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민주주의 아직 멀었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았지만, 공동체문화는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입주자대표의 선출, 관리규약의 개정, 아파트관리업체의 선정 등에 입주민의 참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직장을 중심으로 집은 잠만 자는 바쁜 도시생활을 하는 입주민들은 아파트 일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내 공사, 직원의 선발 등 입주민의 이해에 민감한 결정을 주도하는 입주자대표의 선거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당선되기도 하고, 아파트 내 공사 및 관리업체의 선정 과정에 부정이 개입되기도 한다.
지난 9월 12일 그린시티 S 아파트 입구에서 입주자대표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이유로 70대 후반의 고령의 입주민이 1인 시위에 나섰다. 오랫동안 부산에서 삼성승용차 유치, 가덕신공항 추진 등 다양한 시민운동을 통해 명성을 쌓고 존경을 받던 사람이 자그마한 아파트 일에 나선 것은 대단한 의외였다.
“입주자대표 선거를 지켜보면서 명백한 잘못을 눈으로 보면서 우리가 직접 접하는 아파트 입주자대표 선거를 무관심 속에 사소한 위법이라고 넘어가선 안된다. 앞으로 작은 지역에서부터 공정한 선거풍토가 정착되고 부정과 비리가 없도록 주민들이 관심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감시해야 한다”며 단호한 각오로 임하고 있었다.
얼마 전 기자도 D 아파트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아파트 관리규약 개정, 아파트 관리업체 선정에 따른 주민동의를 받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한 적이 있다. 과거에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하면 통과되었지만, 법 개정으로 전체 주민의 과반수의 찬성으로 효력이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SNS 확산에 의한 휴대폰 메시지를 통한 전자투표 덕분에 약 25% 주민의 투표는 받았지만, 결국 주민의 과반수 찬성을 받으려면 선거관리위원들이 밤늦은 시간에 가가호호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설명을 이해 못한다는 주민, 몰라서 투표 못한다는 주민, 문 못 열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주민 등 개별 접촉을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선관위원들의 고통이 크다.
세세한 관리규약이나 아파트 관리업체 선정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잠깐의 설명을 듣고 결정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보다 시간을 갖고 전문성을 가진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해도 될 일을 전 주민의 참여라는 명분으로 법을 개정한 것은 과잉민주주의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아파트 동 대표와 입주민 대표를 선출하는 데 입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게시판에 게시된 경력만을 보고 투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진정한 봉사정신과 전문성을 갖고 나온 사람을 구별해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후보자들의 경력, 공약, 전문성을 데이터화한 AI 시스템에 의한 선출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 김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