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안에 있던 헌제는 가후의 진언에 따라 중국 동쪽으로 탈출합니다. 이각과 곽사는 서로 뒤지게 싸우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부리나케 쫒아가는데요. 이때 헌제를 도와 수행했던 인물로 나중에 국구(황제의 장인어른)가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동승
헌제는 조조, 복완, 동승에게서 각기 처첩을 얻었는데, 동승의 딸은 아비의 어가수행 공로로 인해 황제의 비빈으로 궁에 들어갔습니다. 복완의 딸은 헌제가 장안을 나서기 수개월전에 가례를 올렸죠. 소설에도 어린 황제와 황후가 강을 건너기 위해 애를 먹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의 황후가 바로 복완의 딸입니다.
2. 도망쳐 나온 헌제로 인해 전국의 시선이 모두 낙양으로 쏠립니다. 이때 헌제를 영접하기 위해 원소, 조조, 유표등의 세력에서 진언이 나오는데, 조조 만이 홀로 결단을 내립니다. 이때 조조가 헌제를 맞이하려고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조홍
소설에서는 하후돈과 조홍이 각기 허저, 전위등의 장수를 부장으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조조가 실제로 보냈던 사람은 조홍이었습니다. 이것은 조홍의 열전에는 기술이 없고, 정사 무제기*조조*에 적혀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사족을 덧붙이면 한국에 번역된 유일한 완역판인 김원중의 삼국지 정사는 빠져있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본래 중국이었는지 대만이었는지의 원판을 번한했을 뿐이기 때문에 원판에서 누락된 경우일텐데요, 어떤 일반인이 현재 보정작업 및 완역을 진행중이라고 하니까 한 5,6년 이내에는 좀 더 충실한 번한서적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소설에서는 원소에게 헌제를 영접하라고 진언한 사람이 그의 모사였던 전풍으로 되어 있습니다. 역사 문헌에서는 그 사람이 달리 적혀있는데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곽도
저수라고 답변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수가 비슷한 진언을 올린 적이 있긴 있습니다.
"약관이 나이에 벼슬에 나가 천하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으니 상대하는 적마다 깰 수 있을 것입니다. 유, 기, 병, 청 네개의 주를 아우르고 나아가 장안의 어린 황제를 받들고 낙양에 종묘를 다시 세운다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으니 이것이 공이 하실 일입니다."
헌데, 원소는 실제로는 헌제를 정통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헌제가 장안을 탈출했을 때 누구보다 헌제를 손 안에 넣는 게 쉬웠음에도 그걸 거부하죠. 이때 맞이하라고 한 사람은 곽도였습니다. 물론 원소는 나중에 후회합니다.
4. 조조가 헌제를 영접한 후 도성을 낙양에서 허도로 옮기고 이 자리에 임명됩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원소가 노발대발하며 성을 냈다고 하죠. 조조는 어떤 벼슬에 취임했었을까요?
정답 : 대장군
조조가 헌제를 맞이했을 당시에 받은 벼슬은 대장군 겸 녹상서사였는데, 녹상서사는 권력요직으로 황제에게 출납되는 모든 사안을 황제보다 먼저 볼 수 있던 사무관입니다. 다시 말해 섭정의 지위와 같습니다. 본래는 삼공 중에 한 둘이 겸직하면서 황제를 보좌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권신이 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실상의 재상직이 되버립니다. 그래서 품계도 삼공보다 높구요.
그런데 원소가 열받은 것은 대장군이라는 직위였습니다. 대장군은 사실 상설직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삼공을 필두로 하는 정치를 권신들이 자주 깨려고 했기 때문에 상설화된 관직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바로 아래에 합참의장이겠네요. 녹상서사는 사실 황제가 통치력을 잃었기 때문에 별거 아니지만, 대장군은 천하 모든 제후들에 대한 상관인 셈이라 원소는 삼공 중에 하나인 태위를 제수받았는데도 거절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인물은 누가 모라고 해도 원소였으니까요.
