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0장은 목자와 양의 문제입니다.
요15장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이듯이
요10장은 목자와 양의 관계성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시23편의 주석이라고 봐도 무난합니다. 시22편은 고난 받으신 주님에 대한
예언이지만 시23편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심을 말씀합니다.
포도나무가 없는 가지가 없고 가지 없는 포도나무도 생각할 수 없듯
목자 없는 양이나 양 없는 목자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목자와 양은 서로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항상 붙어있고 양은 항상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10:4)
주님의 음성을 아는 고로 그의 양들은 따라옵니다.
우리 편에서 보면 따라가고 주님과 하나가 된 자신으로 보면 따라옵니다.
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별하여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사람의 복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랍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반드시 연결된 상태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은 진화의 종국이라는 말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진화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양의 우리와 문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
주님은 양의 우리가 되시고 또 문이 되십니다.
성막 문을 통하지 않고는 번제단에 이르지 못합니다. 번제단을 통해 물두멍을 지나
금 촛대와 떡상에서 떡을 먹고 향단을 지나 휘장 안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세마포로 처진 성막의 울타리를 넘어 성소에 들어가면 죽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만세 반석인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피난처가 되시고 나오면 인도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먹고 마시고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보호처가 되시고 나오면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안위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원더풀한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이건 상상이나 문학적인 감상이 아니라 실존이며 실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님이 어떤 과정과 절차와 방법으로 우리의 양의 문이 되시며
그 안으로 들어가며 나오며 생명의 꼴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 공부는 주님께서 “내가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10:17)
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주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연합이 되어
우리도 주의 죽으심에 합하여 옛 사람을 죽음에 넘겨주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다시 살아나므로 그의 부활과 생명에 연합이 되는 십자가의 도를
부지런히 반복하는 경건의 훈련을 하므로 그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체화되는 일에 능숙하게 되어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산 자로서 의롭게 되어
영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반복연습을 해야 합니다.
주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자신을 의뢰하고 따라가므로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의 내주역사하심으로 진리를 배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기도, 예배, 경배와 찬양으로 그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방법이 이미
성경에 약속이 되어 있으므로 그 걸 다윗처럼 인생자산이 되게 해야 합니다.
아니면 통조림이 가득한 창고 안에서 캔을 열줄 몰라 굶어 죽어가는 꼴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