(利)에 대해서는 드물게 말하였으나, 《주역》에서 발명한 것은 《주역》이 바로 길흉을 점치는 것으로 만백성을 위하여 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利)를 말하였으니, 바로 흉한 일을 피하고 길한 일에 나아간다는 말이지 이해(利害)라고 할 때의 이(利)가 아니다. 대개 경(敬)하여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워 밖을 방정하게 하여 그 덕이 외롭지 않게 되면 그제야 위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익히지 않더라도 자연히 이치에 순하여 막히는 것이 없게 된다. ○또한 ‘애쓰지 않고도 중도(中道)를 행한다.’라는 뜻이다. -
본주(本註)
진기(盡其)……직야(直也) - 양씨(楊氏)가 거짓이 없는 것[無僞]을 직(直)이라 한 것은, 주자가 ‘털끝만 한 사사로운 마음도 없어 가슴 속이 확 트인 것이다.’라고 한 말과 다르다. -
부주(附註)
지명인리(只明人理) - 명(明)은 지(知)에 해당되고 경(敬)은 행(行)에 해당된다. ○인리(人理)는 사람이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치로,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 이것을 밝게 알면 만사와 만물의 이치가 또한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
천착계루(穿鑿繫累) - 천착(穿鑿)은 담장을 뚫고 벽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태극부(太極賦)〉에 “담장에 구멍을 내어 문과 창을 만든다.[穴墻垣爲戶牖]”라는 말과 같다. 도(道)는 큰 길과 같은 것인데 만약 사사로운 지식으로 천착하여 사사로운 뜻에 얽매이게 되면 절로 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를 돌이켜 도가 있고 이치가 있으면 하늘과 사람이 저절로 합하여 하나가 될 것이다. 도(道)는 두뇌가 되는 곳에 나아가 말하였고, 이(理)는 조리가 있는 점에 나아가 말하였다. -
호연지기(浩然之氣) - 묻기를 “도(道)와 이(理)를 말하고 이어서 기(氣)를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理)와 기(氣)가 다르나 실제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이(理)가 기(氣)에 충만하면 기(氣)가 호연(浩然)할 수 있고, 기(氣)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理)도 붙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된다. 기(氣)가 진실로 가득 차서 간격이 없어 의(義)와 도(道)에 배합되면, 이것을 기(氣)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이(理)가 충만하여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도(道)와 이(理)를 논하고 이어서 호연지기를 말한 것이 어찌 불가하겠는가.” 하였다. -
감(欿) - 《운회(韻會)》에 “고(苦) 자와 감(感) 자의 반절음이고, 부족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교추사(較麤些) - 두 물건을 상대로 하여 그 장단(長短)ㆍ다과(多寡)ㆍ대소(大小)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을 ‘교(較)’라고 한다. 추(麤)는 정밀하고 자세하지 못한 것을 일컫는 말이고, 사(些)는 작다는 뜻이다.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라는 한 구절은 공부가 지극히 세밀한데, 맹자는 양기(養氣)에 대해서만 말하였으니, 정자가 양심법(養心法)으로 삼은 것과 비교하면 조금 거칠다. -
소위(所謂) - 정자(程子)의 말이다. -
절도(節度) - 곧 이른바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勿忘勿助]’는 법이다. -
직상(直上)……자차(自此) - 주자가 “직상(直上)은 갈팡질팡하지 않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此]라는 것은 경(敬)과 의(義)를 가리킨다. -
요방(要放)……부득(不得) - 요(要)는 바란다는 뜻이고, 방하(放下)는 ‘놓아두다’는 말과 같다. 삽연(霎然)은 잠깐 사이를 뜻한다. -
조(阼) - 동쪽 계단이다. 문왕(文王)이 죽고 무왕(武王)이 이에 제위에 올라 비로소 주인의 예(禮)를 행하였기 때문에 ‘천조(踐阼)’라고 하였다. -
설지(說只)……여차(如此) - 위의 설(說) 자는 말한 내용을 가리키고, 아래의 설(說) 자는 말한다는 뜻이다. 임지(恁地)는 ‘이와 같이’라는 말과 같다. 말을 이와 같이 말하였더라도 스스로 공부를 해 보아야 진실로 이와 같음을 안다는 말이다. -
절연(截然) - 한 번 정하여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의 물건을 잘라 놓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
방방정정(方方正正) - 방정(方正)을 말하면서 지극하게 말하고자 하여 ‘방방정정(方方正正)’이라 하였으니, 마치 분효(分曉)를 지극하게 말하여 ‘분분효효(分分曉曉)’라고 하는 것과 같다. -
영략장거(領略將去) - 영(領)은 모으는 것이고, 약(略)은 취하는 것이다. 장거(將去)는 가지고 간다는 말과 같다. -
여금설득(如今說得) - 주자가 당시 사람을 두루 말하였으나, 속뜻은 문인(門人)을 가리킨 것이다. -
진(儘) - 신(信) 자와 같은 뜻이다. -
협실(夾室) - 주자 나이 14세 때, 위재(韋齋)가 죽으면서 그의 친구인 유자우(劉子羽)에게 처자를 부탁하였다. 유자우가 거주하던 마을의 병산(屛山) 아래에 집을 지어 주자, 주자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살았다. 뒤에 그 집을 ‘자양서당(紫陽書堂)’이라 부르고 기문(記文)을 지었다. 협실(夾室)은 바로 자양서당의 좌우에 있는 방이다. 위재가 ‘자양산인(紫陽山人)’이라 자호하였고, 그 산은 신안(新安)에 있다. 주자가 ‘자양서당’이라 한 것은 선친의 호를 잊지 않으려 한 것이고, 또 고향의 이름을 항상 눈앞에 두고자 한 것이다. 병산은 숭안현(崇安縣)에 있다. -
소론수도지교(所論修道之敎) - 묻기를 “《중용》 수장(首章)에서 특별히 이 한 구절을 뽑아서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중용》에서 계구(戒懼)와 근독(謹獨)을 학문이라고 한 것은 바로 도를 닦는 가르침[脩道之敎]에 종사하여 공부하는 것이므로 주자가 이와 같이 말하였다.” 하였다. -
합호(合乎)……지론(之論) - 마음이 동(動)할 때에는 의(義)가 드러나 용(用)이 되고 정(靜)할 때에는 경(敬)이 확립되어 체(體)가 되어, 체용(體用)이 서로 바탕이 된다. 이는 또한 태극(太極)이 동(動)하여 양(陽)이 되고 정(靜)하여 음(陰)이 되어 음양(陰陽)이 서로 근원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태극론(太極論)에 부합한다.”라고 하였다. -
외모(外慕) - 공명(功名)이나 이록(利祿)을 가리킨다. -
경이직내(敬以直內) - 〈경의장(敬義章)〉의 주(註)에 정자가 ‘경으로 안을 곧게 하고,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도록 한다[敬以直內 必有事焉]’라고 한 것은 그 의미가 자세하니 아래의 구절을 가지고 위 구절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주역》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경이직내(敬以直內)’라 하고 거기에 자기의 생각을 연계시켜 ‘안에 주장함이 있으면……’이라 하고, 또 《맹자》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필유사언(必有事焉)’이라 하고 거기에 자기의 생각을 연계시켜 ‘모름지기 경을 잡아서……’라고 하였기 때문에 말의 형세가 이와 같다. 또 ‘경이직내’를 ‘의로 밖을 방정하게 한다[義以方外]’에 대비시키면 경(敬)은 정(靜)이고 의(義)는 동(動)이지만, ‘경이직내’ 하나만 말하면 ‘필유사언’과 함께 동정(動靜)을 관통하고 현미(顯微)를 일관하며 내외(內外)를 통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주건사착(做件事着) - 한 가지 일을 한다는 말이다. 착(着)은 어조사이다. -
지여하소우(知如何所寓) - 《근사록》에는 ‘여(如)’ 자가 없고, 《이정유서(二程遺書)》에는 여(如) 자가 있다. 지(知)는 발어사로서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국 말에 ‘부지(不知)’를 말할 때 간혹 ‘부’ 자를 빼고 ‘지’ 자만 말하는 경우가 있다. -
즘생(怎生) - 즘(怎)은 음이 즘이다. 즘생은 ‘어떻게’라는 말이다. -
윤화정(尹和靖) - 이름은 향(享), 자는 언명(彦明)이며, 낙양(洛陽) 사람이다. 어려서 정이천(程伊川)을 사사하였다. 송(宋)나라 정강(靖康) 초에 천거되어 소명(召命)을 받고 서울에 이르렀으나 머물려 하지 않으니 ‘화정처사(和靖處士)’란 호를 하사하였다. 다음 해에 금(金)나라가 낙양을 함락하자 온 집안 사람이 해를 당해 거의 죽었다 살아났다. 그 뒤에 유예(劉豫)가 예를 갖추고 초빙하였으나 따르지 않고 바로 상주(商州)에서 낭(閬) 땅으로 달아났다. 소흥(紹興) 4년(1134)에 부주(涪州)에 머물렀다. 부주는 정이천이 《주역》을 읽던 곳인데, 삼외재(三畏齋)를 짓고 거처하였다. 뒤에 범충(范沖)의 천거에 따라 불러서 숭정설서(崇政說書)로 삼았는데 병으로 사직하였다. 범충이 조신(漕臣)에게 명하도록 상주(上奏)하고 부주에 가서 친히 달래니 비로소 길에 올랐는데, 정이천에게 제사를 올린 뒤에 길을 나섰다. 뒤에 휘유각 대제 겸 시강(徽猷閣待制兼侍講)으로 옮겼으며 벼슬을 그만 둔 뒤에 세상을 마쳤는데 나이가 72세였다. 《일통지》에 보인다. -
추요(樞要) - 문이 열고 닫힘이 반드시 지도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서경》의 주(註)에 “여러 가지 체가 모이는 곳을 ‘요(要)’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성학(聖學)에 들어가기 위해 거치는 요결을 말한다. -
소계명(蘇季明) - 이름은 병(昞), 무공(武功) 사람이다. 처음 장재(張載)에게 배우고 뒤에 정호와 정이를 사사하여 학업을 마쳤다. 원우(元祐) 말에 여대충(呂大忠)이 천거하여 태상박사가 되었다. 뒤에 원부(元符) 연간 상소한 것으로 인해서 당적(黨籍)에 들어갔기 때문에 요주(饒州)로 유배되었다. 《일통지》에 나온다. ○여대충은 “그는 덕성이 순수하고 성대하며 학문에 힘쓰고 뜻이 독실하게 가져 나이 40이 되어도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라고 칭찬하였다. -
불성(不誠) - 성(誠)은 곧 한결같다는 말이다. -
수시습(須是習) - 습(習)은 주일(主一)의 공부를 익히는 것이다. -
- 처음 익힐 때 잡념이 삼대처럼 일어나는 병통을 면하지 못하다가 익힘이 익숙하여 전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병통이 없기 때문에 좋다고 한 것이다. -
수양가(脩養家) - 곧 신선술을 배우는 자이다. -
상무(想無)……성무(成無) - 상(想)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 수양가(脩養家)의 일은 알 수 없다. 다만 《참동계(參同契)》를 살펴보면, 사람의 형체는 수(水)와 화(火)로 이루어졌다 하여, 64괘의 《감(坎)》인 수(水)와 《이(離)》인 화(火)를 약물로 삼고 《건(乾)》과 《곤(坤)》을 솥으로 삼으며, 60괘를 각각 30일에 나누어 정해서 날마다 각각 두 괘를 배정하고 또 두 괘의 12효(爻)를 12진(辰)에 나누어 배정한다. 그리하여 해당하는 괘와 만나는 효를 항상 생각하고 잊지 않아서 조금도 어김이 없게 하며, 하늘의 기운을 자신의 기운에 합하게 한다. 달의 차고 기우는 것을 보아 뽑아내고 더하되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점차 더하고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점차 빼서 더하고 빼는 것이 하늘의 운행과 어긋남이 없도록 한다. 그리하여 불로 물을 다려서 단전(丹田)에 응집되게 하기를 3년 동안 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뼈가 새로 바뀌어 대낮에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이것이 단전(丹田)을 단력하는 법이니 그 대강이 이와 같다. 이는 무(無)를 상상하여 유(有)를 이루는 법이다. 불씨(佛氏)처럼 세간의 사물을 무(無)로 보아 적멸(寂滅)의 교(敎)를 이루었으니, 이른바 ‘만법(萬法)이 모두 공(空)이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묻기를 “주 선생(朱先生)이 《참동계》를 주석한 뜻은 어떤 것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도교(道敎)는 불가(佛家)처럼 오로지 속임과 미혹됨을 일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생의 시에,
3년 동안 신선의 단약 만드니 / 三年養神丹
대낮에 날개가 돋아났다네 / 白日生羽翰
다만 천리를 거스를까 두려울 뿐이니 / 但恐逆天理
삶을 훔치고 어찌 편안할 수 있으랴 / 偸生詎能安
하였다. 주소(註疏)를 낼 때 선생은 이미 도성을 떠난 지 몇 년이 되었고 시사(時事)가 크게 무너져 나라가 장차 망하는 것이 비통하여 《초사》나 《참동계》 따위에 뜻을 붙였던 것이다. ‘장생불사하여 세상이 끝난 뒤에 죽어 반복되어 끝없는 세상의 변화를 다 하고자 한다.’라고 한 경우는 굴원(屈原)의 〈원유부(遠遊賦)〉의 뜻과 같으니, 바로 의탁해서 한 말이다.” 하였다. -
신(神) - 이(理)가 드러나 작용하는 바로 기(氣)를 타고 출입하는 것이니, 곧 바로 신명(神明)의 신(神)을 말한다. -
응(凝) - 맺히고, 고정되는 것이다. -
자소(自少)……불내하(不柰何) - 어렸을 때에 이미 전일(專一)한 공부에 스스로 힘쓰지 않다가 이에 이르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안돈(安頓) - 물건을 놓아둔다는 뜻이다. -
귀숙(歸宿) - 이는 그 끝을 요약해서 말한다는 말이다. -
두당(頭當) - 당두(當頭)라는 말과 같으니 정해진 곳을 뜻한다. -
정제엄숙(整齊嚴肅) - 정제(整齊)는 사물 측면에서 말하였고 엄숙(嚴肅)은 행동거지 측면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서로 바꾸어 보아도 된다. -
엄위엄각(嚴威儼恪) - 엄숙하고 위엄 있으며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하므로 올바른 경(敬)이 아니다. -
일단(一段) - 일이나 물건이 나누어진 단락으로, 일조(一條)나 일편(一片)과 같은 따위이다. -
비(比) - 근(近) 자와 같다. -
합하(合下) - 본래라는 말과 같다. -
극기복례(克己復禮) - 원집에 보인다. -
어례자(於禮字)……진밀(縝密) - 예(禮) 자에 대해 늘 석연치 않아서 반드시 하나의 이(理) 자를 가지고 해석한 뒤에야 그만두곤 하였는데, 지금 비로소 예의 본래 말이 정미하고 치밀함을 알았다. -
상채(上蔡) 사씨(謝氏) - 이름은 양좌(良佐)이고, 자는 현도(顯道)이고, 상채(上蔡) 사람이다. 유 찰원(游察院)ㆍ양 문정(楊文靖)과 같은 시기에 수학하였다. 주현(州縣)을 두루 다스렸고, 뒤에 유언비어에 연루되어 옥에 갇혔다. 관직이 바뀌자 비로소 정명도(程明道)를 만났는데 정명도가 사람들에게 “이 수재는 펼쳐 주어 길이 열리면 장래를 기대할 만하다.”라고 하였고, 또 “독실하게 이해하여 완전히 꿰뚫지 못한 일이 있으면 그 이마에 땀이 맺혔으니 발분(發憤)함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락연원록》에 나온다. -
피타임지괄후(被他恁地聒後) - 타(他)는 눈 먼 악사(樂師)를 가리킨다. 괄(聒)은 요란하게 말하여 시끄러운 것이다. 후(後)는 어조사이니 ‘이 같이 한 뒤에’라는 말과 같다. -
서암(瑞巖) - 절 이름이다. 승려의 이름은 사언(師彦)이고, 호는 공적(空寂)이다. -
일간(日間) - 일상생활하는 사이라는 말이다. -
환성(喚惺) - 정신을 깨운다는 뜻이다. -
기관이 물으니, 선생이[祈寬問先生] - 관(寬)은 자가 거지(居之)이고, 윤화정(尹和靖 윤돈(尹焞))의 문인이다. 윤화정이 금(金)나라 침입을 피해 촉(蜀) 땅으로 들어가 부릉(涪陵)에 우거하였다. 그러므로 그 언행을 기록하여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이라 하였다. 선생은 기관의 입장에서 윤화정을 가리킨 말이다. -
각헌(覺軒) 채씨(蔡氏) - 이름은 모(模)이고, 자는 중각(仲覺)이며, 서산(西山) 채원정(蔡元定) 선생의 손자이다. -
부집(裒集) - 부(裒) 자도 모은다는 뜻이다. -
척연(惕然)과 송연(悚然) - 묻기를 “송(悚) 자와 척(惕) 자는 같은 뜻인데 지금 두 항목으로 만들었으니 어떻게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두 글자는 모두 놀라 움직이는 뜻이다. 다만 《운서》에는 ‘척(惕)은 공경함이고, 송(悚)은 두려워함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
본원(本原) - 심학(心學)의 본원을 가리킨다. -
함양(涵養) - 경(敬)으로 마음을 기르는 것이 물건이 물에 푹 젖어서 길러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는 동정(動靜)을 관통하고 유무(有無)를 관통하여 말한 것이지, 단지 미발(未發)한 때를 말하는 것뿐인 존양(存養)과는 다르다. -
문인유전무(問人有專務) - 원집에 보인다. -
〈징분질욕장(懲忿窒慾章)〉
부주(附註)
제능(第能)……과반의(過半矣) - 장재(張載)가 정명도(程明道)에게 보낸 편지에 “정해진 성품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아직 외물에 얽매인다.[定性未能無動 猶牽於外物]”라고 하니, 정명도가 답한 편지 끝에 이로써 밝힌 것이다. 사람의 노여움은 반드시 외부의 역경을 만나서 생긴다. 그러나 노여움이 나올 때에 그 노여움을 잊고 이(理)를 살피면 이가 주재가 되고, 이가 주재하여 기운이 편안해지면 저 노여움을 일으키는 외물의 유혹이 미워할 것이 못되고 자신의 생각도 도에 있어서 또 반을 넘어 갈 것이다. -
장사숙(張思叔) - 《일통지》에 “이름은 역(繹)이고, 하남(河南) 도안(壽安) 사람이다. 어려서 집이 가난하였으나 발분하여 학문에 힘썼다. 정이천(程伊川)이 부주(涪州)에서 돌아오자 찾아가서 수업하였는데, 정이천이 그를 총명하고 뛰어나다고 칭찬하고서 ‘내가 만년에 선비 둘을 얻었으니 장역과 윤언명(尹彦明 윤돈(尹焞))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
망생(忘生)……심취(深恥) - 장사숙(張思叔)의 질문은 생명을 잘 보전하고 기(氣)도 기름을 위주로 해서 말하였으니, 지금 사람들이 약물로 생명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이천 선생이 ‘생명을 잊고 욕심을 따른다’는 것으로 답한 것은 이(理)를 주로 하면서 기(氣)도 겸하여 기른다는 것이다. -
기감(氣感)……가제(可制) - 문장의 형세로 보면 노여움을 말한 듯하다. 그러나 칠정(七情) 가운데 중용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면 더욱 의미가 있다. -
기용여산(氣湧如山) - 위(魏)나라 요동 태수(遼東太守) 공손연(公孫淵)이 표문을 올리고 오(吳)나라에 신하되기를 청하자 손권(孫權)이 매우 기뻐하며 장미(張彌)와 허안(許晏)을 보내어 공손연을 연왕(燕王)으로 봉해주었다. 공손연이 장미와 허안의 목을 베어 위나라에 바치자 손권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내가 60평생 동안 세상의 온갖 일을 겪었지만 근래에 쥐새끼 같은 놈에게 농락당하니, 분기가 산처럼 솟구치는구나.”라고 하였다. -
해(解) - 알아서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여백공(呂伯恭) - 이름은 조겸(祖謙)이고, 호는 동래(東萊)이고, 무주(婺州)에 살았다. 벼슬이 비서성 저작(祕書省著作)에 이르렀고, 시호는 성공(成公)이다. 《언행록》에 보인다. -
가사(家事) - 중국말로서, ‘家’의 음은 ‘갸’이다. 가사는 세속 말에 기물(器物)을 ‘가사’라 하는 것과 같다. -
〈천선개과장(遷善改過章)〉
본주(本註)
신안(新安) 왕씨(王氏) - 이름은 염(炎), 자는 회숙(晦叔), 호는 쌍계(雙溪)이다. 주자의 문인이다. -
천선개과(遷善改過) - 자신에게 허물이 있기 이전에 남에게 선이 있음을 보고 따르는 것을 ‘천선(遷善)’이라 하고, 자신에게 허물이 있어 징계하여 고치는 것을 ‘개과(改過)’라 한다. -
부주(附註)
수우(隨寓) - 우(寓) 자는 아마 우(遇) 자일 것이다. 《근사록》에도 우(遇) 자로 되어 있다. -
재학자(在學者) - 묻기를 “재(在) 자의 해석을 응당 ‘면야(勉也)’ 자 뒤에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답하기를 “마땅히 역(力) 자 다음에 새겨야 한다.” 하였다. -
점검(點檢) - 따지고 살핀다는 말과 같다. -
점두(點頭) - 머리를 끄덕여 허락한다는 말이다. -
근사(近思) - 비슷한 것을 가지고 미루어 나가는 것이다. -
삼담(滲淡) - 삼(滲)은 평성(平聲)이니 흐르는 물에 씻는 것이다. 씻으면 깨끗해진다. -
강(强) - 더한다는 말과 같다. -
〈불원복장(不遠復章)〉
〈복괘(復卦)〉 - 다섯 음효(陰爻)의 아래에 하나의 양효(陽爻)가 생기는 괘상이다. 때로 말하면 동지(冬至)의 한밤중에 하나의 양이 처음 생긴 때에 속한다. 사람에게는 선하지 않았다가 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서기(庶㡬) - 성인(聖人)의 경지에 가깝다는 말이다. -
부주(附註)
대솔(大率) - 대개(大槪)와 같다. -
증자(曾子)……약속(約束) - 안자(顔子)의 일을 말하면서 증자(曾子)를 언급한 것은 증자가 공자의 도통(道統)을 얻었으나 기상과 역량이 안자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삼성(三省)함으로써 긴요하게 단속한 것이다. 속(束)은 검속한다는 뜻이다. -
신지총명(神之聰明) - 조화의 신이다. ○묻기를 “신이 총명하다는 것에 대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으나 듣고 알지 않음이 없으니 총명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
병산(屛山) - 성은 유(劉), 이름은 자휘(子翬), 자는 언충(彦沖)이며 숭안(崇安) 사람이다. 아버지가 금나라 오랑캐에게 죽임 당한 것을 애통해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 하였고, 거상(居喪) 중에 병이 들었다. 상을 마친 뒤 흥화군(興化軍) 통판에 제수되었으나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하고 무이산(武夷山)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죽자 다시 장가들지 않았고 효성과 우애를 다해 모친과 형을 섬겼다. 강학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므로 따라 배우는 사람이 많았다. 호는 병산(屛山)이다. 《일통지》에 나온다. ○주자의 아버지 위재(韋齋)가 죽을 때 병산의 형 자우(子羽)에게 처자를 부탁하고, 주자에게 “병산 유언충ㆍ백수(白水) 유치중(劉致仲)ㆍ적계(籍溪) 호원중(胡原仲) 세 사람은 나의 벗이니 네가 가서 섬기도록 하여라. 이 분들의 말을 따른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자가 병산이 병들었을 때 돌보았다. -
부(符) - 대나무 쪽에 글자를 써서 절반을 나누어 하나는 궁중에 두고 하나는 수령에게 주었다가 출병할 때 사신을 파견하여 부절을 맞추어 보고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바로 믿음을 가지고 봉행하는 뜻이다. 유자휘가 ‘불원복(不遠復)’ 세 글자로 신표로 삼아 봉행했다는 것은 감히 어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다가 저승의 부절이 이르면 따를 뿐이네[生老病死 符到便行]”라고 하였다. -
단지 일찍이 알지 못함으로 해서[只爲是不曾知] - 위(爲) 자는 거성(去聲)이다. 《운회》에 ‘입다[被]’로 풀이하였으니, 단지 전부터 이러한 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
심과난방(心過難防) - 마음의 허물을 한 생각이 어긋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참으로 온당하다. 그러나 미루어 말하면, 《대학》의 ‘자기(自欺)’와 ‘사유(四有)와 오벽(五僻)을 알지 못하는 것’, 《논어》의 ‘의(意)ㆍ필(必)ㆍ고(固)ㆍ아(我)’와 《맹자》의 ‘교제를 구하고[納交] 명예를 바라고[要譽] 오명을 싫어하는 것[惡其聲]’ 따위가 모두 마음의 허물이니, 하나하나 점검하여 다스려야 한다. -
〈자절사장(子絶四章)〉
의필고아(意必固我) -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의(意)이고, 기필코 얻고자 하는 것이 필(必)이며, 기필코 얻고자 하는 마음을 굳히는 것이 고(固)이고, 마침내 얻어서 자기 것으로 삼으니 바로 아(我)가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부주(附註)
안배포치(安排布置) - 원집에 보인다. -
물헌(勿軒) 웅씨(熊氏) - 이름은 화(禾), 자는 거비(去非)이고, 원(元)나라 사람이다. 무이산(武夷山)에서 은거하면서 거처하는 곳을 스스로 ‘오봉서당(鼇峯書堂)’이라 하였다. 도학(道學)으로써 자임하였고 논술한 것이 많다. 다만 그의 저서인 《한묵전서(翰墨全書)》에도 석가의 가르침이 실려 있고 그 나머지 또한 대부분 잡되고 자질구레하니, 그의 학문이 순수하지 않은 듯하다. -
〈안연문인장(顔淵問仁章)〉
천하귀인(天下歸仁) - 귀(歸)는 인정하다[許]와 같다. 그동안 제유(諸儒)는 모두 “천하 사람들 모두 나의 인(仁)으로 돌아온다.”라 해석하였는데, 정자는 이것을 옳지 않다고 하였지만 그의 문인인 절중(浙中)에 사는 왕빈(王蘋)은 오로지 사람들에게 ‘천하귀인(天下歸仁)’만을 가르쳤는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천하귀인(天下歸仁)’을 말하고 ‘극기복례(克己復禮)’는 말하지 않았다. 주자는 그가 직접 이천(伊川)을 뵈었으면서도 훗날의 괴상하게 가르친다고 탄식하였다. -
본주(本註)
양자(揚子) - 이름은 웅(雄)이고, 성도(成都)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여러 서적을 섭렵하였고, 말이 어눌하여 격한 토론을 하지 못하였지만 깊은 사색을 좋아하였다. 성제(成帝) 때에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이 되어 〈감천부(甘泉賦)〉, 〈하동부(河東賦)〉, 〈교렵부(較獵賦)〉, 〈장양부(長楊賦)〉 등 네 부를 지어 올렸고, 또 《법언(法言)》과 《태현경(太玄經)》 등을 저술하였다. 《일통지》에 나온다. ○《주자어류》에 ‘장경부(張敬夫 장식(張栻))가 양웅의 이 말과 아울러 석각에 새기지 않았기에 주자가 애석하게 여겼다.’는 말이 있다. -
부주(附註)
이천선생왈조(伊川先生曰條) - 이천 선생(伊川先生)이 18세 때 태학(太學)에 있었는데, 당시 대유(大儒)였던 호원(胡瑗)이 학관(學官)으로 있으면서 ‘안자(顔子)가 좋아했던 것은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 논하라.’는 과제를 내었는데, 이천이 이에 이 글을 지었으나, 끝내 과거에 뽑히지는 못하였다. -
기본(其本)……이정(而靜) - 주자가 말하기를 “본(本)은 본체(本體)를 말한다. 진(眞)은 사람의 거짓이 섞이지 않은 것이고, 정(靜)은 사물에 감응하지 않은 때이다. 오성(五性)이 진(眞)이고 미발(未發)이 정(靜)이다.” 하였다. -
칠정(七情) - 묻기를 “〈안자호학론(顔子好學論)〉에서 사단(四端)은 말하지 않고 칠정(七情)을 말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이는 뭉뚱그려 말한 것이니, 칠정을 말하면 사단이 그 속에 들어 있다.” 하였다. -
약기정(約其情)……지언(至焉) - ‘마음을 밝혀서 갈 곳을 아는 것’은 이치를 궁구하는 일이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성을 기르는 것’은 실천하는 일이다. -
수(守) - 한결같은 마음으로 잡아 지키는 것을 말한다. -
화(化) -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절로 절도에 맞는 것을 말한다. -
예의(禮儀) - 관례ㆍ혼례ㆍ상례ㆍ제례ㆍ대사례(大射禮)ㆍ향음주례(鄕飮酒禮) 따위이다. -
위의(威儀) - 나아가고 물러나며, 오르고 내리며, 절하고 엎드리는 따위이다. -
삼천 삼백(三千三百) - 조목이 많은 것을 총괄한 말이다. -
장자왈일단(張子曰一段) - 묻기를 “이 단락의 앞 부분에는 천(天)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인(仁)을 말하였는데, 뒷부분에서는 인을 먼저 말하고 천을 나중에 말하였으니, 이것은 양면을 서로 바꾸어 말해서 철저하게 발명한 것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옳다.” 하였다. -
호천(昊天)……유연(游衍) - 《시경》 대아 〈판(板)〉에 나온다. 왕(王) 자는 왕(往)와 같다. 조(朝)는 밝다는 뜻이니, 해가 뜰 때의 밝음이다. -
사사(事事)……출래(出來) - 묻기를 “모든 일에는 각각 하나의 이치가 있어서 서로 빌리지도 않고 서로 보태주지도 않는데, 지금 ‘인(仁)으로부터 만들어져 나온다.’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이치는 본래 서로 빌릴 수 없다. 그러나 하나의 일을 하면서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이 일을 이룰 수 없다. 《대학》의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視不見 聽不聞]’는 것과 《중용》의 ‘성실하지 않으면 물이 없다.[不誠無物]’라고 한 것이 모두 이것을 말한 것이다. 마음이 보존되면 인하고 보존되지 않으면 인하지 못하니, 인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보고 들으며 어떻게 물이 있겠는가.” 하였다. -
주타나골자(做他那骨子) - 타나(他那)는 저것이란 말이다. 주타나골자(做他那骨子)는 《주역》에서 이른바 “일을 주관하다.[幹事]”라는 것과 같다. -
적심(赤心)……여인(與人) - 그 마음을 다해 남에게 말해 준다는 뜻이다. -
순양하증유차(荀楊何曾有此) - 묻기를 “여기에서 특별히 두 사람을 거론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한(漢)과 당(唐)의 사람은 누구나 순자(荀子)와 양웅(揚雄)이 공자와 맹자를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특별히 두 사람을 든 것은 이들이 공자와 맹자를 계승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말이 간략하면서 이치가 완비되어 천년토록 끊어졌던 학문을 이은 장재(張載)보다 못함을 밝힌 것이다.” 하였다. -
일부당(一副當) - 공문서 용어이다. 무릇 물건 한 건을 일부(一副)라 한다. -
만연(延蔓)……상거(上去) - 비(譬) 자 아래에 피(被) 자가 빠진 듯하다. 만연한 물건을 세상의 인습에 비유한 것이다. 배우는 자가 세상의 인습에 얽매였을 때에 예를 배워 인습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절로 시원하게 벗어나 진보할 것이니, 초목이 덩굴 같은 것에 얽매여 있다가 이것을 풀어주면 저절로 자라서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홍로(紅爐)……점설(點雪) - 이는 본래 선가(禪家)의 말인데, 선생이 빌려 밝힌 것이다. -
수용(受用) - 자기에게 받아들여 소용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지금 불가에서 많이 쓴다. -
문심상우사(問尋常遇事) - 이것은 심장중(沈莊仲)의 질문이다. ○장중은 이름이 한(僩)이고, 주자 문인이다. -
요여(要與) - 여(與) 자는 당(當)과 같다. 뒤에 나오는 이러한 문세도 역시 이런 식이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 동한(東漢)의 허신(許愼)이 지은 것이다. -
익(益) - 묻기를 “조사경(趙士敬 조목(趙穆))은 익(益) 자가 개(蓋) 자가 되어야 할 듯하다고 의심했습니다.” 하니, 말하기를 “익 자의 의미가 무궁하다.” 하였다. ○《논어혹문》의 이 조에는 아래 위로 글이 더 있는데, 정민정이 자르고 요약해서 문장을 만들었으니 익 자가 옳다. -
호홀(毫忽) - 누에가 실을 토해낸 것이 비길 데 없이 가늘다. 한 마리 누에가 토해 낸 것이 홀(忽)이고, 10홀이 사(絲)이고, 10사가 호(毫)이고, 10호가 이(釐)이고, 10리가 푼(分)이고, 10푼이 촌(寸)이다. -
본말(本末) - 처음과 끝을 말한다. -
공자(孔子)……인심(人心) - 묻기를 “주자는 이미 ‘인심은 인욕이 아니고 사람으로서 없을 수 없는 것이다.’라 하고 또 ‘기(己)는 인욕의 사사로움이다’라 했습니다. 서산(西山)은 기(己)를 인심이라 했으니 그른 것이 아닙니까?” 하니, 말하기를 “서산의 설은 정자와 주자의 초년설과 같으니 전혀 그르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주자의 〈중용서문〉은 바로 만년의 정론(定論)인데 서산이 정론을 따르지 않고 초년설을 따른 것은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하였다. -
〈중궁문인장(仲弓問仁章)〉
재방(在邦)……무원(無怨) - 경(敬)과 서(恕)가 그 도리를 얻으면, 피차가 서로 접할 때에 사사로운 마음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라에 있을 때나 집안에 있을 때도 모두 원망이 없게 된다. -
부주(附註)
변수(便須) - 수(須)는 ‘반드시’라고 풀이해야 한다. 뒤에도 이런 식이다. -
무엇을 생각하듯 의젓하다[儼若思] - 《예기》 〈곡례(曲禮)〉 편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
동가(東嘉) 사씨(史氏)가 말한 조목 - 《일통지》에 “사백선(史伯璿)은 평양(平陽) 사람이다. 사서(四書)를 정밀하게 연구하여 주자의 본지를 터득하였다. 저서로는 《사서관규(四書管窺)》와 《관규외편(管窺外篇)》이 세상에 전한다.”라고 하였다.
