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5차침입 방어에 성공한 충주전투의 장소를 충주 대림산성인가.충주남산성인가 의문점을 갖고 방송하던데..
난 충주에서 현역시절 5년을(대위)근무했고 남산을 열번 이상 올랐다. 남산은 하나의 독립된 산이 아니다. 서로 연결된 산으로..북동쪽엔 안림동 계명산(775고지)이 마즈막재로 연결되고.. 남서쪽으론..호암동 대림산이(480고지?)남산과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졌다.동남쪽은 충주호.. 수몰전엔 중원군 동량면..제원군 한수면..내가 대림산 능선따라 남산 정상까지 수 차례 올랐다.(헬리포트 작업시)우선 대림산 정상은 성터도 없고 성 쌓을 장소도 없다.사기기릇 조각 하나, 깎은돌, 하나 없다.그냥 산능선의 독립 봉우리다.고려시대 1253년경 몽골군대와 싸웠다면 흔적이 있을 터인데 아무것도 없다.정상이 500 미터도 안되는 하나의 능선 봉우리.물론 우물터도 없다. 여기서 두달간 버틴다고?절대 불가능하다.건국대 글로컬 캠퍼스를 지나 차로 수안보 가면서.. 뒤돌아보면 좌측으로 보인 산이 대림산이다.작은암자 하나 있다 산골짜기에...내가 한동안 괴목 수집한다고 모두 샅샅이 뒤져본 곳이다.
계명산은 775고지지만 산세가 매우 험하고 특히 정상이 협소하여 관측소(OP) 구실이나하면 딱 맞는지형이다.식량창고 무기창고 등 몇 채의 건물 축조가 가능해야 한데 절대 불가다.산세가 급해서 등,하산이 매우 어렵다.그래서 등산객도 드물다.나도 딱 한번 올랐다.물론 기와장 벽돌장 하나 없다.남산은? 성 축조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산높이는 전술한바처럼 636m..정상은 매우 공간이 넓고 주변은 사방이 급경사며 정상에 오르는 능선이 잘 발달되어 있다. 동쪽(마즈막재)에서 걸어서 등산하면 힘들이지 않고 노약자도 시간반 거리다.지금은 임도로 계발.. 세멘트 포장해서 자가용 타고 정상을 갈 수도 있다. 또한 북쪽 (교현안림동) 남쪽(직동.창룡사) 서쪽 (호암동)대림산능선 따라 쉽게 접근 가능하다.그럼 적들이 싑게 접근할것 같은데 위험하잖은가? 능선만 차단하면 적 접근을 방어한데 문제가 없다. 능선외엔 급경사다. 난 남산 정상에서 고려시대 축조한 흔적을 많이 보았다.정상 남쪽은 고려시대 성이 양호하게 남아 있다.높이는 2,30미터 길이는 100미터(?)..충주시에서 최근 (20년전?)보수했다.그런데로 성 모습을 갖추었다.정상에서는 동서남북 수십리까지 육안 관측이 양호하다. 적 출현시 즉시 경고, 전투태세가 가능한 산이다.
동쪽문을 통해 성밖 100미터 정도 내려가면 우물이 있다.이건 장기전시엔 생명수다.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정상엔 땅을 조금만 파면(헬리포트부근)깨진 사기,옹기그릇이 나온다.무엇보다도 돌이 필요한데 남산엔 바위가 지천이다.당시 성 축조하기 위해 돌깬 흔적이 바위마다 상처를 입고 있는걸 볼수있다. 800년전 (1253년)우리 조상들이 돌을 쪼개어 여러 사람들이 목도해서 옮겼을거라 추측 가능하다. 정으로 깬 돌부스러기가 바위 주변에 많이 흩어졌다.바위를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쪼개면 면이 반듯하고 선은 직선.돌에 물을 부어 목재를 부풀려 돌을 깬다고 한다.아주 가뭄이 아니면 산골짜기마다 상당량의 물이 흐른다. 흙으로 막아놔도 물이 꽤 고인다. 지금도 등산로 상에 골짜기 물을 막아 우물을 만들고 이용한다.결론은 명확하다. 몽골의 5차 침입시 김윤휴장군이 싸운 전적지는 대림산도.계명산도 아닌 남산..남산성에 올라 성벽,돌깬흔적. 기와장 등등을 보면 고려사람들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날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뭐니뭐니해도 성의 최대 장점은 충주와 지척거리다.성(城)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30분..늦어도 한시간이면 조달 가능. 이런 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흔치 않을것이다.
