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Piano Trio No.4 in B-flat major
'Gassenhauer'
베토벤 / 피아노 3중주 4번 '거리의 노래'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Zoltán Kocsis, piano
Kálmán Berkes, clarinet
Miklós Perényi, cello
명작 '대공'에 비견되는 초기 걸작 트리오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 ‘대공’ 트리오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공’ 트리오의 유명세나 인기를 넘어설 수는 없겠지만, 그에 비견되고 필적할 만한 작품이 피아노 3중주 4번 Op.11의 B플랫장조이다. 사실 이 트리오를 ‘대공’ 트리오와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위상을 세워놓은 사람도 많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인 것이다. 인기작품에는 불멸의 악장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트리오에도 그런 ‘느린악장’이 있다. 나머지 두 악장도 무척 훌륭하다며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트리오가 받은 사랑의 절반 이상이 2악장 아다지오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꿈결 같은 베토벤 식 서정의 결정이다!
베토벤이 빈에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1797년쯤으로 추정되고 있고, 몇 가지 정황으로 봐서 1798년에는 써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이 28세 무렵 남긴 작품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연주하는 피아노 트리오 앙상블로 즐겨듣는데, 원래 베토벤은 이 작품을 바이올린이 아니라 클라리넷을 넣어서 먼저 썼었다. 그러고 보면 이 피아노 3중주 4번은 베토벤이 경력 초기에 의욕적으로 시도했던 일련의 관악기를 위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파악할 수도 있겠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가 어떤 클라리넷 연주자의 의뢰로 쓰게 되었다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음악학자들은 베토벤이 당대의 클라리넷 연주자 요제프 베에르(Josepf Beer, 1744-1811)의 의뢰로 작곡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또 베토벤이 특별히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잠재력이나 효과에 의존해서 쓰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악장의 수는, 베토벤이 작곡한 여러 트리오들과는 달리 3개로 되어 있어 미완성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체르니는 생전에 베토벤이 마지막 피날레 악곡을 더 써서 완결하지 못했던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전체는 미완의 형식이라도 각 악장의 완성도는 매우 높다. 베토벤은 초창기부터 발군의 창의력으로 보수적인 빈의 청중을 놀라게 하거나 계도했었는데, 이 혁신적인 피아노 3중주 4번 Op.11도 당시 청중들을 많이 놀라게 했음에 틀림없다.
이 작품에는 ‘가센하우어(Gassenhauer)’라는 독일어 별명이 붙어 있다. ‘거리의 노래’라는 뜻인데, 그것은 3악장 변주곡의 주제와 관련된 것이다. 즉 베토벤은 3악장의 변주곡 주제로, 동시대 오스트리아 음악가 요제프 바이글(Joseph Weigl, 1766-1846)의 코믹 오페라 <바다에서의 사랑>(L'amor marinaro)(흔히 국내 자료들에서는 바이글의 이 오페라를 <해적>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잘못이다)에 나오는 선율을 갖다가 썼는데, 그 멜로디가 당시 빈 거리에서 사람들에 의해 즐겨 불렸던 거리의 노래였다.
이 트리오의 베토벤 자필본 악보는 전해지지 않지만, 1798년 10월에 빈의 모로 출판사에서 초판본이 나왔고 10월 3일의 빈의 신문 비너 차이퉁에 홍보기사가 등장했었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툰 백작부인 마리아 빌헬미네(Maria Wihelmine von Thun)에게 헌정했다. 마리아 빌헬미네 백작부인은 하이든, 모차르트, 글루크 등을 후원한 음악애호가로, 나중에 유명한 베토벤의 파트롱(patron, 후원자)이 되었던 리히노프스키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부인의 어머니다.