○연차(然此)의 차는 아마도 이(而) 자의 오류인 듯하다. 그리고 사씨(史氏)의 이 말은 정자의 본의가 아닌 듯하니,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또 말하기를 “‘큰 손님을 뵙듯이 하고 큰 제사를 받들 듯 한다.’에 대해 정자는 ‘손님을 뵙듯 제사를 받들 듯 하는 기상을 보면 이것은 이미 학문이 성취된 사람으로 화순함이 가운데 쌓여 영화가 밖으로 드러나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가득 차고 조용하게 도에 일치하는 것으로 초학자가 갑자기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신독(愼獨)만이 그것을 지키는 방법이니 이 방법을 잘 지키면 훗날의 효과가 절로 이와 같을 것이다.……’ 하였는데, 사씨는 ‘외면이 이와 같더라도 안을 삼가지 않으면 다만 모양만 공손하게 하고 얼굴빛만 장엄할 뿐이다’라고 했으니, 정자의 본뜻을 크게 잃었다.” 하였다. -
상공(象恭) - 《서경》 〈요전(堯典)〉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
색장(色莊) - 《논어》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
장자소(張子韶) - 이름은 구성(九成)이고, 전당(錢塘) 사람으로 횡포거사(橫浦居士)라 자호하였고, 혹은 무구(無垢)라고 하였다. 8세에 육경(六經)을 암송하였으며, 일찍 학문이 절로 이루어졌다. 소흥(紹興) 원년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관직이 예부 시랑(禮部侍郞)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초기에는 구산(龜山) 양시(楊時)의 학문을 배웠고, 뒤에는 경산사(徑山寺)의 주지 종고(宗杲)와 막역지교(莫逆之交)를 맺어 학문이 선학(禪學)에 물들었으나 깨닫지 못하였다. -
극기복례(克己復禮)에 대한 물음 - 《어류(語類)》의 이 조항은 바로 황돈(篁墩)이 주자의 학설 가운데 몇 단락을 편집하여 만든 글이다. ‘공간(公看)’ 이하는 증조도(曾祖道)가 기록한 것이고, ‘비여적래(譬如敵來)’이하는 동수(董銖)가 기록한 것이고, 또 ‘극기(克己)’이하는 만인걸(萬人傑)과 증조도(曾祖道)의 기록을 합하였는데 증감한 것이 많다. 동수의 기록은 “……그는(안자) 역량이 커서 공자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머뭇거림 없이 인욕을 제거하도록 하였다. 비유컨대 도적이 쳐들어온다고 할 때, 안자에게는 나아가 서로 싸우라 하겠지만 중궁(仲弓)에게는 공경과 용서로 하라 할 것이니, 이것이 그로 하여금 성벽을 견고하게 하고 들판을 깨끗이 제거한 다음 길목을 차단하여 적들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중궁으로 하여금……’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敎) 자는 아래 구절에 속해야 하고, 안자가 나아가 서로 싸우게 한 것도 윗 문장의 ‘교타(敎他)’라는 말을 받는 것이라면 공자가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황돈이 안자에게는 이미 ‘교타(敎他)’ 이하 말을 뺐고, 중궁에게는 또 ‘이경서시교타(以敬恕是敎他)’ 여섯 글자를 빼고 오직 이 ‘교중궁(敎仲弓)’의 하나의 교(敎) 자만 남겨 두어서 그 본의를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하였다. ○조사경(趙士敬)이 ‘교(敎)’ 자는 불필요한 글자라고 했는데 역시 그르다. ○증조도의 자는 택지(擇之)이고, 동수의 자는 숙중(叔重)이고 호는 반간(盤澗)이며, 만인걸의 자는 정순(正淳)이니 모두 주자 문하의 고제이다. -
다소대(多少大) - ‘얼마[幾許]’라는 말과 같다. 혹은 대소대(大小大)라고 한다. -
순순(循循) - 차례가 있는 모양이다. -
청야(淸野) - 들판을 깨끗이 쓸어내어 적들이 양식을 얻지 못하여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
시살(廝殺) - 서로 죽이는 것이다. -
〈천명지위성장(天命之謂性章)〉
솔성을 일러 도라 한다[率性之謂道]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道不可須臾離] - 모두 〈중용질의〉에 보인다. -
본주(本註)
독자(獨者)……지야(地也) - 《중용(中庸)》에는 기(己) 자 아래에 소(所) 자가 있다. -
부주(附註)
견당랑포선(見螳螂捕蟬) - 채옹(蔡邕)이 진류(陳留)에 있을 때 이웃 사람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초대하기에 가니, 어떤 손님이 병풍 사이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채옹이 가만히 듣다가 “소리에 살기(殺氣)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고, 마침내 돌아오는데 주인이 뒤좇아 와서 이유를 물었다. 채옹이 사실대로 말해 주자, 거문고 연주자가 “전에 거문고를 타고 있을 때,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매미는 떠나려다가 날아가지 못하고 사마귀는 다가갔다 물러났다 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오싹해지면서 사마귀가 매미를 놓칠까 두려웠습니다.”라고 하였다. 채옹이 웃으면서 “이것은 충분히 살기에 해당된다.”라고 하였다. ○《일통지》에 “채옹(蔡邕)은 진류(陳留)의 어현(圉縣) 사람이다. 6대조 훈(勳)은 평제(平帝) 때에 미 영(郿令)을 지냈고, 왕망(王莽)이 신하로 삼으려 하자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하였다. 아버지 능(稜)은 맑고 깨끗한 행실이 있었다. 채옹은 효성이 지극하여 삼대가 함께 살았다. 벼슬은 의랑(議郞)을 지냈으며, 육경(六經)을 교정하고 직접 비문에 써서 태학(大學)의 문 밖에 세웠다. 뒤에 왕윤(王允)에게 피살되니, 관료들과 선비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라고 하였다. -
당랑(螳螂) - 벌레 이름으로, 당귀아비라는 벌레이다. 사람 몸에 흰 사마귀[白子]가 생기면 사마귀에게 빨도록 하면 모두 없어진다. -
양진(楊震) - 화음(華陰) 사람이다. 8대조 희(喜)는 고제(高帝) 때에 적천후(赤泉侯)에 봉해졌다. 양진이 경전에 밝고 널리 글을 읽었기 때문에 여러 선비들이 ‘관서의 부자 양백기[關西夫子楊伯起]’ = 백기(伯起)는 양진의 자이다. = 라고 불렀다. 50세에 비로소 벼슬에 올라 군수를 지냈으며, 안제(安帝) 때에 태위(大尉)에 제수되었다. 관직 생활이 청렴결백하여 넷이 안다는 것으로써 뇌물을 물리쳤고, 혹자가 재산을 증식시킬 것을 권하자, 양진이 “후세에 청백리 자손이라 칭송된다면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
견지처언(見知處言) - 견지(見知)는 자신이 남에게 알려졌다는 말이다. -
소씨와 양씨설[蘇楊氏說] - 설이 《중용혹문》에 보인다. -
선생(先生) - 주자를 가리킨다. -
왈양사(曰兩事) - 왈(曰) 자 위에 마땅히 주자(朱子) 두 글자가 있어야 한다. -
기기지(己旣知)……일개지(一箇知) - 묻기를 “정자가 ‘남과 나는 진실로 구분될 수 있다.’라고 하였고, 주자는 혹자의 말에 답하기를 ‘내가 알면 남도 반드시 안다. 그러므로 정자가 「하늘과 땅이 아는 것이 다만 하나의 앎일 뿐이다.」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정자와 주자의 이 말은 서로 모순이 되는 듯한데, 어떻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런 곳은 마땅히 융통성 있게 봐야지 한쪽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 정자는 일을 가지고 말하였고, 주자는 이(理)를 가지고 말하였으니, 어찌 서로 모순됨이 있겠는가.” 하였다. 또 묻기를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아는 것과 상제와 귀신 등의 설에 의심이 없을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합니까?” 하니, 한참 뒤에 말하기를 “주자가 일찍이 ‘우선 내버려 두고 확실하고 명백한 곳에 나아가 공부해야 한다. 알기 어려운 곳에 곧바로 나아가 힘을 써서는 안 되니, 이와 같이 하기를 오래토록 하면 반드시 괴이함이 생기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주자의 이 뜻은 바뀔 수 없다.” 하였다. -
도향 추씨(道鄕鄒氏) - 이름은 호(浩)이고, 자는 지완(志完)이며, 상주(常州) 진릉(晉陵) 사람이다. 행의(行義)로 이름이 났고 진사에 합격하였다. 우정언(右正言)이 되어 소장을 올려 장돈(章惇)의 죄를 극렬하게 논하였다. 철종(哲宗)이 맹후(孟后)를 폐하고 유씨(劉氏)를 세우자 다시 소장을 올려 책봉례를 정지할 것을 청하였다. 장돈이 그를 미치광이라고 비난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신주(新州)로 유배되었다. 휘종(徽宗)이 제위에 올라 그를 불러들여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삼았다. 채경(蔡京)이 추호를 시기하여 형주 별가(衡州別駕)로 좌천되었다가 곧이어 소주(昭州)로 유배 가서 죽었다. 시호는 충(忠)이다. 아들 병(柄)은 양시(楊時)에게 배우고 천거되어 편수관에 제수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태주 자사(台州刺史)에 이르렀다. 《일통지》에 나온다. -
과거(過擧) - 거(擧)는 사(事) 자와 같다. -
여씨(呂氏) - 이름은 대림(大臨), 자는 여숙(與叔), 대충(大忠)의 아우로, 남전(藍田) 사람이다. 정이(程頤)에게 배웠으며, 사양좌(謝良佐)ㆍ유작(游酢)ㆍ양시(楊時) 등과 함께 정자문하에 있으면서 ‘사선생(四先生)’이라 불렸다. 육경(六經)에 통달하였고 특히 《예기(禮記)》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극기명(克己銘)〉 등 여러 편이 있다. 원우(元祐) 연간에 비서 정자(秘書正字)에 천거되었다. 《일통지》에 나온다. 주자가 일찍이 “그의 문장과 논설은 매우 훌륭하다. 천군만마가 튼실하고 씩씩한 것 같다.”라고 하였다. -
착모(著摸) - 착(著)은 착수하는 것이고, 모(摸)는 음이 모(模)이고 막(莫)으로도 읽으며 손으로 잡는 것이니, 손을 대서 잡는다는 뜻이다. -
미발한 때[未發之時] - 시(時) 자는 《근사록》에 전(前) 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정유서(二程遺書)》에는 시(時) 자로 되어 있으니, 아마도 시(時) 자가 옳은 듯하다. -
계지(界至) - 지(至) 자는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구두를 아래에 붙이는데, 옳지 않다. 계지(界至)는 곧 지경(地境)이다. 어떤 경계로부터 어떤 경계까지라는 뜻이니, 미발(未發)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
정중수유물(靜中須有物) - 묻기를 “마음에 주재가 있으면 허(虛)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靜)한 가운데 물이 있다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지극히 허(虛)한 가운데 지극히 실한 것이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저리변시난(這裏便是難) - 난(難)은 알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정중유물(靜中有物)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어렵다는 뜻이다. -
주자가 미발에 대해 말한 것[朱子曰未發云云] - 이는 호남(湖南)의 제공(諸公)과 중화(中和)에 대해 논한 편지의 내용이다. 호남은 옛날 장사(長沙)이고 지금의 담주(潭州)이니 호남도(湖南道)에 속한다. 장남헌(張南軒 장식(張栻))이 살던 곳이다. ○주자의 이 편지는 정밀하고 정확하며 간결하고 알맞아서 매우 사람을 계발시키는 점이 있다. -
심멱(尋覓) - 조장하는 병통이다. -
안배(安排) - 따지고 비교하는 병통이다. -
본령공부(本領工夫) - 장경(莊敬)과 함양(涵養)에 대한 공부를 가리키니, 나무의 뿌리와 옷의 깃과 같다. -
이심위이발(以心爲已發) - 묻기를 “정자가 문인들에게 ‘심(心)은 이발(已發)이다.’라고 하였다가 또 다시 ‘옳지 않다.’라고 하였는데, = 《유서(遺書)》 등에 보인다. = 주자가 초년에는 어찌하여 이와 같이 인식하였다가 뒤에 와서야 바야흐로 그 잘못을 깨닫고 이렇게 논했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주자 초년의 견해가 우연히 정자의 초년설과 합치된 것이다. 뒤에 와서야 온당치 않음을 깨달아 과감하게 고치고 선을 따랐으니, 이는 더욱 어려운 점이다.” 하였다. -
단예(端倪) - 단서가 드러날 즈음을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인(仁)의 발단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인 것과 같은 유이다. -
단(段) - 세속에서 풀단[草段]ㆍ섶단[柴段]이라 할 때의 단(段)과 같은데, 세속에서 단(丹)으로 잘못 안다. 나누어 조각으로 만든다는 말이다. -
풍(風) - 묻기를 “마땅히 《시경》의 전(傳)에서 풀이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합니까?” 하니, 답하기를 “저기에서는 이와 같이 풀이했더라도 여기에서는 저것을 인용하여 풀이해서는 안 되고, 나의 두터운 덕이 흘러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였다. -
주(黈) - 타(他) 자와 두(斗) 자의 반절음이다. 황색이다. 또 면류관 옆의 솜을 ‘주(黈)’라고 한다. -
여자약(呂子約) - 이름은 조검(祖儉), 호는 대우(大愚),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의 아우로, 금화(金華) 사람이다. 자기의 견해만 고집하였으므로, 주자가 수천만 마디의 서신을 주고받았으나 끝내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선하고 신실한 사람이었기에 주자가 “준치는 가시가 많고, 금귤은 너무 시다.”라고 칭찬하며 안타까워한 적이 있는데, 훌륭한 사람으로서 병통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
불식사도시절(不識四到時節) - 황홀하여 사방에서 오는 일을 알지 못하는 때이다. 지금 속어에도 ‘사방에서 몰려든다.’라는 말이 있다. -
〈홍범(洪範)〉의 오사(五事) - 모습은 공손하고, 말은 순조롭고, 보는 것은 밝고, 듣는 것은 분명하고, 생각은 지혜로워야[睿] 한다. 예(睿)는 통하고 밝은 것을 이른다. -
일매(一枚) - 한 개라는 말과 같다. -
애(獃) - 음은 애(埃)이고, 어리석다는 말이다. -
망양한(罔兩漢) - 망양(罔兩)은 《장자(莊子)》의 곽상(郭象) 주석에 “그림자 밖의 희미한 그늘이다”라고 하였으니,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한(漢)은 사람에 대한 천한 칭호이니, 속어에 ‘놈’이라는 말과 같다. -
집지(執持) - 조장하거나 얽매이는 병통을 말한다. -
유심긍지(有甚矜持) - 긍엄(矜嚴)이나 긍장(矜莊)은 모두 지나치게 엄격한 것이다. ‘무슨 긍지가 있는가’라는 것은 구속하고 핍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연평 이씨(延平李氏) - 이름은 동(侗)이고, 자는 원중(愿仲)으로, 검포(劍浦) 사람이다. 나종언(羅從彦)을 따르며 배웠다. 산전(山田)에 오두막을 짓고 세상일을 끊고 지낸 지가 40여 년이었는데, 간혹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해도 태연히 자득하였다. 사계(沙溪) 등적(鄧迪)이 일찍이 ‘얼음으로 만든 호리병에 맑은 가을 달이 비친 것과 같아,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氷壺秋月瑩澈無瑕]’라고 칭송하였다. 주자가 스승으로 섬겼으며, 세상에서 ‘연평 이 선생(延平李先生)’이라 불렀다. 나예장(羅豫章 나종언(羅從彦))을 따르며 강송(講誦)을 한 뒤, 종일 꼿꼿이 앉아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미발(未發)하기 전의 기상(氣像)이 어떠한가를 증험하여 이른바 ‘중(中)’이라는 것을 구하였다. 이와 같이 한 지 오래 되자 천하의 대본(大本)이 진실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향년 71세였고,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일통지》에 나온다. -
우유심양(偶有心恙) - 이 부분을 논하고 이함형(李咸亨)에게 말하기를 “내 나이 17, 8세 때에 고향에 선배도 없고 찾아가 묻고 배울 데도 없었다. 그리하여 다만 고서(古書)를 읽으면서 그 실질을 구하다가, 달아나려는 마음이 생기면 한결같이 잡아 지키려 하였고 때로는 혹 한밤중에 일어나 꿇어앉아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였다. 날마다 이와 같이 하다 보니 심력을 너무 써서 도리어 마음의 병을 얻어 거의 실성할 뻔하였다. 여러 방법으로 병을 조리하고 다스리느라 젊은 나이에 전혀 독서를 하지 못했었는데, 노년에 이르러 성학(聖學)의 길을 분명하게 보고 나서야 겨우 늘그막에 수습할 수 있었다. 내가 그대를 보니, 말과 행동하는 사이에 급박한 병통이 많이 있고 너그럽고 느긋한 뜻이 없다. 옛날에 이른바 ‘도리에 얽매인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마음의 병이 생길까 염려되니 조심하시오.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 ‘독서하는 여가에 틈틈이 놀고 바람을 쐬어 정신을 펴고 성정을 쉬게 하라[讀書之餘 間以游詠 發舒精神 休養情性]’라고 하였으니, 이를 법으로 삼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
하숙경(何叔京) - 이름은 호(鎬)이고, 소무(邵武) 사람이다. 태(兌)의 아들이며, 호가 대계(臺溪)이다. 주자가 벗으로 대우하였다. -
체인(體認) - 옛날에 어리석은 백성이 소를 잃어버렸는데, 밖에 나갔다가 어떤 사람이 소를 수레에 멍에하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수레 가운데로 나아가 알아보고 “내 소다.”라고 하니, 그 사람이 따지지도 않고 넘겨주었다. ○물건을 잃어버려 그 물건을 찾을 때는 분변하여 알아차리고 “이것은 내가 잃어버린 물건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인(認) 자의 뜻이다. 체(體)는 이른바 ‘저것을 골자로 삼는다.’라는 것으로 골자로 삼아서 안다는 말이다. -
결(訣) - 말로써 서로 전수하는 것을 결(訣)이라 한다. -
친자(親炙) - 향기를 쐬고 고기를 굽는 것처럼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이다. -
고(辜) - 고(孤) 자와 통용한다. -
구중(求中) - 묻기를 “정자와 주자는 모두 중(中)을 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으나, 양시(楊時)ㆍ나종언(羅從彦)ㆍ이동(李侗) 세 선생은 모두 이로써 터득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세 선생은 모두 성품이 깊고 조용하여 구하지 않는 것으로 구하였기 때문에 병통 없이 얻음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성품이 대부분 시끄럽고 조급하여 억지로 찾고 구하니 병통만 될 뿐이고 끝내 얻는 것도 없는 것이다.” 하였다.
○주자의 문인이 묻기를 “연평(延平)이 중(中)을 구한 것은 조장하고 얽매이는 병통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보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다.” 하였다. -
낙평(樂平) 정시등(程時登) - 자는 등용(登庸)이고, 파양 정씨(鄱陽程氏)라고 불렸다. 주자가 지은 〈재거감흥(齋居感興)〉 시를 주석하였다. 낙평(樂平)은 파양(鄱陽)의 속현이다. -
여소(如少)……난거(亂去) - 소가몰긴요(少可沒緊要)는 세속 말에 그리 긴요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 몰(沒)은 없다는 뜻이다. 호란(胡亂)은 뒤섞이고 어지럽다는 뜻이다. -
이면(裏面) - 《시경》의 가운데를 말한다. -
척출(剔出) - 긁어내다. 고기를 잘라서 뼈를 발라낸다는 것과 같은 듯하다. -
착락(著落) - 《어록해(語錄解)》에 “착락은 돌아가 머문다는 뜻이 있다.”라고 하였다. -
수시(雖是)……재차(在此) - 체(體)가 이미 모든 용(用)을 갖추고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모든 작용의 이치가 발하기 전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 -
주인(主人) - 마음이다. -
명막중조관(冥漠中照管) - 명막(冥漠)은 고요하여 조짐이 없는 것이다. 이는 고요하여 아직 발하지 않았으나 밝게 살펴서 놓아두지 않는다는 말이니, 불가의 적멸(寂滅)의 도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
호씨(胡氏)가 말한 조목 - 이름은 대시(大時), 자는 계수(季隨)이니, 오봉(五峯) 굉(宏)의 아들이다. 남헌(南軒)이 오봉에게 배웠고 계수는 남헌에게 배웠는데 남헌이 죽은 뒤에 계수가 주자에게 질의하였다.
○이는 계수가 여러 벗들과 학문을 논한 다음 선생에게 질정한 것이다. 이 조(條) 아래에 ‘우공(友恭)의 자는 공숙(恭叔)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는 실제로 반공숙(潘恭叔)의 말이다. 황돈(篁墩)이 우연히 살피지 못하여 계수의 말이라 여겼다. -
원주(元註) - 본주(本註)이다. -
〈잠수복의장(潛雖伏矣章)〉
- 《중용(中庸)》 첫 장의 ‘먼저 체를 말함[先言體]’ 조목이 〈중용질의〉에 보인다. -
본주(本註)
지양(持養) - 경(敬)을 유지하여 함양하는 것이다. -
부주(附註)
주연(朱然) - 오(吳)나라 장수로, 《삼국지(三國志)》에 보인다. 자질이 남보다 뛰어난 자이다. -
안숙자(顔叔子)……조열도(趙閱道) - 《사기(史記)》에 “숙자가 홀로 방 안에 있을 때 밤에 큰 비가 내리자 어떤 여인이 들어왔다. 숙자는 그 여인에게 촛불을 밝히도록 하였으며 촛불이 다 타 버리자 집 기둥을 쪼개 계속해서 불을 밝혀 날이 새도록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하였다. ○백기(伯起 양진(楊震))가 뇌물을 물리친 것은 윗 장에 보인다. ○사마군실(司馬君實 사마광(司馬光))의 일은 윗 문장에 보인다. ○조열도(趙閱道)는 이름이 변(抃)이고, 구주(衢州) 사람이다. 송 인종(宋仁宗)을 섬겼고, 신종(神宗) 초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시호는 청헌(淸獻)이다. 낮에 한 일을 밤이 되면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노천에서 향을 사르고 = 노천에 앉아 향을 사르는 것이다. = 하늘에 아홉 번 절하고 고하였으니, 응당 고하지 못할 일은 감히 하지 않았다. -
제2편〔第二篇〕
〈성의장(誠意章)〉
신기독(愼其獨) - 원집에 보인다. -
증자왈(曾子曰), 십목십수(十目十手) - 모두 〈대학질의〉에 보인다. -
부주(附註)
쌍봉(雙峯) 요씨(饒氏) - 이름은 노(魯)이고, 자는 중원(仲元)이고, 요주(饒州) 여간(餘干) 사람이다. 어려서 황면재(黃勉齋)에게 수학하였다.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고 근엄하였으며 학문이 정밀하고 밝아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호는 쌍봉(雙峯)이다. 세상을 마치자 문인들이 ‘문원(文元)’이라 사시(私諡)하였다. 고을에 석동서원(石洞書院)이 있는데 바로 강학하던 곳이다. 《일통지》에 나온다. -
차대가험(此大可驗) - 원집에 보인다. -
요지(要之) - ‘결론적으로 말하면’이라는 뜻이다. -
성현(聖賢)……심질(心疾) - 생각하건대, 이때 어떤 사람이 마음의 병에 대한 일을 먼저 말하였으므로 아울러 거론하여 답한 듯하다. ‘불해심질(不害心疾)’이란 마음의 병을 가지고 스스로 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
인지(人之)……허실(虛實) - 원집에 보인다. -
유 충정(劉忠定) - 이름은 안세(安世)이고, 자는 기지(器之)이고, 대명부(大名府) 원성(元城) 사람이다. 관직은 간의대부를 지냈다. 얼굴빛을 바르게 하고 조정에서 서서 아는 것은 무엇이든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정의 호랑이[殿上虎]’라고 지목하였다. 소동파(蘇東坡)가 원우(元祐) 연간의 인재를 논하면서 “기지는 참으로 강철같은 사람이니 미칠 수 없다.”라고 하였다. -
자불망어시(自不妄語始), 은괄(檼括) - 모두 원집에 보인다. -
체주(掣肘) - 체(掣)은 잡아당긴다는 뜻이고, 주(肘)는 팔뚝이란 뜻이다. 춘추(春秋) 시대에, 노(魯)나라가 복자천(宓子賤)을 선보 영(單父令)으로 삼았는데, 자천이 글씨 잘 쓰는 사람을 빌려서 글씨를 쓰게 하고 두 사람을 시켜서 옆에서 그의 팔을 잡아당기게 하였다. 글씨가 엉망이 되면 화를 내고 글씨가 잘 써지려 하면 다시 팔을 잡아당기게 하였다. 글씨 쓰던 사람이 사양하고 돌아가 노나라 임금에게 아뢰자 노나라 임금이 “자천은 내가 그를 흔들어 선정을 펼 수 없게 한 것이 괴로운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곳에서는 징발하지 못하도록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선보에 교화가 크게 시행되었다. -
모순(矛盾) - 모두 병장기이다. 창으로 찌르고 방패로 막아 서로 쓰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교(矯) - 《운회》에 “ 망녕되고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속임수로 바르지 않은 것을 꾸미는 것을 말한다. -
난계(蘭溪) 범씨(范氏) - 이름은 준(浚)이고, 자는 무명(茂明)이고, 난계(蘭溪) 사람이다. 소흥(紹興) 연간에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고, 뜻을 돈독하게 하고 도를 구하였다. 향계선생(香溪先生)으로 불렸다. -
유욕적(有欲炙)……족고(足高) - 진(晉)나라 고영(顧榮)이 술잔치를 연 적이 있는데, 고기 굽는 사람이 불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고 불고기를 잘라서 그에게 먹이며 “어찌 종일토록 고기를 구우면서 그 맛을 알지 못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그 후 조왕(趙王) 윤(倫)의 난리에 고영이 붙잡혔는데, 그 사람이 감독하는 병사가 되어서 고영을 구해 주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치자 진(晉)나라 유병(臾騈)이 성채를 깊게 하고 군영을 견고하게 하여 기다리기를 청하였고, 진(秦)나라 사람은 싸우고자 하여 나가 싸우다가 물러났다. 진(秦)나라 사신이 밤에 진(晉)나라 사신에게 도발하며 “두 나라 군대의 싸움에 군사들이 모두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으니 내일 싸움터에서 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유병은 “사신이 눈이 흔들리고 말소리가 여상하지 않으니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진(秦)나라 군대가 밤중에 달아나버렸다. ○가릉(柯陵)의 회맹(會盟)에서 선양공(單襄公)이 노 성공(魯成公)에게 “진(晉)나라 임금이 먼 곳을 바라보고 발을 높이 들어 눈이 몸에 있지 않고 발이 눈에 있지 않으니, 그 마음이 반드시 이상하다. 눈과 몸이 서로 따르지 않으니, 어찌 오래가겠는가.”라고 하였다. ○고영(顧榮)은 진 원제(晉元帝) 때 사람이다. ○조왕(趙王) 윤(倫)은 진 혜제(晉惠帝)의 아우이다. 가후(賈后)의 난리를 틈타 제위를 찬탈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유병(臾騈)은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책사이다. ○교수(交綏)는 군대가 맞부딪쳤으나 교전하지 않고 물러난 것을 뜻한다. 은(憗)은 의(疑) 자와 근(斳)의 반절음이고, 이지러졌다는 뜻이다. 교전했으나 둘 다 물러났기 때문에 상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상견(相見)은 서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선양공(單襄公)은 주(周)나라 대부이고, 진(晉)나라 임금은 여공(厲公)이다. -
유동에게 묻다[問劉棟] - 물음은 주자의 물음이다. 유련은 주자 문인이다. = 동(棟) 자는 간(柬) 자를 따라야 옳다. = -
각우(却又)……부득(不得) - 경(敬)의 상태를 유지하여 근본을 세우고, 이치를 궁리하여 앎에 이르고, 자신을 반성하여 실제의 일을 실천하는 세 가지 공부를 가지고 서로 나아가 쌓기를 오래도록 하여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옳음을 참으로 알고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참으로 아는 데 이르면 거의 면할 수 있을 것이다. -
부지불식(不知不識) - 원집에 보인다. -
환주(喚做) - ‘이런 일이라고 일컫는다.’는 말과 같다. -
유동 아래의 소주[劉棟下小註] - 원집에 보인다. -
투심(偸心) - 투(偸)는 도둑질하는 것이다. 마음이 자신을 따르지 않고 몰래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도둑질과 같은 것이다. -
끊지 못함[不會斷得] - 원집에 보인다. -
관회(官會) - 관청에서 발행한 회자(會子)이다. 송(宋)나라 화폐 이름으로 지금의 지전(紙錢)과 같다. -
추처(粗處) - 바로 사전(私錢)을 주조하고 관회(官會)를 위조하는 따위를 가리킨다. -
잠(賺) - 직(直) 자와 함(陷) 자의 반절음이다. 비싸게 사는 것이다. 또 물건을 팔 때 진실함을 잃는 것이다. -
지(秪) - 지(祇) 자로 쓰기도 하고 지(秖) 자로 쓰기도 하는데, 모두 아래에 한 획이 없다. -
우왈학자(又曰學者) - 이과재(李果齋)가 〈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에서 물은 것이다. -
영가(寧可)……위시호(爲是乎) - 원집에 보인다. -
포탄(鋪攤) - 탄(攤) 자는 음이 타(他)와 간(干)의 반절음이다. 포(鋪)와 탄(攤)은 모두 펼친다는 뜻이다. -
방문외(放門外) - 문 밖에 둔다는 뜻이다. -
두리(肚裏) - 뱃속이란 뜻이다. -
불위기도호간(不爲己圖好看) - 《어류》에는 본래 “자신을 위하지 아니하고 유익함을 구하지 않고 단지 명예를 좋아하여 좋게 봐주기를 꾀할 뿐이다.[不爲己 不求益 只是好名 圖好看]”로 되어 있다. -
남월왕(南越王) - 이름은 타(佗)이고, 조(趙) 땅 사람이다. 진(秦)나라 때 남해위(南海尉)가 되었다가 그대로 왕 노릇하였다. 황옥(黃屋)과 좌독(左纛)을 사용하여 나갈 때에 경계하고 들어올 때에 벽제(辟除)하였다. 한 문제(漢文帝)가 즉위하여 육가(陸賈)를 사신으로 보내 명을 전하기를 “나는 고황제(高皇帝)의 측실 아들로 군신들의 권면에 못 이겨 대통을 이었노라. 덕이 부족하여 그대를 교화하기 어렵구나. 그러나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들에게 두 왕이 없으니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고통을 입게 하지 말라.”라고 하니, 타가 그 말에 복종하며 “황옥과 좌독을 쓴 것은 그저 즐기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
운봉(雲峯) 호씨(胡氏) - 이름은 병문(炳文), 자는 중호(仲虎), 무원(婺源) 사람이다. 원(元)나라 초기에 신주서원(信州書院) 원장이 되었고 두 번 난계 주학정(蘭溪州學正)이 되었다. 주자의 학문에 독실하게 뜻을 두었고 제자백가와 의서(醫書)와 복서(卜書) 등도 궁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세상에 ‘운봉 선생(雲峯先生)’이라 불렸으며, 죽은 뒤 시호는 문통(文通)이다. 《일통지》에 나온다. -
조치도(趙致道) - 이름은 사하(師夏)이고, 주자 문인이다. 주자의 손서(孫壻) 중에 조사하(趙師夏)가 있는데 아마도 이 사람인 듯하다. -
호자(胡子) - 오봉(五峯)이다. -
동체이용(同體異用) - 《지언(知言)》에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체(體)는 같으나 용(用)이 다르다.”라고 하였다. -
기생(寄生) - 나무 위의 겨우살이다. -
우(疣) - 혹이다. -
췌(贅) - 뙤살이다. -
이것 또한 성이 동한 것이기는 하나[此雖亦誠之動] - 묻기를 “선(善)은 하늘이 부여한 바른 이치이고 악(惡)은 물욕에서 생겨난 사악하고 더러운 것이니, 악을 성(誠)이 동(動)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조씨(趙氏)가 이와 같이 말했는데도 주자가 ‘옳다.’고 하였으니, 여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하니, 말하기를 “조치도(趙致道)가 ‘악도 성이 동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설이 나온 유래가 오래 되었다. 하숙경(何叔京 하호(何鎬))이 편지로 이것을 논한 적이 있고, 또 ‘어디로부터 이 인욕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자, 주자가 답하기를 ‘이 물음이 매우 긴요하고 간절하다. 내가 생각하건대 인욕이란 천리의 반대이니, 「천리로 인하여 인욕이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다면 옳지만 「인욕 또한 천리이다.」라고 말한다면 옳지 않다. 천리 가운데에는 본래 인욕이 없고, 오직 흐름에 잘못이 있어서 마침내 인욕이 생겨 나오게 된다. 정자(程子)는 「선과 악이 모두 천리이니, = 이 구는 매우 놀랄 만하다. = 악이라고 이르는 것은 본래 악이 아니요, = 이 구는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 다만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여 곧 이와 같게 되었다.」 하였으니, = ‘어디로부터 이 인욕이 생겨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대해 이 구절로 답하였다. 이상의 두 소주(小註)도 주자의 설이다. = 여기에 인용한 「악 또한 성(性)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뜻이 또한 이와 같다.’ 하였으니, 이것이 조씨의 설이 나오게 된 이유이다. = 정자의 설은 《근사록(近思錄)》에 보인다. ○‘악 또한 성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정자의 설이다. 하숙경이 이것을 인용하였으므로 주자가 함께 거론하여 답한 것이다.” 하였다. = -
인심지발현(人心之發見) - 묻기를 “인심은 인욕이 아니라고 주자가 이미 말했습니다. 조치도(趙致道)가 ‘인심의 발현이요 사욕의 유행이다’라고 하였는데도 주자가 옳다고 하였으니, 이는 틀림없이 주자의 초년(初年)에 확정되지 않은 설로 보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것은 아직 상고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
〈성기도(誠幾圖)〉 - ‘이는 호씨(胡氏 호굉(胡宏))의 설을 증명한 것이다.[此證胡氏之說]’에서 설(說) 자는 《통서》에 실(失) 자로 되어 있다. -
〈정심장(正心章)〉
분공호우(忿恐好憂) - 김경인(金景仁)의 〈대학질의록(大學質疑錄)〉에 “묻기를 ‘이 네 가지가 칠정(七情)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네 가지는 칠정에서 세 가지를 뽑은 것인데, 오직 우환(憂患)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또한 칠정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
심부재언(心不在焉) - ‘또 《대학통고》를 살펴보니……[又按通考]’라고 한 조목과 아울러 〈대학질의〉에 보인다. -
본주(本註)
인소불능무(人所不能無), 일유지(一有之) - 원집에 보인다. -
필찰(必察)……직지(直之) - ‘주씨(朱氏)ㆍ정씨(程氏)……’라고한 조목과 아울러 〈대학질의〉에 보인다. -
부주(附註)
유주(有主)……즉실(則實) - 두 실(實) 자 중에 위의 실(實) 자는 성실함이고 아래 실 자는 꽉 찬 것이다. 유주(有主)의 실(實)은 이치가 진실한 것이고 무주(無主)의 실은 욕심이 꽉 찬 것이다. -
임용중(林用中) - 자는 택지(擇之)이고, 고전(古田) 사람이다. 선생이 외우(畏友)로 지목했으며 ‘견식과 지조가 갈수록 더욱 정밀하다’고 일컬었다. 시(詩)가 《남악창수집(南嶽唱酬集)》에 보인다. -
부(郛) - 성곽이다. -
귀신이 그 집을 엿보다[鬼闞其室] - 양웅(揚雄)이 말하기를 “고명한 집에 귀신이 그 방을 엿본다.” 하였다. -
심존(心存) - 마음이 사특한 데 있는 것이다. -
심망(心亡) - 마음이 달아난 것을 말한다. -
전주(澶州) - 하동로(河東路)에 속한다. 명도 선생이 당시에 막료가 되었었다. -
소(少) - 없다는 말과 같다. -
우사(憂事)……정이리(靜而理) - 원집에 보인다. -
기사(機事) - 교묘한 변화가 많고 이해에 관계되는 일에 꾀를 써서 대응하는 것이다. -
주라사(周羅事) - 두루두루 망라한다는 뜻과 같다. -
범유(凡有)……소구(所懼) - 원집에 보인다. -
간지(艮止) - 그침은 〈간괘(艮卦)〉의 덕이다. ○8괘가 각각 형상과 덕이 있다. 〈건괘(乾卦)〉는 하늘, 〈곤괘(坤卦)〉는 땅, 〈감괘(坎卦)〉는 물, 〈이괘(离卦)〉는 불, 〈진괘(震卦)〉는 우레, 〈간괘(艮卦)〉는 산, 〈손괘(巽卦)〉는 바람, 〈태괘(兌卦)〉는 못이 형상이다. 〈건괘〉는 강건함, 〈곤괘〉는 유순함, 〈감괘〉는 험함, 〈이괘〉는 밝음, 〈진괘〉는 움직임, 〈간괘〉는 그침, 〈손괘〉는 들어옴, 〈태괘〉는 기쁨이 덕이다. 〈진괘〉는 하나의 양효(陽爻)가 두 음효(陰爻) 아래에 생겨나기 때문에 동(動)이 되고, 〈간괘〉는 하나의 양효가 두 음효 위에 머물기 때문에 지(止)라 한 것이다. -
지수심군(志帥心君) - 원집에 보인다. -
주장(主張) - 주재하여 편다는 말과 같다. -
우왈(又曰) - 주순필(周舜弼)이 기록한 것이다. 《어류》 〈총론위학지방〉에 나온다. -
도불이회아저(都不理會我底), 탱선(撑船)……사시(使匙), 재경(才敬) …저개심(這箇心) - 아울러 원집에 보인다. -
칭(秤) - 거성(去聲)이다. 칭(稱)과 같으니, 저울의 총칭이다. -
일반(一般) - 서로 같다는 말과 같다. 또는 일종이란 뜻이다. -
강(强) - 지금의 호방하고 강퍅하다는 말이다. -
도부득(都不得) -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라도 응당 자기에게 도리가 있어서 이를 처리하여야 되고, 다만 기쁨과 노여움은 내가 힘쓸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우환은 나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것이어서 힘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지시도연(只是徒然) - 원집에 보인다. -
인산(仁山) 김씨(金氏) - 이름은 이상(履祥)이고, 자는 길보(吉甫)이고, 금화(金華) 사람이다. -
후리(詬詈) - 욕하며 꾸짖는다는 뜻이다. -
인성(忍性) -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맹자》에 나온다. -
원개(元凱) - 진(晉)나라 두예(杜預)의 자(字)이다. 《춘추좌전》을 탁닉한 버릇이 있었다. -
상여(相如) - 사마상여(司馬相如)이다. -
수(輸) - 바친다는 말과 같다. -
심제(心齊) - 《장자》에 나오는 말인데, 대의는 ‘뜻을 한결같이 하고 마음을 비워 마음이 가지런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
부릉지행(涪陵之行) - 부릉(涪陵)은 바로 부주(涪州)이다. 촉(蜀) 땅으로 강릉(江陵) 등을 거쳐 장강(長江)을 거슬러 올라간다.