5. 조조의 참모로 유명한 순욱은 정욱과 곽가를 추천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그럼 곽가가 추천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정답 : 유엽
순욱이 조조에게 추천한 인물은 정욱, 희지재, 곽가, 종요등이 있습니다. 곽가는 희한하게도 황제의 친족이라고 볼 유엽을 추천했습니다. 유엽은 적자의 계보에 속하는 친족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후한의 시조인 광무제의 적자의 후손이었습니다.
황제의 계보는 적통을 원칙으로 하지만, 후한은 3대인 효장제가 죽은 이후로 4대째부터 14대가 되는 헌제까지 줄창 20세 이하의 황자들이 제위를 이어갔기 때문에 선대의 적자나 아들이 아닌 조카나 사촌이 즉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선대가 자식을 만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죠.(심지어 즉위한 황제중에는 생후 4개월 된 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씨 황족가운데 가장 적통에 가까운 유우가 원소에 의해 황제에 추대될 뻔 했습니다.
6. 조예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어린 태자가 대를 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후한 초부터 매우 자주 일어난 일입니다. 이때 위나라의 실권을 잡은 것은 황족의 일원이었던 조상이었습니다. 이 조상의 꾀주머니라고 불리었던 사람이 있는데요. 역사에서는 사실 별로 친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환범
문헌으로는 환범이 조상과 친분이 있었기는 하지만, 조상의 행동거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7. 손권의 말년에 이 사람이 손권을 거슬렀다가 자택에 칩거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 손권이 그를 불러내려 찾아갔다가 안나오자 문에 진흙을 발라 막아놓고는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손권을 열받게 했던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장소
손권과 장소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손권은 장소를 통해서 오나라의 주인으로 거듭났지만, 장소가 때마다 강직한 말로 자신의 비위를 거슬리는가 하면, 결정적으로 조조를 상대로한 전투에서는 늘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에 적힌 사건도 이런 관계를 보여줍니다. 손권은 배후의 세력을 움직여 위나라를 공격하려는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요동의 공손씨와 연합하려고 했습니다. 장소가 이 일을 뜯어말리자 손권이 성을 냈는데, 장소가 여기에 마음이 상해 집안에 틀어박힙니다. 얼마 뒤에 외교 사절이 왔는데, 대신들이 그를 상대로 제대로 반박도 못하고 어물쩡 거리는 걸 보자 "그래도 장소가 있었으면..." 하고 한탄합니다. 그래서 황제의 자존심도 꺽고 장소를 찾아갔지요. 그런데 장소는 문 밖으로 나와 마중도 안하고 그러기는 커녕 집안에 박혀 나오질 않으니 손권의 머리올이 또 풀릴대로 풀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심정으로 집에다 불을 확 싸지릅니다. 나오지도 못하게 진흙으로 문을 다 막아놓고는 말이죠.
....이 에피소드의 결과는 둘이 포옹하고 손권이 엉엉 울었다는 것입니다.
8. 소설 삼국지연의의 백미 중에 하나인 칠종칠금의 고사에서 가장 마지막 배경이 되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의 수장은 12척의 거구였다고 하죠. 동네 이름과 이 동네의 대장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답 : 오과국, 올돌골.
칠종칠금의 고사는 소설을 읽는 재미중에 하나이지만,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남만왕의 이름이 맹획이었다는 것도 삼국지 정사가 아닌 다른 기록에 나옵니다. 사실상 여기에 나오는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후대 사람들이 지어 가공했다는 것이 맞습니다. 12척이면 당시의 기준인 22~24cm로 계산해도 무려 2미터 80센치이니까요. 흔하디 흔한 중국인들의 뻥인 셈이죠.
