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년을 한결같이 "기술·안전 최우선"
직원 복지에 과감한 투자 모든 공장 파이프로 연결… 폐기물을 원료로 재활용
지난달 24일 찾은 독일 남부 라인강변의 루드비히샤펜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에 들어서자 도로 양변으로 늘어선 나무들에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깔끔한 도로와 단정한 식당, 나무와 주택가가 어우러진 풍경은 전형적인 유럽의 한적한 중소도시이다.바로 이곳에 세계적인 화학기업 바스프의 본사와 제1 생산단지가 있다. 화학단지 총면적(약10㎢)은 세계 최대 규모다. 250여개 공장에서 생산되는 품목은 단순 석유화학 제품부터 최첨단 나노화학 제품까지 8000개가 넘는다. 연매출 506억원(약 80조원) 규모의 바스프는 145년 전 프리드리히 엥겔혼(Engelhorn)의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염료를 생산해 팔면 어떨까"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①기술력이 생존 보장
엘겡혼은 1865년 루드비히샤펜에 염료 공장과 염료의 원료가 되는 소다 공장을 세웠다. 그는 당시 최고의 화학자 하인리히 카로(Caro)를 영입해 1869년 바스프의 첫 히트 상품인 빨간색 염료 '알리자린'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곧 위기가 닥쳤다. 1880년 경쟁업체가 오늘날 청바지 염료로 쓰이는 최고의 히트상품인 인디고(indigo·남색) 염료를 개발해 시장을 휩쓸었다. 굴욕적이지만 경쟁업체에 특허료를 지불하고 이 염료를 생산해야 했다. '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이후 바스프는 특허전담관리부서를 만들고 R&D 투자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현재 바스프가 화학업체들 중 최대 규모인 1만1000여개 특허를 보유한 것은 당시로부터 시작된 바스프의 '기술 중시 경영'을 상징한다.
- ▲ 바스프 창업 1년 후인 1865년 루드비히샤펜 공장의 모습./바스프 제공
2차 대전 당시 루드비히샤펜 공장은 폭격을 맞아 초토화됐다. 폐허에서 바스프가 다시 일어난 것은 근로자들의 충성심 덕분이다.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공장 부지에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공장을 재건했다.
다니엘 브라비키 마케팅 매니저는 "바스프가 창업 초기 당시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직원 복지 투자를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바스프는 창업 1년 뒤부터 직원들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와 주택을 제공하고 독일 최초 도서관과 유아원을 갖춘 직원복지시설을 건립했다.
③짠돌이 문화 '페어분트 시스템'
창업자 엥겔혼은 '짠돌이 경영자'였다. 그가 염료 공장 바로 옆에 소다 공장을 세운 것은 "소다를 비싸게 주고 살 필요 없이 내가 직접 만들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아이디어는 '페어분트(Verbund·통합) 시스템'이라는 바스프 특유의 생산체제로 발전했다.
창업 당시에는 두개의 공장만 연결했지만 현재는 단지 내 수백개 공장들을 파이프로 촘촘히 연결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한 공장의 폐기물은 파이프를 타고 이동해 다른 공장의 원료로 사용된다. 바스프는 이 시스템으로 총생산 비용의 10% 이상을 절감한다. 함브레히트 바스프 사장은 "이 시스템으로 1960년대 불황과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위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 ▲ 바스프는 최근 10년간 R&D 부문에 총 140억유로(약 22조원)를 투자했다. 바스프의 연구원인 콕스 박사가 신화학 물질 연구를 하고 있다./바스프 제공
④안전과 환경 문제를 생명처럼
바스프는 1921년 루드비히샤펜 한 공장에서 폭발사고 발생 후, 안전·환경 감시시스템을 회사 외부로 확장했다. 바스프에는 인근 지역 주민과 연결되는 핫라인 전화가 있다. 공기 중이나 라인강에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주민 누구나 전화를 걸도록 해 주민에게도 감시 역할을 맡겼다. 회사 관계자는 "화학기업이 오래 생존하려면 끊임없이 감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⑤"우리는 화학회사" 정체성 끝까지 지킨다
바스프는 2002년 CI 작업을 하면서 기업 로고에 '바로 그 화학회사(The Chemical Company)'라는 문구를 넣었다. 사업 영역을 확대하더라도 '화학기업'이라는 DNA를 버리지 않겠다는 철학에서다. 브라비키 매니저는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던 회사 중 '화학 기업'이라는 정체성마저 버리며 변신을 시도했다가 자취를 감춘 곳들이 무수히 많다"고 했다.
바스프는 비료, 카세트테이프 소재, 자동차용 페인트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 현재는 300개 필수 기초 화학물질 중 200여개를 만든다. 함브레히트 CEO는 "바스프가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화학 업계의 발전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