○부릉(涪陵)에 관한 한 단락은 《이락연원록》에 실려 있는 것으로, 그 주석에 “소씨(邵氏)의 《문견록(聞見錄)》을 보니”라고 하였고, 또 《주자어류》에 주자가 이 일에 대해 논한 것이 실려 있으니 두 본의 기록이 있다. 그 하나는 바로 이 주석에서 취하였는데 이와 다른 것이 많고, 또 하나는 《이락연원록》에 실린 것으로 역시 차이가 많다. 또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이 조목이 실려 있는데 문장이 역시 차이가 많다. 또 주자는 “달(達)과 사(舍)는 한 가지 일이니, 어찌 분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고, 《학림옥로》에는 “달(達)은 지(智)이고 사(舍)는 용(勇)이니, 도를 듣는 것[聞道]은 달(達)이 되고 죽어도 괜찮은 것[死可]은 사(舍)이다.”라고 하였다. 이의 본뜻은 “이천(伊川)은 이와 같이 위험한 처지를 당하여 죽음을 보기를 편안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겼으니, 이는 반드시 평소 도를 들어서 천명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것이다. 주자의 뜻도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학림옥로》는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것이다. 나대경의 자는 경륜(景倫)이고, 은거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학문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염계(濂溪)ㆍ관중(關中)ㆍ민중(閩中)의 제현을 숭상하였으니 역시 훌륭한 사람이다. 염예(灩澦)는 촉(蜀) 땅이 지세가 높기 때문에 물결이 매우 사납다. 하류로 내려오면 삼협(三峽)ㆍ구당(瞿塘)ㆍ염예퇴(灔澦堆)를 경유하는데 매우 험한 곳이어서 배가 전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천이 부주로 유배 갈 때 배가 이곳을 지나면서 몇 번이나 위험한 고비를 당했으나 태연히 동요하지 않았다. -
자(髭) - 수염이 입 위에 난 것을 자(髭)라 하고 입 아래 난 것을 수(鬚)라 하고 뺨에 난 것을 염(髥)이라 한다. -
장격(臧格) - 자세하지 않다. -
일경(一警) - 경(警) 자는 마땅히 경(驚) 자로 되어야 한다. -
《대학장구》와 부합하지 않음[章句不合] - 조사경(趙士敬)에게 답하기를 “ 《대학장구》에서는 경(敬)을 가지고 마음을 보존하는 방도로 삼아 삼불(三不)의 부분에 대해서 말했는데, 장씨(臧氏)는 경(敬)을 가지고 허물을 없애는 도로 삼아 사유(四有)의 부분에서 말했다. 이것이 황돈(篁墩)이 다르다 한 이유이다.” 하였다. -
왕유관(王幼觀) - 이름은 과(過)이고, 파양(鄱陽) 사람이다. 주자의 문인(門人)이다. -
모견(某見)……배거(配去) - 대자면(大字面)은 옛날에 부정축재한 죄를 지으면 그 얼굴에 장(贓) 자를 새겨 넣는 것을 말한다. 배거(配去)는 유배 보내는 것이다. -
모구시(某舊時)……양책(兩冊) - 주자가 “내가 옛날에 배우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출입할 때에 책을 다 가지고 다닐 수 없어서 일마다 뽑아서 두 책으로 만들었다.……”라고 한 것이다. -
차만(且慢) - 만(慢)은 느슨하다는 뜻이다. 주자가, 그의 학문이 범범하고 잡다한 데로 흐르려 하였으나 허물을 고치는데 과감했다고 스스로 말했으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배우는 이가 허물을 고치는 용기를 본받지 않고서 지레 스스로 비루한 데 빠졌다고 핑계를 대니 죄가 그 사람에게 있으니 선생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
혼신(渾身) - 온 몸을 들어서 말한 것으로, 온 집안[渾家]이라는 따위와 같다. -
초환(初還) - 주자가 민중(閩中)에 살다가 19세에 급제하고 성묘하기 위해 처음으로 무원(婺源)에 갔는데 바로 고향이다. 그래서 “처음 돌와왔다.”라고 한 것이다. 무원(婺源)은 휘주(徽州)의 속현이고, 신안(新安)은 바로 휘주의 별호이다. -
종인(宗人) - 종족(宗族)의 사람을 말한다. 족인(族人)을 모으는 것은 지금 세속의 친족 모임의 따위와 같다. -
타주(打酒) - 술을 사 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관청에 전매 주점을 설치하고 술을 팔았고 사가(私家)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
장부(臟腑) - 심장ㆍ간ㆍ비장ㆍ폐ㆍ신장이 오장(五臟)이고, 쓸개ㆍ신장ㆍ삼초(三焦)ㆍ방광ㆍ대장ㆍ소장이 육부(六腑)이다. -
지관(只管) - 한결같이 또는 일체라는 뜻이다. -
격고송원(擊鼓訟冤) - 송나라 때 왕궁 근처에 등문고(登聞鼓)를 설치하고 원통함이 있으면 치게 하여 그 원통함을 호소하게 하였다. -
해설(解說)……정분(定分) - 해(解)는 안다는 뜻이다. 또한 짐승과 새도 한 번 마시고 한 번 먹을 때도 정해진 분수가 있음을 말할 줄 안다는 말이다. -
확(鑊) - 가마솥이다. -
신불급(信不及) - 도를 믿음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성인의 말씀을 믿고 독실히 지키는 것을 ‘믿음이 미쳤다[信得及]’라고 한다. -
황씨가 지은 행장[黃氏撰行狀] - 묻기를 “위학(爲學) 아래 궁리(窮理) 위에 ‘경을 주로 하여 그 근본을 세우다.[主敬以立其本]’ 여섯 자를 뺀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정민정(程敏政) 공이 이 한 구절을 뺀 것은 잘못인 듯하다.” 하였다. -
〈예악불가사수거신장(禮樂不可斯須去身章)〉
군자왈(君子曰) - 《좌전(左傳)》에도 이와 같이 말한 예가 많으니, 아마 당시 정인군자(正人君子)의 말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
직(直) - 곧고 발라서 기울거나 굽음이 없다는 말이다. 《논어》에 온량(溫良)을 “이직(易直)”이라 풀이하였다. -
중심(中心) - 《예기(禮記)》에는 ‘심중(心中)’으로 되어 있다. -
안색(顔色) - 얼굴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
용모(容貌) - 온 몸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 -
덕휘가 안에서 움직인다[德輝動於內] - 원집(原集)에 보인다. -
조(錯) - 이것을 들어서 저기에 더하는 것이다. -
본주(本註)
공씨(孔氏) - 한(漢)나라 공안국(孔安國)이 오경(五經)에 주석을 붙였고, 당(唐)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오경정의(五經正義)》를 지었는데,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자세하지 않다. -
부주(附註)
절문(切問)에서 중의(中矣)까지 - 자하(子夏)의 말이니, 마음이 보존되어 이치가 익숙해지기 때문에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라고 하였다. -
언충(言忠)에서 후행(後行)까지 - 자장(子張)이 행(行)에 대해 묻자 공자가 답한 말이다. ○묻기를 “심학(心學)에서는 마음에 한 가지 일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을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하며 행실을 독실하고 공손하게 할 것을 항상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아서 이것이 앞에 참여함을 보고 수레의 멍에에 의지할 때에도 보이게 한다.’라고 한다면, 이는 치우치고 얽매이는 병통이 아닙니까?”라 하니, 답하기를, “이와 같기 때문에, 정자가 ‘뜻을 붙여서도 안 되고, 또 뜻을 붙이지 않아서도 안 된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
참(參) - 《예기》 〈곡례(曲禮)〉에 “둘이 마주하여 앉거나 서 있으면, 거기에 가서 셋이 되게 하지 말라.[離坐離立, 毋往參焉.]”라 하였는데, 그 주석에 “둘이 서로 마주하는 것을 이(離)라 이르고, 셋이 서로 이루는 것을 참(參)이라 이른다.”라고 하였다. -
형(衡) - 수레의 멍에이다. -
자질이 아름다운 사람[質美者] - 안자(顔子)와 같은 사람이다. -
명득진(明得盡)ㆍ혼화각(渾化却) - 〈논어질의〉에 보인다. -
장경(莊敬) - 장(莊)은 용모를 위주로 말하였고, 경(敬)은 마음을 위주로 말하였다. 그러나 바꾸어 보아도 된다. -
이단백(李端伯) - 이름은 유(籲)이고, 구지(緱氏) 사람이다. 원우(元祐) 중에 비서성 교서랑(祕書省校書郞)이 되었다. 일찍이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두 선생의 말씀을 한 편으로 기록하여 《사설(師說)》이라 하였다. 이천(伊川)이 보고 칭찬하였고, 공(公)에 대한 제문(祭文)에 “학문을 전하였다.[傳學]”라는 말이 있으며, 주자도 “기록한 내용이 심원하고 광대하다”고 하였다.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에 나온다. -
매일 게으른 것이 날마다 더 심해진다[日怠惰一日] - 날마다 게을러져서 매일 더 심해진다는 말이다. -
내(耐) - ‘참다[忍]’와 같다. -
여러 가지 모양으로 행동한다[做許多模樣] - 이 단락을 논하다가 이함형(李咸亨)에게 말하기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행동하는 것은, 공도 이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23세에 성균관 하재(下齋)에서 기거하였는데, 마음속에 보존된 것이 외면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어서 사람들 대부분이 그것을 싫어하여 비방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두 달간 머무르다가 나왔는데, 지금도 그 비방이 계속되고 있다. 공이 사람들 속에 있을 때를 보니 행동이 남들과 달랐다. 예컨대 입을 가리고서 대답하는 일은 옛사람들이 칼을 차듯이 허리를 굽혀 입가에 대고 몸을 기울여 말할 때의 예절이지, 글을 배울 때의 일이 아니므로 이와 같은 행동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공이 서울에 있을 때도 이와 같은 몸가짐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서울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분명 그것을 지목하여 말하기를 ‘아무개가 가서 아무개를 만나고 왔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라고 할 것이니, 어찌 공만 용납되기 어려울 뿐이겠는가. 나를 구실로 삼을 것이니, 이와 같이 남들과 다르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
자포자기에 이름[到得自棄底] - ‘자포자기한 자가 되었다.’라는 말과 같다. -
네가 맡긴다[任儞] - 이(儞)는 음이 ‘이’이고, ‘너’라는 뜻이다. 진(秦)나라 사람들이 주위의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네가 하도록 맡길 뿐이다.’라는 말이다. -
퇴산(退産)에서 비퇴(批退)까지 - 중국 사람들이 사고팔 때 반드시 관청에 고하여야 사고팔도록 허락하였다. 혹 어떤 사람이 관청에 글을 올려 허락을 받은 뒤에, 다시 고하기를 “나는 사고 싶지 않으니.→, 소지(청원서)를 물리길 청합니다. 다른 사람이 사기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비(批)는 허락해 주는 것이다. 장(帳)은 세속에서 말하는 “소지(所志 청원서)”라는 것이다. ○《주자어류》에 “사람들이 교역할 때 허락을 물리기를 청원하는 것과 같이, 지금 사람들은 학문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물리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였다. -
이계수(李季脩) - 출처가 보이지 않으나 남헌(南軒) 장식(張栻, 1133~1180)의 문인이 틀림없다. -
향회연식(嚮晦宴息) - 《주역》 〈수괘(隨卦) 상전(象傳)〉에 “못 가운데 우레가 있는 것이 수이니, 군자가 이것을 보고 날이 어두워지면 방안에 들어가 편안히 쉰다.[澤中有雷隨, 君子以嚮晦入宴息.]”라 하였으니, 우레가 못 가운데 감추어져 있어서 스스로 기르는 것이다. 군자가 그 상(象)을 취하여 저물어 어두워질 때는 들어가 편안히 지내면서 스스로 휴식하며 기른다. 대개 정(靜)할 때 기르는 것이 깊고 두터우면 동(動)할 때 발하는 것이 저절로 성대하고 찬란하다. ○신계숙(申啓叔 신옥(申沃))이 계수(季脩)의 말이 옳고 남헌(南軒)의 말이 옳지 않다고 여겼다. 내가 계숙에게 편지를 보내어 반복하여 깨우쳐 주니, 결국 마음을 돌렸다. ○〈신계숙에게 답한 편지(答申啓叔書)〉에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자가 낮에 바깥에 거할 때는 종일토록 부지런히 노력하여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고, 밤이 되어 안에 거처할 때는 삼가고 두려워하며 속이지 않고, 잠잘 때도 시체처럼 하지 않으니, 경(敬)하지 않는 때가 없다. 다만 속이지 않고 시체처럼 하지 않는 것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쉬지 않는 것[乾乾不息]에 비하면 편안한 것이고 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주역》을 풀이할 때에 이런 때에 따른 의리를 발명하였지, 이러한 때에 경(敬)하지 않고 오직 편안함만을 추구해도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야기잠(夜氣箴)〉에 이미 ‘그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그 몸을 엄숙하게 하라[必齊其心, 必肅其躬.]’라고 말한 뒤에 ‘그 몸을 편안하게 하라[安其身]’라고 한 것은 아침에 잘 듣고 낮에 찾아가 묻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야매잠(夜寐箴)〉에 이미 ‘정신을 명랑하게 하고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으라[振拔精明, 齊手歛足.]’라고 말한 뒤에 ‘야기를 길러, 곧으면 원에 돌아온다.[養以夜氣, 貞則復元.]’라고 하였다. 지금 이러한 설을 가지고 살펴보면, 어두워진 뒤라 하여 과연 경(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절효 서공(節孝徐公) - 이름은 적(積), 자는 중거(仲車)이며 산양(山陽) 사람이다.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아버지의 이름이 ‘석(石)’이었으므로, 죽을 때까지 석기(石器)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눈 내리는 밤에도 무덤 옆에 엎드려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감로(甘露)가 내려서 결이 서로 붙은 나무가 생겼다. 적(積)은 처음 호원(胡瑗)에게 배웠으며 초라한 의복과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과거 응시를 위하여 도성으로 들어가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 급제하게 되자 같은 해에 급제한 이들이 백금(百金)을 보내 장수를 기원하였으나 거절하였다. 뒤에 조정의 신하가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여 초주 교수(楚州敎授)가 되었다. 세상을 떠난 뒤 절효(節孝)라는 시호를 내렸다. 《일통지(一統志)》에 나온다. -
안정(安定) 호 선생(胡先生) - 이름은 원(瑗), 자는 익지(翼之)이며 태주(泰州) 사람이다.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고, 범 문정(范文正)의 천거를 받아 관직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이르렀다. 벼슬하기 전에 손명복(孫明復)ㆍ석수도(石守道)와 함께 태산에서 공부하였으며, 힘써 공부하고 죽을 먹으며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한 곳에 10년을 머물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집에서 온 안부편지를 받으면 위에 ‘평안(平安)’이란 두 글자가 있으면 즉시 편지를 개울에 던져버리고 다시 읽지 않았다.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에 나온다. -
조조가 유언한 일[曹操遺令事] - 조조(曹操)가 죽을 때, 궁녀를 불러 향과 신발을 나누어 주고 그것을 팔아 살아가도록 하고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동작대(銅雀臺)에서 능을 마주 보는 곳에서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며 춤추고 노래하면 된다.……”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읽고 조조의 의도를 알지 못했는데, 사마 온공(司馬溫公 사마광(司馬光))은 읽고서 그 속임수를 알아채고 말하기를 “조조는 살아 있을 때, 나갈 때에는 경호하고 들어올 때에는 벽제(辟除)하여 천자의 예(禮)를 행하였으니, 한(漢)나라를 찬탈한 지 이미 오래였다. 다만 천명을 두려워하고 오명을 받을까 꺼렸기 때문에 죽을 때 이렇게 말하여 하늘과 사람을 속임으로써 후세 사람들의 주벌을 면하고자 한 것이다. 자신이 천자가 되었다면 궁녀의 생활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속임수를 쓴 것이다.”라고 하였다. -
일단(一團) - 원집에 보인다. -
살(煞) - 살(殺)과 같으니, 거성(去聲)이다. ‘가장’, ‘특히’라는 뜻이다. -
여씨(呂氏) - 곧 여숙(與叔)이니, 위에 보인다. -
책림(翟霖) - 출처가 없다. -
서쪽으로 귀양 가다[西遷] - 부주(涪州)로 유배 갈 때이다. -
의(椅) - 중국 사람은 앉을 때 반드시 의자를 마련한다. ○묻기를 “의자를 돌렸다는 것은 이천 선생이 앉은 의자를 가리킵니까? 책림이 앉은 의자라면 선생님 앞에서 어찌 의자를 두고 앉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말하기를 “책림이 앉은 의자이다. 그러므로 돌리게 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앉을 때 모두 의자를 이용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또 “선현(先賢)은 사람과 비슷한 물건을 보고 소홀히 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 근래에 진주(晉州)의 선비가 불상(佛像)을 끌고와 머리를 잘랐다고 하는데 옳은 일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이함형(李咸亨)이 대답하기를 “개성부(開城府)의 유생이 송악(松岳)에서 역시 그렇게 하여 사적인 분노를 표출했습니다.”라고 하니, 선생이 선비들의 풍조가 날로 그릇되는 것을 매우 탄식하였다. -
기이(豈以) - 어찌 아니겠는가[豈不]라는 뜻이다. -
인상차어(因賞此語) - ‘상(賞)’은 깊이 새겨 가상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이는 귀산(龜山)이 이천(伊川)의 말을 찬양한 것이다. -
구지(緱氏) - 산 이름, 또는 지명이다. 용문(龍門)에 있다. -
구박(拘迫) - 원집(原集)에 보인다. -
주공염(朱公掞) - 이름은 광정(光庭)이니, 경(景)의 아들이다. 10세에 문장을 지을 줄 알았으며, 아버지의 음보(蔭補)를 사양하였고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만년 주부(萬年主簿)에 임명되어 몇 고을을 다스렸는데 사람들이 ‘밝은 거울[明鏡]’같다고 칭송하였다. 원우(元祐) 연간에 간관(諫官)이 되어서는 간언(諫言)으로 명성이 있었다. 집현원(集賢院) 학사(學士)로서 노주(潞州)를 다스렸다. 정명도(程明道)에게 수학하였다. 호원(胡瑗)에게 배운 적이 있는데, 호원이 학문을 하는 근본은 충신(忠信)에 있다고 알려주자 이를 종신토록 실천하였다. 《일통지》에 나온다. -
격(槅) - 창살이다. -
진재경(陳才卿) - 이름은 문울(文蔚)이고, 상요(上饒) 사람이며, 호는 극재(克齋) 또는 북산(北山)이다. 주자의 문인으로 연산(鉛山)에서 강학하였으며, 저서와 입론(立論)이 스승의 지결을 얻었다. 고상한 풍도와 바른 지조가 있어서 고을에서 존경을 받았다. 죽은 뒤 학관(學館)에 제향되었다. 《일통지》에 나온다. -
차(箚) - 죽(竹) 자와 흡(洽) 자의 반절음으로, 찌르는 것이다. 중국음을 따라 ‘차(差)’로 읽는다. -
분(憤) - 분(忿) 자와는 조금 다르니, 성(性)이 발한 것이다. 《논어》의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는다.[不憤不啓]”의 주(註)에 “분(憤)은 마음으로 통하려고 하나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니, 마땅히 이 분 자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
조금 절제하기를 청하다[請少節之] - 사람 접대를 조금 줄여서 정신을 기르기를 청한 것이다. -
요진경(廖晉卿) - 그의 이름이 자세하지 않다. -
구용(九容) - 발 모양은 무겁게, 손 모양은 공손하게, 눈 모양은 단정하게, 입 모양은 얌전하게, 말소리는 조용하게, 머리 모양은 곧게, 숨 쉬는 모양은 엄숙하게,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럽게, 얼굴 모양은 장엄하게 하는 것이다. -
〈변간론(辨姦論)〉 - 노천(老泉) 소순(蘇洵)이 왕개보(王介甫)가 죄수처럼 머리를 빗지 않고 상(喪) 당한 사람처럼 얼굴을 씻지 않은 등의 일을 가지고 매우 간교하다고 여겨서 〈변간론〉을 지었다. -
육자수(陸子壽) - 이름은 구령(九齡)이고, 무주(撫州) 금계(金谿) 사람이다. 처음에 학록(學錄)으로서 건도(乾道) 4년에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어려서 영특하고 단정하였으며, 책을 보면 막히는 곳이 없었고 백가(百家)의 서적을 되풀이 보면서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았다. 호는 복재(復齋)이다. 《언행록》에 나온다. ○묻기를 “자수(子壽 육구령(陸九齡))는 상산(象山 육구연(陸九淵))과 차이가 없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이 사람은 주자가 함께 논란(論難)을 주고받은 것이 많아 그 뒤에 잘못을 고치는 말을 상당히 하였으나 끝내 자기의 견해를 다 버린 것은 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
유순수(劉淳叟) - 이름은 요부(堯夫)이다. 오랫동안 선생에게 배웠으며, 훗날 매우 못 쓸 사람이 되었다. 선생이 그를 언급할 때마다 반드시 비난하였다. -
뒷모퉁이[後面角頭] - 앉은 자리의 뒷 구석이다. -
도가의 가부좌를 배우다[學道家打坐] - 도가(道家)의 앉는 법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
모여(某與)……작괴(作怪) - 나와 육장(陸丈 육구연(陸九淵))의 말은 들을 것이 못되지만 나이로 보면 너보다 몇 살이 많은데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괴이한 짓을 하는가? -
음식을 절제한다[節飮食] - 《주역》 〈이괘(頤卦)〉 대상(大象)에 나온다. -
섭하손(葉賀孫) - 자는 미도(味道)이고, 처주(處州) 사람으로, 온주(溫州)에 살았다. 고학(古學)에 깊이 뜻을 두었고 주자를 사사하였다. 가정(嘉定) 연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악주 교수(鄂州敎授)에 임명되었다. 이종(理宗)이 주희(朱熹)의 제자를 찾을 때 사자(使者)가 미도(味道)를 아뢰자 태학박사(太學博士) 겸 숭정전 설서(崇政殿說書)에 제수하였고, 인도하고 보좌한 것이 치도(治道)에 절실하였다. 일찍이 《주문공어록(朱文公語錄)》을 편집하였다. 죽은 뒤 시호는 문수(文修)이다. 학자들이 서산 선생(西山先生)이라 불렀으며, 학관에 제향되었다. 《일통지》에 나온다. ○어떤 본(本)에는 단지 섭(葉)은 자가 미도(味道)이라고 하여 간혹 자로서 통행이 되니 바로 괄창(括倉) 섭씨(葉氏)이다. 《일통지》를 살펴보면, “온주(溫州)에 섭미도(葉味道)가 있고 용천(龍泉)에 섭하손(葉賀孫)이 있는데 《송사》에 본전(本傳)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두 사람이 아니고 기록이 달라서 이다. -
공선향인(公仙鄕人) - 단지 섭하손의 말만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선향 사람들의 어세가 대부분 이렇게 낮기 때문에 선생이 “공의 선향 사람들은 어째서 대부분 이와 같은가?”라고 말한 것이다. ○처주(處州)와 온주(溫州)는 역대로 연역(沿革)에 지역이 서로 출입이 있고, 주의 경계 안에 안탕산(雁蕩山)과 천태산(天台山) 두 산이 있어서 신선의 굴이 되었기 때문에 ‘선산(仙山)’이니 ‘선향(仙鄕)’이라 하였다. -
하초(下梢) - 초(捎) 자는 마땅히 목(木) 변에 써야 한다. 하초(下梢)는 끝이란 뜻이다. -
함함호호(含含胡胡) - 분명하지 않음을 심하게 말한 것이니, “골골돌돌(顝顝突突)”이라 하는 말과 같다. -
거지모양(擧止模樣) - 행동거지의 규칙이라는 말과 같다. -
심경자(沈敬子) - 자세하지 않다. -
탑연(㗳然) - 《장자(莊子)》에 “남곽자기(南郭子綦)가 궤안(几案)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보며 탄식하였는데, 탑연(㗳然)히 마치 그 짝을 잃은 듯하였다.”라고 하였다. ○《운회(韻會)》에 “탑연(㗳然)은 혼이 빠진 모양이고, = 이것이 심경자가 한 말의 뜻이다. = 또 잊은 것이다. = 이는 장자(莊子)가 말한 뜻이다. = ”라고 하였다. -
주계역(朱季繹) - 자세하지 않다. -
요호(要好)……단야(端也) - 주계역(朱季繹)의 뜻은, 밖에서 창문에 풀을 발라 사람들이 정돈되지 않은 모양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으니, 이는 허물을 가리고 잘못을 숨기는 일이므로 ‘스스로 속이는 단서이다.’라고 하였다. -
선정(先正) - 《서경》의 주에 “선대 장관(長官)의 호칭이다.”라고 하였다. -
무방(無方) - 방향과 처소가 없다는 것이다. -
도수(度數) - 도(度)는 제도이고, 수(數)는 품수(品數)이다. -
유어오니(猶於汚泥) - 《대학연의(大學衍義)》에는 ‘어(於)’ 자가 없다. -
〈군자반정화지장(君子反情和志章)〉
비(比) - 따르는 것이다. -
백체(百體) - 온 몸을 다 들어서 말한 것이다. -
본주(本註)
공씨의 주[孔氏註] - 동회택(東匯澤) 진씨(陳氏)의 주석만큼 정밀하고 간절하지 못하니, 마땅히 진씨의 설을 따르는 것이 옳다. -
부주(附註)
장자(張子)의 〈동명(東銘)〉 - 처음에는 ‘폄우(砭愚)’라 이름하였으니, 돌로 침을 만들어 병을 치료하기 때문에 폄(砭)이라 하는데, 이 명(銘)을 지어서 어리석은 병통을 치료하기 때문에 ‘폄우’라고 한 것이다. 또 〈서명(西銘)〉을 ‘정완(訂頑)’이라 하였다. 사람의 손발이 풍사(風邪)와 습사(濕邪)를 받아서 혈기가 흐르지 않아 아픔과 가려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또한 ‘완(頑)’이라 하는데, 《서명》은 인(仁)의 체(體)를 말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심(私心)을 버려서 물아가 통하게 하니, 이것이 완(頑)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완’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천(伊川)이 이것으로 이름을 붙이면 논쟁의 단초를 야기할 것이라 여겨 이름을 〈동명〉과 〈서명〉으로 바꾸었다. -
혹자(或者) 이하 - 앞에서 말한 자보다 심하다. 앞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마음이 아니라 하고 자기의 잘못이 당연하다고 했을 뿐이니, 그래도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여기 혹자(或者)의 경우는 허물을 자기의 희롱이라 하고 자기의 성심(誠心)이라 하여, 다시 고치려는 뜻이 없기 때문에 심한 것이다. -
지기(持氣) - “지지(持志)라 하지 않고 지기(持氣)라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 《맹자》에 ‘그 의지를 확고히 세우고도 또 그 기를 거칠게 하지 말라.[持其志, 無暴其氣]’고 한 말은, 기(氣) 또한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희언(戲言)과 희동(戲動)을 말하였기 때문에 기(氣)로써 말하였으니, 따로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
무공(武公) - 위(衛)나라 무공(武公)으로, 《시경》 〈위풍(衛風)〉에 나온다. -
백일(百日)……지택(之澤) - 《예기》 〈잡기 하(雜記下)〉에 “공자가 자공(子贛)과 납향 제사를 구경하였는데, 공자가 ‘사(賜)야, 즐거우냐?’라고 물으니, 자공이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친 듯합니다. 저는 그 즐거움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백일 동안의 납향 제사와 하루 동안 즐거워하도록 하는 군주의 은택은 네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활을 당기기만 하고 풀어놓지 않는다면 문왕과 무왕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활을 풀어만 놓고 당기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은 하지 않으며, 한 번 당기고 한 번 풀어 놓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라고 하였다. ○옛날에 한 해가 가기 전에 날을 잡아 이사(里社)와 국도(國都)의 사직(社稷)에서 납향 제사를 지냈는데, = ‘사(蜡)’는 온갖 사물의 신(神)이다. = 이 날은 잔치를 열어 즐기도록 허락하였다. ○선왕은 그 백성들이 일 년 내내 고생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이 날이 되면 잔치를 열어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백일의 납향 제사와 하루의 우리 임금의 은택’이라 하였다. 백 일은 일 년의 날짜 수가 많음을 범연히 말한 것이다. -
시지(時志) - 시지(時志) 상하에 빠진 글자나 오류가 있는 듯하다. -
위(諉) - 핑계 댄다는 말이다. -
교언영색(巧言令色) - 〈고요모(皐陶謨)〉에 나온다. 《논어》에서도 “말과 안색을 교묘하게 꾸미는 이 치고 어진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하였다. -
예왈(禮曰) - 공자의 말을 기록한 것이다. -
성인(聖人)……이이여야(怡怡如也) - 모두 《논어》에 나온다. -
알이위직(訐以爲直) - 알(訐)은 거(居) 자와 알(謁) 자의 반절이니, 남의 비밀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
내임(內荏) - 임(荏)은 유약함이니, 마음속으로 물욕에 굽히는 것이다. -
비(鄙) - 평범하고 누추한 것이다. -
배(倍) - 이치에 어긋남이다. -
진호차자(進乎此者) - ‘차(此)’라는 것은 위에서 ‘공손하게 말한다.[遜以出之]’라 한 내용을 가리키니, 중산보(仲山甫)의 덕은 이보다 앞섰다. -
우왈상고(又曰詳考) 조목 - 이 내용은 주자가 여백공(呂伯恭 여조겸(呂祖謙))에게 답한 글인데, 황돈(篁墩 정민정(程敏政))은 남헌(南軒 장식(張栻))의 말이라 생각하였다. -
동회택 진씨(東匯澤陳氏) - 이름이 호(晧)이고, 《예기》에 주석을 달았다. -
〈군자락득기도장(君子樂得其道章)〉
부주(附註)
인하(因何)……두래(頭來) - 내포한 뜻은 ‘타고난 자질이 이와 같이 훌륭한데 자신을 조금 낮추어서 시속을 따르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긴 것이니, 이것이 선을 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
소자첨(蘇子瞻) - 이름은 식(軾)이고, 노천(老泉)의 장자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다시 제과(制科)에 우등으로 합격하였다. 인종(仁宗)ㆍ영종(英宗)ㆍ신종(神宗)ㆍ철종(哲宗) 등을 섬겼으며, 벼슬이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다. 대부인(大夫人)이 일찍이 〈범방전(范滂傳)〉을 읽고 격앙되어 길게 탄식하자, 공이 곁에서 모시고 있다가, “제가 만약 범방처럼 한다면, 어머니께서는 역시 허락하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언행록(言行錄)》에 나온다. -