9. 이릉전투에서 패한 유비는 영안에서 서거합니다. 죽기 직전 제갈량을 불러 태자가 무식하면 직접 통치하라고 이야기했다고 하죠. 그런데 이와 같은 고사가 손책과 이 사람에게도 있었다고 배송지가 주석으로 달아놓았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장소
7번의 정답과 같습니다. 같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유래가 있습니다. 배송지가 주석을 쓸 때 인용한 서적이 <오서>인데, 이건 말그대로 오나라 사람이 쓴 것입니다. 등지가 오나라를 방문한 이후로 촉과 오는 계속해서 동맹관계였는데, 오고가던 외교 사절들이 유비와 제갈량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받아들이는 필터였습니다. 오나라는 황실인 손가와 다른 유력 호족간에 융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초대 황제인 손권의 정통성을 흠짓낼려는 의도로 이것이 사실은 손책과 장소의 이야기라고 적은 것이었죠.
물론 이 유래는 가설에 불과합니다. 배송지가 주석에 달아놓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
BONUS문제. 손책이 일부일처했다는 가정 아래 성씨가 다른 혈손으로 황족의 일원이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교국로의 외증손자였던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 : 육항
2번 문제와 마찮가지로 정답자가 한분 뿐이었습니다. 잠시 오나라의 가계도를 살펴볼까요?
손견에게는 2명의 부인이 있었고, 정실에게서 3명, 후실에게서 2명(또는 1명)의 자식을 보았습니다. 이 중에 적장자인 손책은 당시 강동에서 이름난 미인이었던 교공(나중에 교국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손책은 26세의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자식을 많이 볼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고, 문헌에 남아있는 것은 육손에게 시집간 딸 하나입니다. 이 딸이 낳은 둘째 아들이 육항입니다.
그러니 교국로-교씨(대교)-손씨-육항의 세대가 됩니다. 육항은 손책에게는 외손자이고, 교국로에게는 외증손자인거죠. 오나라 최후의 명장인 육항은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전자를 고루고루 물려받은 셈입니다. (참고로 오나라 마지막 황제인 손호는 육항과 6촌간입니다. 항렬이 같은 셈이죠. 손권의 2남인 손화의 아들이 손호이니 손호는 손권의 손자입니다. 손책의 외손과 손권의 손자가 오나라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첫댓글 김원중씨의 삼국지 번역본은 배송지 주를 다 번역 안해놨죠. 사실 삼국지는 진수의 원문보다도 배송지의 충실한 주석이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원문은 그럭저럭 다 했지만 주까지 다 하기는 힘들었나봅니다. 배송지 주석이 양이 워낙 많긴 하죠. 근데 주석을 골라서 번역한 기준도 애매모호해서 중요한 주석은 빼놓고, 별 볼거 없는 주석을 번역해놓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조운전의 주석을 거의 다 빼먹어서 조운을 과대평가된 듣보잡 장수로 전락시키는 데 김원중씨가 혁혁한 공(?)을 세웠죠. 뭐 대학원 시절에 겨우겨우 번역한 습작이니 원문이나마 완역한 게 어디냐 싶지만... 개정판 낸다고 해놓고 겉껍데기만 바꿔서
우려먹으려 했던 건 욕먹어 마땅하죠. 일반 한문 번역 작품의 수준으로 비교해 볼 때도 현 김원중씨의 번역 삼국지는 진짜 대학원 수준의 초벌 번역밖에 안됩니다. 이 분 능력 문제가 아니라 젊었을 때 아직 번역이 서툰 시절의 습작이라 그렇죠. 지금 다시 한번 개정판을 내신다면 멋진 번역을 하실 수 있으실텐데 이미 책은 팔 만큼 팔았고, 열정은 별로 안 남으신 듯 합니다. 모 그래도 삼국지 정사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만큼은 인정해야겠지만요^^
음. 그렇군요. 제가 듣기론 촉서가 노트 5권이면 위서는 노트 120권의 분량이라고 하더군요. 현재 이걸 번역중에 있는 사이트가 있긴 한데, 담당하던 사람이 쉬는 중입니다. 또 어떤 일반인이 몇년이 걸릴 것을 각오하고 짬이 나는대로 번역중이라고 합니다. 독학으로 논어를 해석한 경험으로 미루어 정말 오래 걸릴거라고 보입니다.
