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껌의 사회학
300년 경에 중앙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마야족 중에는 사포딜라(sapodilla)의 수액의 고체화된 치클(chicle)을 씹으며 즐기는 습관이 있었다. 이것이 추잉껌의 최초의 것이라고 전한다. 그 후 1860년 경부터 멕시코의 장군 S. 아나, 미국의 T. 애덤스와 J. 콜건 등에 의하여 연구·개량되어 사탕·향료 등이 첨가되어 현재의 것과 같은 껌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한국·일본·중국 등지에 수입되었고, 현재까지 생산과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은 미국이다. 우리나라도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츄잉껌의 발상지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빈과 마찬가지로 멕시코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서기 3백년경 멕시코의 마야족은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끓여서 만든 치클을 씹었다고 전해진다. 마야족의 이러한 습관은 이후 아메리칸 인디언에게도 전파돼 아파치족, 코만치족에 이어 케네벡 사람들에게 전수됐으며 이후 콜럼부스에 의해 신세계 발견과 함께 널리 전파됐다.
넓은 의미로의 레진(resin)은 식물에서 얻어지는 검(gum), 레진(resin), 라텍스(latex)를 포함하는데 이중 중앙아메리카와 남미의 사포딜라나무 에서 얻어지는 라텍스인 치클의 품질이 가장 좋아 츄잉껌의 기초원료로 이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검이나 레진의 주로 씹었으며 오늘날에도 매스틱(mastic)과 비즈왁스(beeswax)로 만들어진 레진을 중동지역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치클을 가장 처음 가공한 사람은 19세기경 미국인 애담스이다.「치클껌왕」으로 불리고 있는 애담스는 치클을 타이어에 이용하기 위해 연구하던 중 치클라텍스는 탄력성이 부족하고 경화되지 않아 강에 버리려다가 약국에서 파라핀왁스로 만들어진 츄잉껌을 보고 껌을 만들어 상품화했다. 같은 시기에 약국을 경영하는 콜간이란 사람이 치클에 향료를 넣어 만드는 일을 생각해 내었으며 이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치클에 향료, 설탕, 첨가물 등을 넣는 것이 고안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맛있고 기능이 뛰어난 츄잉껌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껌을 씹으면 침 분비가 활발해져 음식찌꺼기가 빨리 분해되고 입냄새도 없앨 수 있다. 씹는 운동은 뇌세포를 자극해 졸음을 막아 주고, 또 턱 관절을 많이 움직여 주어 이 자극이 대뇌피질에 전달되면 배타 엔돌핀 분비가 촉진돼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 준다. 야구선수가 껌을 씹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껌은 이 세상 하찮은 것들의 대명사다. 1960년대엔 벽에 붙여놓고 두고두고 씹는, 허기를 달래주는 ‘귀한 기호품’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껌값’이라는 말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을 빗댄 표현으로 일반화됐다. 현대 사회에서 껌의 값어치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거리의 수많은 껌딱지도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과거 서울 종로구는 제설기를 변형한 ‘껌 떼기 기계’를 개발했고, 부산 진구는 껌과의 전쟁을 벌이느라 서면 거리에 500명을 동원해 껌딱지 제거작업에 나선 바 있다.
제작진은 이런 하찮고 때론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방송에선 우선 작가, 요리사, 배우, 운동선수 등이 출연해 껌과 관련된 추억을 털어놓는다. 제작진은 “중장년층 시청자들에게 과거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행복한 체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밖에도 껌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중동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우리나라 껌의 활약상,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껌 종류가 많은 배경, 야구선수가 껌을 애용하는 이유, 껌을 씹으면 ‘사각턱’이 된다는 괴담의 진실….
자일리톨껌의 선두격인 롯데제과가 해당 껌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온 건 2000년대 초반이다. 이후 2004년 보건복지부가 자일리톨 성분을 ‘충치 발생 위험 감소에 도움을 줌’ 표시를 하거나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해 껌 유통시장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제조업체가 개별적으로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자일리톨을 인정해달라고 자료를 제출했고, 이를 보건복지부가 ‘개별인정형 원료’로 승인해 주면서부터다.
실제 롯데제과가 자일리톨 성분이 치아에 좋다는 식으로 껌과 연계해 광고를 내놓으며 공전의 히트를 치자, 동종업체들도 저마다 미투 제품을 내놓으며 껌 시장은 자일리톨 일색으로 재편됐다. 2004년 당시 전체 껌 시장(2800억원) 매출액 중 절반이(1800억원) 넘을 정도로 자일리톨껌은 효자상품으로 떠올랐다.
‘핀란드에선 자기 전에 자일리톨껌을 씹습니다’라는 유명한 광고카피도 이쯤 등장했다. 양치 후에 씹는 껌, 자기 전에 씹는 껌이란 인식을 소비자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며 자일리톨껌은 치아에 좋은 식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보건복지부는 2004년 자일리톨 성분에 이어 2008년 자일리톨껌에 대해서도 ‘충치예방’ 표현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치아에 좋다는 식의 표현을 쓰며 제품을 홍보해온 제조업체들이 ‘충치예방’ 등의 문구를 내세우며 껌이 마치 건강기능식품인 양 광고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당국이 업체들에게 허위표시나 과대광고를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 셈이다.
물론 자일리톨 성분이 충치예방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이 얼마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하루에 2~3개 씹는 껌으로는 충치예방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식약처 기준에 따르면 충치예방 효과를 얻기 위해선 하루에 자일리톨 10~25g을 섭취해야 한다. 껌 1개당 자일리톨 성분이 0.8g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에 12~28개(성인기준)를 매일 씹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개수다.
이런 이유로 자일리톨껌의 효과 논란은 업체들이 충치예방을 적극적으로 광고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자일리톨 기능에 대한 부분은 2004년 이후 식품당국에 의해 한 번도 재평가된 적이 없다.
여기에 주무부처가 보건복지부에서 식약처(이전 식약청)로 바뀌면서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진 상황이다. 이번 시정조치 역시 식약처 스스로 한 것이 아닌 감사원의 감사결과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통보된 것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더피알>과의 통화에서 “이번 (충치예방이란 문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는 감사원 지적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따랐을 뿐”이라며 “해당 내용 소관이 우리가 맞지만, 10여년 전 보건복지부에서 (자일리톨껌에 대해) 표시나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한 부분에 대해선 답변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 업체들도 식약처의 제재 조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기업 입장에서 당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뿐더러, 10여년간 충치예방 껌으로 인식돼오면서 이미 시장에 안착했다는 현실적 이유도 작용한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충치예방 문구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 업체 입장에선 따라야 하는게 맞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지금은 충치예방 보다는 졸음운전이나 두뇌개발, 집중력 향상 등의 효과에 초점을 두고 판촉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충치예방이 안 되는 제품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자일리톨껌의 국내 소비 규모는 한 해 1200억원 정도다. 정부의 공인과 업체의 홍보를 믿고 10여년 동안 열심히 씹어온 소비자들만 또다시 ‘호갱(어수룩하게 이용당하는 고객)’이 돼버린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