왕신백(王信伯) - 이름은 빈(蘋)이고, 평강(平江) 사람이다. 정자의 문인이다. 진사(進士)에 합격하였으며, 비서 정자(祕書正字)에 임명되었고, 마지막에는 태주 숭도관(台州崇道觀)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향년 72세이다. 사람을 가르침에 괴상한 이론을 말하였다.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에 나온다. -
진소유(秦少游) - 이름은 관(觀)이고, 동파(東坡)의 문인이다. 시(詩)를 잘 지었으나, 행실이 경박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
천약(天若)……천수(天瘦) - 사람의 길흉화복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게 구할 것이 없는데, 만약 미리 길흉화복이 올 것을 안다면 해를 피하고 이익을 쫒아 하늘에게 기도할 것이니, 하늘도 따라서 수척해진다는 말이니. 이는 하늘을 모욕하는 말이다. 그러니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사주 승가탑(泗州僧迦塔)〉 시에 “밭가는 이는 비를 원하고 수확하는 이는 맑았으면 하고, 떠나는 사람이 순풍을 얻으면 돌아오는 이는 원망하네. 매번 빌기만 하면 신도 역시 피곤하리라.[耕田欲雨刈欲晴, 去者順風來者怨, 每到有求神亦倦.]”라고 한 것과 같다. -
상궁(上穹) - 하늘이다. -
성연(騂然) - 얼굴이 붉어진 모양이다. -
방지(放之) - 공자가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추방하라.”라고 하였다. -
무이 호씨(武夷胡氏) - 이름은 안국(安國), 자는 강후(康侯)로, 숭안(崇安) 사람이다. 소흥(紹興) 연간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고종(高宗) 때에 장준(張浚)의 천거로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어, 〈시정론(時政論)〉 21편을 올렸다. 얼마 되지 않아 병을 핑계로 물러나기를 구하였으며, 오로지 《춘추》를 강론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급사중(給事中)에 이르렀다. 사양좌(謝良佐)가 일찍이 칭송하기를, “그는 한겨울 서릿발 아래 모든 풀이 시들어도 송백이 홀로 꿋꿋하게 서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언행록》에 나온다. 무이(武夷)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무이 호씨(武夷胡氏)’라 하였다. -
공손(公孫)……기씨(己氏) - 노(魯)나라 종실(宗室)에 중손(仲孫)ㆍ숙손(叔孫)ㆍ계손(季孫)이 있었는데, 공손(公孫)은 바로 중손 오(仲孫敖)이다. 공자(公子) 경(慶)이 거(莒)나라에 친영(親迎)하려 할 때, = 거군(莒君)의 성은 기씨(己氏)이다. = 공손오가 사신으로 주(周)나라에 가게 되자 경(慶)이 오에게 기씨(己氏)를 데리고 오도록 하였다. 오가 기씨를 만나 보고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마침내 간통을 하고, 사랑에 빠져서 주나라로 가지 않고 노나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노나라 사람들이 책망하자, 오는 어쩔 수 없이 노나라로 왔지만 그 뒤 기씨(己氏)를 잊지 못해 거나라로 달아났다. -
목지(目之)……동미(同美) -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
치당 호씨(致堂胡氏) - 이름은 인(寅, 1098~1157)이고, 자는 명중(明仲)이며, 호안국(胡安國)의 아우의 아들이다. 인이 어릴 때 제멋대로 날뛰어 제지하기가 어려워. 안국이 그를 빈 집에 가두었는데, 그 위에 있던 잡목을 인이 몽땅 조각하여 인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안국이 그 위에 수천 권의 책을 두었더니, 일 년 남짓 동안 인이 모조리 외웠으며 마침내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정강(靖康) 초에 불러서 교서랑(校書郞)을 삼았다. 또 양시(楊時)에게 배웠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기거랑(起居郞)을 지냈다. 뒤에 진회(秦檜)의 뜻을 거슬러 신주(新州)로 유배 갔다. 세상 사람들이 ‘치당 선생(致堂先生)’이라 불렀다. 《일통지》에 나온다.- ○안국(安國)의 아우의 첩이 낳은 아들이다. 태어나자마자 그 어미가 버리려고 이미 솥 안에 넣었을 때, 안국의 부인이 꿈에서 큰 물고기가 솥 안에서 뛰는 것을 보고 깨어나 그 아이를 찾아 잘 길러서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 대개 중국에서는 적자와 서자의 구분이 우리나라와 달라 서자도 선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호굉(胡宏) 등이 형으로 여겼으니, 안국이 죽자 친아버지 상(喪)처럼 상을 치렀다. -
무량(無量) - 세상의 선비들은 술을 마시는 데 한계가 없다고 여기는데 이는 옳지 않다. 몇 잔으로 주량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운에 맞게 마실 뿐이다. -
반백(班伯) - 반표(班彪)의 숙부이다. 이는 반백이 성제(成帝)에게 간(諫)한 말이니, 《한서(漢書)》 〈서전(敍傳)〉에 보인다. -
각지(覺知) - 《예기대전(禮記大全)》에는 ‘지각(知覺)’으로 되어 있다. -
〈인개유불인지심장(人皆有不忍人之心章)〉
이 장(章)의 조목인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 ‘비난하는 소리를 싫어하다[惡其聲],’ ‘모두 확충할 줄 안다[知皆擴充]’ - 모두 〈맹자질의〉에 보인다. -
사단(四端) - 《원집》에 보인다. -
부주(附註)
일부(一部) - 한 책 전체를 다 들어서 말한 것이다. -
사무족위(事無足爲) - 가슴속에 주재자(主宰者)가 정해지면 하기에 어려운 일이 없다는 말이다. -
북계 진씨(北溪陳氏) - 이름은 순(淳)이고, 자는 안경(安卿)이며, 용계(龍溪) 사람이다. 주자가 호서(湖西) 지방을 다스릴 때 그가 군재(郡齋)에 와서 배웠는데, 주자가 “남쪽으로 와서 내가 안경 한 사람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진순은 읽지 않은 책이 없고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하여, 의리(義理)를 관통하고 조리와 단서를 환히 보았다. 학자들이 ‘북계 선생(北溪先生)’이라 일컬었다. 《일통지》에 나온다. -
창창(倀倀) - 길을 잃은 모양이다. -
〈시인함인장(矢人函人章)〉
먼저 시인을 말함[先言矢人], 가려서 어진 마을에 살지 않으면[擇不處仁] - 모두 〈맹자질의(孟子質疑)〉에 보인다. -
불인(不仁)……무의(無義) - 집주(集註)에 “인(仁)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예(禮)가 없고 의(義)가 없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부주(附註) 제1조와 참고하여 보아야 한다. -
본주(本註)
양귀(良貴) - 〈맹자질의〉에 보인다. -
원자선지장(元者善之長) - 《주역》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하늘에 있어서는 원(元)이라 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인(仁)이라 한다.”라고 한 데 나온다. 주자가 “인(仁)은 우두머리로서 의(義)ㆍ예(禮)ㆍ지(智)를 거느리기 때문에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부주(附註)
완물상지(玩物喪志) - 마음이 저기로 흘러가 돌아오기를 잊는다면, 반드시 뜻을 잃어버리는 근심이 있다. -
차도(且道) - 도(道)는 말하는 것이다. ‘차도(且道)’부터 ‘여하각설측은(如何却說惻隱)’까지 모두 선생이 논란한 말이다. 이미 정자와 사양좌의 일을 인용하고, 논란을 제시하기를 “여러분은 우선 말해 보라. 정자가 어찌하여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측은(惻隱)이라 하였는가?”라고 하였다. 이윽고 문인들 가운데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이것이 측은해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측은이 세 가지 정(情)을 관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회동(會動) - 회(會)는 알 해(解) 자와 같다. -
신안 진씨(新安陳氏) - 이름이 력(櫟)이고, 자가 수옹(壽翁)으로, 휴령(休寧) 사람이다. 성품이 장직하고 효성스러우며 우애가 있었다. 3세에 조모 오씨(吳氏)가 《효경》과 《논어》를 말로 가르치니, 그때마다 모조리 외웠다. 5세에 경서와 역사서를 섭렵하였고, 15세에 고을 사람들 모두 그를 스승으로 대하였다. 마침내 성현의 학문에 힘을 써서 흠뻑 빠져들어 음미하고 탐색하여 고금의 학문에 널리 통하였다. 연우(延祐) 초에 향시에 선발되었으나 곧 예부시(禮部試)에 응시하지 않았고, 집안에서 가르침을 전수하여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가 수십 년이었다. 거처하던 집 이름을 ‘정우(定宇)’라 하였으니, 문하의 생도들이 그를 ‘정우 선생(定宇先生)’이라 불렀다. 《일통지》에 나온다. -
〈적자지심장(赤子之心章)〉
부주(附註)
잡설(雜說) - 생각건대, 당시 문인들이 문답한 말을 기록하여 책을 만들고, ‘잡설’이라 이름을 붙인 듯하다. -
성인이 마음[聖人之心] - 대인(大人)의 마음과는 마땅히 다른 점이 있다. -
기관(機關) - 기(機)는 기함(機檻 덫)의 ‘기’이고, 관(關)은 문관(門關 문빗장)의 ‘관’이니, 모두 마음이 교묘하게 꾀를 내는 것을 말한다. -
몽양(蒙養)……성공(聖功) - 《주역》 〈몽괘(蒙卦) 단전(彖傳)〉에 나온다. -
제3편〔第三篇〕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
우산(牛山), 교(郊), 탁탁(濯濯), 인의지심(仁義之心), 부족이존(不足以存) - 모두 〈맹자질의〉에 보인다. -
성정(性情) - 원집에 보인다. -
본주(本註)
통연(同然) - 〈맹자질의〉에 보인다. -
부주(附註)
노양(勞攘) - 편안하지 않고 순조롭지 않다는 말이다. -
권여(權輿) - 저울을 만들 때에는 저울대[權]부터 시작하고, 수레를 만들 때에는 수레 판[輿]부터 시작하므로, 사물의 시초를 말할 때 반드시 ‘권여(權輿)’라고 한다. -
석자중(石子重) - 이름은 돈(𡼖), 신창(新昌) 사람이며, 호는 극재(克齋)이다. 《일통지》에 나온다. ○비평하기를 “주자가 친구로 허여하고 추중하였다.”라고 하였다. -
겸출(兼出)……선악(善惡), 방기방멸(方起方滅) - 모두 원집에 보인다. -
적연(寂然)……지고(之故) -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생각함이 없고 함이 없어서 고요하여 동(動)하지 않다가 감(感)하면 마침내 천하의 소이연(所以然)에 통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
여피(如被)……용타(容他) - 위의 타(他) 자는 바로 아침과 낮에 하는 일이고, 아래 타(他) 자는 바로 양심(良心)이니, 형틀[械梏]의 일로 말하면 위의 타(他) 자는 지은 죄와 같고, 아래 타(他) 자는 바로 그 몸이다. -
한사려(閑思慮) - 쓸데없는 생각이란 말과 같다. -
변착(便着)……불거(不去) - 절실하게 힘을 써서 저것을 따라 가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자어류》에 이 일을 설명하기를 “한 사람은 문 안에 있고 한 사람은 문 밖에 있으면서 서로 끌어당길 적에 만약 문 안에 있는 사람의 힘이 약하면 이기지 못하여 문 밖으로 끌려간다. 오직 남이 하라는 데로 따른다. 만약 힘이 세어 제어할 수 있으면 저에게 동요되어 끌려가지 않는다. 만약 한결같이 ‘꽉 잡지 못하고 이겨서 물리치지 못한다.’라고 한다면, 이 집이 남의 집이 되지 않는 것이 다행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
자괴(自壞) - 물건이 스스로 깨어지지 않았는데 허물어지는 것은 음이 괴(怪)이고, 물건이 스스로 깨어지면 음이 회[胡怪切]이다. 여기서는 음이 괴(怪)이다. -
이 위에 참으로 헤아릴 것이 있다[上頭儘有商量] - 마음을 확고하게 세운 뒤에야 그 위에 헤아릴 수 있는 것이다. 집 짓는 것에 비유하자면, 만약 터가 없다면 어찌 계획하여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
오직 일에 그쳐야 한다[惟是止於事] - 사(事) 자는 그 이치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
순 임금이 어찌 관여하겠는가[舜何與焉] - 이쁘고 흉한 것이 절로 거울에 나타나는 것이지, 거울이 이쁘고 흉한 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형체에 따라 응할 뿐이다. 순 임금이 사흉(四凶)을 주벌하고 열여섯 사람을 등용한 것이 또한 이와 같으니, 바로 사물을 각각 그 사물의 특성에 맞게 맡겨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노인을 편안하게 하고, 붕우를 미덥게 하고, 젊은이를 품어 준다.[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라고 한 것이다. -
번차(飜車) - 수차(水車)이다. 진간재(陳簡齋 진여의(陳與義))의 시에 “황폐한 마을에 종일토록 수차가 우네.[荒村終日水車鳴]”라고 하였다. 지난번에 우리나라 사람이 유구국(琉球國)에 표류하였다가 중국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그 제도를 보고 만들어 와서 조정에 보고하니, 그것을 팔도에 내려 보내어 지방에서 제작하여 쓰도록 하였다. 상국 이현보(李賢輔)가 그 제도에 따라 만들어 시험하였는데, 반드시 사람의 힘을 빌려 돌려야하기 때문에 마침내 행해지지 않았다. -
아무리 한들 어찌하겠는가[怎生柰何] - 아무리 한들 어찌하겠는가[아므리엇딜고] -
장천기(張天祺) - 이름은 전(戩)이고, 장횡거(張橫渠)의 아우이다. 어려서 성품이 의젓하여 노성한 기개가 있었고, 아이들과 무리지어 놀지 않았다. 장성해서는 학문을 좋아하여 꾸미고 다듬는 문장 짓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부형의 강권으로 향공(鄕貢)에 응시하여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예닐곱 읍을 두루 다스리면서 성심을 다해 사람들을 아꼈으며 치술(治術)을 갖추고 다스렸다. 47세에 세상을 마쳤다. 《연원록》에 나온다. -
상착상(上著床) - 중국 사람은 앉거나 눕는 것을 반드시 평상에서 하기 때문에 ‘평상에 올라간다[上床]’라 한다. -
생각하지 않다[不得思量] - 장천기의 말은 여기까지이다. -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皆非自然] - 달리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이 마음을 잡아 지켜야 하니,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
양(良) - ‘진실로 진(儘)’ 자와 같은 뜻이다. -
각불여(却不如)……유야(愈也) - 김언우(金彦遇)에게 답하기를 “수주(數珠)는 불가(佛家)의 염주(念珠)이다. 저들이 염불할 때 이 염주를 헤아리면서 마음을 다잡는 방법으로 삼는 것이니, 본래 심법의 좋은 것이 아니다. 항상 하나의 중(中)만 생각하다가 중(中)에게 혼란을 당하는 것 보다는 도리어 한 꿰미의 염주를 가지고 마음을 잡는 절도로 삼는 것만 못하니, 그래도 저것이 이것보다 났다.”라고 하였다. -
섭생을 삼가고 뜻을 함부로 하지 않다[愼生不恣意] - 섭생을 잘하기 때문에 병들지 않고, 뜻을 함부로 하지 않기 때문에 권태로움이 없다는 말이다. -
유유(悠悠) - 한가하여 긴요함이 없다는 말과 같다. -
사마자미(司馬子微) - 이름은 승정(承禎)이다. 당 현종(唐玄宗) 때 은사(隱士)로, 노장(老莊)의 학문을 배웠고 그의 도는 심원함과 현묘함을 극치로 삼았다. 좌치(坐馳)와 좌망(坐忘)은 《장자(莊子)》에 나온다. ○《일통지》에 “당(唐)나라 태주(台州) 사람이다. 내방산(內方山)에 은거하여 단약을 만들어 신선이 되었다. 그래서 후인들이 그 마을을 ‘마선촌(馬仙村)’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
혼과 백이 사귐[魂與魄交] - 혼(魂)은 양(陽)이니, 사람이 깨어 있을 때에는 정화가 밖으로 드러났다가 잘 때는 음정(陰精)인 백(魄)에게 그 기운을 감춘다. -
회(回) - 굽힌다는 말이다. -
이정보다 더 정밀하고 간절하다[精切似二程] - 사(似) 자는 어(於) 자와 같다. 장횡거의 말이 이정(二程)보다 더 정밀하고 간절하다는 말이다. -
범범(泛泛) - 떠 있다는 말이다. -
동안(同安) - 고을 이름이다. 주자(朱子)가 주부(主簿)로 부임했던 곳이다. -
치지(致志) -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 뜻을 지극히 한다는 말이다. 《맹자》에 나온다. -
부구(扶溝) - 정명도(程明道)가 주부(主簿)를 지냈던 곳이다. -
정좌(靜坐) - 묻기를 “정좌(靜坐)가 위좌(危坐 꿇어앉음)입니까?” 하니, 답하기를 “주자의 문인이 위좌의 어려움에 대해 논하자, 주자가 ‘옛사람은 어릴 때부터 익숙하기 때문에 오래 있어도 권태로움이 없다. 요즘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반좌(盤坐 다리를 포개고 앉음)를 한들 정좌에 무슨 해가 되겠는가. 위좌와 반좌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다만 반좌가 위좌의 엄숙함만 못하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
백원산(百原山) - 위주(衛州)의 공성(共城)에 있는데, 낙양(洛陽)과 멀지 않고, 바로 강절(康節)이 태어난 곳이다. -
벽(闢) - 열다는 뜻이니, 조(造) 자와 같은 뜻이다. -
왕승지(王勝之) - 이름은 익유(益柔)이다. 성품이 호방하고 소순흠(蘇舜欽)과 친하였다. 순흠이 시에 능하여 집현전 교리로 있으면서 진주원(進奏院)을 감독하면서 못쓰게 된 종이를 판 공금으로 잔치를 여니 한 때의 명사들이 모였는데, 익유도 역시 참여하였다. 익유가 오만한 노래를 지어 읊조렸는데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를 모욕하는 말이 많아 어사중승 왕공진(王拱辰) 등이 탄핵하여 아뢰었다. 인종(仁宗)이 크게 노하여 함께 모인 십여 명을 옥에 가두게 하니, 모두 당시 명사였는데 함께 파직되었다. ○《일통지》에 “젊어서 학문에 힘써 날마다 수천 마디의 문장을 지었고, 굳고 곧아 기(氣)를 숭상하였으며, 천하의 일을 논하길 좋아하였다. 사마광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자 홀로 끝까지 다 읽었으니 그가 학문을 좋아함이 이와 같았다.”라고 하였다. -
성기(聲氣) - 목소리와 정신 기운이다. -
그가 사람을 만나면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였다.[他見人要多慮] - 어떤 사람은 요다(要多)의 요(要) 자는 오자라고 의심하였다. 이 말은 《주자어류》에서 서우(徐寓)와 유지(劉砥)를 가르친 곳과 《성리대전(性理大全)》에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요(要) 자가 있고, 여(慮) 자 앞에 사(思) 자가 있는 곳도 있다. ○타(他)는 정자(程子)를 가리켜서 한 말이다. ○서우(徐寓)는 자가 거보(居甫)이고, 영가(永嘉) 사람이다. 유지(劉砥)는 자가 이지(履之)이고, 장락(長樂) 사람이다. 두 사람은 모두 주자의 뛰어난 제자이다. 유지는 그의 아우 유려(劉礪)와 함께 《의례경전(儀禮經傳)》을 편수하였다. -
영쇄(零碎) - 영(零)은 가랑비[餘雨]이고, 쇄(碎)는 잘게 부순다는 뜻이다. -
주박(湊泊) - 혹은 ‘주박(揍泊)’이라 쓰기도 하는데, 모여들어 정박한다는 말이다. -
백우(伯羽) - 동비경(童蜚卿)의 이름이다. 일찍이 서재의 이름을 선생(주자(朱子))에게 청하자 선생이 ‘취경당(醉經堂)’이라 명명하고 손수 써서 주었다. 또 과거에 응시하지 않으려는 뜻으로 편지를 보내 묻자, 선생이 “옛사람은 가난을 면하기 벼슬한 사람이 있었다. 남에게 물어서 가부를 결정하기 어렵네.”라고 하였다. -
정전(靜專) -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건(乾)은 그 정(靜)함은 전일하고 그 동(動)함은 곧다. 이 때문에 대(大)가 생겨난다.”라고 하였다. 이천(伊川)의 소(疏)에 “건(乾)은 양(陽)이니 동하지 않으면 강하지 않다. 그 정(靜)함은 전일하고 그 동(動)함은 곧다. 전일하지 않으면 곧게 이룰 수 없다.”라고 하였다. -
일이 마음을 얽매는 것이 아니다[不是事累心] - 불자(佛者)와 노자(老者)는 일이 마음을 얽매는 것은 알면서 마음이 일에 얽매임은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모두 적멸(寂滅)과 현묘(玄妙)를 추구한다. -
당지(當知)……소득자(少得者) - 소(少) 자는 없다는 말과 같다. 한 가지 물건이라도 없을 수 없다는 말이니, 모두 없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득(得) 자는 해석할 필요가 없다. -
왈사위지주(曰事爲之主) - 왈(曰) 자 앞에 ‘주자(朱子)’ 두 자가 있어야 한다. -
많은 병통이 있다[有多少病在] - 허다한 병통이 있다는 말이다. ○재(在) 자도 아울러 해석해야 한다. -
공여(恭如)……조장(助長) - 물망(勿忘)과 물조장(勿助長)은 《맹자》에 보인다. 《맹자》에서는 단지 “기운을 기른다[養氣]”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공부를 해서 오래되면 절로 절도에 맞아 편안해진다. -
경파(硬把) - 굳고 강하게 잡는다는 말과 같다. -
오직 공자라야[除是孔子] - 초학자를 제외하고 오직 공자라는 말이다. 제시(除是)는 ‘제외하고 이것 뿐’이라는 뜻이니, ‘오직 이것 뿐[惟是]’라는 말과 같다. -
부책(扶策) - 부(扶)는 붙들어 주는 것이고, 책(策)은 일깨워주고 채찍질 하는 것이다. 사람이 나태하면 경계시켜 일으킬 수 있으니, 말이 나아가지 않다가 한 번 채찍질 하면 곧바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
문거상조(問居常條) - 《주자어류》에 나오는 양도부(楊道夫)의 의목(疑目) 9조 가운데 하나이다. -
경기곡권(擎跽曲拳) - 《장자》에 나온다. 경(擎)은 손을 드는 것이고, 기(跽)는 무릎을 꿇는 것이다. 몸을 굽히고 무릎을 꿇는 것이 궤(跪)이다. 권(拳)은 권(卷)과 같으니, 또한 굽힌다는 뜻으로 모두 두 손을 맞잡고 몸을 굽히는 모습과 같다. 모두 신하가 임금에게 공경히 절하고 꿇어앉는 모습이다. -
두 선생(二先生) - 묻기를 “정명도ㆍ정이천ㆍ주자라면 셋이 되는데, 서산 진씨(西山眞氏)가 둘이라 하였으니, 옳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둘이라 한 것은 틀린 듯하다.”라고 하였다. -
노재 허씨(魯齋許氏) - 《일통지》에 “이름은 형(衡)이고, 자는 평중(平仲)이며, 하내(河內) 사람으로, 호는 노재(魯齋)이다. 어려서 학문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총명함이 남달랐다. 장성해서는 경전(經傳)ㆍ자사(子史)ㆍ예악(禮樂)ㆍ명물(名物)ㆍ성력(星曆)ㆍ병형(兵刑)ㆍ식화(食貨)ㆍ수리(水利) 등에 정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여러 번 천거되어 중서좌승(中書左丞)을 지냈고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도학(道學)으로 이름이 났다.”라고 하였다. -
생예(生裔)……지추(之秋) - 금(金)나라와 원(元)나라의 난리로 중국의 의관과 문물이 모두 양자강 이남으로 옮겨갔는데, 허씨(許氏)는 강북인 회맹주(懷孟州)에서 태어났다. 예(裔)는 먼 변방이고, 숙(俶)은 처음이고, 요(擾)는 어지럽다는 뜻이다. -
호리(毫釐)……지변(之辨) - 이른바 털끝만 한 차이가 천 리나 어긋난다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나가고 들어옴과 잡아 보존함과 두루 유행하여 막히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만약 정(靜)만을 한결같이 한다면 반드시 선(禪)에 들어가니, 털끝만 한 차이로 다툴 뿐이다. -
기를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된다[養氣爲有助] - 바로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줄이는 방법이다. 황제(黃帝)와 노자 및 수양가(修養家)가 양기(養氣)하는 공부이다. 여여숙(呂與叔)은 저들이 양기하는 공부가 내가 성(性)을 기르는 방법에 도움이 있다고 여겨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다고 말했지만 의(義)를 모아서 생기는 것일 뿐이니, 어찌 이와 유사하겠는가. -
충신(忠信)……진덕(進德) - 《주역》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보인다. -
우여(又如)……여하(如何) - “네 가지를 끊은[絶四] 뒤에 그 기상이 어떠하겠는가. 반드시 마른 나무와 식은 재 같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대소대직절(大小大直截) - 대소대(大小大)는 얼마나라는 말과 같고, 직절(直截)은 분명하다는 뜻이 있는 듯하다. 유독 군신과 부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각각 정해진 이치가 있어서 사물이 올 때에 각각 정해진 이치로 대응하여 사물을 각각 그 특성에 맞게 맡겨 둔다면 저것이 절로 나를 간섭하지 않아 자연히 어지러운 근심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대소대직절(大小大直截)은 얼마나 분명한가라는 말과 같다. 어떤 이는 “직절(直截)은 똑바르고 굽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순(瞬) - 《운회》에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으로, 눈을 자주 깜빡거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윤화정(尹和靖 윤돈(尹焞))이 ‘육유(六有)’로 그 방에 이름하였다. -
양자직(楊子直) - 이름은 방(方), 주자의 문인이다. 성품이 매우 강직하였다. 자주 주자에게 편지를 보내 벼슬을 구하면서 원망하는 말이 상당히 있었다. 선생이 또 힘써 분별하여 깨우쳐 주었다. 위학당(僞學黨) 사태가 일어나자 스승의 문하에 일체 출입하지 않았다. -
요(撓) - 해를 입다 또는 꺾인다는 뜻이다. -
불성설(不成說)……정좌(靜坐) - 일이 많아 나를 요란하게 하므로 우선 정좌(靜坐)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쇠삽(衰颯) - 쓸쓸한 모양이다. -
제철(提掇) - 제(提) 앞에 본래 변(便) 자가 있다. -
간(幹) - 《주역》에 말한 ‘간고(幹蠱)’의 간(幹)이니, 나무에 줄기[幹]가 있는 것과 같다. -
사량교료(思量敎了) - 교(敎)는 ‘하여금’이니, 생각하고 헤아려서 이해하게 한다는 말이다. -
교교요요(膠膠擾擾) - 《장자》의 주석에 “요(撓)는 어지러움이다.”라고 하였다. -
정지(定之)……주정(主靜) -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나온다. -
절단(截斷)……긴요(緊要) - 물은 자가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이 두 글자로 요체를 삼은 것이다. -
장식병(將息病) - 장(將)은 요양함이요, 식(息)은 조리함이다. -
일월일(一月日) - 한 달의 어느 날을 이른다. -
타문(他門) - 《주자어류》에서 그 사람을 가리켜 ‘모문(某門)’이라 하였으니, 아래의 문공문(文公門)의 문(門) 자와 같다. -
허순지(許順之) - 이름은 승(升), 천주(泉州) 사람이다. 선생을 따라 배웠는데, 끝내는 선학(禪學)의 적멸(寂滅)에 빠졌다. ○《일통지》에 “동안(同安) 사람이다. 주모(朱某)가 늘 천성이 담박하여 물욕(物慾)의 누가 없었다고 칭찬하였다.”라고 하였다. -
십마(什麽) - 삼마(甚麽)와 같은 말로, ‘무엇’이란 뜻이다. -
차이자(此二字) - 이(二) 자는 아마도 일(一)이 되어야 할 듯하다. -
견천(見天)……폐관(閉關) - 《주역》 〈복괘(復卦) 단전(彖傳)〉에 “ 《복괘》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는가?”라고 하였고, 〈대상(大象)〉에 “우레가 땅 속에 있는 것이 〈복괘〉이니, 선왕(先王)이 그것 때문에 동지 날부터 관문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들이 통행하지 않게 하고 군주도 지방을 순행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 은근하게 이날 비로소 발양되기 때문에 양기가 발양되는 것을 손상시킬까 두려워 편안하고 고요하게 기르면서 관문을 닫는 까닭이다. -
올좌(兀坐) - 오뚝하게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중이 참선(參禪)하는 것과 같다. -
관동정(貫動靜) - 관(貫) 자 앞에 본래 통(通) 자가 있다. -
적당(的當) - 합당(合當)의 뜻과 같다. -
필여(必如) - 본래는 지여(至如)로 되어 있다. -
상수(相須) - 《주역》에 쓰인 수(須) 자는 필요로 하다[待]의 뜻이 많다. -
탁연(卓然) - 서 있는 모양이다. -
주정(主靜) - 공경하면 마음이 흩어지거나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곧 정(靜)을 주장하는 것이다. -
경정위일(敬靜爲一) - 묻기를 “‘경(敬)과 정(靜)이 하나가 된다’고 할 때의 경과 정을 동(動)과 정(靜)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경(敬) 자체가 동(動)과 정(靜)을 겸하였으니, 정(靜)과 상대하여 동(動)과 정(靜)으로 나누지는 못한다. 정(靜)이란 비록 본래 동(動)의 상대적인 호칭이기는 하지만 이제 이미 ‘경(敬)과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고 하였으니 또 경(敬)을 상대하여 동정(動靜)을 나눌 수는 없다. 또 경(敬)을 전수한 것은 예전부터 그래 왔으니, 요(堯) 임금의 ‘흠명(欽明)’, 순(舜) 임금의 ‘긍업(兢業)’, 탕(湯)의 ‘성경(聖敬)’, 무왕(武王)의 ‘경승(敬勝)’, 공자(孔子)의 ‘행독경(行篤敬)’과 ‘수기이경(修己以敬)’ 같은 것이 모두 이것이다. 경(敬) 자의 공부는 동(動)과 정(靜)을 관통하므로 정(靜)을 꼭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족한 것이다. 《주역》의 ‘적연부동(寂然不動)’과 《맹자》의 ‘평조야기(平朝夜氣)’는 정(靜)의 이치를 말하면서도 정(靜) 자는 말하지 않았고, 《대학》의 ‘정정(定靜)’은 ‘지지(知止)’의 효과만 말하였을 뿐 주정(主靜)의 학문을 말한 것은 아니다. 염계(濂溪) 선생에 이르러 정을 주장하는[主靜] 말이 있었지만 이것도 성인(聖人)은 동(動)과 정(靜)의 덕(德)을 온전히 하되 항상 정(靜)에 근본한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 학문하는 곳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정자(程子)의 문하에서 비로소 학자들에게 어지러이 동요하는 문제가 많았으므로 정좌(靜坐)의 뜻을 언급하였으니, 이것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병을 치료하도록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조금 만 엇나가면 선(禪)에 흐르기 쉽다. 지금 남헌(南軒)은 그렇지 않아서 경(敬)이 곧 주정(主靜)의 뜻임을 알았고, 또 경(敬)에 전심(專心)하여 주정(主靜)이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그가 선(禪)에 흐르지 않고 주자(周子)와 정자(程子)의 본지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서산이 이처럼 찬탄한 것이니, 학자들은 마땅히 남헌이 어떻게 경이 곧 주정이란 의미를 알았는지 추구해야 하며, 또 마땅히 남헌이 경(敬) 자에 어떻게 전력하여 주정이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는가를 추구하여 힘써 노력해서 공부를 해야 된다. 동(動)과 정(靜)을 나누는 데 쓸데없이 마음을 허비해서는 안될 듯하다.”라고 하였다. -
〈인인심장(仁人心章)〉
본주(本註)
심향상거(尋向上去) - 위로 향하는 일을 찾아 나아간다는 말이다. -
강자(腔子) - 몸통의 껍질 안을 통틀어 ‘강자(腔子)’라 한다. 어떤 이는 “마음이다.”라고 하는데, 옳지 않다. -
이주(二周) - 《일통지》에 “주부선(周孚先)은 진릉(晉陵) 사람이다. 아우 공선(恭先)과 함께 정이(程頤)에게 수학하였다. 정이가 ‘부선 형제는 기질이 순수하고 맑으니 도(道)에 들어갈 만하다.’라고 한 적이 있다. 모두 향천(鄕薦)을 통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다. 부선은 사명염장(四明鹽場)에 임명되었다가 건덕위(建德尉)로 옮겼는데 나아가지 않았다. 후에 도관(道觀)의 봉사직을 청하였다. 공선은 갱야관(坑冶官)으로 세상을 마쳤다.”라고 하였다. 《연원록》에 “주백침(周伯忱)은 이름이 부선(孚先)이고, 비릉(毗陵) 사람이다. 그의 아우 공선(恭先) 백온(伯溫)과 함께 이정(二程) 선생에게 수학하였다.”라고 하였다. -