위서가 촉서에 비해 많긴 하지만 24배 차이는 말도 안됩니다. 중국 학자들이 위서, 촉서, 오서의 글자수를 다 세봤는데 배주 포함해 위서가 약 40만자, 촉서가 약 10만자 정도로 위서가 4배 가량 많죠. 김원중씨 역서도 위서가 4권, 촉서가 1권으로 배주 완역은 아닙니다만 비율이 대강 4:1로 맞죠. 위서가 촉서의 20배가 넘는다는 건 심한 뻥튀기 같네요...;;;
정말 촉서 조운전보면.. 진짜 듣보잡장수급이더군요 -_-..분량도..뒤에 나오는 초주같은인물반도안되고..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진도나 하후패이야기나 등등은 찾지도 못했습니다 -_-.. 진도는 이엄전인가에 이름만 언급된정도였나 그런거같습니다.
조운전에 경우, 배송지가 <조운별전>이라는 책을 주석에 인용해 상당 부분 내용을 보완했음에도 불구, 김원중씨가 조운전의 배주를 거의 누락시키는 바람에 그렇게 되버렸죠. 조운전 배주 <조운별전>에 수록된 내용을 감안해보면 조자룡도 충분히 다른 오호대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훌륭한 장수였습니다. 하지만 번역서에 실려있질 않으니 일반인들은 모를 수 밖에요...;;; 진도는 관련자료가 산실돼서 전을 만들지 못했구요, 하후패는 정체성이 좀 애매하죠. 그래도 촉한에서 시호까지 받은 인물인데 입전 못된 건 좀 아쉽습니다.
궁금해서 그런데.. 오호 장군이란게 실제 있는건가요.. 촉서에는 그런말이 언급안된걸로 봤는데 .. 제가 못본걸 수도 있지만.. 그냥 내용 읽어보면 관우 장비 마초 황충은 같은 급의 장수고 조운은 약간 아래쪽의 장수인것처럼 보이더군요.. 오호장군 언급 된게부분을 보지 못했네요.. 그리고 촉서보면 관우 장비 마초 약간 인간적으로 부족한 사람들로 표현되더군요.. 근데 김원중씨 역서로 출판된 책 위서 2권 오서 1권 촉서 1권아닌가요??
위서 4권, 촉서 1권, 오서 2권입니다. 오호장군이란 말은 본래 없구요, 다만 정사에 촉한의 최고 무장 5명이 나란히 한 세트로 입전된 걸 보고 나관중이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보통 기전체 사서에선 이렇게 비슷한 부류의 인물들끼리 세트로 엮죠. 무장은 무장끼리, 문관은 문관끼리... 위나라에도 최고의 무장 5명을 세트로 엮어놨기에 일명 위나라 오호장군이라고도 합니다. 장료, 서황, 악진, 우금, 장합이죠.
조운이 부족해보이는 건 앞서 말한대로 조운의 공적을 보충해주는 배주가 김원중역판에선 제대로 번역이 안돼서 그렇습니다. 뭐 실제로 다른 네 장수보다 관직이 좀 낮긴 했죠. 관우, 장비야 원래 넘사벽이고, 마초는 사실 촉에선 한 일이 없이 이름값으로 먹고 들어갔고, 황충은 하후연 참살이라는 일대의 큰 공을 세워서 벼락출세했죠. 반면에 조운은 한중 전투 빼곤 이렇다할 큰 전공이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무장으로서의 군공이 아닌 인간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조운은 삼국시대 여러 무장들 중에서도 최고로 인품이 훌륭한 장수죠.
무장이라고 해서 단순히 싸움만 잘하는게 장땡이 아니라 이런 성품도 충분히 평가해줘야 할 사항이라고 봅니다. 관우, 장비는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긴 했습니다. 관우는 아랫사람들에게는 잘 대해줬지만 윗사람에겐 절대 굽히지 않는 안하무인격인 인물이죠. 그래도 성품 자체로 치면 크게 문제있는 케이스는 아니죠. 문제는 장비인데 만약 이런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힘들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간 쓰레기입니다. 윗사람에겐 설설 기고 아랫사람들은 개처럼 대했죠.
