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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돈, 돈은 곧 인간이야
우아영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왔다.
우아영의 포동한 얼굴이 더 클로즈업되었다. 바람을 잔득 머금어 오므린 입만 보였다.
그 순간 도치씨는 아득했다.
우아영의 오므린 입술이 사형수의 눈에 비치는 올가미 같았다. 우아영의 입술이 닿고 저 입에서 폭풍 같은 바람이 나의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나는 거센 바람을 감당하지 못해 숨이 막히고 가슴이 터지거나 배가 찢어져 죽고 말겠지.
도치씨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겁에 질렸다.
천국같이 느껴지던 우아영의 입술이 지옥문 같았다.
도치씨는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섬 전체의 공기가 걷잡을 수 없는 노풍怒風이 되어 우아영의 입안에서 자신의 목구멍을 통해 식도를 타고 질풍처럼 들어왔다. 배가 부풀어 올라 풍선만큼 커지고 급기야 노풍은 작은창자를 통과해 대창까지 내려갔다. 바람이 빠져 나가도록 똥구멍을 열 수 있는 만큼 벌렸다. 그러나 거친 바람은 똥구멍을 다 빠져 나가지 못하고 마치 러시아워처럼 정체해서 역풍했다.
“뻥!”
마침내 커다란 폭음이 들리고 배꼽이 터졌다.
사방으로 창자가 튀고 피가 림프액과 뒤섞여 사방으로 튀었다. 배꼽 떨어져 나간 뱃가죽이 풍선조각처럼 너들너들 했다. 도저히 수선불가한 상태였다.
상상만으로도 전신이 오싹했다.
‘하이고!’
도치씨는 소리 없는 뇌성으로 외쳤다.
천국이고 나발이고 우선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쾌감이고 지랄이고 어정거릴 때가 아니었다.
우아영의 입술이 도치씨의 입술에 포개지기 1cm직전에 도치씨는 기력을 다해 외쳤다.
‘으악 사람 살려!’ 라고 외쳐야 정상이지만 사기사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도치씨의 기발한 임기응변은 여실히 적용되었다.
만약 여기서 느슨한 실수로 진짜 비명을 지르면 산통 다 깬다. 사기사는 아무도 눈치 채서는 안 되는 절대비밀이다.
다급한 도치씨의 외침은 타이어바람 빠지는 소리와 흡사했다. 정밀하게 계산된 음향관제였다. 도치씨는 연안여객터미널에서 경험했던 그대로 깊고 긴 한숨을 토했다. 절묘한 타이밍의 절묘한 음향관제였다.
“퓨우!”
도치씨가 숨을 몰아 토해내자 세 사람은 모든 행위를 일시정지 했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도 일시 멎은 듯했다.
깊고 묵직한 적막이 갯바위를 에워쌌다. 극히 짧은 순간의 적막이었다.
“프흐흐 휴우.”
도치씨의 숨 토해내는 두 번째 소리가 적막을 깼다.
세 사람의 움직임이 다시 민첩해졌다. 갯바위를 감돌던 해풍안개가 어둠속에서 태풍처럼 소용돌이쳤다.
세 사람의 아우성도 동시에 터졌다.
갯바위가 소란해졌다.
침울했던 갯바위에 생기가 돌았다.
이감독이 제일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방금 사운드 들었재?”
두 번째는 오진숙이었다.
“도치형부 숨 터졌어요!”
이감독이 우아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호마! 기어이 도치씨 숨 쉬게 만드네? 미스 우 대단하다.”
칭찬인지 탄식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두 사람의 말에 우아영은 갑자기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불어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바람이 가득한 양 볼과 오므린 입술이 커다란 눈과 어울려 도치씨 이름을 탄생시킨, 꼭 동해바다도치 같은 모습으로 우아영은 이감독을 쳐다봤다. 어떻게 해요? 라는 애매한 표정이었다.
이감독이 손을 쳐들었다.
“미스우야! 도치씨 숨 돌아 왔으니께!”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우아영을 향해 이감독이 손을 내리쳤다.
“오케이! 컷!”
도치씨의 콧구멍을 틀어막았던 검지와 중지의 손가락을 빼내면서 우아영은 도치씨의 얼굴에 참았던 바람을 일시에 쏟았다.
“푸아앙!”
우아영이 쏟아 낸 입 바람은 뻥 뚫린 도치씨의 콧구멍을 향해 질풍했다.
“에에에이치! 에에치. 에취!”
예상하지 못한 진로로 들어 온 바람을 대비하지 못했던 도치씨가 크게 재채기를 해댔다.
오진숙이 방방 뛰었다.
“이제! 도치형부 살았네요.”
재채기소리에 방방 떠는 오진숙과 달리 우아영은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따다다 따다다!”
재빠르게 도치씨의 뺨을 때리며 도치씨를 불렀다.
“도치오빠! 도치오빠!”
도치씨의 귀엔 우아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아영의 애절한 목소리보다 맞는 뺨에서 느끼는 고통이 더 컸기 때문이다. 보들보들 포동포동한 우아영의 손은 떡메보다 훨씬 파워가 넘쳤다. 보기보다 손때가 너무 매웠다. 도치씨는 뺨을 맞을 때마다 눈물이 찔끔찔끔 났다.