저서를 좋아하지 말라[勿好著書] - 저서를 좋아하는 것이 양구산(楊龜山 양시(楊時))의 병통인데, 이 병통이 없었다면 그 도가 순수했을 것이다. -
수면앙배(睟面盎背) - 《맹자》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마음속에 뿌리내려 함치르르하게 얼굴에 드러나고, 청화하고 온화한 뜻이 등에 넘치고, 풍부하고 가득 넘치는 뜻이 온 몸에 퍼져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온 몸이 움직인다.”라고 하였다. -
고(靠) - 음은 고(告)이고, 의지하다는 뜻이다. -
정중례(鄭仲禮) - 장식(張栻)의 문인인데, 주자를 한 번 보고난 뒤에 편지를 주고받으며 질문하였을 뿐이다. -
황(荒) - 황폐하다는 뜻이다. -
진열(陳烈) - 자는 계자(季慈)이다. 염계(濂溪)와 더불어 한 때의 명사였으며, 독실하게 실천한 사람이었다. 《일통지》에 “후관(侯官) 사람이다. 학문과 행실이 바르고 신실했으며 움직일 때는 고례(古禮)를 따랐으며, 하인들을 손님 대하듯이 하였다. 인종(仁宗)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공경(公卿)과 군수(郡守)와 고을의 장로들이 서로 소장(疏章)을 올려 그의 어짊을 칭송하였다. 본주 교수로서 조정에서 불러 직강으로 삼았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후에 선덕랑(宣德郞)으로 벼슬을 마쳤다. 진양(陳襄)ㆍ정목(鄭穆)ㆍ주희맹(周希孟)과 벗이 되었는데, 민(閩) 땅 사람들이 ‘사선생(四先生)’이라 칭하였다.”라고 하였다. -
우위문인(又謂門人) - 문인은 석홍경(石洪慶)으로, 자는 자여(子餘)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에 주자가 불러들여 말한 것이다. -
소광지원(昭曠之原) - 밝고 환한 근원으로, 바로 천리(天理)의 근원이다. -
차중(此中) - 마음속을 가리킨다. -
영인이해(迎刃而解) - 대나무를 가를 때 결에 따라 칼날을 받고서 쪼개지는 것이다. -
미문(未問)……역행(力行) - 진지(眞知)와 역행(力行)을 구분하지 말고 모두 이 마음을 수습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
돈방(頓放) - 안치(安置)라는 말과 같으니, 바로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을 말한다. -
임각(林恪) - 자는 숙공(叔恭)이고, 천태(天台) 사람이다. 주자 문하의 고제(高弟)이다. -
사담(似擔)……골담(骨擔) - 백 열 근의 짐을 짊어진 것과 같으니, 반드시 근골에 단단하게 붙여서 짊어져야 한다. -
우위일학자(又謂一學者) - 심장중(沈莊仲 심한(沈僩))에게 고한 것이다. -
흔연(掀然) -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노군(魯君)이 전쟁을 하여 혼(溷)을 함락시키자 용사들이 공을 둘러 메고 나갔다.[魯君戰而陷溷, 勇士掀公而出.]”라고 하였고, 또 “하늘을 높이 들고 땅이 진동한다.[掀天動地]”라는 말이 있으니, 높이 들고 날 듯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
금공문(今公問) - 문(問) 자는 마땅히 《주자어류》에 의거하여 문(門) 자로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문(問) 자가 옳다고 의심하였으나 《주자어류》를 살펴보면 이 앞 한 조목에 또 “공의 문하는 대부분 거칠다.[公門心都麤大]”라는 말이 있으니 바로 이것과 같다. 문(門) 자가 옳다. -
이금(而今) - 금(今) 자에 구두(句讀)를 떼야 한다. 혹 인(人) 자에 붙이기고 하는데 옳지 않다. 《주자어류》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다. -
부지(不知)……득원(得遠) - 학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천하의 일에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잃어버림이 가깝다. 학문을 아는 사람은 천하의 일에 아는 것이 많다. 만약 마음을 보존하여 기르고 근본에 힘쓰지 않으면 마음이 아는 바를 따라 내달리기 때문에 잃어버림이 멀다. -
규보(跬步) - 규(跬) 자는 음이 기(跂)이고, 반보(半步)이다. -
〈무명지장(無名指章)〉
금유무명(今有無名) - 〈맹자질의〉에 보인다. -
부주(附註)
영가 정씨(永嘉鄭氏) - 누군지 자세하지 않다. -
서산(西山) - 부주(附註)는 바로 황돈(篁墩)이 붙인 것인데, 소주에 서산(西山)이라고 하였으니 잘못된 듯하다. 사경(士敬)이 이에 대해 말했다. ○다시 살펴보니, 서산(西山) 앞에 안(按) 자가 빠졌다. -
〈인지어신겸소애장(人之於身兼所愛章)〉
몸에는 귀천이 있다[體有貴賤] - 《원집》에 보인다. -
부주(附註)
다투어 취함[攻取] - 공(攻)은 공벌(攻伐)의 공(攻)과 같다. 공벌하는 이유는 그 물건을 취하여 자기 소유로 하려는 것이다. -
만족함에 이르다[屬饜] -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로, 만족함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촉(屬)은 음이 촉(燭)이다. -
일체 세상의 재미[一切世味] - 공명(功名), 이록(利祿), 음식(飮食), 남녀(男女) 따위를 모두 세상의 재미라고 한다. 일체(一切)는 곧 모두라는 뜻이다. 선가(禪家)에서 일체(一切)라고 하는 것과 같다. -
상(相) - 형상(形相)의 상(相)이다. -
격앙(激昂) - 격려(激厲)의 뜻과 같다. 사람이 이 마음이 없으면 사군자가 되기 어렵다. -
임설득도료(恁說得倒了) - 순하게 말한다면 마땅히 ‘입과 배를 기름이 또한 몸과 목숨에 관계되니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것을 기르기 위해 대체(大體)를 잃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천하게 여긴다.’라고 해야 한다. 지금은 이것을 반대로 말했기 때문에 ‘도설(倒說)’이라 한 것이다. -
설설(屑屑) - 《맹자》의 주석에 “설(屑)은 깨끗함[潔]이다.”라 하고, 또 “급급하게[切切] 이것을 깨끗하게 여겨서 이에 대하여 급급하였다.”라고 하였다. -
토끽(討喫) - 토(討)는 구한다는 뜻이다. -
천리를 배반하고 정을 어기다[倍天遁情] - 도심(道心)이 주재하지 못하여 인심(人心)에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
동동(憧憧) - 음은 창(昌) 자와 용(容) 자의 반절(反切)이다. 뜻이 정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주역》의 ‘동동(憧憧)’ 주석에 “왕래하여 끊이지 않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
가시나무[樲棘] - 〈맹자질의〉에 보인다. -
〈균시인장(鈞是人章)〉
부주(附註)
불능상(不相能) - 눈은 듣지 못하고 귀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
오관(五官) - 귀ㆍ눈ㆍ입ㆍ코ㆍ몸이다. -
신명의 주인[神明之主] - 묻기를 “마음을 신명의 집이라 한다면 괜찮지만 신명의 주인이라 말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어떻습니까?” 하니, 말하기를 “신명(神明) 두 글자는 곧바로 마음을 설명한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의 텅 비고 신령하며 어둡지 않은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이라고 못하겠는가. 마음은 본래 한 몸의 주재이면서 신명의 주인이다.”라고 하였다. -
신안 예씨(新安倪氏) - 이름은 사의(士毅)이고, 휴령(休寧) 사람이다. 마음을 다해 도를 구하였고, 일찍이 진력(陳櫟)과 주경여(朱敬輿)에게 배웠다. 《일통지》에 나온다. -
초 선생(譙先生) - 이름은 정(定)이고, 자는 천수(天授)이며, 촉(蜀) 땅 사람이다. 호헌(胡憲)의 스승이다. 이천(伊川)이 부주(涪州)로 귀양 갈 때 서로 만나 낙양(洛陽)에서 함께 살자고 약속했는데, 후에 초정이 와 보니 이천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
〈기자감식장(飢者甘食章)〉
부주(附註)
조씨(趙氏) - 이름은 기(岐)이고, 자는 빈경(邠卿)이며, 동한(東漢) 사람이다. 난리를 피해 사방으로 옮겨 다녔으며 떡을 팔아 생계를 꾸리면서도 끝내 지조를 잃지 않았다. -
〈어아소욕장(魚我所欲章)〉
구득(苟得) - 구차스럽게 얻는다는 뜻이다. -
본주(本註)
연혹(然或) - 본래는 연(然) 자가 없다. -
부주(附註)
형서(邢恕) - 《연원록》에 “자는 화숙(和淑)이다. 그의 행적은 국사(國史)와 소백온(邵伯溫)이 변무(辨誣)한 글 등에 자세히 실려 있다.”라고 하였다. 후일에는 또 선학(禪學)에 물들었다. 그 사람됨이 명석하고 재주가 있으며, 세상의 일에 밝았다. 학문에 있어서는 역시 날로 달로 이르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오랫동안 정자에게 배웠는데, 소인들이 정자와 그 문인들을 배척하자 형서는 화를 면하고자 하여, 하루는 진강(進講)에서 “정(程)모를 베어 천 토막을 내어도 신은 한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으니, 그 사람됨이 이와 같았다. -
이책(以責)……즉충(則忠) - 묻기를 “남을 책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서(恕)이고,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말하면 충(忠)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전혀 지식이 없다고 하지 않았으니 서(恕)임을 알 수 있고, 털끝만 한 사이에서 의리와 이욕을 분석하였으니 사람들을 위하여 도모함에 충성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
구당(句當) - 주관(主管)의 뜻과 같다. -
제(濟) - 이로움이 있다. 또는 이루어 준다는 말이다. -
제4편〔第四篇〕
〈계명이기장(雞鳴而起章)〉
본주(本註)
미유(未有)……의자(義者) - 이는 크게 드러나는 이(利)를 가리켜서 한 말이 아니고, 바로 심술의 정미(精微)한 곳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또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깊이 살펴야한다.”고 한 것이다. -
부주(附註)
동중서(董仲舒) - 광천(廣川) 사람이다. 《춘추》를 공부할 때 장막을 치고 강론하고 가르치면서 3년 동안 뜰에 나가지 않았다. 현량과(賢良科) 대책문(對策文)을 통해 “학문하고 도를 행하는 데 힘을 쓰고 마음속으로 지성(至誠)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말로 무제(武帝)에게 권면하니, 황제가 가상하게 여기고 강도 상(江都相)으로 삼았다. 학문에 근원이 있었고, ‘의를 바르게 하고 도를 밝힌다’는 말은 제자(諸子)들 중에 탁월하여 한(漢)나라의 순유(醇儒)가 되었다. -
소립(所立) - 수립한 것을 말한다. -
능언(能言)……앵무(鸚鵡) - 《예기》에 “앵무새가 말을 잘하나 나는 새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입득각정(立得脚定) - 다리를 바로 세워서 정한다는 말이다. -
난(煖) - 《운회》에 “음이 화(火) 자와 원(遠)의 반절이고, 또 내(乃) 자와 관(管) 자의 반절이다.”라고 하였다. 따뜻하다는 뜻이다. -
회호(回互)……심기(心機) - 회호(回互)는 회호(回護 감쌈)와 같고, 위곡(委曲)은 세속에서 구불구불한 마을을 ‘위항(委巷)’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 모두 빙빙 돌리고 서로 굽히면서 이욕을 추구하는 마음을 많이 가져서 시비를 제대로 따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
삭성(索性) - ‘뜻을 다한다[極意]’는 뜻과 같다. 혹은 ‘색(索)’ 자만 쓴 곳도 있다. ○묻기를 “이는 형편없는 소인인데, ‘소인이 되어도 그 뜻을 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은 어떤 뜻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자신을 감싸서 의(義)와 이(利) 두 가지 사이에서 맴돌아 의(義)를 하고자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욕에 이끌리고, 이(利)를 하고자 하면서도 또 의를 버리려고 하지 아니하여, 머뭇거리며 마음의 기지(機智)를 다 쓰니, 비록 형편없는 소인이라고 할 수 없으나 또한 어찌 다리를 꼿꼿이 세운 군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선비로서 학문이 밝지 않고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 이런 데서 벗어날 자가 드물 것이다.”라고 하였다. -
행재(行在) - 행재(行在)는 남송(南宋)이 도읍한 곳을 가리키니, 바로 임안부(臨安府)이다. 국민들이 옛 나라를 잊지 못했기 때문에 ‘행재(行在)’라 하면서 마땅히 회복해야한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한서(漢書)》의 주석에 “천자는 사해(四海)를 가(家)로 삼기 때문에 머무는 곳을 ‘행재소(行在所)’라 한다.”라고 하였다. -
명지(命之)……무궁(無窮) - 《중용》 수장(首章)의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하고[天命之謂性],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率性之謂道], 도를 이루는 것을 교라 한다[修道之謂敎]”는 세 구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
왈리(曰利) - ‘왈리(曰利)’ 아래에 ‘즉(則)’ 자가 있어야 할 듯하다. -
불이(不爾) - 그렇지 않다면[不然]이란 말과 같다. -
군자(君子)……어리(於利) - 《논어》에 보인다. ○주자는 “정이천(程伊川 정이(程頤))은 ‘오직 깊이 깨닫기 때문에 독실히 좋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육자정(陸子靜 육구연(陸九淵))은 반드시 ‘좋아한 뒤에 바야흐로 깨닫는다.’라고 하려고 하였다. 살려보건대, 사람이 의리에 있어서 깨닫고 나서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만약 전혀 깨닫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좋아하면 깨닫기도 한다. 결국 이천의 말이 더 낫다.”라고 하였다. -
고(顧) - 고(顧)는 ‘생각하다[念]’의 뜻이다. -
여하(如何) - 나의 문장이 시험관의 취향[好惡]에 합당한가의 여부이다. -
배이치(背而馳) - 성현(聖賢)은 동쪽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 등을 지고 달리는 것이다. -
미루어 올라가다[推而上之] - 처음에는 과거(科擧)의 득실을 따지다가 점점 관직과 녹봉에 대해 논하니, 이것이 미루어 올라가는 것이다. -
민은(民隱) - 백성의 고통이다. -
궤(詭) - 다르다는 뜻이다. -
진지(陳芝) - 자는 정수(廷秀)이고, 주자의 문인이다. -
부판(剖判) - 변별(辨別)한다는 뜻이다. -
도당(睹當) - 요량하여 안다는 뜻인 듯하다. -
취해(取解) - 해(解)는 천거한다는 말로, 《소학》의 주에 “해(解)는 지금 초시(初試)와 같다. 해(解)라고 한 까닭은 아래의 군현에서 선비를 천거하여 위로 보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라고 하였다. 뽑아서 보낸다[解送]의 해(解) 자와 같은 뜻이다. -
자소(自少)에서 지종(至踵)까지 - 자초지종(自初至終)이란 말과 같다. 정종(頂踵) 두 자는 《맹자》에 나온다. -
미미(亹亹) - 《시경》의 주에 “힘쓰는 모양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조금씩 스며든다는 뜻이다. -
구지지하(九地之下) - 아래로 파고드는 깊이가 이와 같다는 말이다. -
중천지전(重天之顚) - 전(顚)은 위이다. 모두 서로 매우 멀리 떨어졌다는 말이다. -
〈양심장(養心章)〉
욕망을 적게 가지다[寡欲], 수유(雖有)……과의(寡矣) - 모두 〈맹자질의〉에 보인다. -
부주(附註)
착타(着他) - 타(他)는 천리(天理)를 말한다. -
천기(天機) - 천리(天理)가 자연스럽게 드러나 움직이는 오묘한 곳이다. -
각최시(却最是) - 장자(莊子)의 다른 말은 옳지 않으나 이 말은 정밀하기 때문에 ‘도리어[却]’란 글자를 놓은 것이다. -
인지(仁之)……소호(所好) - 《예기》 〈표기(表記)〉에 나오는데, 그 주석에 “인(仁)을 이루기 어려운 것은 사욕이 끼이기 때문이다. 사욕을 가지고 행하면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좋아해야 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바를 잃었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보존하지 못하는 것을 곡망이라 함[不存者牿亡之謂] - 원집에 보인다. -
간난(揀難)……기각(棄却) - 《상채어록(上蔡語錄)》에 “집안에 좋은 벼루가 있어 늘 이것을 생각하게 되므로 즉시 남에게 주었다.”라고 하였다. -
건선저심(健羡底心) - 부러워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말이다. -
외간(外間) - 외물(外物)을 뜻한다. -
모든 일은 반드시 근본이 있다[凡事須有根] - 모든 물건이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을 ‘근(根)’이라 한다. ○모든 일은 반드시 그 뿌리가 있는 것이지, 모름지기 뿌리가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부귀를 구할 때는 또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
쓰려는 곳[要用處] - 《맹자》에서 말한 “처첩, 집, 내가 아는 곤궁한 자.”따위와 같다. 이런 것은 뿌리를 찾아서 끊어버린다면 놓아 버릴 수 있다. -
요시(要時) - ‘조금이라도 계교(計較)함이 있으면’이라는 뜻이다. 중국 사람들은 시(時) 자를 쓰는 것이 대부분 이와 같다. -
모두 달려 간다[一齊走出了] - 여러 일에 모두 달려간다는 뜻이다. -
불요(不要)……사자(寫字) - 묻기를 “글씨 쓰는 것을 어째서 ‘배우는 것을 요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요(要) 자에 병통이 있다. 단지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서 하는 것은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계교(計較)하는 생각이 있으면 곧 마음의 병이 되니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배우는 이는 마땅히 ‘요하지 않는다[不要]’는 두 글자를 깊이 음미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
요득(要得)……시난(是難) - 《주자어류》에는 “다만 욕심을 적게 가져야 하니,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只是要得寡欲 存這心最是難云云]”라고 되어 있는데, 황돈(篁墩)이 ‘지시(只是)’ 두 자를 빼버리고, 또 ‘저심(這心)’ 두 자를 잘못 거꾸로 놓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알기 어렵게 하였으니, 마땅히 본문을 따라야 한다. -
불이(不邇)……화리(貨利) -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보인다. -
〈여오(旅獒)〉 - 《서경》 주서(周書)의 편명(篇名)이다. 서려(西旅)에서 오(獒)라는 개를 바치자 소공(召公)이 이 글을 지어 올렸다. -
검색(儉嗇) - 재물을 쓰는 데 너무 인색한 것을 말한다. 자신에게 너무 박한 것도 ‘검색(儉嗇)’이라 한다. -
비례(非禮)……지위(之謂) - 주자는 “욕(欲)은 좋은 욕(欲)이지 좋지 않은 욕(欲)이 아니다. 좋지 않은 욕(欲)이라면 ‘적게 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으며, 또 “일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고, 다만 이러한 뜻이 조금 위에 있기만 해도 곧 욕(欲)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설을 보면, 면재(勉齋)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는 것을 가지고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라고 한 설과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으니,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
탁(柝) - 밤에 돌아다니면서 치는 나무이니, 사람을 경계시키며 순찰하는 것이다. -
내간외귀(內姦外宄) - 도적이 안에 있는 것을 ‘간(姦)’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을 ‘귀(宄)’라 한다. -
〈양심설장(養心說章)〉
- 염계(濂溪) 선생이 장종범(張宗範)의 정자를 ‘양심정(養心亭)’이라 이름하고, 이에 대한 설(說)을 지었다. -
성(誠) - 진실한 이치가 마음에 있는 것이다. -
명(明) - 밝게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
성립명통(誠立明通) - 원집에 보인다. -
부주(附註)
섭씨(葉氏) - 이름은 채(采)이고, 《근사록》을 주해(註解)하였다. -
〈성가학장(聖可學章)〉
《통서(通書)》 - 그 뜻을 묻자, 답하기를 “그 책이 《주역》의 이치를 오로지 말한 것이 아니지만 그 책을 읽는다면 《주역》의 이치에 통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공(公) - 천하(天下)를 공(公)으로 여긴다. -
부(溥) - ‘두루 미치다’라는 말이다. -
부주(附註)
화두(話頭) - 지금 국가에서 사명(詞命)을 내릴 때, 그 제목을 써서 지제교(知製敎)에게 내려 지어 올리라 하면서 그것을 ‘사두(詞頭)’라고 하는 것과 같다. -
애거(崖去) - 애(崖) 자가 《성리대전》에는 애(捱) 자로 되어 있는데, ‘애거(捱去)’는 ‘미루어[推-음은 퇴[通回切]-] 가다[去]’는 뜻이다. -
장점(裝點) - ‘꾸민다[修飾]’는 말과 같다. -
누추불쾌(累墜不快) - 누(累)는 얽매이는 것이고, 추(墜)는 매달린 물건이 떨어지려는 형상과 같으니, 모두 마음의 병을 말한 것이다. -
안하(眼下) - ‘당면[當前]’이란 말과 같다. -
체용(體用)……무간(無間) - 정이천의 《역전》 서문(序文)에 나오는 말이다. 주자는 “체(體)에 나아가면 용(用)이 그 가운데 있으므로 ‘일원(一源)’이라 하고, 드러난 현상에 나아가면 은미한 이(理)가 벗어날 수 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
제일등(第一等) - 성인(聖人)의 일이란 말과 같다. -
제이등(第二等) - 현인(賢人)의 일이란 말과 같다. -
준(準) - 《운회》에 “지(之) 자와 윤(尹) 자의 반절이다”라고 하였다. 본받는 것이고, 모방하는 것이다. -
체대(體大) - ‘큰 일[大事]’이란 말과 같다. -
박고(博古)……이이(而已) - 고금의 일에 널리 통하여 문장을 짓고 충신하고 삼가고 후덕한 것은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제유(諸儒)가 모두 그러하였다. 충신(忠信)은 공자의 ‘언충신(言忠信)’과 증자(曾子)가 말한 삼성(三省)의 ‘충신(忠信)’같은 것이 아니다. 다만 충신(忠信)의 거친 것만 알고 그 정밀한 것을 행하지 않는 자이다. 원(愿)은 조심스럽고 온후함이고, 각(慤)은 속임이 없는 진실함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처럼 지식이 없는 사람이 많아 덕과 비슷하거나 덕이 아닌 것을 가지고 참된 덕을 어지럽힌다는 말이다. 《맹자》에 ‘향원(鄕愿)’을 논한 곳이 매우 좋으니 우선 음미해 보아야 한다. -
방불(髣髴) - 《운회》에 “흡사하다[若似]”라고 하였다. -
곤동(滾同) - 혼동(混同)과 통용한다. -
유물유칙(有物有則) - 물(物)은 형이하자(形而下者)이다. 부자(父子)가 있으면 자애롭고 효도하는 이치가 있고, 귀와 눈이 있으면 듣고 보는 덕이 있으니, 바로 사물의 법칙이다. -
혼륜(混淪) - 분별하지 않고 합해서 말하는 것이다. -
방과(放過) - 살피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을 이른다. -
휘암 정씨(徽庵程氏) - 이름은 약용(若庸)이고, 자는 달원(達原)이며 신안(新安) 사람이다. 만년에 호를 ‘물재(勿齋)’라 하였다. -
주경(主敬)……기실(其實) - 과재(果齋) 이방자(李方子)가 주자(朱子)의 행실(行實)을 찬술하면서 한 말이다. ○주경(主敬)을 앞에 놓고 궁리(窮理)를 뒤에 놓은 것은, 옛사람은 소학(小學)에서 함양 공부가 익숙해진 뒤에 태학(太學)에 들어가 궁리(窮理)를 먼저 하더라도 절로 잡되고 어지러운 근심이 없었으나,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어려서부터 이러한 공부를 하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궁리(窮理)를 먼저 시키면 잡되고 어지러워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주경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
일신(日新)……위업(爲業) -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날로 새로워짐을 성덕(盛德)이라 하고 많이 소유함을 대업(大業)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
〈시청언동사잠장(視聽言動四箴章)〉
잡는 데 요점이 있다[操之有要] - 마음은 형체가 없어서 잡기 어려우니, 보는 것에 따라 마음을 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점이 있다[有要]’고 한 것이다. -
지유물화(知誘物化) - 《예기》의 주(註)에 의거하여 풀이하면, “지각이 사물에 유혹되어 변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
그칠 곳을 알아 안정함이 있다[知止有定] - 지선(至善)이 있는 곳을 알아서 안정함이 있는 것이다. -
한사(閑邪) - 〈논어질의〉에 보인다. -
추기(樞機) - 《주역》에 “말과 행실은 군자의 추기이다.[言行 君子之樞機]”라고 하였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반드시 지도리[樞]에 달려 있고, 소뇌가 발사되는 것은 반드시 고동[機]에 달려 있다. -
흥융출호(興戎出好) - 융(戎)은 전쟁이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입은 우호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
비법부도(非法不道) - 《효경》에 “선왕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정이천(程伊川)이 그것을 인용하여 “마땅히 그 가르침을 삼가 받들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
철인(哲人) - 성인(聖人)을 일컫는 말이다. -
기(幾) - 움직임이 미묘한 곳이다. 생각이 막 싹틀 때에 자세히 살펴서 성(誠)을 위주로 해야 악의 기미에 빠지지 않는다. -
수지어위(守之於爲), 습여(習與)……동귀(同歸) - 〈논어질의〉에 보인다. -
유(裕) - 너그럽게 여유가 있는 것이다. -
부주(附註)
시여(視與)……부동(不同) - 견(見)과 문(聞)은 심(心) 자 있는 것이 아니고, 시(視)와 청(聽)은 심(心) 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경원 보씨(慶源輔氏) - 이름은 광(廣), 자는 한경(漢卿)이다. 주자 문하의 고제(高弟)이다. 위학당(僞學黨) 사태가 일어났을 때, 확고하게 흔들리지 않고 주자의 문하에서 경전을 공부하면서 시종일관 게으르지 않았다. ○《일통지》에 “여조겸(呂祖謙)과 주 문공(朱文公)을 사사하였는데, 주자가 그를 크게 인물로 보아 아꼈다. 가정(嘉定) 연간에 벼슬하여 사관(祠官)에 이르렀다. 파직되어 어계(語溪)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저술에 힘을 쏟았다. 배우는 이들이 ‘전이 선생(傳貽先生)’이라 칭하였다.” 하였다. ○《연원록》에 “경원(慶源) 사람으로, 가흥(嘉興)에 살았다. 사서(史書)에서 그의 순수하고 신중함을 칭송하였다.”라고 하였다. -
백운 허씨(白雲許氏) - 이름은 겸(謙)이고, 자는 익지(益之)이다. 학문이 매우 정밀하고 독실하였다. 그러나 다만 후세 사람들이 문장과 색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의심하였으니, 마음공부가 부족한 듯하다. -
뜻이 정밀하다는 것[旨義精密] - 원집에 보인다. -
일봉(一捧)……장혈(掌血) - 이중구(李仲久)의 질문에 답하기를 “봉(捧) 자는 마땅히 목(木)을 따라야 하니, 지팡이로 때리는 것이고, 괵(摑)은 손으로 때리는 것이다. 지팡이로 때리면 지팡이에 따라 한 줄기 지팡이 자국이 있게 되고, 손으로 때리면 손을 따라 한 손바닥의 핏자국이 있게 되니, 그 말의 통렬함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봉(捧)은 음이 부(部) 자와 항(項)의 반절이고, 괵(摑) 자는 음이 괵(馘)이다.”라고 하였다. -
해괄(該括) - 그 생각이 자세하고 포괄적이란 말이다. -
〈심잠장(心箴章)〉
감여(堪輿) - 천지(天地)이다. -
은(垠) - 《운회》에 “음은 의(疑) 자와 건(巾) 자의 반절이다.”라고 하였다. 땅의 끝이다. -
묘연(眇然) - 작다는 말이다. -
제미(稊米) - 피의 낱알이란 말로 매우 작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
존성(存誠)……극경(克敬) - 범씨(范氏)가 마음을 성대하게 논하고서 ‘성경(誠敬)’ 두 글자로 마무리하지 않은 것이 미흡한 듯하다. 말은 짧으나 의미는 실로 무궁하니 병통이 되지 않는다. -
부주(附註)
향견여백공이하(向見呂伯恭以下) - 가운데 ‘문사임지(問似恁地)’ 이하는 처음 물은 사람이 다시 물은 것이다. ‘차의(此意)’ 이하는 기록한 사람의 말인 듯하다. 어떤 사람은 “‘문사임지(問似恁地)’ 이하는 주자가 여백공에게 물었던 말을 든 것이고, ‘차의유재(此意有在)’는 주자가 스스로 한 말이다.”라고 하였는데, 옳지 않은 듯하다. ○주자가 이 잠에서 취한 것이 이렇게 지극한 것은 요점이 마지막 두 구에 있다. -
위지조야(謂之操也) - 《주자대전》에는 ‘야(也)’ 자 앞에 또 ‘존(存)’ 자가 있고, ‘소위조존(所謂操存)’ 아래에 ‘진심지성(盡心知性)’, ‘존심양성(存心養性)’, ‘참전의형(參前倚衡)’ 등의 말이 있고, ‘조야(操也)’ 아래에 또 답한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모두 빼버렸다. -
문미발(問未發) - 이 질문이 가장 정밀하니 유념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
〈경재잠장(敬齋箴章)〉
- 주자(朱子)의 자서(自序)에 “장경부(張敬夫)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 남긴 의미를 모아 〈경재잠〉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였다.”라고 하였다. -
존(尊) - 공경하여 받든다는 뜻이다. -
잠(潛) - 어떤 물건이 물속에 잠겨서 맑게 텅 비고 고요한 것과 같다. -
절선의봉(折旋蟻封) - 주자가 말하기를 “주선중규(周旋中規)는 돌아가는 곳에서 그림쇠에 들어맞는 것처럼 둥글게 하려는 것이고, 절선중구(折旋中矩)는 가로질러 돌아가는 곳에 곱자에 들어맞는 것처럼 방정하게 하려는 것이다. 의봉(蟻封)은 개미 둑이다. 옛말에 ‘말을 타고 개미 둑 사이를 꺾어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개미 둑 사이의 길은 구불구불하고 좁은데 그 사이에서 말을 타고 꺾어 돌면서 말 달리는 절도를 잃지 않으니 이것이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출문(出門)……여제(如祭) - 이는 주자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바로 《예기》의 말이니, 그 의미가 이와 같다. -
전전(戰戰) -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
긍긍(兢兢) - 조심한다는 뜻이다. -
수구여병(守口如甁) -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방의여성(防意如城) - 사특함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다. -
