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38/종합건강검진]“매우 건강하십니다”
“나는 어떤 병 징후도 없고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않다”고 아무리 우겨도, 아내는 봄부터 막무가내로 종합검진(그것도 서울대병원에서)을 하라고 채근이 빗발쳤다. 당뇨 주치의가 자디앙약에 감량성분이 있어 그러니 그 정도에서 관리하면 된다고 말했다해도 마이동풍. 하기야 1년 반 사이에 몸무게가 77kg에서 65kg로 빠졌으니 그럴 만도 하긴 했다. 나로서도 허벅지살을 볼 때마다 ‘이거 무슨 큰 병 걸린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되었던 건 사실이다.
하여 지난 11월 4일 마침내 논현동의 어느 유명내과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어제는 그 검진결과 설명을 들었다. 각종 검사 수치를 바탕으로 한 그래프 등을 보여주면서, 한마디 총평이 “매우 건강하십니다”였다. 그러니 어찌 검진료 46만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쌀 두 가마값이지 않는가. 작년에는 수시 두통으로 전주에서 MRI와 MRA를 80만원(선배가 60만원으로 할인)했는데, 그때보다 더 아까웠다. 전화로 나의 푸념을 들은 아내는 ‘1도’ 안아깝다며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일단 나도 ‘확인사살’을 한 덕분에 적잖이 안도한 ‘기분 좋은 날’이었다. 이럴 때에는 ‘한잔 찌그러야’ 하는데, 어디서든 술 한 방울만 마신 줄 알면 당장 찢어지겠다는 협박성 공갈에 금주禁酒 맹세까지 한 마당인지라 환장換腸할 이 노릇을 어찌 할 것인가. 오호, 통재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함이리라.
주변의 친구 몇몇이 6학년(60대) 학기중에 별안간 세상을 떴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입맛이 참으로 쓰고 떫으면서 자신을 돌아다본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가는 사람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간다는 각종 통계를 보지 않았던가. 고교 졸업 동창 417명 중 이미 10분의 1인 40명이 갔다. 10년 후에는 20%, 20년 후에는 40%, 30년 후에는 80%로 늘어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말도 최근 들어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당연히 맞는 말이긴 해도, 세상에 어느 누가 건강을 잃고 싶어서 잃겠는가. 나를 생각하며 건강관리를 잘하라는 말이긴 해도 별로 듣고 싶지 않는 말이다. 근력운동을 꾸준히(틈틈이?) 하다가도 그런 말을 충고라고 들으면 맥이 빠지고 운동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건강은 90% 이상 부모의 유전자를 타고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전전전 직장 선배가 5년도 넘게 식물인간 비슷한 상태로 고생하다 세상을 떴다. 20여년 전 건강검진 결과 B형간염이라고 나오자, 자기는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평소 등산 등 건강관리를 열심히 했는데 재수없다며 술에 쩔어 사는 내가 걸려야 하는데 이상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이무럽다기로소니 후배에게 그렇게 ’심한 말‘로 예를 들다니, 나 역시 기분이 더러웠다. 이것은 순전히 여담餘談이지만, 달포 전 코로나 때문에 3년만에 친구의 혼사때 만난 한의원 원장 친구의 충고는 정말로 고맙고 살갑게 다가왔다. 내 ’앙상한‘ 허벅지를 만져보더니 이렇게 살이 빠지면 안된다며 날마다 근력筋力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했다. 6학년때 근력이 빠져버리면 웬만해서 회복이 안된다며 자기는 20층 아파트 계단을 날마다 꼭 걸어올라다닌다고 했다.
친구의 충고로 ‘근력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껐다. 호주에 사는 간호사아들이 페이스톡을 할 때마다 강조한 것이 근력운동. 6kg짜리 아령 2개에 이어 아령을 들고 올락날락하는 스텝을 보내오며 강요하는 바람에 ‘억지약속’을 했다. <인간극장>을 시청하는 30분간 해오고 있으나 날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하곤 한다. 95세 아버지도 요양병원에서 날마다 자전거 바퀴도 몇 번 돌리고 100여미터를 걷는 등 운동을 하신다고 한다, 근육이 한번 퇴화되면 복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강 매우 좋으십니다”라는 총평에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님을 왜 모르랴. 그동안 게을러했던 아침 30분 아령 들고 스텝 밟기와 저녁식사 후 30분 걷기 등(하루 1만보)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새삼 다진다. 왜냐하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에 최소한 손자가 대학 입학하는 것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여섯 살이니 몇 년 남았는가. 15년도 남지 않았다. 그럼 그 녀석 장가 가는 것까지 봐야 할까? 아니면 증손자까지? 흐흐.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그 어떤 경우에든 아내보다 먼저 죽어야 할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빌고 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 걸. 예부터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아는 게 그저 창해일속滄海一粟이거늘. 무엇을 안다고 하고, 무엇을 모른다고 할 것인가. 전선줄에 앉아 노래하는 제비가 인간들을 비웃는다.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하라고. 하지만, 건강健康만큼은 절대로 과신過信할 일이 아닌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