오히려 소설 속에서 나오는 장비의 인물상은 과격하긴 해도 인간미 넘치고 정감있는데 역사상의 인물로서 장비는 대인배 기질은 있지만 인간미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잔인한 인물입니다.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고위 장수로서 부하에게 암살당하는 인물이 얼마나 되었나 헤아려보신다면 장비가 얼마나 부하들에게 모질게 굴었는지 가늠할 수 있죠.
그래도 자기보다 더 나은 인물에겐 굽힐 줄 아는 대장부적인 기개가 있어서 방통을 알아보고, 엄안을 용서하기도 했죠. 아무튼 소설 속의 장비와 실제 장비와는 의외로 인물됨에 차이가 있습니다. 마초는 특별히 인격에 문제가 있기보단 좀 개념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허도에 있는데 지방에서 반란 일으켜서 결국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갔죠. 개인적인 능력은 뛰어났지만 돌출 행동으로 일관하다가 가족들도 모조리 잃고 말년을 우울하게 마친 비운의 인물입니다.
그냥 촉서를 읽고난 느낌은 촉에서 위연이 가장 명장이었던거 같은 느낌이엇습니다.. 군공도있고 충성심도있었지만.. 인간관계가 좀 문제여서..죽임을 당한 안타까운 인물이죠 연의에는 좀 과장되게 소인배로 나온거 같더군요..
대단하시네요. 잘봤습니다.
허~ 별말씀을. (__)
그나저나 절반 정도밖에 못맞췄군요...ㅠ.ㅠ
2번과 3번문제는 난이도가 많이 높았습니다. ^^;;
제가 듣기론 김원중의 번역본엔 개인 감정이 필요이상으로 개입이 많이 되어있고, 그 개인 감정에 의거해 누락된 부분이 너무 많다고 들었습니다. 삼국지 매니아 분들께는 굉장히 무시받는 인물이라고 그러더군요.
김원중씨 번역본은 원문 번역에 겨우 급급했을 뿐, 감정이 개입될 겨를 조차 없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대화하는데 신하가 임금에게 반말하고, 임금이 신하를 존대하는 부분도 더러 보이죠. 김원중씨가 젊었을 때 초벌 번역으로 간신히 해냈다는 티가 팍팍 납니다. 배주를 상당수 누락한 건 특별히 감정상 그랬다기보다 너무 많으니까 너무 길고 어려운 건 빼고 대강 간추린 걸로 보입니다.
엥? 밑에 풀고왔는데 답이 떡하니 올라와있네염;;;;;;;;; 그런데 제가 읽어봤던 삼국지 관련책에는 3번은 다 저수라고 되어있던데;;;;; 지금도 보고 그 책 (삼국지 면경) 찾아보니 저수라고 되어있네염ㅋ 그런데 루게릭님이 예전 레드보이스님 이신가요?
저는 죽 루게릭이었다는....-_-'' // 정사 원소전의 기술대로면 곽도입니다. 저수가 먼저 진언한 적이 있긴한데, 그것은 원소가 기업을 여는데 있어서 방침이 될 이야기를 해준 것입니다. 그리고 저수는 헌제가 탈출할 지 몰랐기 때문에 4주를 병합한 뒤에 장안으로 진격해서 황제를 얻은 뒤에 낙양에 종묘를 다시 세워 수도를 옮겨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헌제가 탈출했을 때 가서 맞으라는 사람은 곽도였는데, 이때 원소는 이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헌제를 맞이한 건 조조가 되었지요. 제 문제는 헌제 탈출 당시에 그를 맞이하라는 진언을 올린 이가 누구인가 입니다. 소설에도 전풍이 진언한 때는 헌제 탈출 당시로 되어 있습니다.
저녁에 학교에서 글 보고 밤에 와서 풀어야지 했는데 집에 와서는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버려서 결국 못 풀었네요 ㅠㅠ 아쉽습니다 ㅠㅠ 앞으로도 이런 삼국지 퀴즈 계속 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