♧ 남산 정상에 오르는 길에 안내판도 있다.참고하시면 좋을것임.혹자는 삼국시대 신라가 고구려 방어를 위해 성 축조했다는 설도 주장하나 신라가 고구려와 치열한 장기전을 했는가? 고구려는 기본적으로 북방정책 강화 국가이다.단 신라와 백제간엔 철천지 원수처럼 장기전 단기전 안한게 없다. 따라서 신라가 대야성이 필요해 쌓은것.내가 한 말은 상식적인것임.고증이 더 필요한 사항.김윤휴 ; 승려출신. 처인성 전투에서 몽장 살리타이를 화살로 죽임.
♧ 목도:(기본의미) 둘 이상의 사람이 짝이 되어 뒷덜미에 긴 막대기를 얹어 무거운 물건을 함께 메어 나르는 일.
목도로 큰 돌이나 무거운 물건을 협동해서 나른걸 몇 번 보았는데 10여명이 돌을 묶은 밧줄을 손으로 잡고..
몽둥이는 목 뒤에 걸치고 추임새에 마추어 조심조심 걸으며 물건을 운반함.주로 산소에 사용할 비석 운반시..
첫댓글 몽골 5차침입 막아낸 김윤휴장군과 충주 남산산성.
愚魯추천 0조회 1425.02.17 23:0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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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5차침입 방어에 성공한 충주전투의 장소를 충주 대림산성인가.충주남산성인가 의문점을 갖고 방송하던데..
난 충주에서 현역시절 5년을(대위)근무했고 남산을 열번 이상 올랐다. 남산은 하나의 독립된 산이 아니다. 서로 연결된 산으로..북동쪽엔 안림동 계명산(775고지)이 마즈막재로 연결되고.. 남서쪽으론..호암동 대림산이(480고지?)남산과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졌다.동남쪽은 충주호.. 수몰전엔 중원군 동량면..제원군 한수면..내가 대림산 능선따라 남산 정상까지 수 차례 올랐다.(헬리포트 작업시)우선 대림산 정상은 성터도 없고 성 쌓을 장소도 없다.사기기릇 조각 하나, 깎은돌, 하나 없다.그냥 산능선의 독립 봉우리다.고려시대 1253년경 몽골군대와 싸웠다면 흔적이 있을 터인데 아무것도 없다.정상이 500 미터도 안되는 하나의 능선 봉우리.물론 우물터도 없다. 여기서 두달간 버틴다고?절대 불가능하다.건국대 글로컬 캠퍼스를 지나 차로 수안보 가면서.. 뒤돌아보면 좌측으로 보인 산이 대림산이다.작은암자 하나 있다 산골짜기에
몽골 5차침입 막아낸 김윤휴장군과 충주 남산산성.
愚魯추천 0조회 1425.02.17 23:0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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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5차침입 방어에 성공한 충주전투의 장소를 충주 대림산성인가.충주남산성인가 의문점을 갖고 방송하던데..
난 충주에서 현역시절 5년을(대위)근무했고 남산을 열번 이상 올랐다. 남산은 하나의 독립된 산이 아니다. 서로 연결된 산으로..북동쪽엔 안림동 계명산(775고지)이 마즈막재로 연결되고.. 남서쪽으론..호암동 대림산이(480고지?)남산과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졌다.동남쪽은 충주호.. 수몰전엔 중원군 동량면..제원군 한수면..내가 대림산 능선따라 남산 정상까지 수 차례 올랐다.(헬리포트 작업시)우선 대림산 정상은 성터도 없고 성 쌓을 장소도 없다.사기기릇 조각 하나, 깎은돌, 하나 없다.그냥 산능선의 독립 봉우리다.고려시대 1253년경 몽골군대와 싸웠다면 흔적이 있을 터인데 아무것도 없다.정상이 500 미터도 안되는 하나의 능선 봉우리.물론 우물터도 없다. 여기서 두달간 버틴다고?절대 불가능하다.건국대 글로컬 캠퍼스를 지나 차로 수안보 가면서.. 뒤돌아보면 좌측으로 보인 산이 대림산이다.작은암자 하나 있다 산골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