동동(洞洞) - 공경함이 안팎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
촉촉(屬屬) - 음은 촉(燭)이고, 참되어 거짓이 없다는 말이다. -
부동(不東)……기적(其適) - 마음은 전일하도록 해야 하니, 마음이 동쪽으로 가면서 또 서쪽으로 가려고 하고 남쪽으로 가면서 또 북쪽으로 가려고 할 것 같으면 곧 전일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
불이(弗貳)……이삼(以三) - 처음에는 하나의 일이 있는데, 또 하나의 일을 더하면 곧 마음이 둘로 나누어져서 두 개의 일이 되고, 원래 하나의 일이 있는데, 또 두 개의 일을 더하면 곧 마음이 셋으로 나누어져 세 개의 일이 된다. -
삼강(三綱) - 군주는 신하의 벼리가 되고[君爲臣綱],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되고[父爲子綱],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되는 것[夫爲妻綱]이다. -
윤(淪) - 빠진다는 말이다. -
구법(九法) - 〈홍범(洪範)〉의 구주(九疇)이다. -
영대(靈臺) - 마음을 가리킨다. 《장자》에 나온다. -
부주(附註)
여러 방향으로 나가다[許多地頭去處] - 지두(地頭)의 말씀은 공부를 하는데 있어 의거할 곳이 있어 매우 좋다. -
어찌 그리 박절한가[如何解迫切] - 해(解) 자는 어조사로 보아야 한다. -
제비(除非)……물박(勿迫) - 어떤 사람이 공부를 할 때에 대단히 박절하게 하면 반드시 해가 있기 때문에 그에게 박절하게 하지 말고 여유륩게 하라고 권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름지기 그에게 박절하게 하지 말라고 권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제비(除非)는 그릇된 것을 없애는 것이니, 그릇되면 없애야 한다는 말이다. 제비(除非)는 애초에 ‘단지[只是]’의 뜻이 아니었는데 어세가 도치되어 끝내 ‘단지[只是]’의 뜻이 된 것이다. -
개후면(開後門) - 대단히 박절하게 공부한 적이 없으면서 먼저 여유 있게 하여 박절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면, 비유하건대 적이 그 집에 쳐들어 올 때에 그들과 싸워보기도 전에 뒷문을 열고 도망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연역불해(然亦不解) - 뒷문을 여는 자는 스스로 공부할 때 박절할까 근심하기 때문에 앞 문장에서 이미 그렇지 않음을 말하고, 이 아래에서 또 박절함을 근심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근심이 공부하지 않는 폐단에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연(然)’ 자를 가지고 어세를 돌린 것일 뿐이다. -
〈구방심재명장(求放心齋銘章)〉
이상(以相) - 《주자대전》에는 ‘상(相)’ 자 다음에 ‘지(之)’ 자가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
부주(附註)
정정사(程正思) - 뜻을 독실히 하여 도를 구하였으나 일찍 죽었다. -
제공(諸公) - 당시 이학(理學)을 익힌 여러분을 가리키나 자세하지 않다. -
몇 겹이나 막혀 있는 공안인가[是隔幾重公案] - 국가의 문서를 몇 겹을 거쳐 보고하는 것이니, 예컨대 현(縣)에서 부(府)에 보고하고 부에서 사(使)에 보고하고 사는 그것을 국왕에게 아뢴다. 국왕이 해당 관청에 내려 주면 해당 관청은 또 본도(本道)에 내려 주고 본도는 또 부와 현에 내려 준다. 이와 같이 몇 겹으로 서로 보고하면 혹 차질이 없을 수 없다. 제공(諸公)을 인하여 정씨(程氏)를 찾고 정씨를 인하여 성인(聖人)을 찾을 것 같으면 여러 겹을 거쳐 찾아가니 혹시 차질이 없을 수 없다. 주자가 장남헌(張南軒)에게 보낸 편지에 “공은 늘 성현은 모두 양심(良心)을 통하여 발현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치열하게 반성하며 공부하니 이렇게 하면 바로 조장(助長)의 병통이 되네. 오직 평소에 엄숙하고 공경스럽게 거하면서 잡아 기르면 될 것이네.……”라고 하였으니, 이 글과는 다르다. ○묻기를 “앞뒤로 다르게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더 듣고 싶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각각 한 때의 생각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말에 차이가 있다. 성현의 말씀은 이와 같은 것이 또한 많다.”라고 하였다. -
지리(至理) - 마땅히 ‘정리(正理)’로 되어야 할 듯하다. -
이루어진 성을 보존하고 보존하다[成性存存] -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이루어진 성을 잘 보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라고 하였다. -
〈존덕성재명장(尊德性齋銘章)〉
하류(下流) - 《논어》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군자는 하류에 머무는 것을 싫어하니 천하의 악이 모두 돌아오기 때문이다.[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 皆歸焉.]”라고 하였다. -
부주(附註)
정윤부(程允夫) - 주자의 조모가 정씨(程氏)이고, 윤부의 아버지 한계(韓溪) 옹은 주자 아버지 위재(韋齋)의 내제(內弟)이니, 윤부는 선생에게 실제로 재종제(再從弟)인데, 오히려 내제(內弟)라고 하였다. 윤부는 자질이 소탈하고 호방하였으며, 주자와 논변한 것이 매우 많다. 소동파(蘇東坡)를 끌어와 정자(程子)에 부합시키려 하니 주자가 그 그릇됨을 배척하였고, 윤부의 논변이 매우 지극하자 주자가 또 비난하니, 동파의 과실이 이에 모두 드러나게 되었다. -
풍작숙(馮作肅) - 이름은 윤중(允中)이고, 소무(邵武) 사람이다. 호는 견재(見齋)이다. -
손경보(孫敬甫) - 이름은 자수(自脩)이고, 선주(宣州) 선성(宣城) 사람이다. -
가비자야(可飛者也) - 《주자대전》에는 “야(也)” 자 다음에 “세상이 쇠미하고 도가 미약해져서 이단이 마구 일어난다.[世衰道微, 異端蠭起.]” 8자가 있다. -
기간(其間)……위기자(爲己者) - 육상산(陸象山)과 같은 부류이다. ○묻기를 “상산(象山)의 학문을 어째서 이단이라 합니까?” 하니, 답하기를 “불교를 숭상하는 자는 천리(天理)를 끊어버리고 피부와 머리털을 훼손시킨다. 지금 상산이 이러한 일은 없지만 한 번 뛰어넘어 돈오(頓悟)하는 학문을 하여 궁리(窮理)하는 것이 정신을 피폐시킨다고 하여 문학(問學) 공부를 하지 않으니, 석씨(釋氏)의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견성성불(見性成佛)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상산이 우리 유학과 다른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오로지 주기(主氣)만 주장하는 자도 이러한 부류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그렇다. 염락(濂洛)이후로 정자와 장재(張載)의 문인이 우리 유학을 배웠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조금 선학[禪]으로 들어갔다. 상산이 나와서 이설(異說)을 창도하여 스스로 ‘공자의 종지를 얻었다[聖門宗旨]’라고 하였으나 실제로 기른 것은 기(氣)일 뿐이고 얻은 것은 선(禪)이었다. 그러면서 천하를 거느리고 우리 유학을 덮으려 하였으니 그 해가 홍수와 맹수보다 못하지 않다. 그래서 주자가 매우 근심하여 통렬히 배척하였으니, 그 이후에 태어난 자들이 미혹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 더욱 심해졌다. 사람이 괴탄한 것을 좋아함을 한유(韓愈)가 탄식한 바이지만 어찌 하겠는가.” 하였다. -
왕자충(王子充) - 이름은 부저(不著)이고, 주자의 문인이다. -
혈전상사(血戰相似) - 혈전은 사상(死傷)을 따지지 않고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이다. 학문과 사변(思辨)에 뜻을 가다듬어 분발하여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아 이와 같이 통렬히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
경도가 바르지 못하다[經不正] - 《맹자》에서 향원(鄕愿)이 덕을 어지럽힘을 논한 마지막에 “경도가 바르면 서민들이 흥기하고 서민이 흥기하면 사특함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
간여하(看如何)……시공(是空) - 아무리 잡아 지키는 것을 보려 하나 또한 공허할 뿐이다. -
감히 스스로 혼미할 수 없다[不敢自昧] - 혼미하게 되도록 학문을 그만둘 수 없다는 말이다. -
수루촌적(銖累寸積) - 10서(黍)가 누(累)이고, 10루가 수(銖)이고, 8수가 치(錙)이고, 24수가 양(兩)이다. ○수루(銖累)는 경중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촌적은 장단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가벼운 것이 쌓여 무겁게 되고 짧은 것이 쌓여 길게 된다. -
왕태초(汪太初) - 이름은 초재(楚材)이고, 주자의 증조모 왕씨(汪氏)와 동성(同姓)이다. ○휴령(休寧) 사람이고, 주자가 그의 덕성과 학문이 성대한 점을 칭찬하였다. -
약자사루(約者似陋) - 사람들은 누(陋) 자의 뜻이 더러움[汚]이라는 것은 알고 《운서》에 또한 “좁음[窄], 협소함[狹]이다.”라고 한 것은 모른다. ○약자사루(約者似陋)는 마땅히 ‘누자사약(陋者似約)’이라 해야 한다. -
조민표(趙民表) - 자세하지 않다. -
유공도(劉公度) - 이름은 맹용(孟容)이고, 융흥부(隆興府) 사람이다. -
하초(下梢)……수쇄(收殺) - 결국에는 다만 희롱하여 결실을 거두는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농득(弄得)은 장난치다[擺弄]와 같은 뜻이다. -
두찬(杜撰) - 두(杜)는 막다[塞], 막다[禦也] 같은 뜻이다. 이른바 “말재주로 남의 말을 막다[口給禦人]”의 뜻과 같다. 의리에 맞지 않고 사실이 아닌 일을 말하여 헛된 말을 지어내는 것을 ‘두찬’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옛날 두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지은 책이 대부분 허황되고 오류가 많았기 때문에 ‘두찬’이라 한다.”라고 하는데, 옳지 않다. -
날합(捏合) - 날(捏)은 음이 내(乃) 자와 결(結) 자의 반절이니, 비틀어 취하는 것이다.○그 이치를 궁리하여 행하면 이치가 자연히 실제에 부합하는데, 지금 유공도는 그렇지 않고 그 이치를 모르고 억지로 지어서 부회하여 행하려 하기 때문에 ‘두찬날합(杜撰捏合)’이라 한 것이다. -
범문숙(范文叔) - 이름은 보(黼)이고, 촉(蜀) 땅 사람이다. 주자의 문인에 들지 않았으나 위학당적(僞學黨籍)에 들어갔다. -
유정부(劉定夫) - 《주자대전》에 보이나 그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
점필(佔畢) - 《예기》에 보인다. 점(佔)은 보는 것이고, 필(畢)은 간책(簡冊)이다. -
한바탕 크게 공허함[一場大脫空] - 학문하는 데 책을 보지 않으면 끝내 수습함이 없어서 단지 한바탕 성글고 공허한 학문이 된다는 말이다. 이 글을 보면 유정부는 선학(禪學)을 하는 사람이다. -
유계장(劉季章) - 이름은 불(黻)이고, 여릉(廬陵) 사람이다.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순수한 유학자다[醇儒]”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지나치게 인정한 말인 듯하다. -
기지(基趾) - 지(趾) 자는 마땅히 ‘토(土)’를 따라 ‘지(址)’로 써야 한다. -
배자(坏子) - 배(坏)는 굽지 않은 기와이다. 덕성(德性)을 높이는 것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본래 배자(坏子)와 같은 것이다. -
귀숙(歸宿) - 끝내 머물러 정할 곳이란 말과 같다. -
우왈여금(又曰如今) - ‘여금이회(如今理會)’ 한 단락은 이방자(李方子)를 훈계한 것으로, 《주자어류》에 보인다. 어떤 사람은 ‘개두(箇頭)’의 ‘두(頭)’ 자 앞에 또한 ‘원(源)’ 자가 있어야 한다고 의심하였는데, 본문에 세 번 ‘개두(箇頭)’를 일컬으면서 모두 ‘원(源)’ 자가 없다. -
직인로(作引路) - 길잡이와 같은 뜻이다. -
별시일반(別是一般) - 별도가 되어 전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
여차간(如此看) - 마음을 논한 것으로 《맹자》 7편을 보는 것이다. -
노망(鹵莽) - 《장자》의 주석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친첩(襯貼)……의사(意思) - 친첩(襯貼)은 세속에서 말하는 ‘배접’과 같은 것이다. 《맹자》에 마음을 논하지 않은 곳을 억지로 마음을 논한 것으로 본다면 이는 저 물건을 여기에 붙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차배(差排) - 사람을 시켜 어떤 일을 하게 하는 것을 ‘차(差)’라 하는데, 아마 일을 맡기거나 분배한다는 뜻인 듯하다. ○안배(安排)라는 말과 같다. -
두원개(杜元凱)……유지(柔之) - 《춘추좌전》 서문에 “느긋하고 넉넉하여 느긋하여 강과 바다가 적시는 것과 같고 기름이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다.[優而柔之 如江海之浸 如膏澤之潤]”라고 하였는데, 정자(程子)는 그 말이 좋다고 칭찬하였다. -
전혀 꼬리와 머리가 없다[全無巴鼻] - 어떤 승려의 어록(語錄)에 ‘봉황은 꼬리가 길다[鳳巴長]’라는 말이 있는데, 파(巴)는 미(尾) 자와 같다. 몰파비(沒巴鼻)는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다는 말이다. ○이 조목은 바로 주자가 호남 안무사(湖南安撫使)로서 장사현(長沙縣)의 학교에 있을 때 강론을 들은 자가 70여 명이었는데 이때 문답한 말이다. -
지시협잡설(只是夾雜說) -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의 두 가지 공부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
물을 부어도 새지 않는다[置水不漏] - 정밀하다는 말이다. -
인타(引他) - 인(引)은 데려와 만나는 것이다. -
요덕명(廖德明) - 자는 자회(子晦)이고, 남검(南劍) 순창(順昌) 사람이다. 젊어서 불교를 배웠는데, 양구산(楊龜山)의 글을 읽고는 크게 깨닫고 마침내 주자를 사사하였다. 건도(乾道) 연간에 진사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심주(潯州)를 다스렸는데 잘 다스렸다는 명성이 있었다. 여러 관리들이 번갈아 천거하였으나 요덕명은 “이제는 늙었네. 더욱이 도를 품고 남을 따르겠는가.”라고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이부 좌선랑(吏部左選郞)으로 옮겼다. 주자가 그 학문은 근거가 있다고 칭찬하였다. 《사계집(槎溪集)》이 있다. -
미설도차처(未說到差處) - 요덕명(廖德明)의 뜻은 “만약 강구하여 이치를 밝히지 않으면 일을 처리할 때에 착오가 생긴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니, 주자가 “일을 처리할 때에 생기는 착오는 굳이 말할 것이 없고, 거처함에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함에 공경히 한다면 사람들이 알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렇게 하지 않으니 한갓 강구만하고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역행(力行)에 중점을 둔 말이다. -
한 실오라기 같은 길[一線路] - 작은 길을 말한다. -
항평보(項平父) - 이름은 안세(安世)이고, 괄창(括蒼) 사람이다. 문장이 뛰어난 것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오랫동안 주자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소견이 그릇된 곳으로 들어가 주자가 반복해서 깨우쳐 주었으나 끝내 고치지 않았다. 주자가 먼저 죽어 학문은 잡박해져서 훗날 좋지 않은 일이 많았다. 금(金)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노략질할 때 한탁주(韓侂冑)는 적을 막을 방책을 알지 못하자, 항평보가 한탁주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끝에 “강가에서 전별한 나그네 그대로 죽광주(竹光酒)나 마시니 취하여 글을 이루지 못하네.”라고 하니, 한탁주가 크게 기뻐하며 “항평보가 요즘 한가하구나.”라고 하였다. 마침내 불러서 호광 총영사(湖廣總領使)로 삼았으니, 이것이 한탁주에게 절개를 잃은 것이다. 오렵(吳獵)이 회한(淮漢)을 선무하다가 곧 촉(蜀)으로 들어가니, 항평보가 임시로 대신 선무하였다. 휘하 군관에 왕도(王度)란 자가 있었는데 오렵의 문객(門客)이고, 오렵이 그와 친하였다. 공이 군직(軍職)으로 불렸을 때, 항가군(項家軍)이 노략질한 것이 많아 오렵이 선무할 때에 노략질한 우두머리의 목을 벤 적이 있는데, 항평보가 유감을 품고 있다가 이 때에 왕도의 목을 베었다. 오렵이 선무할 때에 조정에 보고하자 항평보는 연좌되어 파직되고 끝내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 -
육 국정(陸國正) - 육자정(陸子靜)이 국자 학정(國子學正)을 지냈다, -
송(愯) - 소(所) 자와 강(江) 자의 반절음이고, 두렵다는 뜻이다. -
차개(遮蓋) - 달리 멋대로 도리를 만들어내어 자기가 한 일을 숨긴다는 말이다. -
위기와 위인[爲己爲人] - 여기서 말한 위인(爲人)이란 글자는 《논어》에서 말한 것과 다르다. 만약 남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본다면 본래의 뜻이 아닌 듯하다. 위기(爲己)는 본래의 뜻과 같고, 위인(爲人)은 학자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위인과 위기에 힘을 얻지 못함이 많다’. -
임택지(林擇之) - 이름은 용중(用中)이고, 〈정심장(正心章)〉에 자세히 보인다. -
유자징(劉子澄) - 이름은 청지(淸之), 정춘 선생(靜春先生)이라 불렀다. 주자가 《소학》을 편집할 때 유자징이 실제로 그 일을 주관하였다. ○《일통지》에 “임강(臨江) 사람이다. 형 유정지(劉靖之)에게 수학하였으며, 여러 서적에 매우 박식하였다. 소흥(紹興) 말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주자를 만나 보고 개연히 의리의 학문에 뜻을 두었다. 일찍이 고안 현승(高安縣丞)이 되어서는 기민(饑民)을 구휼하는 데 방책이 있었다. 효종(孝宗) 때 소대(召對)에서 먼저 백성의 곤궁함과 군사들의 교만함에 대해 논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원주(袁州)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
전회(鐫誨) - 전(鐫)은 새기는 것이니, 뼈에 새기듯이 가르쳐 주는 것을 말한다. -
연비(鳶飛)……지의(之意) - 원집에 보인다. ○이 유행하는 본체를 보는 것은 지(知)에 속하고 공부함이 있는 것은 행(行)에 속한다. -
답황직경(答黃直卿) - 황직경이 가족을 데리고 민현(閩縣)으로 돌아가니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당을 열어 강론하였기 때문에 이 편지를 보내 배우는 이를 지도하게 하였다. -
대의(大意) - 《주자대전》에는 ‘의(意)’ 자 다음에 ‘사(思)’ 자가 있다. -
정본지오(定本之誤) - 《주자대전》에는 단지 ‘차오(差誤)’로 되어 있다. 나정암(羅整庵)이 왕양명(王陽明)에게 답한 편지에 또한 “감본(監本)엔 단지 ‘향래차오(向來差誤)’라고 되어 있으며 정본은 없다.……”라고 하였다. -
구차하게 비웃음을 피하다[苟避譏笑] - 원집에 보인다. -
이경자(李敬子) - 이름은 번(燔)이고, 건창(建昌) 사람이다. 소흥(紹興) 초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악주 교수(岳州敎授)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건양(建陽)으로 가서 주자에게 배웠다. 악주(岳州)에 부임해서는 고문(古文)과 육예(六藝)로써 선비를 가르쳤으며, 양양 교수(襄陽敎授)로 옮겨 제수되었다. 주자가 죽자 학문을 금하는 것이 매우 엄격하였으나 이번은 동문들을 이끌고 회장(會葬)하였다. 후에 직비각 주관(直祕閣主管)으로서 도궁(道宮 도관(道官))에 이르러 죽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일통지》에 나온다. ○《연원록》에 “주자에게 배웠는데, 주자가 증자(曾子)의 홍의(弘毅)란 말을 알려 주면서 ‘멀리까지 이르는 것은 본래 굳건함으로 해야 하고 책임이 무거우니 넓히는 것이 귀하다.[致遠固以毅 而任重貴乎弘也]’라고 하니, 번이 물러나 ‘홍(弘)’ 자로 서재의 이름으로 삼고 스스로 경계하였다.”라고 하였다. -
고성현(古聖賢)에서 강학처(講學處)까지 - 묻기를 “여러 선생들이 모두 박문(博文)을 말하였는데, 황간(黃幹)은 ‘모두 강학(講學)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며, 또 박문(博文)과 의이방외(義以方外)는 문자는 다르지만 뜻은 실로 같다.’ 하였습니다. 황간이 나누어 둘로 한 것이 옳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황간이 이른바 ‘강학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라고 한 것은 공자 이전의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ㆍ주공(周公)과 같은 성인(聖人)들이 모두 강학을 말하지 않았음을 가리킨 것이다. 또 의이방외(義以方外)는 비록 정의(精義)에 속하나 행(行)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박문(博文)은 오로지 지(知)를 가지고 말하였으니, 또한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
과재 이씨(果齋李氏) - 이름은 방자(方子)이고, 자는 공회(公晦)이며 소무(昭武) 사람이다. 젊어서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주자 문하의 고제(高弟)이다. 단아하고 순실하였으며 타고난 자질이 도에 가까웠다. 호는 과재(果齋)이다. 가정(嘉定) 중에 진사 3등에 급제하였다. 《일통지》에 나온다. -
얽어매다[繳繞] - 얽어맨다는 뜻이다. 교(繳)는 음이 길(吉) 자와 요(了) 자의 반절이다. -
자계 황씨(慈溪黃氏) - 이름은 진(震)이고, 자는 동발(東發)이며, 자계현(慈溪縣) 사람이다. 보우(寶祐) 중에 진사에 급제하였다. 벼슬하여 사관 검열(史館檢閱)이 되었다. 맑은 지조를 스스로 지켰으며 주자의 학문을 유독 숭상하여 날마다 백 권을 베꼈다. 문인들이 문결(文潔)이라 시호하였다. -
준(浚) - 파다[濬]라는 말과 같다. -
기근(其根) - ‘그 뿌리에 물을 대다[漑其根]’ 아래에 다시 ‘개기근(漑其根)’ 석 자가 있어야 한다. -
가정(嘉定) - 송 영종(宋寧宗)의 연호이다. 이때는 주자가 죽은 뒤이다. -
과구(科臼) - 구덩이이니, 물이 모이는 곳이다. -
찬연문의(鑽硏文義) - 지금 사람들이 다만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이록을 취할 줄만 아니 이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송나라 말기와 원나라 초기에 주자 문하의 말학의 폐단이 과연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초려(草廬) 오징(吳澄)이 은근히 걱정하여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초려는 예전에 이미 글뜻을 연구하는 공부를 많이 하여 자세하게 분석해서 이미 천하의 이치를 환히 알고 알았다. 만일 이와 같은데도 오로지 도문학(道問學) 측면에 공부를 한다면 이는 편벽된 것이니, 존덕성(尊德性) 측면에 중점을 돌린다면 그 뜻이 좋다. 그런데 마침내 이것을 가지고 천하의 사람들을 거느려 반드시 처음 배우는 선비들로 하여금 모두 도문학의 공부를 버리고 편벽되게 존덕성에만 마음을 쓰게 하였다. 그리하여 우두커니 강명하는 바는 없고 하늘의 운행과 일월의 왕래 같은 것을 보려고 하였으니, 어찌 사람을 크게 그르쳐서 선학(禪學)에 빠져 들어 가게 하지 않겠는가. 이는 참으로 ‘이포새의 기미[伊蒲寒氣味]’라는 것이다. 나정암이 왕양명에게 답한 편지에서 이 설의 그릇됨을 자세하게 말하였다. ○나정암이 왕양명에게 답한 편지에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초려(草廬)의 만년 소견이 바른지 어떤지는 참으로 쉽게 알 수 없다. 우리 유학에서 ‘밝고 밝음[昭昭]’이라고 하는 것은 석씨(釋氏)도 역시 늘 그렇게 말한다. 털끝만 한 차이가 천 리로 벌어진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초려의 소견이 과연 우리 유학에서 말한 ‘밝고 밝음[昭昭]’에 부합한 것이 40년 간 문의를 연구한 효과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아마도 이른바 ‘참되게 쌓고 오랫동안 실천해서 환하게 관통한’ 자일 것이다. 비록 명도 선생(明道先生)의 고명(高明)하고 순수(純粹)함으로도 또 일찍이 염계(濂溪)에게 직접 배워서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아취를 발휘하였으며, 또한 반드시 돌이켜 육경(六經)에서 구하여 터득하였다. 다만 그 타고난 자질이 날 때부터 아는 자[生而知之]에 가까워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으니, 다른 사람이 연구에 힘을 다 쏟은 것과는 다를 뿐이다. 또 어찌 지난날 문의를 연구한 것을 그르게 여기고 학문의 구덩이에 떨어진 것을 후회할 수 있었겠는가. 무릇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어버리고[得魚忘筌],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잊어버리는 것은 괜찮지만, 물고기와 토끼를 잡은 것을 자랑하면서 도리어 뒤늦게 통발과 올가미를 탓하면서 일만 많았다고 한다면 옳겠는가. 그러나 세상에 다만 연구만 일삼으면서 도리어 요약을 말할 줄 모르는 자는 이 말에서 깊은 경계가 없을 수 없다. 또한 초려가 이미 이른바 ‘밝고 밝음[昭昭]’이란 것을 보고서 또 잠시도 끊어지지 않으려는 것으로 덕성을 공경히 받드는 도리로 삼았으니, 그 또한 그럴 듯하다. 그러나 아래 문장에 ‘이에 능하지 못함이 있으면 남에게 묻고 자신에게 배워서 반드시 이르고자 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잠시라도 끊어졌는지 여부는 어찌 남들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또 이미 덕성을 공경히 받드는 도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 번이라도 끊어진 적이 있다면 이어서 해야 할 뿐이다. 또 어찌 능하지 못하다고 하여 별도의 학문이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도를 보기가 참으로 어렵지만 도를 체득하기는 더욱 어렵고, 이(理)는 참으로 쉽게 밝힐 수 없지만 학문도 참으로 강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견에 안주하여 마침내 매우 지극하다고 여겨서는 안 될 듯하다.” -
후론(後論)
《학부통변(學蔀通辨)》 - 《주역》에 ‘띳집[蔀屋]’이란 말이 있는데 해와 달이 보이지 않는 지붕이다. 대개 학문은 마치 컴컴한 집과 같아서 말로 그 혼미함을 환하게 변별해야 한다고 해서 책 이름으로 삼았다. -
대박두 호규환(大拍頭胡呌喚) - 선생이 이중구(李仲久)에게 답한 편지에 “박(拍)은 음악을 연주하는 박자이고, 두(頭)는 사두(詞頭)ㆍ가두(歌頭)ㆍ화두(話頭) 따위와 같으니, 박자의 첫머리이다. 호(胡)는 크게 어지러운 것이다. 육자정이 평소 자신의 학문을 자부하여 사람들과 논쟁할 때 반드시 기세가 등등하고 큰 소리로 말해서 꺼리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말 머리를 크게 떠벌리고 시끄럽고 어지럽게 부르짖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이포새(伊蒲塞) - 또 이중구에게 답한 편지에 “이포새는 불가의 음식이다. 《후한서》 〈초왕영전(楚王英傳)〉에 나온다.”라고 하였다. -
[주-D001] 태사공(太史公)의 우마주(牛馬走) :
태사공은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을 말한다. 사마천이 자기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보낸 답서의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2] 월상(越裳) :
옛날 월남(越南) 남부 지방에 있었던 나라 이름이다.
[주-D003] 지(地) …… 한다 :
〈심경부주서〉에 “마음을 성현의 경전에 두어서 몸을 검속하여 욕심을 막고 익숙히 반복하는 터전으로 삼기를 꾀할 뿐이다.[圖寘心于聖經賢傳之中, 爲檢防熟複之地云爾.]”라고 한 부분에서 도(圖) 자가 지(地) 자 뒤에 해석되는 것을 말한다.
[주-D004] 나머지는 원집(原集)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예기》에서는 이것을 말하면서 호요(好樂)로써 첫머리로 삼았고, 《대학》에서는 이것을 말하면서 분치(忿懥)로써 우선으로 삼았으며, 《중용》의 수장과 정자의 〈호학론(好學論)〉은 모두 희로(喜怒)로써 우선으로 삼았으니 이 네 가지가 칠정 중에서 먼저 발용(發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주-D005] 중용의 …… 소속시켰으니 :
《중용장구》 27장에 “故君子, 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라는 부분을 주자가 존심(存心)과 치지(致知)에 나누어 소속시킨 것을 말한다.
[주-D006] 정임은(程林隱)의 심학도(心學圖) :
임은은 주희의 제자 정복(程復)의 호이다. 〈심학도〉는 그가 양심(良心)과 본심(本心)에서 출발하여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과 칠십이종심(七十而從心)까지의 공부하는 과정을 그린 도표이다.
[주-D007] 일지(一指) …… 필변(必辨) :
〈심경찬〉에 “한 손가락과 어깨와 등 중에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한가. 한 그릇 밥과 만종에 대해서도 사양하고 받음을 반드시 분별해야 하네.[一指肩背, 孰貴. 孰賤. 簞食萬鍾, 辭受必辨.]”라고 한 것이 무슨 의지인지 묻자 이황이 “대체(大體)와 소체(小體)에서 귀천(貴賤)을 구분하고, 단사(簞食)와 만종(萬鐘)에서 예의를 변별하는 것은 모두 인심과 도심의 일에서 정일(精一)함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답한 것이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나온다.
[주-D008] 거두고 흩음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거두는 것은 거두어 되돌아온다는 말로, 마음속에 나아가 말한 것이지 방심을 거두는 공부를 이른 것이 아니다. 흩는 것은 놓아서 흩어버리는 것을 말하니 만사와 만물에서 보는 것을 말한 것이요 확충하는 공부를 이른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주-D009] 사서장도(四書章圖) :
중국 원(元)나라 때의 학자인 정복심(程復心)이 주자(朱子)의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참고하여 도식(圖式)을 만들고 자기의 뜻을 덧붙여 만든 책으로, 22권이다.
[주-D010] 차례로써 …… 있겠는가 :
〈심학도〉는 양심(良心)과 본심(本心)에서 출발하여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과 칠십이종심(七十而從心)까지의 공부하는 과정을 그린 도표이다. ‘구방심(求放心)’이 ‘심재(心在)’ 다음의 차례에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11] 조 상사에게 답한 편지 :
《퇴계집》 권23에 실려 있는 〈조사경에게 답하다[答趙士敬]〉라는 편지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이황은 〈심학도〉의 저자를 진덕수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가, 정복심의 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주-D012] 보광(輔廣) :
송(宋)나라 때의 학자로, 흔히 경원 보씨(慶源輔氏)로 불린다. 자는 한경(漢卿), 호는 잠암(潛菴)인데, 당시 사람들은 부이(傅貽)선생이라 일컬었다. 여조겸과 주자에게 사사(師事)하였다. 저서에 《사서찬소(四書纂疏)》, 《육경집해(六經集解)》 등이 있다.
