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新正)과 설
'신정(新正)'은 새해의 첫머리로 양력설을 뜻하는 말이다.
'설'은 음력으로 쇠는 설로 한자어로 구정(舊正)이라고 실려 있지만 새해의 첫머리란 뜻은 신정과 같다.
금년 신정(新正)은 1월 1일로 신통하게도 날짜는 양력과 음력이 똑 같이 가다가 양력 31일 설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2014년 양력 1월에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이 다 들어 있다.
양력(陽曆)이란 태양력(太陽曆)을 말하는 것으로 지구가 해의 둘레를 1회전하는 1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태양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에는 365.2422일 걸린다. 그래서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이라 한다.
365일일 때는 평년(平年), 366일 때는 윤년(閏年)으로 하여 2월이 평년처럼 28일이 아니라 윤년은 29일인 것이다. 그 윤달은 양력에서는 4년마다 한 번 씩온다. 그러나 태음력에서는 한 달을 윤년(閏年)으로 하고 있다.
음력(陰曆)이란 달이 차고 기울어짐을 기초로 하여 만든 달력으로 태음력(太陰曆)과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달의 위상변화만 의존하여 엮어진 태음력(太陰曆)을 사용하고 있다
태음력에서는 1년이 13개월인 해가 있다. 그래서 이 잘을 공달이라 하여 민간에서는 이 윤달이 있는 날에는 무슨 일을 해도 동티가 나지 않는다 하여 결혼, 건축, 이사 등을 마음 놓고 하였다.
옛 어르신들은 곡식을 파종하고 수확까지의 1회를 달을 중심으로 1년이란 개념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稔(임)이 穀一熟一年'(곡일숙1년)이란 연(年)의 해당하는 말이다.
*. 설의 유래
왜 '설'이라 이름 했을까?
새해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맞는 새로 시작되는 날이다.
그래서 이 날은 특별히 삼가하고 조심해야 할 낯선 날이라서 한자로' 삼갈 愼'(신) 자를 써서 신일(愼日)이라고도 했다.
이렇듯 '낯설다'에서 '설'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근신한다는 뜻인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다.
언어학에 모음교체란 말이 있다. 모음교체(母音交替,ablaut)란 상반된 두 모음이 서로 바뀌어 의미 분화해서 낱말을 만드는 것이다.
'갓'이 '겉', '맛'이 '멋'으로 모음교체 된 것처럼 'ㅏ'가 'ㅓ'로 바뀌어 뜻을 분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나이의 '살'도 '설'에서 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영덕 지방 사람들은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것이 서러웠던가. '섧다'에서 '설'이 나왔다고 하는 옛 기록도 보인다.
어찌 우리나라뿐이랴. 설을 쇠는 나라는 중국, 대만, 베트남, 버마, 라오스 등도 우리네처럼 음력을 쓰는 나라여서 음력 설을 쇤다. 이들 나라들이 다 농업국가인 것을 보면 설과 농업과 달(月)은 관계가 깊은 것 같다.
일본은 농업으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농업국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신정을 원단(元旦)으로 정한 메이지유신 이후 줄곧 양력을 쇠고 있다.
중국도 우리나라와 같이 양력 1월 1일을 한해가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하루를 공휴일로 쉬며, 각종 기념식이나 축하공연을 1월 1일에 갖는다.
그러나 중국 최대의 명절이라는 음력 1월 1일이 되면 춘절(春節)이라 하여 우리나라처럼 3일 연휴를 맞아 귀성전쟁이 시작된다.
*. 한국 신정(新正)의 유래
우리나라 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6세기 무렵부터 음력으로 쇠어 온 듯하다.
그러다가 양력설이 최초로 도입된 것이 1896년갑오경장(甲午更張)과 단발영(斷髮令) 무렵으로 김홍집 내각부터였다. 그 해 연호를 건양(建陽)이라고 정한 것처럼 당시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후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의 일본은 자기 나라처럼 조선에서도 양력설만을 공휴일(公休日)로 지정하였다.
조선국민에게 이중과세(二重過歲)를 못하도록 신정만을 강요하였지만 신정은 일본설(日本-)이라고 생각한 국민 대다수는 항일 차원에서도 음력설을 고집하였다.
이후 광복절 후 대한민국 정부가 서고도 39년 동안 신정(新正)의 3 일 연휴의 공휴일이 계속되다가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1일 공휴일의 음력설을 쇠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설도 신정과 함께 사흘 연휴의 공휴일날로 개정하면서 명칭도 '구정'에서 '설날'로 복원되었다.