허지만 도치씨는 아픔을 꾹 눌러 참았다.
사기사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뺨의 고통은 필연적으로 참아야 했다. 죽었던 놈이 살아날 때 일시에 신경까지 살아난다면 누가 믿을까? 그래서 참았다.
여섯 차례 호되게 뺨을 맞고 얼얼한 정신으로 간신히 눈을 떴다. 눈동자만 움직여 사방을 휘둘러봤다. 해피앤딩 영화 속의 주인공이 하던 연기 그대로 따라했다.
빙그르르.
밤하늘의 별들이 한 바퀴 돌고 이감독의 어수선한 얼굴이 또렷이 들어 왔다.
‘에이 씨부랄 놈!’
도치씨는 얼른 눈길을 돌렸다.
이감독 보기 싫어 돌린 눈동자가 머문 곳에 호기심 반 아쉬움 반으로 내려다보는 오진숙의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왕뽕이 괘씸했던 것이다.
한 번 더 돌려 멈춘 도치씨의 동공에 우아영이 가을실국화꽃처럼 앉아 있었다.
작년 이맘때 국제꽃전시회 국화 밭에서 들어 누워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파인더 안에 담겼던 그 실국화처럼, 함초롬한 우아영의 얼굴이 환상적이었다. 노르웨이북국에서 본 오로라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도치씨가 넋 나간 소리로 말했다.
“아! 이건 현실이지? 가상이 아니지?”
“타닥!”
그 순간 또 한 번의 번갯불이 도치씨의 눈에서 번쩍 일어났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천둥소리처럼 밀려왔다.
우아영이 완전히 정신을 차리게 할 요령으로 도치씨의 뺨을 한 번 더 오지게 때렸던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도치씨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우아영이 부릅뜨고 있는 도치씨의 눈을 까뒤집었다.
눈알이 튀어나갈 것 같은 상태에서 우아영과 직방으로 눈이 마주쳤다.
우아영이 울먹였다.
“도치오빠!”
도치씨는 자신의 사기사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물었다.
“어엉? 여기가 어디야?”
“으앙!”
우아영은 참았던 울음보를 터트렸다.
어린아이처럼 도치씨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통곡했다.
“도치오빠 응응. 고마워! 으응응. 너무 너무 고마워! 응응.”
기어 나오는 소리로 도치씨가 물었다.
“뭐가?”
계속 흐느끼는 우아영 대신 이감독이 대답했다.
“뭐긴 뭐야? 돈 안 깨지게 됐으니까 고마운게지. 뒈졌어봐 헬기불러야지. 관 짜야지. 병원비 나가지. 어휴 천문학적 돈 나갈 뻔했다! 그러니까 고마운 거지.”
울다말고 우아영이 이감독을 노려봤다.
“그게 아녜요. 감독님은 돈 밖에 몰라요?”
이감독이 빙긋 웃으며 진짜 철든 산신령처럼 말했다.
“아야! 미스우야. 인간 3대진실 몰라? 내심진실內心眞實 표정진실表情眞實 언행진실言行眞實. 인간이 탈 쓰기 좋아하지만 우리는 탈 쓰지 말자는 말이다. 부디 해탈해서 살자.”
“그게 무슨 소리에요?”
“보는 대로 느낀 대로 있는 그대로 흉허물 없이 살자는 거지.”
“그게 돈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사람 있는 곳에 돈 있고 돈 있는 곳에 사람 있는겨. 사람은 돈이여! 숨을 쉬어도 돈이고 안 쉬어도 돈이여. 돈과 사람은 한 몸인겨라. 고로 돈 안 드는 놈은 인간이 아녀라. 올 때 돈 들고 갈 때 돈 안 드는 건 가전제품 뿐이겨. 괜히 낯설게 투정부리지마여.”
오진숙이 끼어들었다.
“아영언냐? 감독님 말 잘 새겼지? 감독님은 진짜 숭고해! 도치형부 뒈졌다면 낭비할 뻔했던 돈 벌었잖어? 얼마나 현실철학적이니? 난 감동받았어. 인간은 곧 돈이야! 난 돈 중에서도 현금이 더 좋아. 명품백보다 현금이 더 좋아!”
오진숙이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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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며칠간의 사기사도 끝나가고 이제 우아영만 손아귀에 쥐었군요,
결국 아영과의 결혼이 성공적으로 이루 질런지.
그러나 이감독도 명품백 회수하고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겠군요.~~ㅎㅎㅎ
ㅎ
고맙습니다. 멋진 10월되세요
인간과돈은 뗄수없는 관계겠슴니다.
그래서 오진숙은 돈을 앞세우는군요~
잘모르지만오늘 제미있게 잘 읽었슴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10월되세요
도치가 연극은 제대로 한것 같슴니다.
도치오빠 파이팅~!! 외치면서 아영이는 좋아라 하네요~~
이 상황이면 남자 누구나~
여자도 누구나~ 그럴것 같습니다
명품백 선물한 이감독 현금이 좋다는 말에
나같으면 명품백 뺏어버리겠네요..ㅎㅎ
ㅎ
설마 천일염님 마음이 밴댕이 속같을까?
전 믿지 않습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