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은 우리말 표절자?
공자님은 일찍이 우리에게 귀감(龜鑑)이 되는 자화상을 그려 주셨다. 그 나이 대에 자신의 얼굴에 맞는 자화상의 본보기를 제시하고 근엄하게 우리를 꾸짖고 계신다. 2,50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분의 회초리를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 com
서른까지는 그럭저럭 흘려버렸는데, 마흔부터는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도망만 다닐 수 없어 핑계거리를 찾던 중에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자님의 자화상이 표절한 그림이라는 의혹이 발견됐다. 그것은 우리말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제기되었다. 서른부터 살펴보자. 삼(三)을 의미하는 우리말은 셋, 세, 서, 석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어근은 {설/살}로 추정된다. 주1) 따라서 서른은 '설 + 흔'이다. '흔'은 '흔하다'에서 보이듯 '많다'는 뜻이며 '한(많다)'의 변형으로 '열(十)'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숫자를 나타내는 우리말의 의미로 보건데, 우리의 숫자 체계는 천지인(天地人) 3진법 체계에 10진법으로 완성되었고, 천지 음양의 2진법이 천간지지(天干地支 ; 十干十二支)가 더해져 60진법이 추가된 체계로 보인다. 즉 1은 할(하늘) 2는 둘(달 - 땅) 3은 설/살(사람)의 3진법이 3인 사람을 기준으로 '4 = 1(하늘) + 3(사람) = 하늘사람 = 넉(넋 ; 죽은 사람의 혼) = 넷'이고, '5 = 2(땅 ; 다) + 3(사람 ; 설/섯)', '6 = 3(사람) + 3(사람) = 여럿 사람 = 여섯'이다. 7부터는 다시 6인 여러 사람(여섯) 즉 '사람 + 사람 = 곱/갑'을 중심으로 '7 = 1(하늘 ; 일) + 6(여러 사람 ; 곱) = 일곱', '8 = 2(땅 ; 달) + 6(곱) = '닯'과 '6(여설) + 2(달 ; 땅)'이 혼용되어 '여덟/여닯/여?'이 되었고, '9 = 3(사람) + 6(곱) = 아우[르다](둘 또는 여럿을 한 덩어리나 한 판이 되게 하다, 윷놀이에서 두 바리 이상의 말을 한데 합치다)주2) + 곱 = 아홉'이 된다. 이 같은 천지인 3진법체계에 완성과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열'(열다 ; 열매를 열다<완성> / 문을 열다<시작>)로 10진법이 완성된다. 다시 '서른'을 보자. '설'은 사람으로 천지간에 직립 보행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서다/세우다(立 ; 설 립)'의 뜻과 '설다'(설익다 등 불충분함)을 나타내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말 '서른'은 많은 것을 세워야[立] 하는 나이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설익은 나이라는 의미로 공자의 <三十而立>과 뜻이 같다. 아니 보다 구체적이다. 우리말 40은 왜 '너른(넉[4]+흔[10])'이 아니고 '마흔'인가? '넋'은 '얼(정신, 혼)'의 뜻이지만 '하늘로 돌아간 얼'(하늘 사람)이므로 '마(정신, 마음)'라는 또 다른 '얼'을 뜻하는 말로 표현하여 '마[4] + 흔[10]'이 되었다고 보인다. 따라서 우리말 '마흔'은 '얼이 꽉 찬[10] 즉 얼이 완성[10]된 나이'로서 미혹(迷惑)되지 않을 뿐더러, '나이 40에는 자기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도 서로 확연히 일맥상통한다. '얼'이 있는 곳이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님 40의 자화상인 '불혹(不惑)'은 우리말의 의미보다 겸손하게 그린 것이다. '쉰'은 '다섯(땅 사람) + 흔'으로 볼 때, 땅 사람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매우 쉬운[수이] 상태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보아 '쉬[수이] + 흔 = 쉰'이 되었다고 추정된다. 아울러 '쉰'은 ‘쉰내’로서 익는 냄새를 나타낸다. 곧 익는 때를 알면 맺을(떨어질, 썩을) 때[天命]를 알게 되고, 사람이 무르익게 되면 세상 이치가 밝아져[땅 사람 ; 땅 짚고 헤엄치기] 하늘의 명[天命]을 알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知天命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마찬가지로 '예순'은 또한 '여순'이며 '여러(많이) + 순(쉬운/순한)'으로 사람 사는 이치가 더욱 명백해지며 보다 쉽게 깨닫게 된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본래 ‘여순’은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므로 인간관계의 문제들 즉 사람 사는 이치에 통달해야 함을 뜻한다고 보인다. 공자님의 耳順(이순)은 발음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귀가 순리를 따른다, 귀가 순하다'의 뜻은 한편으론 '귀가 트인 상태'로 보아 많은 사람들의 소리[말]를 모두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모든 행동이 예(禮)에 벗어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소리[말]을 듣지 못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보이므로 우리말 '예순'과 더욱 유사하다. '이른'은 '일(일다/이르다)곱 + 흔'일 것이다. '일다'에는 '이루어지다, 되다'는 뜻뿐만 아니라 '(어떤 상태가) 새로 생기다, 성하게 되다, 위로 솟아오르거나 겉으로 부풀다'는 주3) 뜻이 있음으로 비추어 '이른'은 어느 경지에 다다랐음을 시사한다고 여겨진다. 즉 많은 사람들(곱/여섯)과 하나(하늘)가 되는 위치[경지]에 오르게 되었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종심(從心)의 자화상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자님은 '從心'으로 마지막 자화상을 완성하고 73세인가 74세에 생을 마감했다. 더 이상의 생을 살지 못함으로서 그 이상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하였지만, 우리말에는 더 도달해야 될 다음 단계가 있다. 