지금 우리들은 신정은 1일 공휴일, 설은 3일의 공휴일로 쇠는 시절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상 세시풍속백과사전 참조)
*. 양력설의 의의
1월 1일은 설이 아닌데도 우리들은 연하장(年賀狀)은 물론 문자 또는 e-mail을 주고 받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양력설은 설이라기보다 일년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의미가 크다.
1953년부터 시작한 새해 맞이 보신각종을 33번 울리는 인경소리도 그렇고, 신년사나 덕담(德談) 등이 또한 그렇다. 관공서나 회사의 시무식도 2, 3일에 열린다.
새해부터 시작된다는 각종 정부의 시책들도 그렇다.
이렇듯 양력설은 일년의 시작의 상징성을 벗어나 실제로 음력보다 더 구체적으로 시작되는 새해다.
그런데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방송과 신문에서 신정을 전후해서 2014년이 '청말 띠'의 해라고 대서 특필하고 있는 것에 우리도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신정 1월 1일부터 청말띠의 해라고 무의식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역 1월 1일부터 다가오는 설까지는 계사(癸蛇) 년이지 갑오년(甲午年)은 아니다.
갑오년(甲午年)은 음력으로 따진 간지(干支)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간지(干支)란 천간지지의 준말이다. 천간지지(天干地支)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위 아래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60갑자(六十甲子)란 간지의 10과 지지의 12지가 갑자, 을축, 병인~ 하다가 10번째가 지나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여 60 번만에 다시 갑자년이 된다는 말이다. 그때를 갑년(甲年)이 돌아왔다하녀 회갑(回甲)이라 하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10과 12의 최소공배수가 60 이란 말이다.
그 간지(干支)에는 아래 표와 같이 각각 해당하는 색(色)이 있다.
갑오(甲午)년에서 천간(天干)의 '갑(甲)'은 '청색(靑色)'이고
갑오(甲午)년에서 지지(地支)의 '오(午)'는 띠로 '말(馬)'이다. 그래서 갑오년은 '청 말띠'의 해라 하는 것이다.
여자인 경우에 팔자가 세다는 백말 띠는 경오(庚午)년이어서 동양 3국에서는 아이 낳기를 꺼리는 해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하루를 2시간 간격으로 12시간으로 나누고 지지(地支) 12지를 사용하여 시간을 말했다. 오(午)'는 정오(正午) 또는 오정(午正)이요 자정(子正)은 밤 12시다.
*.설날 동요 '까치 까치 설날은~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까치의 설날을 왜 어저께라고 했을까?
옛 사람들은 까치는 식물에 해로운 해충을 잡아먹는 익조(益鳥)라 하였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시는 날이라 하여까치는 길조(吉鳥)로 대접 받아왔다.
견우 직녀에게 7월 7석 오작교를 지어주는 착한 새가 까치다.
농부들은 까치들이 높은 가지에다 집을 지으면 좋아하였고, 얕고 튼튼한 아랫 나뭇가지에 집을 지으면 태풍이 온다고 걱정하였다.
까치는 이렇게 예지가 있고, 머리가 좋은가 하면 날카로운 코가 있어 냄새 등으로 동네 사람을 알아본다.
동구밖 높은 나무에 집을 짓고 살다가 낯선 사람이 오면 짖어대는데, 설날 전에 고향 찾아오는 자식들은 까치들에게는 낯선 사람이기에 요란히 짖어 대어서 까치의 설날은 설날 전이라 한 것이다.
그 2절은 더 재미있다.
"까치까치 설날은 고향가고요.♩~♫♪우리우리 설날은 처갓집가요.♩~♫♪"
나는 객지에서 나서 객지에서 살았으니 찾아갈 고향이 없고, 둘째로 제사를 물려 받았으니 큰집이 있어도 찾아갈 수 없고, 장인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찾아가도 반겨줄 이가 없다.
나이가 드니 내가 사는 것이 자식들의 고향이 되어 내가 깃튼 낯선 고장 일산(一山)에 둥지를 짓고 출가한 자식네를 기다리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되어버렸다..
또다른 다른 설(說)로는 까치를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라 하는 설이다.
당시 일본 위정자들은 조선도 자기네들처럼 신정(新正)을 쇠라고 '설'을 구정(舊正)이라 비하하며 우리 조선 민족에게도 신정(新正) 쇠기를 강요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까치는 우리가 아닌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까치까치(일인들) 설날은 어저께(신정)고요.♩~♫♪우리우리(조선 민족) 설날은 오늘이래요.♩~♫♪"
-ilman의 '알고 맞는 세시풍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