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드디어 감나무에 단풍이 듭니다.
감잎 단풍은 무슨 색일까요?
워낙 다채로워서, 두 번째 사진에 찍힌 색?
터질 듯 달린 감 하나 따다가 터져버려 속만 먹네요,
‘답니다!’
두 주일 전 말씀 나누고
<관계적 부정신학>이란 논문과 <서양 신비 사상의 기원>이란 책을 접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지만, 그분께서 드러내시면 직접 뵌다!”
욥의 경험을 설명하는 듯한 논문과 책의 내용에 신기했습니다.
아직 함께 나누기에는 부족하여, 잠시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립니다.
<사랑의 광선 견디기>라는 제럴드 메이의 소논문(1987년)을 읽었습니다.
부제가 ‘관상과 개인 성장’~
<사랑의 각성>(1991년) 1장에 다듬어져 실렸다 하여 비교해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빛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땅의 작은 공간에 태어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에 나오는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
제럴드 메이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 존재 이유를 사랑에 대한 갈망, 사랑을 향한 열정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속에 그 갈망이 관계와 치유, 창조 그리고 기쁨에 대한 깊은 추구로 자리잡고 있음!
우리는 갈망을 파묻거나 무디게 하여 회피하곤 하지만,
갈망을 완전히 없애 버릴 수 없으니,
갈망은 계속 우리를 건드린다.
우리가 잠을 자더라도, 사랑을 향한 우리의 갈망은 잠자는 법이 없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17쪽)
욥에게서 시작한 <서투른 모색>의 질문은 거의 다 풀린 듯합니다.
아직 남은 건, 다 좋은데, 왜 시작하셨을까?
창조의 까닭!
우리 쪽에서는 존재 이유~
그 답을 제럴드 메이가 <사랑의 각성>에서 풀어쓰고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사랑하자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여기가 시작점이네요.
“우리는 사랑의 빛을 견디는 법을 배우기 위해 존재한다!”
사랑의 빛,
견딜만 하나요?
샬롬~
2026.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