[주-D013] 황간(黃榦) :
1152~1221. 송(宋)나라 때의 학자로, 주희(朱熹)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자는 직경(直卿)이며, 흔히 면재 황씨(勉齋黃氏)로 불린다. 지안경부(知安慶府) 등을 지냈으며 양담계(陽潭溪)에서 담계정사(潭溪精舍)를 세워 저술활동과 후진교육에 힘썼다.
[주-D014] 유중엄(柳仲淹) :
1538~1571.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경문(景文)ㆍ희범(希范), 호는 파산(巴山)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저서로 《파산일고》가 전한다.
[주-D015] 인심도심(人心道心) :
《간재집 속집》 권3 〈중용질의〉에 인심이 도심 앞에 있는 이유에 대해 주고 받은 내용이 실려 있다. 이에 대해 이황은 인심이 일상생활 속에 먼저 드러나기 때문에 인심이 앞에 있다고 하였다.
[주-D016] 허령과 지각 :
《간재집 속집》 권3 〈중용질의〉에 “허령(虛靈)은 마음의 본체이고 지각(知覺)은 마음의 작용이다. 이(理)가 기(氣)와 합해지기 때문에 허령과 지각의 오묘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직 이(理)이기 때문에 텅 비고[虛] 오직 기(氣)이기 때문에 영묘[靈]하니, 허(虛)라는 것은 마음의 고요함이고 영(靈)이라는 것은 마음의 감응이다. 고요하면서 감응할 수 있기 때문에 지각의 오묘함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17] 형기의 사사로움 :
《간재집 속집》 권3 〈중용질의〉에 같은 조목이 실려 있는데, 형기(形氣)에서 형 자를 앞에 놓은 것에 대한 설명으로 “형(形)은 형질(形質)이고 기(氣)는 세상에서 말하는 기운(氣運)이니, 형질은 음(陰)이고 기운은 양(陽)이다. 이는 드러나는 것을 먼저 말하고 은미한 것을 뒤에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18] 소이(所以) …… 부동(不同) :
《간재집 속집》 권3 〈중용질의〉에 “지각을 한 것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所以爲知覺者不同]”란 표제어로 제시되어 있는데 도심과 인심으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 “하나의 마음이지만 지각이 이목(耳目)을 따라가면 곧 인심(人心)이고, 지각이 의리(義理)를 따라가면 곧 도심(道心)이다. 도심은 의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인심은 몸뚱이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019] 인욕의 사사로움 :
《간재집 속집》 권3 〈중용질의〉에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키면 도심에서 어긋나지 않아 인욕으로 흐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주-D020] 양중립(楊中立) :
양시(楊時, 1053~1135)로, 중립은 그의 자이다. 호는 구산(龜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정호와 정이의 문인이다. 저서에 《구산어록(龜山語錄)》 등이 있다.
[주-D021] 후사성(侯師聖) :
후중량(侯仲良)으로, 사성은 그의 자이다. 호는 형문(荊門)이다. 정호와 정이, 호안국에게 배웠다. 저술로 《논어설(論語說)》, 《후자아언(侯子雅言)》 등이 있다.
[주-D022] 도심(道心) …… 지간(之間) :
〈인심도심장〉의 부주에 주자가 “도심은 인심의 사이에 섞여 나와서 미묘하여 보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정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킨 뒤에야 중을 잡을 수 있다.[道心, 雜出於人心之間, 微而難見, 故必須精之一之, 而後中可執.]”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023] 조사경에게 답하다 :
《퇴계집(退溪集)》 권23에 실려 있다.
[주-D024] 정직하지 …… 것이다 :
《논어》 〈옹야(雍也)〉에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정직함이다. 정직하지 않으면서 생존하는 것은 요행으로 죽음을 면한 것이다.[人之生也, 直. 罔之生也, 幸而免.]”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주-D025] 도심이 주재한다[道心主宰] :
〈인심도심장〉에 “성인은 완전히 도심이 주재하므로 인심도 저절로 위태롭지 않지만 만약 인심뿐이라면 또한 위태롭다.[聖人, 全是道心主宰, 故其人心, 自是不危, 若只是人心, 也危.]”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026] 본래 …… 안다 :
왕백(王柏)이 〈인심도심도설(人心道心圖說)〉에서 “원(原) 자는 밖에서 안을 미루어 그 본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으므로 미(微)라하고, 생(生) 자는 사물에 감응하여 동함에 그 본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위(危)라 한다.”고 한 것과 “정(正) 자와 사(私) 자는 모두 밖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인심을 인욕이라 이룰 수 없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27] 조사경에게 답한 편지 :
《퇴계집》 권23에 실려 있다.
[주-D028] 옛날 심(心) 자이다 :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에서 도심과 인심을 표현하기 위한 도식에 나오는 모양이다.
[주-D029] 이(貳)는 의(疑)이다 :
《시경》 〈대명(大明)〉의 “상제가 그대에게 임하셨으니 그대의 마음에 의심치 말라[上帝臨女, 無貳爾心.]”라고 한 것에 대한 주석이다.
[주-D030] 도인사는 …… 않다 :
《시경》 〈도인사(都人士)〉의 〈모시서(毛詩序)〉에 “〈도인사〉는 주나라 사람들이 윗사람의 의복이 일정하지 못함을 풍자한 시이다. 옛날에 군장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의복이 변치 않고 차분하며 떳떳함이 있어 백성을 통일시켰다.[都人士, 周人刺衣服無常也. 古者長民, 衣服不貳, 從容有常, 以齊其民.]”라 한데 나오는 말이다.
[주-D031]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
중국 송(宋)나라의 유학자인 주희(朱熹)가 편찬한 책으로, 14권이다. 주돈이(周敦頤) 이하 정호(程顥)ㆍ정이(程頤)의 교유 및 그의 제자(弟子) 46인의 언행을 수록했다.
[주-D032] 청묘(淸廟) :
《시경》 주송(周頌)의 편명으로, 주공이 제후를 거느리고 문왕을 제사할 때 쓴 악가(樂歌)이다.
[주-D033] 마융(馬融) :
79~166. 후한(後漢)의 문신ㆍ학자. 훈고학(訓詁學)의 시조로, 노식(盧植)ㆍ정현(鄭玄) 등의 걸출한 제자를 배출했다. 《삼전이동설(三傳異同說)》을 저술하고, 《효경(孝經)》 등 많은 책을 주석했다.
[주-D034] 원소(袁紹) :
?~202. 후한(後漢) 때의 무신으로, 영제(靈帝)가 죽자 환관들을 일소하려다가 실패한 뒤 동탁(董卓)을 낙양(洛陽)에서 몰아내고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으나, 조조(曹操)와 결전을 벌였다가 대패하고 병사했다.
[주-D035] 일통지(一統志) :
곧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로, 중국 명(明)나라 때 이현(李賢) 등이 황제의 칙령으로 편찬한 지리서(地理書)로, 90권이다. 《환우통지(寰宇通志)》를 요약하여 만들었다.
[주-D036] 주(周)나라의 …… 뿐이다 :
《퇴계집》 권20 〈황중거의 문목에 답하다[答黃仲擧問目]〉에 나오는 내용이다. 황중거는 황준량(黃俊良, 1517~1563)으로, 중거는 그의 자이다. 호는 금계(錦溪)이고, 이황의 문인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단양 군수(丹陽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금계집(錦溪集)》이 있다.
[주-D037] 한사존성장(閑邪存誠章) :
《주역》 권20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보인다.
[주-D038] 논어의 …… 한다 :
《논어》 〈태백(泰伯)〉의 ‘동용모 사원포만(動容貌斯遠暴慢)’이란 대목에 대해, 정자는 “용모를 바르게 움직이면 태만함이 저절로 멀어진다.”라고 해석하여 위의 ‘동용모(動容貌)’ 세 자를 공부로 보았고, 아래 ‘사원포만(斯遠暴慢)’ 네 자는 공부의 효과로 보았다. 주자는 “용모를 움직일 때에 태만함을 멀리 해야 한다.”라고 해석하여 전체를 공부로 보았다.
[주-D039] 단용(但用) …… 타입래(他入來) :
〈한사존성장〉에 주자가 “평소의 말을 이미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실을 이미 삼가고는 다만 사특함을 막아 저것이 들어올까 두려워해야 한다.[常言旣信, 常行旣謹, 但用閑邪, 怕他入來.]”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040] 네가 …… 한다 :
《시경》 〈억(抑)〉 시의 내용으로 ‘시이우군자장(視爾友君子章)’에 보인다.
[주-D041] 사특함이 …… 일이다 :
《심경부주》 〈한사존성장(閑邪存誠章)〉에 실린 오징의 말이다.
[주-D042] 사물이 …… 한다 :
《심경부주》 〈한사존성장(閑邪存誠章)〉에 실린 오징의 말이다.
[주-D043] 시경 주석 :
《시경》 위풍(衛風) 〈맹(氓)〉의 주석이다.
[주-D044] 서경 주석 :
《서경》 주서(周書) 〈대고(大誥)〉의 주석이다.
[주-D045] 다음에 …… 듯하다 :
《심경부주》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易坤之六二曰’로 된 부분에 ‘六二’ 다음에 ‘子’를 넣어 ‘易坤之六二子曰’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D046] 애쓰지 …… 행한다 :
《중용장구》 제20장에 공자가 “성은 하늘의 도요, 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성의 경지에 이르면 굳이 애쓰지 않고도 중도를 행하며 생각하지 않고도 터득하여 자연스럽게 도에 합치되니, 이런 분이 성인이다. 성하려고 노력하는 자는 선을 택해서 굳게 잡고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라는 데 나오는 말이다.
[주-D047] 진기(盡其) …… 직야(直也) :
〈경이직내장〉에 양시가 “성심을 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 이른바 직이란 것이다.[盡其誠心而無僞焉, 所謂直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48] 담장에 …… 만든다 :
황진(黃溍)이 지은 〈태극부〉에 나오는 말로, 《성리대전》 권79에 실려 있다.
[주-D049]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 :
《맹자》 〈공손추 상〉에 “반드시 일을 일삼되 미리 기필치 말고서 마음으로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050] 직상(直上) …… 자차(自此) :
〈경이직내장〉에 “경과 의를 서로 잡아 지키면 곧바로 올라가 천덕을 통달함이 이로부터 시작된다.[經義夾持, 直上達天德, 自此.]”이라 한 것을 가리킨다.
[주-D051] 직상(直上)은 …… 이른다 :
《회암집(晦庵集)》 권58에 “직상은 물욕에 얽매어 갈팡질팡하지 않는 것을 이른다.[直上者, 不爲物慾所累而倒東來西之謂也.]”라고 하였다.
[주-D052] 요방(要放) …… 부득(不得) :
〈경이직내장〉에 “두 가지가 서로 잡아 지켜 잠시 놓아두려 해도 될 수 없다.[二者相夾持, 要放下霎然不得.]”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53] 설지(說只) …… 여차(如此) :
〈경이직내장〉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모름지기 스스로 가서 공부를 하여야 비로소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說, 只恁地說, 須自去下工夫, 方見得是如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54] 여금설득(如今說得) :
〈경이직내장〉에 “지금에는 말은 진실로 많이 하나 다만 일찍이 자기 몸을 가지고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다.[如今說得儘多, 只是不曾將身己做.]”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55] 위재(韋齋) :
이름은 송(松)이고, 주자의 아버지이다.
[주-D056] 유자우(劉子羽) :
중국 송(宋)나라의 문신ㆍ학자. 정강지변(靖康之變) 때 자결한 유갑(劉韐)의 아들로, 진강지부(鎭江知府)ㆍ참의사(參議事) 등을 지냈고, 주희(朱熹)의 스승이다.
[주-D057] 합호(合乎) …… 지론(之論) :
〈경이직내장〉에 “또 주돈이의 태극론에 부합함이 있었다. 그런 뒤에야 천하의 이치가 유명과 거세, 원근과 천심이 하나로 꿰지지 않음이 없음을 알았다.[又有合乎周子太極之論, 然後知天下之理幽明巨細遠近淺深, 無不貫乎一者.]”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58] 범충(范沖) :
1067~1142. 송(宋)나라 철종(哲宗)~고종(高宗) 때의 문신. 고종(高宗) 때 사관(史官)으로 《신종실록(神宗實錄)》, 《고이(考異)》 등을 편찬했다. 《자치통감(資治通鑑)》 편찬에 참여한 범조우(范祖禹)의 아들이다.
[주-D059] 여대충(呂大忠) :
송(宋)나라의 문신ㆍ학자. 여대방(呂大防)의 형으로, 하북 전운판관(河北轉運判官) 등을 지내고,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지었다.
[주-D060] 그는 …… 않았다 :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권9 소학사(蘇學士) 조에 보인다.
[주-D061] 참동계(參同契) :
한(漢)나라 위백양(魏伯陽)이 지은 책 이름인데, 그 내용은 바로 《주역》의 효상(爻象)을 빌려다가 도가(道家)의 연단양생법(鍊丹養生法)을 논한 것이다.
[주-D062] 3년 …… 있으랴 :
주자의 〈서재에서 지낼 때 감흥[齋居感興]〉 시 20수 중 열다섯 번째 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D063] 장생불사하여 …… 한다 :
주자의 《초사집주(楚辭集註)》 〈원유(遠遊)〉의 서문에 보인다.
[주-D064] 예(禮) 자에 …… 알았다 :
《주자대전》 권43 〈임택지에게 답하다[答林擇之]〉에 나오는 말이다.
[주-D065] 유 찰원(游察院)ㆍ양 문정(楊文靖) :
찰원(察院) 벼슬을 지낸 유작(游酢)과 시호가 문정인 양시(楊時)로, 정자의 고제이다.
[주-D066] 공손연(公孫淵) :
?~238.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문신으로, 요동 태수(遼東太守)가 되었다가 자립하여 연(燕)나라를 세우고 왕을 자칭하였으나, 위나라 사마의(司馬懿)에 의해 토벌되어 멸망했다.
[주-D067] 손권(孫權) :
182~252. 삼국 시대 오(吳)나라 제1대 황제(재위 222~252)로, 형 손책(孫策)의 뒤를 이어 강동(江東)을 차지하고, 유비(劉備)와 동맹하여 조조(曹操)를 적벽(赤壁)에서 무찔렀다.
[주-D068] 재(在) 자의 …… 한다 :
《심경부주》에 실린 “在學者警省克治之力尤不可以不勉也”라 한 부분의 해석을 이황은 재(在) 자를 역(力) 자 다음에 새겨서 “배우는 자의 반성하고 다스리는 공부에 있어서 더욱 힘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주-D069] 삼성(三省) :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논어》 〈학이〉에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반성하니, ‘다른 사람과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했던가. 벗과 사귀면서 미덥지 못했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하였다.
[주-D070] 생로병사의 …… 뿐이네 :
《동파전집(東坡全集)》 권81 〈답왕정국(答王定國) 3수〉 중에 두 번째 시에 보이는데, 그 책에는 ‘符到便行’의 ‘便’이 ‘奉’으로 되어 있다
[주-D071] 자기(自欺) :
《대학장구》 전6장의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에 보인다.
[주-D072] 사유(四有) :
《대학장구》 전7장에서 말하는 마음의 분치(忿懥)ㆍ공구(恐懼)ㆍ호요(好樂)ㆍ우환(憂患)이다. 이 네 가지가 있으면 정심(正心)을 할 수 없다.
[주-D073] 오벽(五僻) :
사람이 가지고 있는 5가지 편벽된 점을 말한다. 《대학》 전8장에 말한, 친절과 사랑[親愛], 천시와 증오[賤惡], 두려움과 공경[畏敬], 슬픔과 동정[哀矜], 오만함과 게으름[敖惰] 등을 가리킨다.
[주-D074] 의(意) …… 아(我) :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는 네 가지를 끊어 없앴으니 사사로운 뜻이 없고, 기필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고, 아집이 없었다.[子絶四, 毋意毋必毋固毋我.]”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075] 교제를 …… 것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지금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갑자기 보면, 모두 두렵고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려는 것이 아니고, 향당의 벗들에게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고,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오명이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隠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076] 왕빈(王蘋) :
1082~1153. 자는 신백(信伯)이고, 호는 진택(震澤)이다. 정이천과 양시(楊時)를 사사했으며 벼슬은 비서성 정자(秘書省正字)와 저작랑(著作郞) 등을 역임하였다. 정이천의 이학(理學)을 계승하였지만, 심학(心學)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심학의 발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주-D077] 장경부(張敬夫)가 …… 있다 :
《주자어류》 권41을 보면, 장식(張栻)이 〈극기재명(克己齋銘)〉을 지으면서 양웅이 말한 “자신의 사욕을 이김을 극이라 한다[勝己之私謂克]”는 말을 싣지 않았는데 그 명을 학궁에서 석각되자 주자가 아쉽게 생각한 내용이 있다.
[주-D078] 호원(胡瑗) :
송(宋)나라의 학자로, 자(字)는 익지(翼之), 호(號)는 안정(安定), 시호(諡號)는 문소(文昭)이다. 호주 교수(湖州敎授)가 되어 경의재(經義齋)와 치사재(治事齋)를 설립하고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태학(太學)에 들어가서도 다년간 인재 양성에 정성을 쏟았다.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냈다.
[주-D079] 설문해자(說文解字) :
허신(許愼)이 지은 중국 최초의 자서(字書)로 30권이다. 소전(小篆) 9353자와 고문(古文)ㆍ주문(籒文) 등 1163자를 540부로 분류하여 육서(六書)의 의의(意義)를 추구했다.
[주-D080] 종고(宗杲) :
송(宋) 항주(杭州) 경산(徑山)의 불일선사(佛日禪師)로, 자는 대혜(大慧), 호는 묘희(妙喜)이다. 효종(孝宗) 융흥(隆興) 원년 8월 10일에 75세로 경단 명월당(明月堂)에서 입적하였다. 시(諡)는 보각(普覺), 탑(塔)은 보광(寶光)이다. 《어록(語錄)》 30권이 있어 대장(大藏)에 칙입(勑入)하였다.
[주-D081] 넷이 …… 물리쳤고 :
양진이 동래 태수로 부임하던 도중 창읍(昌邑)에 이르렀을 때, 일찍이 양진에게 천거를 받았던 창읍령 왕밀(王密)이 밤중에 양진을 찾아와서 황금 10근을 바쳤다. 이에 양진이 말하기를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나를 모르는가.” 하고 사양하니, 왕밀이 “밤이라 아무도 모릅니다.” 하였다. 양진이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알거니, 어찌 아는 이가 없다고 하는가.[天知神知我知子知 何謂無知]”라고 하고 황금을 물리쳤다고 한다. 《後漢書 卷54 楊震列傳》
[주-D082] 소씨(蘇氏)와 양씨(楊氏) :
소병(蘇昞)과 양시(楊時)를 가리킨다.
[주-D083] 채경(蔡京) :
송나라 휘종(徽宗) 때의 문신으로, 자는 원장(元長)이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을 부활시키는 등 국정을 장악하고 태사(太師)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네 차례 파출되었다가 네 차례 국정을 장악한 인물로, 후에 정강(靖康)의 변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주-D084] 그의 …… 같다 :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01에 보인다.
[주-D085] 나종언(羅從彦) :
1072~1135. 자는 중소(仲素), 호는 예장(豫章), 시호는 문질(文質)이며, 검남(劍南) 사람이다. 정이(程頤)와 양시(楊時)를 사사하여 그 학문을 이동(李侗)에게 전하였고 이동은 다시 주희에게 전하여 정이로부터 주희에 이르는 학맥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 양시, 이동과 함께 ‘검남 삼선생(劍南三先生)’으로 불렸다.
[주-D086] 반공숙(潘恭叔) :
송(宋)나라의 문신이자 학자인 반우공(潘友恭)으로, 반우단(潘友端)의 아우이다. 주희(朱熹)의 문인으로, 강회선무사사간관(江淮宣撫使司干官)을 지냈다.
[주-D087] 황돈(篁墩) :
황돈은 명(明)나라 정민정(程敏政)의 별호이다. 자는 극근(克勤), 휴령(休寧) 사람이다. 육구연(陸九淵)의 학파(學派)로,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에 부주(附註)를 내었고 《도일편(道一編)》 등을 편찬하였다. 특히 그의 《심경부주》는 조선 중기 도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주희(朱熹)와 육구연의 학설을 절충한 것에 대해서는 이황(李滉)이 《심경후론(心經後論)》을 써서 비판하였다.
[주-D088] 복자천(宓子賤) :
B.C.521~?. 복부제(宓不齊)로, 중국 춘추전국 시대 노(魯)나라의 학자이다. 공자(孔子)의 제자로, 선보(單父)의 읍재(邑宰)를 지냈으며, 공자로부터 군자(君子)라는 칭찬을 받았다. 선보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적에 마루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없이 거문고만 연주했는데도 잘 다스려지며 교화가 이루어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주-D089] 고영(顧榮) :
?~312. 서진(西晉) 오군(吳郡) 사람으로 자는 언광(彦光)이고, 고옹(顧雍)의 손자이다. 약관(弱冠)에 오(吳)나라에 벼슬하였으나 오나라가 망하자 육기(陸機), 육운(陸雲)과 함께 낙양으로 들어가서 삼준(三俊)으로 불렸다.
[주-D090] 가후(賈后)의 난리 :
진 혜제(晉惠帝) 영강(永康) 원년(300)에 가후(賈后)가 민회태자 휼(遹)을 폐출시킨 것을 말한다.
[주-D091] 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 :
《주자어류》의 편명이다. 과제(果齋)는 이방자(李方子)의 호이다.
[주-D092] 황옥(黃屋)과 좌독(左纛) :
황제의 수레를 꾸미는 물건으로 제왕의 수레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황옥은 노란 비단으로 만든 수레의 덮개이고, 좌독은 검정색 들소 꼬리로 만든 깃발로 왼쪽 겉말 멍에 위에 매단 것이다.
[주-D093] 육가(陸賈) :
중국 전한(前漢)의 학자로 태중대부(太中大夫)를 지냈으며, 변설(辯說)에 능하여 고조(高祖)의 중국 통일에 크게 공헌했다. 시서(詩書)를 좋아하고 문무병용(文武倂用)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주-D094] 지언(知言) :
송나라 호굉(胡宏, 1106~1161)의 저서로,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아지언(我知言)’이라 한 것의 지언(知言)을 제목으로 하여 심성(心性)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주-D095] 성기도(誠幾圖) :
주자가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기(幾)에서 선과 악이 나누어진다.[幾善惡]”라는 내용에 주를 달면서 그림을 그리고 붙인 명칭이다.
[주-D096] 김경인(金景仁) :
김사원(金士元, 1539~1601)으로, 경인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개인 재산을 털어 빈민을 구휼하여 지방민의 추앙을 받았고, 후산사(后山祠)에 제향되었다.
[주-D097] 《남악창수집(南嶽唱酬集)》 :
송나라 주희(朱熹), 장식(張栻), 임용중(林用中)이 공동으로 편찬한 시집이다. 남악은 중국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형산(衡山)으로 호남성(湖南省)에 있다. 1167년 11월에 주희, 장식, 임용중 등 세 사람이 4, 5일 동안 형산을 유람하는 도중에 보고 느낀 감회를 읊은 시가 140여 수 있는데, 나중에 이것을 모아 책을 엮은 것이다.
[주-D098] 주순필(周舜弼) :
송(宋)의 학자 주모(周謨, 1141~1202)로, 순필은 그의 자이다. 주희(朱熹)의 문인(門人)으로, 효우(孝友)가 깊었고, 상례를 치르는 데 고례(古禮)를 써 많은 사람들이 본받았다.
[주-D099] 사마상여(司馬相如) :
B.C.179~B.C.117. 중국 한(漢)나라의 문신ㆍ문인. 중랑장(中郞將)ㆍ효문원 영(孝文園令) 등을 지냈고, 특히 사부(辭賦)에 뛰어나 〈자허부(子虛賦)〉, 〈상림부(上林賦)〉 등을 지었다.
[주-D100] 부릉지행(涪陵之行) :
정이천이 부릉으로 유배간 것을 말한다. 배를 타고 염예퇴를 지나면서 배가 전복될 정도로 파도가 쳐 모두 벌벌 떨고 있을 때 정이천은 태연하게 동요하지 않았는데, 강언덕에서 나무하던 사람이 큰 소리로 묻기를 “목숨을 버릴려고 이러한 것인가. 도리를 통달해서 이러한 것인가.[舍去如斯 達去如斯]” 하자 정이천이 답하고자 하였으나 배가 이미 떠났다는 말이 《심경부주》 〈정심장〉에 실려 있다. 이 일에 대한 기록이 책마다 차이가 있고, 달(達) 자와 사(舍) 자의 의미에 대해 의견이 차이가 있는데 아래는 이에 대해 논한 것이다.
[주-D101] 문견록(聞見錄) :
송(宋)나라의 문신ㆍ학자인 소백온(邵伯溫)의 저서로, 20권이다. 소흥(紹興) 연간 이전까지의 송나라 왕조의 여러 가지 일을 기록했다.
[주-D102] 학림옥로(鶴林玉露) :
송(宋)나라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수필집으로 주자(朱子)ㆍ장식(張栻) 등의 말을 인용하여 고평(考評)을 가하였다. 모두 16권이다.
[주-D103] 도를 …… 사(舍)이다 :
《논어》 〈이인〉 8장에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 可矣.]”라고 한 것 가지고 정이천이 배가 전복될 위기에도 태연하게 처신했던 일을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다.
[주-D104] 《대학장구》에서는 …… 이유이다 :
《퇴계집》 권23 〈조사경에게 보내다[與趙士敬]〉에 보인다. 삼불(三不)은 마음이 보존되지 않아서 생기는 병통으로 《대학장구》 전7장에 “마음이 그곳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라고 한 것을 가리키고, 사유(四有)는 마음이 있어서 생기는 병통으로 《대학장구》 전7장에 말한 마음의 분치(忿懥)ㆍ공구(恐懼)ㆍ호요(好樂)ㆍ우환(憂患)을 가리킨다.
[주-D105] 논어에 …… 풀이하였다 :
《논어》 〈학이〉에 자공(子貢)이 “선생님께서는 온화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손함으로써 얻으셨다.[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라고 한 집주에 “온은 온화하고 두터움이요, 양은 편안하면서 곧음이다.[溫和厚也, 良易直也.]”라고 하였다.
[주-D106] 원집(原集)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덕휘가 안에서 움직인다.[德輝動於內]’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위에서는 단지 백성이 다투지 않고 태만하지 않을 뿐이니 그 효과가 얕은 것을 말한 것이고,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잘 듣고 잘 따르지 않음이 없으니 그 효과가 더욱 깊고 더욱 원대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07] 절문(切問)에서 중의(中矣)까지 :
〈부주〉에 정자(程子)가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에 있다.[切問而近思, 則仁在其中矣.]”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08] 자하(子夏)의 말 :
《논어》 〈자장(子張)〉에, 자하가 “배움을 널리 하고 뜻을 돈독히 하며 묻기를 간절히 하고 생각을 가까이 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주-D109] 언충(言忠)에서 후행(後行)까지 :
〈부주〉에 “말일 충신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비록 자지가 사는 고향마을이라도 행해지겠는가. 서 있으면 이것이 앞에서 행해짐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이것이 멍에에 의지할 때에 보여야 하니, 그런 뒤에야 행해진다.[言忠信, 行篤敬, 雖州里, 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10] 자장(子張)이 …… 말이다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자장(子張)이 행(行)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을 충심으로 신의 있게 하고 행동을 독실하고 공손하게 한다면 비록 오랑캐 나라에 간다 할지라도 행해질 수 있겠지만, 말을 그렇게 하지 못하고 행동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비록 가까운 고장에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행해질 수 있겠는가. 일어서면 그것이 앞에 있어 볼 수 있고, 수레에 있으면 그것이 멍에에 기대어 있어 볼 수 있어야 행해질 수 있다.’라 하였다.[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라는 내용이 있다.
[주-D111] 명득진(明得盡) :
〈위령공〉 5장의 집주에 “자질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를 다한다.[質美者, 明得盡.]”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112] 혼화각(渾化却) :
〈위령공〉 5장의 집주에 “찌꺼기가 다 없어져서 천지와 더불어 동체가 될 수 있다.[査滓便渾化却, 與天地同體.]”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113] 〈논어질의〉에 보인다 :
《간재집 속집》 권1 〈논어질의〉에 ‘명득진(明得盡)’에 대해 “명(明)은 지혜[知]에 속하니, 지혜가 밝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혼화각(渾化却)’에 대해 “찌꺼기가 완전히 변화하여 없어진다는 말이다. 찌꺼기가 완전히 변화하여 없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을 실천한 효과이다. 각(却) 자는 어조사이니, 세속에서 ‘각여천지(却與天地)’로 읽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주-D114] 원우(元祐) :
송(宋)나라 철종의 연호이며, 1086~1094년에 해당한다.
[주-D115]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
주희(朱熹)가 1173년에 지은 책으로, 모두 14권으로 되어 있으며, 주돈이(周惇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및 그들의 제자 46명의 언행을 수록한 책이다.
[주-D116] 이함형(李咸亨) :
1550~1577.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평숙(平淑), 호는 산천재(山天齋)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고봉 기대승 문하에서 글을 배우고 처가(妻家)인 순천에 우거하던 1569년 5월에 도산서당 농운정사에 들어가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퇴계 선생으로부터 “그 사람이 깨달음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학문을 지향함에 공통점이 있어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주-D117] 입을 …… 예절이지 :
《예기》 〈곡례(曲禮)〉에 “어른이 함께 손을 잡아 이끌어 주면 두 손으로 어른의 손을 받들고, 어른이 칼을 차듯이 허리를 굽혀 입가에 대고 몸을 기울여 말씀하시면 입을 가리고서 대답한다.[長者與之提携, 則兩手奉長者之手, 負劍辟咡詔之, 則掩口而對.]”라고 했다.
[주-D118] 군자가 …… 않고 :
《주역》 〈건괘(乾卦) 상(象)〉에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가 이것을 본받아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119] 밤이 …… 않으니 :
《논어》 〈향당(鄕黨)〉에서 “잠잘 때에는 사지를 벌리고 죽은 몸같이 하지 않으며, 집에 계실 때는 모양을 꾸미지 않았다.[寢不尸, 居不容.]”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는 “시는 눕기를 죽은 사람과 같이하는 것이다.[尸謂偃臥似死人也]”라고 주해하였다.
[주-D120] 부지런히 …… 것 :
하늘이 쉬지 않고 운행하는 것처럼 사람도 각자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근신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 효사(爻辭)에 “군자가 종일토록 건실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저녁까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면 비록 위태로운 지경을 당할지라도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無咎.]”라는 말이 나오고, 또 상사(象辭)에 “하늘의 건실한 운행을 본받아서 군자는 스스로 힘쓰면서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는 말이 나온다.
[주-D121] 야기잠(夜氣箴) :
송나라의 진덕수(眞德秀)가 지은 것으로, 사람이 새벽에 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의 깨끗한 기운, 즉 야기를 길러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주-D122] 야매잠(夜寐箴) :
송(宋)나라의 학자인 남당(南塘) 진백(陳栢)이 지은 것으로, 자신을 깨우치려는 목적으로 지었다.
[주-D123] 손명복(孫明復) :
손복(孫復)으로, 명복은 그의 자이다. 송(宋)나라 평양인(平陽人)으로 호는 수양자(睢陽子)이다. 벼슬은 국자감 직강, 전중승(殿中丞)에 이르렀다. 호원(胡瑗)과 서로 맞지 않아 태학(太學)에 있을 때 항상 서로 피하였다. 그가 태산(泰山)에 살았으므로 그의 학파를 태산학파라 부른다. 호원의 안정학파와 더불어 송학(宋學)의 선구가 되었다. 저서에 《역설(易說)》, 《춘추존왕발미(春秋尊王發微)》, 《춘추총론(春秋總論)》, 《수양자집》, 《손명복소집(孫明復小集)》이 있다. 《宋史 卷432》
[주-D124] 석수도(石守道) :
송(宋)나라 석개(石介)로, 수도는 그의 자이다. 학문에 독실하고 성품이 강직하였다. 국자감 직강(國子監直講), 태자 중윤(太子中允)을 역임했는데 엄격하기로 유명하였다. 《宋史 卷432》
[주-D125]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에 “‘일단(一團)’이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일단(一團)은 일단(一段)이란 말과 같다. 다만 일단(一段)은 나누어 각단(各段)을 만드는 것을 말하고, 일단(一團)은 합하여 일원(一圓)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26] 부주(涪州)로 …… 때이다 :
송(宋)나라의 정이(程頤)가 권세가의 눈에 거슬려 부주로 유배 갔는데, 온갖 고초를 겪었으나 돌아올 때에는 수염과 모발이 그 전과 같았으므로 모두들 그 학문의 힘에 탄복했다고 한다.
[주-D127] 구박(拘迫)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에 “‘구박(拘迫)’이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구속하면 기체(氣體)가 피곤하고 상하여 염증을 내게 되고, 박절하면 심신이 번거로워서 편안하지 못하다. 그래서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28] 구용(九容) :
군자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모습인데, 《예기》 〈옥조(玉藻)〉에 나온다.
