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안군도의 섬들을 탐방하기 위해 먼길을 나섰다.
소안도, 당사도, 노화도, 보길도가 목표였으나 당사도는 날씨 때문에 포기했다.
항일 운동의 메카였던 소안도는 한때 '남해의 모스크바'로 불리었다.
일제강점기 때 사회주의 계열의 지도자가 소작인 항쟁을 주도했던 까닭이다.
소안도는 노화도·보길도·횡간도·당사도 등과 함께 소안군도를 이룬다.
소안도는 완도군의 최남단에 있고, 완도항에서 17.8km 거리에 있다.
화흥포항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항을 찾아가야 한다.
화흥포는 포화상태인 완도항의 기능을 분담하고 있다.
이곳에서 여객선이 아침 6시 50분부터 하루 11회 운항하고 있다.
화흥포항에서 아침 7시 50분에 출항하는 '민국호'에 올랐다.
소안도는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섬이다.
섬을 오가는 여객선 3척의 이름조차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횡간도
횡간도의 사자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가는 가봐야 할 섬으로 이미 점찍어 놓았다.
소안도항
'만세호'는 약 50분 만에 소안도항에 닿았다.
'항일의 땅, 해방의 섬'이라 새겨진 표지석이 반겨주었다.
표지석에서는 어떤 긍지 같은 것이 느껴진다
소안도는 제주를 오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바다가 워낙 거칠고 험했기 때문에 이 섬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안심했다.
‘소안(所安)’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소안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담수호가 있다.
본디 철새 도래지이자 고니의 월동 안식처로 알려졌다.
최근 2,400여 개의 부표를 매달고 대형 태극기 문양을 만들어 띄웠다.
달목공원
마을로 가는 길목에 달목공원이 있다.
'항일운동의 성지 소안'이라 씌인 거대한 탑이 서 있다.
월항마을
북암마을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월항 마을..
여기서 바로 보이는 건너편이 바로 노화도 동천항이다.
이곳은 면 소재지가 있는 비자마을 다음으로 큰 마을이다.
북암마을
‘북암마을’은 마을이 이 섬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소재지 마을 뒤편에 위치하고 있어 ‘뒷바구(뒷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북암마을 돌담길을 걸어가며 섬의 분위기에 젖어본다.
비자리
소안도에는 총 15개의 마을이 있다.
비자리는 소안항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섬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을 본 적이 없었다.
가학리
가학마을은 뒷산의 형세가 학을 닮아 가학이라 불렀다.
항일의 섬답게 빈 집에도 태극기기 걸려 있다.
8백 명 이상의 주민들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찍혀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소안항일운동 기념공원
바다를 바라보는 공원 한가운데에는 대형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기념탑 좌우로는 항일을 상징하는 군상들의 동상이 있다.
단 아래에는 넓은 공간 그 좌우로 화강암으로 된 표지석이 두 개 세워져 있다.
이 자리는 원래 ‘사립 소안 학교터’란다.
2003년 이곳에 항일 운동 기념관과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2005년 정부 지원으로 소안학교 교사를 복원했다.
일제 강점기에 소안학교는수많은 항일 운동가를 길러냈다.
일장기를 달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1927년에 강제 폐쇄당했다.
소안도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항일의 섬’이다.
공인된 독립운동가만 89명을 배출할 정도로 항일독립운동의 메카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365일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미라리 상록수림
아름다운 경치가 널려 있다 하여 미라리(美羅里)로 명명되었다.
미라리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노송 등 20여 종의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미라리해수욕장
상록수림 앞에는 1km의 몽돌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해변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거대한 해송 두 그루가 그림 같다.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겨 둥글 매끈하게 다듬어진 몽돌이 곱게 깔려 있다.
미라펜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의 멤버들의 숙소로 등장했던 펜션이다.
과거 미라리 학산초등학교가 폐교된 자리에 세워졌다.
마을 기업에서 운영하는 펜션은 원룸 7개와 투룸 3개로 이뤄져 있다.
물치기미전망대
소안도 남쪽 해안 절벽을 따라 고갯길이 이어진다.
고갯마루에 물치기미전망대가 있다.
당사도와 그 너머로 추자도가 보이고, 맑은 날은 제주도까지 보인다.
바다에는 전복의 섬답게 전복 양식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당사도
당사도가 손에 잡힐듯이 보인다.
날씨 때문에 당사도를 포기했지만 다시 올 것이다.
맹선마을
맹선마을의 중앙에는 나이 많은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군함과 어선들의 식수 공급원으로 역할을 했다.
맹선마을 마을숲
마을숲은 천연기념물 제340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서부 사람들이 빤스고개를 넘고 나서 더위를 식히는 역할을 크게 했다.
빤스고개(맹선재)
요즘 상록수림보다 더 인기가 좋은 곳이 빤스고개다.
경사가 심해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고 넘으면 팬티가 보여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제는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옛사람들의 추억의 고개로만 남아있다.
빤스고개는 맹선리와 진산리를 잇는 1.2km의 산길이다.
이곳에서 가학산까지는 3.5km나 되기 때문에 산행은 무리다.
점심 식사 후에 1.5km에 불과한 미라리 코스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가학산 입구
비자리에서 간짜장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가학산 등산에 나섰다.
들머리가 잘 다듬어져 있고, 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등산로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눈을 부릅뜬 채 떨어져 있는 꽃을 밟고 가기가 미안했다.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다만 일별해야 했으나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게로 무너져 내린 동백을 보는 일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 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갔던 건
거기 내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박남준의 詩 <동백> 부분
육지는 미세먼지로 인해 뿌옇지만 이곳은 괜찮다.
남해의 푸른 바다가 내 몸으로 들어온다.
학운정
정상 아랫쪽에 '학운정'이란 정자가 있었다.
‘술에 취하지 말고 자연에 취하라’는 문구가 씌여 있다.
현판의 글씨는 완도 제일의 서예가 능재 임주섭이 썼다.
가학산(해발 369m)
소안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가학산이다.
학이 가마를 타는 형세라고 하여 가학산(駕鶴山)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맑은 날이면 한라산까지 눈에 잡힌다는데, 옅은 해무 탓에 그런 행운은 없었다.
정상에서 보면 소안도는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는 남쪽과 북쪽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인데...
너비 500m, 길이 1.3km 되는 사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섬이 된 것이다.
이 나무는 지금 초경(初經)을 맞이하는 중이다.
숫처녀의 월경처럼 순결한 저 피는 생명의 빛이다.
생명의 신비를 바라보고 있는 숲은 엄숙하고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