1악장: Allegro con brio
‘대공’ 트리오가 특히 그렇지만, 베토벤의 트리오에서 1악장은 음악적인 측면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에서도 전곡 가운데 가장 충실하고 장려한 악곡은 1악장이다. 소나타 형식이며, 세 악기가 유니슨으로 힘차게 연주하면서 시작한다. 차분한 멜로디로 이어지는 1주제가 나오고 경과부에는 피아노가 화려하게 연주된다. 힘차게 F장조로 흐르면서도 D장조의 주제가 피아노 음형에 나타나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2주제는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첼로와 함께 바이올린이 멋지게 노래한다.
이 주제선율을 곧 피아노가 반복한 후부터는 화려한 코데타로 들어가서 힘차게 제시부를 마무리한다. 전개부는 D장조의 주제가 D플랫장조에 의해 아주 여리게 연주된다. 이후 피아노가 강력하고 화려하게 연주되는가 싶더니 저역에서는 어느새 1주제가 전개된다. 두 개의 주제가 모두 B플랫으로 표현되는 재현부인데, 하지만 D장조에 나온 주제는 생략되었다. 1주제에 의한 짧은 코다가 있으며 여리고 강한 패시지가 번갈아 나오다가 종국에는 힘차게 마무리된다.
2악장: Adagio
앞서 강조한 대로 2악장이 품은 꿈결 같은 서정은 이 트리오가 얻는 인기의 징표인데, 악곡은 간결한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 1주제는 피아노 반주를 타고 첼로가 연주하는데, 사실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다. 베토벤의 7중주곡 3악장,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Op.49, No.2의 2악장 주제와 매우 닮아 있다. 이 아름다운 주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교대로 반복하기도 한다.
2주제는 B플랫조로 나온다. 전개부에서는 새로운 주제가 E플랫 단조로 바뀐 피아노 음률로 출몰하면, 바이올린이 이를 모방하면서 시작한다. 피아노가 호화로운 반주를 하는 가운데 첼로는 1주제의 동기를 연주하면서 마무리한다. 재현부에 가면 1주제가 변주 형식으로 재현되는데 이 대목은 아주 아름답다. 2주제도 E플랫으로 재현된 다음, 1주제의 동기에 의한 코다로 차분하게 맺는다.
3악장: Tema con variazioni: ‘Pria ch'io I'impegno’. Allegretto
3악장은 언급한 대로, 바이글의 오페라 <바다에서의 사랑>에 나오는 주제선율을 기반으로 펼쳐지는데, 9개의 변주가 따르고 코다로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베토벤이 이 곡을 썼던 때에 바이글은 빈 궁정 오페라의 부지휘자로 있었는데, 그는 빈에서 1797년 10월 15일에 이 오페라를 초연한 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것은 사실상 그의 첫 오페라 성공작이었다. 당시 유럽의 큰 극장들은 모두 그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을 정도로 바이글의 작품은 커다란 이슈였다. 베토벤도 당시 음악계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베토벤이 자신의 트리오를 위해 오페라에서 가져온 선율은 테르체토 ‘Pria ch'io l'impegno(약속하기 전에)'의 결말 부분이다.
변주는 처음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여, 클라리넷(혹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차분한 이중주 변주, 힘차고 열정적인 3변주로 이어지며, 4변주에서는 단조가 되어 피아노와 다른 두 개의 악기가 응답하면서 전개된다. 5변주는 아주 강렬하고 힘차며 화려하다. 리듬이 독특한 6변주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리게 연주된다. 7변주는 단조의 피아노가 행진곡 풍의 멜로디를 연주하고, 바이올린과 첼로는 부분 동기를 간간이 연주하는 방식이다.
8변주는 스타카토를 치는 피아노와 나머지 악기들의 레가토가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아주 흥미롭다. 피아노의 기다란 트릴이 지속되는 9변주는 전체 변주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코다도 호쾌하게 맺는다. 언제 들어도 커다란 감동을 주는 명곡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생각에 동조하며, 후속 곡이 있어 좀 더 장대하게 마무리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욕심과 아쉬움이 교차한다.