[주-D129] 소순(蘇洵) :
1009~1066. 중국 송(宋)나라의 문인ㆍ학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예리한 논법(論法)과 정열적인 평론(評論)으로 구양수(歐陽脩)의 인정을 받아 명성을 떨쳤으며, 아들 소식(蘇軾)ㆍ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로 일컬어진다.
[주-D130] 왕개보(王介甫) :
왕안석(王安石, 1021~1086)으로, 개보는 자이다. 중국 송(宋) 신종(神宗) 때의 문신ㆍ시인이다. 신종(神宗)에게 발탁되어 신법(新法)이라는 혁신 정책을 단행했고,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주-D131] 죄수처럼 …… 지었다 :
소순의 〈변간론〉에 “노예처럼 천한 사람의 옷을 입고 개와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고, 죄수처럼 머리를 빗지 않고 초상 당한 사람처럼 얼굴을 씻지 않고서 《시경》과 《서경》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인지상정에 맞는다는 말인가. 일을 처리하는데 인정에서 벗어난 자로 간교하고 못된 짓을 하지 않는 자는 드물다.[衣臣虜之衣, 食犬彘之食, 囚首喪面而談詩書, 此豈其情也哉. 凡事之不近人情者, 鮮不爲大姦慝.]”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32] 남곽자기(南郭子綦) :
중국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은자.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서제(庶弟)로,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그의 제자인 안성자유(顔成子游)와 문답한 내용이 유명하다.
[주-D133] 장자(莊子)에 …… 하였다 :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나온다.
[주-D134] 대학연의(大學衍義) :
송(宋)나라 이종(理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진덕수(眞德秀)가 지은 《대학(大學)》의 해설서로, 6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편마다 고현(古賢)의 언행을 인용하고 이에 고증(考證)을 첨가하여 논설했다.
[주-D135] 동회택 진씨(東匯澤陳氏) :
진호(陳澔)를 말한다. 자는 가대(可大), 호는 운장(雲莊)ㆍ북산(北山)이다. 원나라 도창(都昌) 사람이며, 대유(大猷)의 아들이다. 송나라 말에 향리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저서에 《예기집설(禮記集說)》이 있다.
[주-D136] 고요모(皐陶謨)에 나온다 :
《서경》 〈고요모(皐陶謨)〉에서 우(禹) 임금이 고요(皐陶)에게 한 말이다.
[주-D137] 말과 …… 힘들다 :
《논어》 〈학이(學而)〉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주-D138] 중산보(仲山甫) :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의 현신(賢臣)으로, 주나라의 중흥(中興)을 이룩한 인물이었으며, 동방(東方)에 성(城)을 쌓는 일을 감독하여 큰 성과를 이루었다.
[주-D139] 인하(因何)……두래(頭來) :
〈부주〉에 여여숙(呂與叔)이 말하기를 “어떤 조정의 관인이 오랫동안 백순(정호)을 보지 못했다가 만나서 이르기를 ‘백순이 그렇게 총명하면서 어찌하여 수많은 날을 그냥 보내고 끝까지 머리를 돌려 조정으로 오지를 않는가?’라고 하자, 백순이 ‘그것은 고개를 돌렸다가 잘못될까 두려워서이다.’ 하였다.[呂與叔曰, 嘗有一朝士, 久不見伯淳, 謂曰, 以伯淳如此聰明, 因何許多時, 終不肯回頭來, 伯淳答云, 蓋恐回頭錯耳.]”라고 하였다.
[주-D140] 노천(老泉) :
송(宋)나라 소순(蘇洵, 1009~1066)의 호이다. 문장에 뛰어나 그의 아들 식(軾)ㆍ철(轍)과 함께 당송 팔대가로 칭송되었으며, 노소(老蘇)라 불렸다.
[주-D141] 범방전(范滂傳) :
《후한서》 권97 〈당고열전(黨錮列傳) 범방(范滂)〉을 가리킨다. 범방(137~169)은 동한(東漢)의 정치가이다. 자는 맹박(孟博)이다. 기주(冀州)에 기근이 들어 도적 떼가 일어나자 청조사(淸詔使)로 부임하면서 천하를 맑게 할 뜻을 품었다고 한다. 부패한 관리와 환관에 대립하다 당고(黨錮)의 옥(獄)을 당하여 옥중에서 의연히 죽음을 맞이하였다.
[주-D142] 천약(天若)……천수(天瘦) :
진소유가 기생(妓生)에게 준 가사(歌辭)에 “하늘이 아신다면 하늘도 수척해질 것이니, 꽃 아래 중문과 버드나무 가의 깊은 골목에 머리를 돌릴 수 없네.[天還知道, 和天也瘦, 花下重門, 柳邊深卷, 不堪回首.]”라는 내용이 있는데, 정이천이 이 가사를 보고 하늘을 업신여긴 것이라 나무라는 내용이 〈부주〉에 실려 있다.
[주-D143] 정(鄭)나라의 …… 추방하라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나오는 말이다.
[주-D144]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
《맹자》 〈고자(告子)〉에 “눈이 색에 있어서 똑같이 아름답게 여김이 있다.[目之於色也, 有同美焉.]”라고 한 것에 말한다.
[주-D145] 진회(秦檜) :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의 재상으로, 금(金)나라와의 화의(和議)를 주장하며 당시의 충신(忠臣)과 양장(良將)들을 거의 모두 죽이고 축출하였다.
[주-D146] 호굉(胡宏) :
1106~1161. 호안국(胡安國)의 아들이다. 남송 호상학파(湖湘學派)의 개창자다. 어린 시절 양시(楊時)와 후중량(侯仲良)에게 배웠으며, 아버지의 이학사상(理學思想)을 계승하여 도학 진흥을 평생의 임무로 여겼다.
[주-D147] 반표(班彪) :
3~54. 중국 후한(後漢) 때의 문신ㆍ학자. 《한서(漢書)》를 쓰기 시작하여 아들 반고(班固)가 작업을 잇고 딸 반소(班昭)가 저술을 완성했다.
[주-D148] 인개유불인인지심장(人皆有不忍人之心章)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 6장을 말한다.
[주-D149]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주자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라고 하였고, 또 ‘인(仁)은 삼덕(三德)을 포괄하고, 측은(惻隱)은 삼단(三端)을 통솔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들어서 모두 거론하였다. 이 장(章)은 맹자(孟子)가 마음이 성과 정을 통솔한다[心統性情]고 한 것을 잘 표현한 것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주-D150] 비난하는 소리를 싫어하다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성(聲)은 어린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나쁜 소문이다.”라고 하였다.
[주-D151] 모두 …… 안다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사단의 발단을 알아서 모두 그것에 나아가 확대하여 채움을 말한 것이다. 지(知)는 지행(知行)의 지(知)이니, 아는 것에 나아가 확대하여 채우는 것이 행(行)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씨(黃氏)가 ‘그 이치를 알고서 채운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152] 사단(四端)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보인다.
[주-D153] 시인함인장(矢人函人章) :
《맹자》 〈공손추 상〉에 나오는 말이다.
[주-D154] 먼저 시인(矢人)을 말함[先言矢人]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먼저 화살 만드는 사람[矢人]ㆍ갑옷 만드는 사람[函人]ㆍ무당ㆍ관 만드는 목수[匠]를 말한 것은 《시경》의 ‘흥(興)’ 체제와 같다. 사람이 반드시 인의(仁義)를 가려서 자기의 직업으로 삼아야함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155] 가려서 …… 않으면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공자는 ‘인심이 좋은 마을을 가려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맹자는 이것을 인용하여 사람이 기술을 가려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156] 양귀(良貴)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양(良)은 타고난 선(善)이다.”라고 하였다.
[주-D157] 적자지심장(赤子之心章)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보인다.
[주-D158]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온다.
[주-D159] 모두 맹자질의에 보인다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서 우산(牛山)의 뜻에 대해 “제(齊)나라 도성의 동남쪽에 있는 산이다.”라고 하였고, 교(郊)의 뜻에 대해 “도성의 밖이 교(郊)이니, 십 리 밖에 있다. 교(郊) 밖이 목(牧)이고, 목(牧) 밖이 야(野)이고 야(野) 밖이 임(林)이다.”라고 하였고, 탁탁(濯濯)의 뜻에 대해 “반들반들한 모양이다. 산에 초목이 없어 반들반들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인의지심(仁義之心)에 대해 “주 선생(朱先生)이 ‘예(禮)는 인(仁)이 드러난 것이고, 지(智)는 의(義)가 감추어진 것이다.’ 하였다.”라고 하였고, 부족이존(不足以存)에 대해 “기(氣)는 이(理)를 담는 것이다. 보존은 바로 인의의 양심을 보존하는 것이다. 기가 얽매여 없어지면 이도 따라서 얽매여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주-D160]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에 “성명(性命)은 하늘이 사물에 부여한 관점으로 보자면 마땅히 ‘명성(命性)’이라 해야 할 것 같은데, ‘성명(性命)’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하늘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부여한 것[命]이 성(性)보다 앞서 있으니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라는 것이 이것이다. 이 성명(性命)은 사람과 사물이 부여받은 뒤에 그 유래를 미루어 말한 것이니, 성정(性情)과 비은(費隱)이라 하는 경우가 이것이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61] 맹자질의에 보인다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연(然)은 곧 ‘그렇다, 아니다[然否]’라고 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 다 같이 그렇게 여기는 것은 반드시 이치에도 합당하기 때문에 인의의 마음을 사람의 마음이 다 같이 그렇게 여긴다.”라고 하였다.
[주-D162] 겸출(兼出)……선악(善惡) :
《심경부주》 권3 〈우산지목장〉에 “또 출입이란 두 글자는 선이 있고 악이 있으니, 모두 놓으면 잃는 것이 초래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兼出入兩字有善有惡, 不可皆謂舍亡所致也,]”라고 한 말에 나온다.
[주-D163] 방기방멸(方起方滅) :
《심경》 권3 〈우산지목장〉 부주에 주자가 석돈(石墩)에게 답한 편지가 실려 있는데 “일어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은 마음의 대체이고,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不起不滅, 心之體, 方起方滅, 心之用.]”라고 한데 나오는 말이다..
[주-D164] 모두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보인다. ‘겸출(兼出)……선악(善惡)’에 대해 묻자, 이황이 “겸(兼)은 또[又]라는 말과 같다. 자중(子重)이 ‘놓으면 잃기 때문에 출입(出入)함에 때가 없어 그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한다.’라고 잘못 보았기 때문에 주 선생이 이에 그 오류를 논변하여 ‘비단 윗글에서 말한 것과 같을 뿐만 아니라 또 아랫글에서 말한 것이 있거늘 놓으면 잃어버리는 것이 모두 초래한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입니다. 출입(出入) 두 글자가 악(惡)이라면 혹시 자중의 말처럼 해도 그럴 수 있겠지만 들어가면 보존되고 선이 되며 나가면 잃어버리고 악이 되는데, 어찌 보존되어 선이 되는 것까지 아울러서 놓으면 잃는 것이 초래한 것이라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방기방멸(方起方滅)’에서 멸(滅)이 마음의 작용이 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황이 “방(方) 자에 깊은 의미가 있다. 마음이 일어났다가 바야흐로 정(靜)으로 돌아갈 때를 멸(滅)이라 하니 적멸(寂滅)의 멸(滅) 자와는 다르다.”라고 하였다.
[주-D165] 여피(如被)……용타(容他) :
《심경부주》 권3 〈우산지목장〉 부주에 “곡은 형틀을 쓰고서 이곳에 갇혀 있어 다시는 이 몸이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다.[梏, 如被他禁械, 在那裏, 更不容他轉動.]”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주-D166] 한사려(閑思慮) :
《심경부주》 권3 〈우산지목장〉 부주에 “잡기를 오래 하지 못하면 또다시 사물이나 쓸데없는 생각에 끌려가게 된다.[持把不能久, 又被事物及閑思慮引將去.]”라고 한데 나오는 말이다.
[주-D167] 사흉(四凶)을 …… 것 :
사흉(四凶)은 요 임금 때의 네 명의 악인으로, 공공(共工), 환두(驩兜), 삼묘(三苗), 곤(鯀)을 가리킨다. 십육상은 고양씨(高陽氏)의 여덟 재자(才子)와 고신씨(高辛氏)의 여덟 재자를 합한 16인의 선인(善人)을 가리킨다. 순 임금이 일찍이 십육상의 후손들을 등용하여 훌륭한 정사를 펴게 하였고, 또 사흉을 죽이거나 내쫓자 천하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였다. 《書經 舜典》
[주-D168] 유구국(琉球國) :
류큐. 현재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오키나와의 옛 이름이다.
[주-D169] 김언우(金彦遇) :
김부필(金富弼, 1516~1577)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언우, 호는 후조당(後凋堂)이다. 1537년(중종32)에 사마시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專心)하였다. 저서에 《후조당유고(後凋堂遺稿)》가 있다.
[주-D170] 소순흠(蘇舜欽) :
1008~1049.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의 문신ㆍ문인.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ㆍ호주 장사(湖州長史) 등을 지냈다. 고문시가(古文詩歌)를 숭상하고 초서(草書)에 뛰어났으며, 매요신(梅堯臣)과 이름을 나란히 한다.
[주-D171] 물망(勿忘)과 …… 보인다 :
맹자(孟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일을 가지고 이르기를 “반드시 무슨 일을 하되 미리 기약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주-D172] 양도부(楊道夫) :
자가 중사(仲思)이며, 건녕부(建寧府) 사람이다.
[주-D173] 주자어류에 …… 하나이다 :
《주자어류》 권115에 양도부가 주자에게 질문한 의목 가운데 두 번째이다.
[주-D174] 생예(生裔)……지추(之秋) :
《심경》 〈우산지목장〉 부주의 안설(按說)에 “허씨는 변방의 오랑캐가 처음 중국을 어지럽힐 때 태어났다.[許氏生裔戎俶擾之秋]”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75] 여여숙(呂與叔) :
여대림(呂大臨, 1040~1092)으로, 여숙은 그의 자이다. 송나라 경조(京兆) 남전(藍田) 사람으로, 처음에 장재(張載)에게서 배웠고, 나중에 정이(程頤)의 제자가 되었다. 사양좌(謝良佐), 유초(游酢), 양시(楊時)와 함께 정문 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불린다. 저서에 《옥계집(玉溪集)》, 《고고도(考古圖)》 등이 있다.
[주-D176] 네 가지를 끊은 :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완전히 끊었으니, 뜻함이 없으며 기필함이 없으며 고집함이 없으며 나를 표방함이 없었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77] 육유(六有) :
《심경부주》 〈우산지목장〉에 장자(張子)가 “말함에는 가르침이 있고 동함에는 법도가 있고 낮에는 함이 있고 밤에는 얻음이 있고 눈 깜짝할 사이에도 기름이 있고 숨 쉴 때에도 보존함이 있어야 한다.[言有敎, 動有法, 晝有爲, 宵有得, 瞬有養, 息有存.]”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78] 위학당(僞學黨) :
주자 등이 위학(僞學)을 하는 당(黨)이라는 공격을 받은 것을 말한다. 송 영종(宋寧宗) 때 주자가 상소하여 당시 실권을 잡은 한탁주(韓侂冑)의 간악함을 논하니, 이에 한탁주가 앙심을 품고 당시 도학(道學)의 영수인 주자를 위학으로 배척하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두 위학당으로 지목하여 벼슬길을 막았다. 《宋史 卷474 韓侂冑列傳》
[주-D179] 제철(提掇) :
《심경부주》 〈우산지목장〉에 “공이 만약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마음을 들어 일으키는 것이 바로 경이다.[公若知得放下不好, 提掇起來, 便是敬.]”라고 한 데 나오는 말한다.
[주-D180] 요(堯) 임금의 흠명(欽明) :
공경하고 밝다는 뜻으로, 요 임금의 덕을 형용한 말이다. 《서경》 〈요전(堯典)〉에 “공경하고 밝고 빛나고 사려가 깊은 것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欽明文思安安]”라고 하였다.
[주-D181] 긍업(兢業) :
긍긍업업(兢兢業業)의 줄임말로, 경계하고 근신하면서 위태롭게 여겨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夏)나라 우왕(禹王)에게 고요(皐陶)가 건의한 말인데, 이황이 요순의 일로 전용(轉用)하였다. 《書經 皐陶謨》
[주-D182] 성경(聖敬) :
상(商)나라 탕 임금의 덕을 표현한 말이다. 《시경》 〈상송(商頌) 장발(長發)〉에 “탕왕의 탄생이 늦지 않으시며 성경이 날로 진전되었다.[湯降不遲, 聖敬日躋.]”라고 하였다.
[주-D183] 행독경(行篤敬)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스러우면 미개한 오랑캐 땅에 가더라도 통할 수 있다.[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84] 수기이경(修己以敬) :
《논어》 〈헌문(憲問)〉에 나오는 말이다. 자로(子路)가 군자의 일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경에 입각하여 자기를 닦는 것이다.[修己以敬]”라고 대답하였는데, 자로가 그것뿐이냐고 계속해서 다시 묻자 “자기를 닦아서 남을 안정시키는 것이다.[修己以安人]”라고 대답하고, 또 “자기를 닦아서 백성들 모두를 안정시키는 것이다.[修己以安百姓]”라고 대답하였다.
[주-D185] 적연부동(寂然不動) :
천지 운화(運化)의 신묘(神妙)함을 본체(本體) 측면에서 형용한 말이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역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어서,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한다.[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라는 말이 나온다.
[주-D186] 평조야기(平朝夜氣) :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낮 동안의 이욕에 찬 행위가 양심을 짓밟으니, 짓밟기를 반복하면 야기(夜氣)가 보존될 수 없다. 야기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게 된다.[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 不遠矣.]”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87] 정을 주장하는 :
주정은 망상을 제거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외물(外物)의 유혹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돈이(周惇頤)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이 중ㆍ정ㆍ인ㆍ의로써 정하되, 정을 주장하여 사람의 법을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188] 진양(陳襄) :
자는 술고(述古), 호는 고령(古靈)이다. 복주(福州) 후관(候官) 사람인데, 송나라 신종(神宗) 때 시어사(侍御史)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향교(鄕校)에 나아가 노닐면서 진열(陳烈), 주희맹(朱希孟), 정목(鄭穆) 등과 벗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들 문장이나 지어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는 데 힘쓸 뿐 하늘을 알고 성품을 다하는 학문에 대해서는 모두들 오활하다고 하면서 돌아보지 않았는데, 이들 네 사람이 비로소 여기에 힘쓰자 사람들이 모두들 감화되어 참 학문에 힘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서에 《역의(易義)》, 《중용의(中庸義)》, 《고령집(古靈集)》 등이 있다.
[주-D189] 석홍경(石洪慶) :
주자의 제자로, 상주(相州) 임장(臨漳) 사람이다. 상주 부학(府學)의 학정(學正)을 지냈다.
[주-D190] 금유무명(今有無名) :
《맹자》 〈고자 상〉 12장에 “무명지가 굽어서 펴지지 않는 것이 아프거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만일 이것을 펴주는 자가 있으면 그곳이 진초처럼 먼 길이라도 찾아갈 것이니, 이것은 손가락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다.[今有無名之指, 屈而不信, 非疾痛害事也. 如有能信之者, 則不遠秦楚之路, 爲指之不若人也.]”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191] 맹자질의에 보인다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유(有) 자는 해석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주-D192] 영가 정씨(永嘉鄭氏) :
여기에서 미상(未詳)이라고 하였으나, 중국 송(宋)나라 고종(高宗) 때의 문신ㆍ학자인 정백웅(鄭伯熊, 1127~1181)인 듯하다. 그는 정호(程顥)ㆍ정이(程頤)의 사상을 계승한 영가학파(永嘉學派)를 부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저서로 《몽재필담(蒙齋筆談)》, 《부문서설(敷文書說)》이 있다.
[주-D193] 사경(士敬)이 …… 말했다 :
사경은 조목(趙穆)의 자이다. 《월천집(月川集)》 권4 〈심경질의〉에 “〈금유무명지장〉 부주의 정자와 정씨의 설은 바로 황돈이 붙인 것인데, 소주에 서산의 말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今有無名之指章附註程鄭二說, 乃篁墩所撰, 而小註却用西山語繳之, 何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194]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선생께 올림[上退溪書]〉에 “맹자가 ‘몸에는 귀천이 있고 대소가 있다.[體有貴賤有大小]’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마음을 귀와 눈 따위와 대소를 구분하였는데, 또 하나의 손가락으로 어깨와 등의 크고 작은 것으로 비유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이 장은 본래 입과 배는 몸에서 소체가 되고 마음과 뜻은 몸에서 대체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소체는 형체가 있어 보기 쉽지만 대체는 형체가 없어 알기가 어려우니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염려하여 이에 다시 형체가 있는 것에 나아가 크고 작고 귀하고 천하고를 구분하여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D195] 가시나무[樲棘] :
《맹자》 〈고자 상〉 14장에 “지금 원예사가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버리고 가시나무를 기른다면 값어치 없는 원예사가 되고 만다.[今有場師, 舍其梧檟, 養其樲棘, 則爲賤場師焉.]”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196] 맹자질의에 보인다 :
《간재집속집》 권3 〈맹자질의〉에 “작은 가시나무이니 좋은 재목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주-D197] 진력(陳櫟) :
자는 수옹(壽翁), 호는 근유당(勤有堂)으로, 휴령(休寧) 사람이며, 후학들이 정우선생(定宇先生)이라 불렀다. 벼슬을 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후학을 양성하며 주희(朱熹)의 학설을 천명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저서에 《사서발명(四書發明)》 등이 있고, 문집으로 《정우집(定宇集)》이 전한다.
[주-D198] 호헌(胡憲) :
1068~1162. 송(宋)나라의 학자인 호안국(胡安國)의 조카로, 초정(譙定)의 제자이며 주희(朱熹)의 스승이다.
[주-D199] 소백온(邵伯溫) :
1057~1134. 중국 송(宋)나라 휘종(徽宗) 때의 문신ㆍ학자. 소옹(邵雍)의 아들로, 정이(程頤)에게 수학하고 《역변혹(易辨惑)》, 《견문록(見聞錄)》 등을 저술했다. 태평관 제거(太平觀提舉) 등을 지냈다.
[주-D200] 의를 …… 밝힌다 :
《한서(漢書)》 권58 〈동중서전(董仲舒傳)〉에 “의를 바르게 하면서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도를 밝히면서 공을 생각하지 않는다.[正其誼不謀利, 明其道不計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01] 앵무새가 …… 않는다 :
《예기》 〈곡례(曲禮)〉에 “앵무새가 말을 잘하나 나는 새에 지나지 않고, 성성이가 말을 잘하나 금수에 지나지 않으니, 사람치고 예가 없으면 그 또한 금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鸚鵡能言, 不離飛鳥, 猩猩能言, 不離禽獸, 今人而無禮, 不亦禽獸之心乎.]”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202] 욕망을 적게 가지다 :
《맹자》 〈진심 하〉 35장에 “마음을 기름은 욕망을 적게 가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養心, 莫善於寡欲.]”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203] 수유(雖有)……과의(寡矣) :
《맹자》 〈진심 하〉 35장에 “그 사람됨이 욕망이 적으면 보존되지 못함이 있더라도 보존되지 못함이 적을 것이요, 사람됨이 욕망이 많으면 비록 보존됨이 있더라도 보존됨이 적을 것이다.[其爲人也, 寡欲, 雖有不存焉者, 寡矣; 其爲人也多欲, 雖有存焉者, 寡矣.]”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D204] 모두 맹자질의에 보인다 :
《간재집 속집》 권1 〈맹자질의〉에 나오는 내용이다. ‘욕망을 적게 가지다’에 대해 “욕(欲)은 〈중용서문(中庸序文)〉에서 말한 ‘인심(人心)’과 같으니,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겨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도심(道心)이 주재하면 욕망이 법도를 넘지 않는 까닭에 《맹자》에 과(寡) 자를 쓴 것이다.”라고 하였고, ‘수유(雖有)……과의(寡矣)’에 대해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서로 없어지고 자라난다. 욕망이 적으면 천리가 보존되지 못함이 있더라도 보존되지 못한 것이 적으니, 보존됨이 많다는 말이고, 욕망이 많으면 천리가 보존됨이 있더라도 보존된 것이 적으니, 보존되지 않음이 많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주-D205] 인(仁)을 …… 것이다 :
《예기》 권32 〈표기(表記)〉에 보인다.
[주-D206] 곡망(牿亡) :
곡망(牿亡)의 곡(牿)은 곡(梏)과 같다. 《맹자》 〈고자〉에 “사람은 다 착한 본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욕(利慾) 때문에 그 본심이 교란당하여 흐려 없어진다.[梏亡之矣]”라 말한 것이 있다.
[주-D207]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보존하지 못하는 것을 곡망(牿亡)이라 합니다. 보존하지 못하는 것은 대개 이(理)를 가리킨 것인데 곡망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보존하는 것은 이(理)이지만 보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곡망(牿亡)이 시키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08] 처첩 …… 자 :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많은 녹봉은 예의를 분별하지 않고 받으니, 많은 녹봉이 나에게 무엇을 보태어 주겠는가.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처첩을 거두며, 내가 아는 궁핍한 자가 나를 고맙게 여기게 하기 위함인가.[萬鍾則不辨禮義而受之, 萬鍾, 於我何加焉? 爲宮室之美, 妻妾之奉, 所識窮乏者得我與?]”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09]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진실이 확립됨[誠立]은 실체(實體)가 편안하고 견고함을 이르고, 밝음이 통함[明通]은 실용(實用)이 유행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성자(聖者)에 대해서는 오직 용(用)을 말하고 체(體)는 언급하지 않고, 현자(賢者)에 대해서는 유독 체(體)를 말하고 용(用)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서로 바꾸어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다. 현자(賢者)는 성립(誠立)하기만 하고 명통(明通)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성자(聖者)는 명통(明通)하기만 하고 본래 성립(誠立)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성자와 현자 사이에 성립(誠立)하고 명통(明通)하는 것이 고하와 정추의 차등이 없지 않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주-D210] 통서(通書) :
중국 송(宋)나라의 학자인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책으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표리(表裏)를 이루어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주-D211] 언충신(言忠信)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말을 충실하고 미덥게 하고 행동을 독실하고 공손하게 한다면 비록 오랑캐 나라에 간다 할지라도 행해질 수 있다.[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12] 삼성(三省)의 충신(忠信) :
《논어》 〈학이(學而)〉에 증자(曾子)가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반성하노니, ‘남을 위해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않았던가? 벗과 사귐에 신의가 있지 않았던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던가?’[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13] 향원(鄕愿)을 논한 곳 :
《맹자》 〈진심 하(眞心下)〉에 만장(萬章)이 맹자에게 향원(鄕愿)에 대해 묻자, 맹자가 “‘어찌하여 이리 허풍스러운가. 말은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곧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라고 하는가. 무엇 때문에 행동을 그토록 외롭고 쓸쓸하게 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을 살면서 잘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몰래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何以是嘐嘐也, 言不顧行, 行不顧言, 則曰古之人, 古之人, 行何爲踽踽涼涼.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鄉原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14] 이방자(李方子) :
주자(朱子)의 문인으로, 자는 공회(公晦)이고, 호는 과재(果齋)이다. 남송(南宋) 영종(寧宗) 가정(嘉靖) 7년(1214)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천주(泉州) 관찰추관(觀察推官)을 지냈다. 그때 천주(泉州) 지주(知州)로 있던 진덕수(眞德秀)와 교유했다. 저서에 《전도정어(傳道精語)》, 《우공해(禹貢解)》 등이 있으며, 《주자연보(朱子年譜)》를 편찬했다.
[주-D215] 주경(主敬)을 …… 것 :
《심경》 권4 〈성가학장(聖可學章)〉에 “경을 위주로 하여 그 근본을 세우고, 이를 궁구하여 그 앎을 지극히 하고, 자신을 돌이켜서 그 참된 것을 실천하였다.[主敬以立其本, 竆理以致其知, 反躬以踐其實.]”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16] 〈논어질의〉에 보인다 :
《간재집 속집》 권1 〈논어질의〉에 ‘수지어위(守之於爲)’에 대해서는 “지사(志士)는 은미한 움직임에는 제대로 살피지 못하므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닥쳤을 때 자세하게 살피고 지켜서 악으로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고, ‘습여(習與)……동귀(同歸)’에 대해서는 “성(性)은 기질(氣質)의 성을 가리킨다. 여러 주해에서 ‘습관이 오래되어 천성처럼 변하면 현인도 성인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설은 옳지 않다. 대체로 나의 습관이 익숙해져서 천성처럼 이루어지면 성현의 일과 같은 결과를 낼 것이니, 공을 이루는 것은 똑같다.”라고 하였다.
[주-D217] 위학당(僞學黨) :
주자 등이 위학(僞學)을 하는 당(黨)이라는 공격을 받은 것을 말한다.
[주-D218]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이황이 “이러한 부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으니, 자신이 깊이 음미하고 실제로 실행해서 자득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묻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자신이 그 음식을 먹어보고 그 맛을 본 뒤라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애초에 먹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맛을 물어서야 되겠는가. 배우는 사람은 이 점을 깊이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주-D219] 이중구(李仲久) :
이담(李湛, 1510~1575)으로, 중구는 그의 자이다. 호는 정존재(靜存齋)이다.
[주-D220] 주선중규(周旋中規)는 …… 말이다 :
《주자어류》 권105에 〈경재잠〉에 대한 문답 중에 나오는 말이다.
[주-D221] 정정사(程正思) :
이름은 단몽(端蒙)이고, 신안(新安) 사람이다. 주자에게 배웠으며, 《소학자훈(小學字訓)》 등 저서가 있다.
[주-D222] 불립문자(不立文字) :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 도를 깨닫는다는 뜻인데, 《벽암록(碧巖錄)》 제1칙(第一則) 평창(評唱)에 “문자를 세우지 않고 인심(人心)에 직결시켜서 심성을 철저히 본 뒤에 성불(成佛)한다.”고 하였다.
[주-D223]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기의 본성이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 실제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주-D224] 염락(濂洛) :
염계(濂溪)에 살았던 주돈이(周敦頤)와 낙양(洛陽)에 살았던 정자(程子)를 가리킨다.
[주-D225] 향원(鄕愿) :
그 지방 인심에 영합하면서 가장 점잖은 체하는 사람으로, 《논어》 〈양화(陽貨)〉에 “향원은 덕의 적이다[鄕愿德之賊]”이라는 말이 보인다.
[주-D226] 한탁주(韓侂冑) :
송(宋) 영종(寧宗) 때의 간신으로 주자(朱子)의 도학(道學)을 위학(僞學)으로 몰아 주자의 관작을 삭탈하고 그 문인들의 등용을 금하였다.
[주-D227]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논다.[鳶飛魚躍]’라는 것이 ‘반드시 일삼을 바가 있으면서도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라[必有事焉而勿正之意]’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노는 것을 보면 이 이치의 실체가 드러나고 묘용(妙用)이 분명히 행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 사이에서 화육(化育)이 행해지고 상하에서 밝게 드러나는 곳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반드시 일삼음이 있으면서도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아니하여 마음에 잊지 않고 조장하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나고 묘용이 분명히 행해져서 저것과 둘로 나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조장하는 병통이 막 생긴다면 전체가 가려지고 묘용이 그칠 것입니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28] 원집에 보인다 :
《간재집》 권3 〈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에 “‘구차하게 비웃음을 피하다.[苟避譏笑]’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자 이황이 “인지상정은 평소 신망을 받는 자가 앞서 훌륭한 행실이 있다가 뒤에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비웃는다. 주 선생(朱先生)은 초년(初年)에 세상의 배우는 이들이 존덕성(尊德性) 한 쪽으로 치우치고 도문학(道問學) 공부를 알지 못하여 결국 이단(異端)에 빠지는 것을 아프게 여겼기 때문에 먼저 도문학(道問學)으로 사람을 가르쳐 섬세하게 궁리하고 차이점을 검토하여 존덕성(尊德性) 공부를 하도록 하니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였다. 나중에는 그것이 지루하고 번잡하여 도리어 그 본령을 버리고 지엽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선생이 도리어 존덕성을 위주로 하고 도문학으로 보충하려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이것 때문에 나를 비웃겠지만 비난을 피하기 위해 사람을 그르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주 선생이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이루어졌지만 오히려 스스로 겸손하고 억제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옳다고 하여 마음속으로는 그릇되는 것을 알지만 스스로 그릇되게 여기지 않으니, 모두 비웃음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229] 오징(吳澄) :
1249~1333. 중국 원(元)나라의 학자. 천문학(天文學)에 밝아 《찬언(纂言)》을 저술하였는데, 조선 시대에 혼천의(渾天儀)를 만드는 데 기본틀이 되었다.
[주-D230] 학부통변(學蔀通辨) :
명(明)나라 진건(陳建, 1497~1567)이 지은 책으로 불교(佛敎), 육상산(陸象山), 왕양명(王陽明)의 학설에 대하여 《주자문집(朱子文集)》, 《주자어류(朱子語類)》, 《주자연보(朱子年譜)》 등의 책을 근거로 그 오류를 분석하였다.
ⓒ 한국국학진흥원 | 김우동 (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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