당연히 80세로 '여든'의 경지이다. '여? + 흔 = 여든'은 '여(많은) + 든(든든한)'으로 온누리[땅]에 많은 사람들이 가득찬 상태인바 '모자람이 없이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경지'를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흔 = 아홉 + 흔'은 '아(아우르다) + 흔(완성)'으로 '만물(아홉)과 하나가 된(완성)' 즉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다. 마지막으로 100세인 '온'은 10진법이 완성된 상태로 완성의 완성을 뜻한다. 바로 사람으로서 비로소 온(100)전하게 된 완벽한 해탈의 경지를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공자님의 자화상은 우리말을 모사(模寫)한 그림이라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또 다른 이유로, 공자님은 은나라의 요순시대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며 그 시대의 문물을 즐겨 배웠다는 사실이다. 은나라의 요순시대는 우리나라의 환웅과 단군시대로 아직은 <한단고기>가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진위를 떠나 그 시대에는 우리 문화도 융성된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의혹을 2가지로 정리해 보면, 첫 째는 공자님이 우리문화를 이상향으로 삼고 자신의 삶이 그 이상에 부합되었음을 자족(自足)하며 그 시대의 문자로 번역하여 술회했을 가능성이다. 공자님이 그 시대의 많은 책을 정리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가장 타당성이 있다고 보인다. 또한 공자님의 사상은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과 거의 유사하다. 주4) 평생을 예(禮)를 이루기 위해 사신 분으로 표절(?)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는 실재로 공자님이 자화상을 그렸을 가능성이다. 너무 부합되는 관계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런 경우는 공자님 같은 성인만이 이루어낸 경지가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문화였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스무 살을 살펴보자. '둘 + 흔'이 아니고 '스 + 무(물)'이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 '스'는 '스다(書/冠 ; 쓰다의 옛말)주5), 서다 또는 스미다'로 볼 수 있으며 '무(물)'은 '마'(얼, 머리)의 변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스무 살은 '얼이 스미는[서는] 나이'이며 아울러 '머리에 관을 쓰는 즉 성인례를 치르는 나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공자님이 정리했다는 《예기(禮記)》에서 20세 또는 20세 전후를 이르는 나이를 '약관(弱冠)'이라 했다. 약관이란 어리지만 관을 쓰는 나이 곧 성인례를 올리는 나이인 것으로 우리말의 의미와 똑같다. 우리의 수(數)체계는 천지인에서 사람을 기준으로 10진법의 순환체계를 이룬다. 열 달의 태아기를 거쳐 10년의 유아기를 지나 다시 10년의 형성기를 보내야만 비로소 사람으로서 얼이 서게(스미게)되어 관을 쓰고 성인례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늘 땅의 시기를 거쳐 비로소 사람의 시기를 이루는 천지인체계이다. 그러므로 10이 '흔(한)'이 아니고 '열'이며 20이 '둘흔(두른)'이 될 수 없고 '스무(물)'이 되는 이치이다. 참고로 《예기(禮記)》에 기술된 나이와 공자님의 자화상 그리고 우리말을 서로 비교해 보면 거의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태어나서 10년이면 유(幼)라고 하여 이때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20세를 약(弱)이라 하며 비로소 갓을 쓴다. 30세를 장(壯)이라 하고 집(家:妻)을 가진다. 40세를 일컬어 강(强)이라 하며 벼슬을 하는 나이다. 50세를 애(艾)라 하며 관정(官政)을 맡는다. 60세를 기(耆)라 하고 남을 지시하고 부린다. 70세를 노(老)라 하는데 이쯤 되면 자식 또는 후진에게 전한다. 80·90세를 모(?)라고 하며, 모는 도(悼:7세를 가리키는 말)와 마찬가지로 죄가 있어도 형벌을 더하지 않는다. 100세가 되면 기(期)라 하고 기린다.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 Com
아! 간신히 핑계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였더니 우리 선조들의 보편적인 문화에도 미치지 못함에 더욱 부끄럼만 더해지는 구나! 현대의 문명을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주1)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 김지형 지음, 도서출판 박이정 p257 주2), 3), 5) 동아 새국어사전 제4판, 두산동아 주4) * 나라의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교(敎)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실은 삼교[三敎= 儒敎 佛敎 道敎]를 포함하여 군생(群生)을 접화(接化)하는 것이다. 들어와서는 집에서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의 뜻과 같은 것이요. 무위(無爲)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교(敎)를 행함은 주주사[周柱史]의 종지(宗旨)와 같은 것이요. 악(惡)한 일은 하지 말고 선(善)한 일은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사(卷第四) 신라본기(新羅本記) [출처] 난랑비(鸞郞碑序)서문|작성자 광야 http://blog.naver.com/uichol5730/80086442108 [출처] 난랑비(鸞郞碑序)서문|작성자 광야 * [우리말] 글자 한 자에 철학개론 한 권이 들어 있고, 말 한마디에 영원한 진리가 숨겨져 있다. - 다석 류영모 - 다석과 함께여는 우리말 철학, 이기상 지음, 지식산업사 p4 |
출처: 무울마당 원문보기 글쓴이: 무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